김판석과 강백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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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일게이들아!! 나는 농구를 좋아하는 농구게이야!




오늘은 NBA 90년대 후반과 00년대 초반을 지배한, 역사상 가장 압도적이었던 선수로 평가받는  Most Dominant Ever, 샤킬 오닐에 대해 소개하려고 해.




과거 NBA 80~90년대의 골밑을 지배했던 4명의 센터들을 보통 4대 센터라 칭하는데,




샤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선수였어. 현 NBA 최고의 센터라고 평가받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과거 4대 센터중 가장 아래로 평가받는 유잉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들이 많아. 그 정도로 샤크가 대단하다는 거지.




최근 NBA는 지역방어를의 부활, 3점슛의 활성화 등의 이유로 센터의 중요성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인데 샤크같은 유형의 선수는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이중 1,2,4위가 샤크의 소행이야.. 참고로 3위는 조던이고 5위는 하워드.




위 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말로 파괴적인 센터였어. 무지막지한 힘으로 사정없이 밀고 들어간 후 내리찍는 덩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수준이었지.








어린 시절






샤크의 아버지인 필립 해리슨은 군인이었는데 결혼하기 전 이미 샤크의 어머니는 샤크를 임신한 상태였어. 그래서 샤크는 어머니의 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 




샤크는 11살 때 이미 180cm 거구의 소유자였어.. 친구들은 그런 그를 '샤킬라'(샤킬 + 고릴라)라 부르면서 놀려댔다고 해.




한번은 자신의 점심밥이 있어야 할 책상에 점심밥 대신 바나나가 놓여잇던 적도 있었다고.. 천조국 좆만이들 센스 ㅍㅌㅊ? 




그래서 샤크는 늘 자신의 큰 덩치를 창피해했지만, 샤크가 농구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역전되어버려. 모두가 자신의 덩치를 부러워하기 시작한거야.





고교 시절








어느덧 샤크는 스타급 고교 농구선수로 성장했어.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지.




어느 여름 방학, 샤크는 농구 캠프에 참여하는데 그 캠프에는 전국 방방곡곡의 내로라하는 스타급 고교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어.




그곳에서 샤크는 전혀 주인공이 되지 못했고,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했어.




'이제보니 내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 생각하며 좌절감을 느끼던 샤크에게 어머니는 샤크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고, 이 조언에 샤크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해.




그리고 그 해 오닐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하기 시작하고, 캠프를 마칠 무렵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은 것은 샤킬 오닐이었어.





괴물 탄생








(샤킬 오닐 올랜도 매직 시절 Top 10 플레이.)




1992년 NBA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된 샤킬 오닐은 데뷔시즌부터 미친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해.




데뷔시즌부터 23.4득점 13.9리바운드 3.5블락 이라는 신인으로서는 가히 괴물같은 성적을 찍은 샤크는 당연하다는 듯 신인상을 수상하고 올스타전에까지 선정되는 기염을 토해. 




그 후 조던이 야구하러 떠난 사이 샤크는 2년차 시즌부터 득점왕 경쟁을 시작해(...).




하지만 경쟁상대였던 데이비드 로빈슨이 마지막 경기서 71점(...)을 몰아넣으면서 득점왕은 29.79 >> 29.3으로 로빈슨에게 넘겨주어야 했어.




그러나 샤크는 3년차 시즌에 드디어 득점왕을 차지했고 소속팀인 올랜도 매직을 57승 25패로 동부 1위에 올려놓았어.




그 후 보스턴 셀틱스, 조던이 갓 복귀한 시카고 불스를 차례대로 격파했고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까지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꺾는데 성공해. 




그리고 샤크가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는 하킴 올라주원이 이끄는 전년도 챔피언 휴스턴 로키츠.. 이 시리즈에서 올랜도는 휴스턴에게 4 : 0으로 스윕당하면서 그야말로 무참하게 밟혔어;;




그 때문인지 이 때 샤크가 하킴에게 좆털렸다는 인식이 강한데, 정작 샤크는 그 시리즈에서 평균 28득점 12.5리바운드를 기록했어.. 사실 샤크가 하킴에게 털렸다기 보다는 그냥 서로 털리고 털렸다고 보는게 맞아.









그 다음 시즌 샤크와 올랜도는 60승 22패라는 매우 뛰어난 성적으로 정규시즌을 마치고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어.




그러나 상대는 전년도 설욕을 위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던 72승 10패(...)의 시카고 불스.




이 때 시카고 불스의 감독인 필 잭슨은 샤크의 매치업 상대로 데니스 로드맨(정은이하고 친한 그새끼 맞음.)을 매치업 상대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우는데.




그리고 그 결과 로드맨은 샤크를 상대로 13점 21리바운드(이중 7개가 공격 리바운드)를 기록해. 정은이 친구 리즈시절 ㅍㅌㅊ?








(로드맨 vs 샤킬 오닐)




그 결과 올랜도는 시카고에게 4 : 0으로 탈탈 털리면서 스윕당하고 말아.




그 후 팀의 또다른 에이스였던 앤퍼니 하더웨이를 중심으로 팀을 꾸리기로 결정한 올랜도와 샤크는 거짓말처럼 헤어지게 돼.




나는 전설이다






사실 샤크의 레이커스가 처음부터 굉장했던 건 아니었어.




플레이오프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4전 전패로 처발리거나 칼 말론 - 존 스탁턴 듀오가 이끄는 유타 재즈에게 덜미를 잡히는 등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99/00 시즌을 기점으로 시카고 불스에서 더블 쓰리핏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명장 필 잭슨이 합류하면서 점차 리그를 지배하는 강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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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잭슨은 시카고 불스에서 사용했던 전술인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레이커스에 그대로 적용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어.





트라이앵글 오펜스 하에서의 샤크는 훨씬 더 무서운 선수가 되었고, 여기에 코비 브라이언트의 포텐까지 폭발하면서 레이커스는 최강팀으로 거듭나게 돼.





특히 99/00 시즌의 샤크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이었어. 29.7득점, 13.6리바운드, 3블락이라는 괴물같은 성적을 기록했고 





정규시즌 MVP, 올스타전 MVP, 득점왕까지 모두 달성한 데다가 팀은 67승 15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어.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레이커스는 파이널까지 진출했고, 파이널에서 레지 밀러가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상대로





샤크는 평균 38득점 16.7리바운드, 야투율 61%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파이널 MVP에 선정돼.









즉 샤크는 이 시즌에 시즌 MVP, 올스타전 MVP, 득점왕, 파이널 MVP, 정규시즌 우승, 파이널 우승이라는 위업을 모두 달성하면서 그야말로 선수로서의 영광이랑 영광은 전부 다 누린 시즌이었어.





그 다음 시즌 샤크의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포틀랜드, 새크라멘토, 샌안토니오를 모조리 스윕해버리고 파이널에까지 오르는 위엄을 과시해.





그리고 파이널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1차전을 내주지만, 샤크의 레이커스는 그 후 4경기를 모조리 전승해버려...





그리고 샤크는 또 다시 파이널 MVP에 선정돼. 









보통 NBA에서 가장 이루기 어려운 업적을 꼽으라 하면 그건 바로 '쓰리핏' 즉 3연속 우승이야.




보통 어느 한 팀이 백투백 우승(2연속 우승)을 할 때 쯤이면, 그 팀에 대한 분석은 대부분 끝났다고 봐야 하고




나머지 팀들이 모두 그 팀을 꺾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쓰리핏은 매우 이루기 어려운 업적이야. 그래서 더블 쓰리핏을 이룬 90년대 시카고가 대단하다고 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샤크와 레이커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새크라멘토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면서 겨우 NBA 파이널에 진출해.




그 후 레이커스는 뉴저지 네츠를 꺾고 쓰리핏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지만 사실 이 시즌의 레이커스의 우승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




그 이유는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에서 레이커스에게만 무려 40개의 자유투가(그 중 4쿼터에만 27개가)불려졌기 때문이야.




후에 이 경기는 조작경기였다는 것이 판명났고, 결국 샤크와 레이커스는 쓰리핏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우승에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겨버렸어. 




아무튼 샤크는 이 시리즈에서도 파이널 MVP를 수상함으로서 조던과 함께 파이널 MVP를 3번 연속으로 수상한 선수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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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지. 같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는 없잖아?




샤크는 발가락 부상 때문에 수술을 받고 기량이 하락하기 시작해. 




그리고 슬슬 팀 내에서의 코비의 발언권이 커져가기 시작했고 샤크는 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어.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트윈 타워를 앞세운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배하고, 샤크는 레이커스와의 재계약 협상에서 마찰을 빚기 시작해.




코비는 성추행 파문에 휘말리면서 법원과 경기장을 들락날락 거리고 코비와 샤크의 팀 1인자의 자리를 둔 갈등은 심해지면서 팀 분위기는 개판으로 치닫기 시작해.





결국 코비와의 1인자 경쟁에서 패배한 샤크는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되면서 레이커스에서의 8년을 마무리해.





저니맨 







샤크는 웨이드를 보좌하면서 팀을 이끌기 시작해. 비록 전성기의 포스는 잃어버리긴 했지만 평균 22.9득점, 10.4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고




2006년에는 조연으로서 웨이드와 함께 마이애미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마이애미에게는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자신에게는 네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 성공해.




그러나 다음 시즌부터는 잦은 부상을 당하면서 기량이 점점 하락하기 시작해. 결국 2008년에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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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크는 퇴물이라는 조롱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자신이 맡은 바를 이행하기 시작해.




2009년 올스타전에선 오랜만에 코비와 호흡을 이루기도 했고, 공동 MVP까지 수상했고




ALL NBA팀에도 들면서 기량을 어느정도 회복하는데 성공했지만 팀은 아쉽게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해.




그 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즈, 보스턴 셀틱스를 전전하면서 돌아다니나 오닐은 별 활약을 하지 못했고 결국 트위터를 통해 2011년 6월 2일에 은퇴를 선언해.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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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건 좆도 없는거같은데 글이 이렇게나 길어졌盧.... 덕분에 너무 급마무리한듯한 기분도 드네. 




아무튼 부족한 글 지금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일게이들아. 마지막으로 샤킬 오닐 영구결번식 영상 올리고 갈게.











나중이란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 지금 최선을 다해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 한마디에 나의 인생은 바뀌었다. 나는 현실에 눈을 떴고 그해 여름을 농구에 바쳤다.
그리고 캠프가 끝날 무렵에는 마침내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해 NBA드래프트 1위는 바로 나였다. 나중을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샤킬 오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