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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앨런 아이버슨. 그리고 왼쪽은 그 유명한 마이클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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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ㅍㅌㅊ?)






안녕 일게이들아! 나는 농구를 좋아하는 일게이야. 처음 쓰는 정보글이라 필력이 ㅎㅌㅊ니 이해해주길 바래.




오늘은 183cm이라는 단신(NBA에서는 존나 작은 키다.)으로 한때 NBA 최고의 가드로 활약하던 앨런 아이버슨을 소개하려고 해.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스킬, 화려한 플레이로 농궈충들을 매료시켰고, 이 때문에 길거리 농구 최고의 로망으로 불리기도 하지.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농구를 별로 본 적 없는 일게이들도 이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거야. 아이버슨이 남긴 명언 중 하나지.




불우했던 유년기



Allen Iverson


(그의 어머니 앤 아이버슨.)




그의 어머니 앤 아이버슨은 15살의 나이로 아이버슨을 혼자 낳았어. 그의 어린시절은 상당히 불우했다고 해.




버지니아 햄튼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집이 바로 하수구 위에 위치해있어(...) 하수구가 터질 때마다 집이 똥물로 뒤덮혔다고 해.




그런 ㅆㅎㅌㅊ 아파트에서 지냈음에도 전기세와 수돗세도 제대로 내지 못할만큼 가난했어. 




그의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아이버슨을 위해 당시 엄청난 고가였던 나이키 운동화를 선물해주기도 했어. 그래서 아이버슨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기로 유명해.




만능 스포츠맨







불행했던 어린 시절에도 불구하고 아이버슨은 고교시절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했어. 




미식축구 쿼터백과 농구의 포인트가드로 AP 올해의 최우수선수로 뽑힐 정도로 아이버슨은 스포츠에서 ㅆㅅㅌㅊ 재능을 보였지.




그가 베셀 고교를 다니던 시절에 코치들 앞에서 "내겐 마이클 조던과 동등한 실력이 있다."라 발언한 적이 있다고 해.




실제로 그는 NBA 신인 시절, 크로스오버로 조던을 멋지게 속이고 슛을 성공시키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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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도 아이버슨의 신인시절 그와 매치업을 해보고는 "만약 나에게 저 친구나이에 저렇게 플레이하라고 하면 난 못할 것이다." 라고 발언 한 바 있어.)




참고로 아이버슨은 고교 시절 감옥 신세까지 진 적이 있는데...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겠음.




화려한 데뷔







이제 아이버슨의 선수시절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자면, 그는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중 하나인 1996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필라델피아 76ers에 지명되었어. 




당시 드래프트에는 현재 LAL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 2연속 시즌 MVP를 수상한 바 있는 스티브 내쉬.




그리고 NBA 역대 3점슛 최다성공 타이틀을 보유한 레이 알렌을 재치고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커. 




아이버슨은 데뷔시즌부터 좆쩌는 활약을 펼치기 시작해.




데뷔전부터 30득점을 기록하는가 하면, 올스타 루키전에서 MYP를 수상했고 루키로서는 최초인 5경기 연속 40득점을 올리기도 하는 등 굉장한 활약을 펼치지.




이러한 맹활약을 펼치며 아이버슨은 신인왕을 수상하지만 정작 필라델피아는 22승 60패(..)로 매우 부진했어. 




아무튼, 이렇게 팀이 부진하자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기 시작해.




먼저 기존에 있던 감독을 경질하고 NBA 최고의 명장 중 하나인 래리 브라운을 감독 자리에 앉혔고 선수진도 아이버슨 중심으로 싹 물갈이하기 시작하지.




아이버슨은 그러한 팀의 노력에 화답하듯, 98/99시즌 득점왕을 차지했고, 팀을 90/91 시즌 이후 8년만에 플레이오프로 이끌어.




최고의 시즌





(올스타 MVP 수상자 아이버슨.)




그리고 대망의 00/01 시즌. 아이버슨은 이 해에 최고의 활약을 펼치지.




이 해에 필라델피아는 정규시즌을 56승 26패, 승률 . 683, 동부지구 1위로 마치게 되고




아이버슨은 올스타전 MVP, 득점왕을 차지하고 팀 던컨을 재치고 시즌 MVP까지 수상하면서 역대 최단신 MVP라는 위업까지 달성해.


(00/01시즌 아이버슨의 기록은 평균 31.1득점 4.6어시스트 3.8 리바운드 2.5스틸.) 




필라델피아는 이 기세를 몰아 NBA 파이널까지 진출하지만, 코비와 샤크를 앞세운 레이커스를 상대로 4 : 1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어.






(2001년 올스타전 아이버슨 하이라이트)



(아이버슨 커리어하이 득점인 58점도 이 시즌에 기록했어.)



(00/01시즌 아이버슨 하이라이트.)




추락하기 시작하는 필라델피아와 아이버슨







필라델피아는 다음 시즌인 01/02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보스턴 셀틱스에게 덜미를 잡혀 1라운드에서 탈락해.




02/03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아이버슨은 자신의 플레이오프 최다 득점인 55점을 기록하지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막혀 2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어.




03/04시즌에는 래리 브라운이 경질, 랜디 아이어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시즌 도중에 경질(...)되고 아이버슨과 코치의 불화까지 일어나면서 팀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그 후 필라델피아는 팀에 변화를 주기 위해 글랜 로빈슨, 크리스 웨버등을 영입하지만 아이버슨과의 조합은 실패로 끝나게 말아.




이제는 덴버의 아이버슨.. 그리고 몰락






06/07시즌, 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필라델피아는 결국 팀의 프랜차이즈스타인 아이버슨을 덴버로 트레이드시켜.




아이버슨은 처음에는 필라델피아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지만, 곧 덴버에서의 우승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기 시작해.




당시 덴버는 리그 최고의 스몰 포워드중 하나인 카멜로 앤써니가 있었으나, 죄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이었기 때문에 덴버팬들은 아이버슨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덴버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발목을 잡혀 또 다시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어. 이 때 아이버슨은 36.8%이라는 최악의 야투성공률로 패배의 원흉 중 하나가 되어버려.




결국 08/09시즌, 아이버슨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레이드 되었어.




그러나 조직적인 농구를 하는 디트로이트와 아이버슨은 궁합부터 맞지 않았고, 디트로이트와의 계약 종료 후에 FA선수가 되었어.




그리고 후에 간신히 맴피스 그리즐리스와 1년 계약을 맺었으나 트레이닝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고 벤치맴버로 출전하는 것에 대해 대놓고 언론에 불만을 표했다가 결국에는 방출당했어.




그후 친정팀 필라델피아로 복귀하지만..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어.




그 후 백수로 지내다가 터키리그(...) 농구팀 베식타스 2년 계약을 맺고 터키로 떠나게 되었어. 한 때 NBA 최고의 스타였던 그가..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눈물 나는 광경이었지.





(어쩌다가...)




그 후 2011년까지 터키리그에서 활약했으나, 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진 못했고 결국 다시 FA선수가 되었어.




그 후에도 계속해서 NBA 복귀를 희망했지만.. 어느 팀도 이제 30대 중반인 아이버슨과 계약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




결국에는 2013년 10월 30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홈구장인 웰스 파고 센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발표를 했어.




이 날 필라델피아는 전 시즌 우승팀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신승을 거두며 아이버슨의 마지막을 빛냈지.





(아이버슨 은퇴 인터뷰)




마치며







지금까지 앨런 아이버슨에 대해 알아보았어. 한 때 NBA 최고의 선수였지만, 말년에는 해외리그나 진전하면서 돈 벌기에 바빴던.. 어쩌면 비운의 선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선수인생이 끝났다고 인생이 끝난 건 아니지. 그가 은퇴문에서 밝혔듯이 이제 그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야. 




젊은 시절을 모두 농구코트 위에서 보냈던 그도 이제는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으로서 이제 가족 앞에 설 수 있을것이고, 이것은 아이버슨의 또 다른 도전이 되겠지.




마지막으로 아이버슨의 커리어 TOP 10 플레이 영상 올리고 마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