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편  http://www.ilbe.com/153186257

II편 http://www.ilbe.com/153220626

III편 http://www.ilbe.com/156383566

IV편 http://www.ilbe.com/158193101



4편에서 바로가 군대를 이끌고 평야에 진입했고 이로써 전투가 개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양측 사령관들이 그냥 대책없이 전투하려고 생각하지 않았고 전투 벌어지기 전 어떻게 전술을 구사할 것인지 작전을 세밀하게 세워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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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짜는 로마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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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짜는 한니발)





일단 바로와 파울루스 그리고 원로원은 지휘부에서는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의 약점이 바로 중보병이라고 판단하였지. 이미 설명했듯 한니발의 중보병은 로마군에 비해 많이 후달렸음. 일단 한니발의 중보병은 


8천 아프리칸 보병


8천 이베리안 보병


1만 6천 갈리아 + 기타 용병






이렇게 구성되어있었거든. 그런데 위의 구성에서 위의 1만 6천 아프리칸, 이베리안 보병은 한니발이 직접 스페인에서 데리고 온 데다 알프스를 넘는 등의 고생을 한 전력이라 매우 뛰어난 전력이긴 하지만 나머지 1만 6천 갈리아 + 기타 용병은 로마군에 비해 전투력이 꽤 많이 떨어지는 군인들이었지. 즉 보병 전력 중 로마군과 맞설 수 있는 전력은 단 1만 6천이었고 남은 1만 6천은 어떻게 써야할 지 애미리스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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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애미리스한 병력들)




그런데 로마측에서 동원한 보병 전력은 8만이잖아. 그러니 8만 중보병 vs 약한 1만 6천 + 강력한 1만 6천 이런 구도니까 보병끼리 맞붙으면 도무지 로마측은 질래야 질 수가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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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단병)



로마측 사령관들도 이점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 그리고 이들은 한니발이 중앙에 중보병을 배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중앙에 중보병을 배치 안하는 전술은 당시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었지. 그래서 바로와 파울루스 그리고 원로원 의원들은 당연히 보병대 보병 맞붙는 중앙 싸움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정하였지.




그런데 로마인들이 진심 대단한게, 한니발의 이전 전투 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한니발 군이 실패했던 사례들을 참고한거야. 여기서 그들 눈에 들어온게 저기 3편 http://www.ilbe.com/156383566 에서 등장한 샘프로니우스와 한니발의 전투였지. 샘프로니우스는 포위된 위급한 상황에서 소수 전력으로도 중앙을 돌파해버렸잖아. 이것을 본 로마 지휘부는 "한니발 군은 중앙 돌파에 취약하다" 라는 결론을 내린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아예 처음부터 로마 중보병을 동원해 한니발 중앙을 맹공격해서 뚫어버린다면 조각조각난 한니발 군은 분쇄되버린다라고 판단했음.




그런데 기병이 문제인데 한니발은 1만 기병 그리고 로마군은 6천 4백 기병이 있었거든. 사실 이미 이때 로마 장군들은 한니발이 기병으을 주무기로 삼아 포위전을 한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 그래서 이번엔 로마인들이 작정하고 기병을 많이 뽑았지. 원래 로마군은 편제상 한 군단당 300기병씩 즉 8개 군단이면 2천 4백 기병이어야 되는 건데 이걸 3배 정도 되는 양을 뽑았으니 로마인들이 정말 기병 전력 강화에 신경을 많이 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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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기병전력이 아직도 한니발 군에 비해 부족한거야. 그래서 로마 장군들은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어.





전투지가 강을 끼고 있는데 강가와 로마보병 사이에 2천 4백의 로마 기병을 배치해두는거야. 바로 아래에 빨간 동그라미 친 부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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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두면 강과 로마 중보병에 의해 기병의 양익은 보호되고 따라서 기병들은 정면으로만 싸울게 될 거 아냐. 이렇게 되면 기병은 꽤 오랬동안 버틸 수 있다 이거였지. 게다가 이 기병은 집정관인 파울루스가 직접 지휘하기로 했는데 이것은 이 기병이 오랫동안 버텨주는게 중요했으므로 집정관이 직접 참여해 사기를 드높히고자 한거지.



 


그리고 로마 보병 좌익인 다른 쪽엔 집정관 바로의 지휘를 받는 4천명의 동맹시 기병을 배치해두었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한니발 기병 전력과 대등한 승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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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니발이 평소처럼 기병을 50대 50으로 나눠 양익을 공격한다면 오른쪽은 강의 보호를 받으면서 2천 4백대 5천의 공격을 오랬동안 버틸 수 있고, 왼쪽은 4천대 5천이니 대등한 승부가 된다 이런 이야기지.





로마 사령관들은 이렇게 작전을 짜놓고 완벽하다고 생각했음. 사실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 시점으로 보면 로마 사령관들의 전술은 한니발의 약점인 중앙을 정확히 노리고 있는데다 자신들의 약점을 최대한 보호하는 형태로 전술이 짜여졌으니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한니발이 한 술 더 뜬거야.





한니발은 로마군의 약점은 역시 기병이라고 판단하였음. 그래서 적의 기병을 아군의 기병으로 격파해야하는데 이게 조금만이라도 지체되면 큰일났지. 그래서 한니발은 어떻게 하면 적의 기병 전력을 최대한 신속하게 격파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음. 그런데 아까 내가 강을 끼고 있어서 기병이 버티는데 유리한 지형이 있었고 그곳에 로마군이 소수 기병을 배치해 놓으려 계획짰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것을 한니발이 예상한거야. 즉 이 강가가 기병이 소수로 버티는데 유리한 곳이니까 틀림없이 로마 집정관들은 소수의 기병을 배치할 것이다 이게 한니발의 예측인 것이었지.




그래서 한니발은 로마가 이곳에 소수 기병으로 버틸 거니까 자기는 아예 다수의 기병을 몽땅 투입하겠다고 결심하였음. 즉 한니발에겐 3천 5백의 경기병인 누미디아기병, 6천 5백의 중기병이 있었는데 이 6천 5백의 중기병을 모조리 그 강가의 로마 기병이 배치될 곳에 투입해버리는거야. 즉 아래의 파란 네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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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천 5백의 경기병으론 로마군의 좌익에 있는, 정예 중기병을 상대토록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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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익의 3천 5백 경기병이 로마의 4천 중기병을 상대하면 녹아내릴게 뻔하니까 한니발은 이들 보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투창만 던지라고 시간끌라고 지시하였음. 그리고 좌익의 6천 5백의 중기병이 강가의 로마군을 격파하면 곧장 배후를 쭉 우회해 누미디안 경기병이 상대하는 로마 정예 중기병의 배후를 쳐서 분쇄하는거지.

 



이렇게 기병 전투의 전술을 결정한 뒤 한니발은 보병 전술을 구상했었음. 이게 걸작인데 한니발은 로마군이 중앙을 공격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음. 그런데 한니발 역시도 중앙 돌파당하면 자신도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최대한 중앙 돌파의 저향력을 키우려고 생각해낸게 바로 초승달 형태로 로마군을 향해 볼록 튀어나오게 중앙 군대를 전진 배치하는거지. (파란 네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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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군대 전진 배치가 왜 돌파에 저항력이 있는가, 이건 바로 중앙이 밀렸을때 뒤로 물러날 공간이 훨씬 확보된다는거지. 즉 중앙을 밀리고 밀려 라인이 붕괴되면 돌파당하는건데 밀리는 공간이 많을 수록 돌파당하는 시간은 늦춰지게되지.




그런데 이 경우 튀어나온 중앙 부분이 집중공격을 당해 패주할 수도 있거든? 한니발은 그래서 자신의 1만 6천 보병 중 8천의 이베리안 보병을 중앙 부분에 많이 포함시켰지. 이 이베리안 보병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온 알프스를 넘는 등의 고된 행군도 견딘 정예부대라서 로마군의 맹공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군대였으니까.





그리고 또한 자신이 직접 그 중앙 부분에서 지휘하기로 결정하였지. 최고 사령관이 직접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는 높아지고 따라서 패주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거니까.





그리고 이에 추가로 구상한 전술이 하나 있었는데 이건 진심 대단하다. 이건 전사에서 한니발이 최초로 쓴 전술이었음. 이게 뭐냐면 바로 정예보병 중 중앙에 갈리아, 용병들과 함께 배치될 이베리안 중보병 말고 또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은 8천명의 아프리칸 중보병이 있었거든? 이 아프리칸 중보병을 양익에서 배치시켜놓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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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보병들은 전 보병이 뒤로 밀리더라도 그들 만큼은 위치를 끝까지 지키게 하는거야. 그렇게 된다면 로마군은 자연스럽게 저항이 약한 부분, 즉 중앙쪽으로 공격이 집중될 것이고 중앙은 뒤로 밀리는데 보병 양 끝머리는 안밀릴 것 아니냐. 그러면 로마군은 자연스럽게 카르타고 전열에 푹 빠지는 식으로 감싸지게 되는거지. 





그렇게 한 뒤 한니발은 기병들에게 로마 기병을 처리하면 곧바로 비어있는 중앙의 로마중보병의 후방을 공격하라고 지시했지.





이렇게 양측 사령관이 전술을 짠 다음 드디어 평원에서 맞붙게 되었지. 그런데 한니발이 여기서 또 꼼수를 부린거야. 그건 뭐냐면 바로 로마군이 도착할 전장터의 동쪽에 군대를 배치해놓고 기다린거지. 아침에 전투를 치루니까 태양이 동쪽에서 위치하고 있을 거잖아. 그러니까 한니발은 자신의 병력을 동쪽에 배치해서 자신의 군대는 태양을 등지고, 로마군은 태양을 보면서 싸우게 한거지. 즉 태양 때문에 눈부시면 전투력이 저하된다 이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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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물 긷는 것을 방해해서 갈증도 심하게 만들고, 여기서 추가로 한니발은 그날의 날씨도 고려했었나봐. 즉 이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라서 모래가 자욱했는데 이러면 적이 잘 안보여 병사들은 공포심에 떤다 이거지. 그런데 이 공포심은 한니발 밑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병사들보다는 갖 징집된 병사가 많은 로마군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말이지.




그러니까 한니발은 기후도 고려하고 태양의 위치도 고려하고 갈증도 심하게 만들고, 즉 전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 전투를 치룬거지.






이 두 군대가 배치된 이후 서로 함성을 지르면서 우선 경보병들이 달려나가 투창을 시작하였지. 그와 동시에 기병이 서로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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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가에 배치된 로마기병은 예상을 뛰어넘는 자신들의 3배에 달하는 기병의 물량을 당하면서 굉장히 고전해버린거야. 결국 기병들은 못당하고 바로 격퇴 되어버리지.






로마 기병이 무너짐과 동시에 중앙에서 드디어 중보병끼리의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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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로마 중보병은 전진하면서 어느 형태와 다른, 자신을 향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형태로 배치한 적군을 만난거야. 이것을 본 로마군은 자연스럽게 중앙에 튀어나온 부분을 향해 공격을 시전하였음. 그런데 이 중앙에 튀어나온 대대가 슬슬 뒤로 빠지자 로마군은 이들을 쫒는 형태로 진격하였고 이러면서 로마군은 중앙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상당히 빽빽하게 압축되버림. 빽빽하게 압축되자 무기를 잘 휘두르기 어려울 정도가 되버렸는데 그래도 로마군은 그대로 전진하였지. 전진하면서 카르타고군을 밀어붙이게 되었는데 카르타고 군 역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음. 그래도 카르타고군은 점점 뒤로 밀렸는데 이것은 밀어붙이며 전진하는 로마군의 굉장한 질량 때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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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카르타고 군이 계속 밀리자 로마군은 점점 카르타고군을 움푹 패이게 함. 그런데 보병 전열의 양끝에 있었던 한니발의 아프리칸 중보병은 어떤 공격에도 밀리지 않은거야. 이게 왜 그러냐면 이들 아프리칸 중보병은 한니발 군대 전체의 최강의 보병전력이었기 때문에 로마군이 덤벼도 꿈쩍도 안한거야. 양 끝의 아프리칸 중보병은 움직이지 않았고 중앙의 카르타고 군이 뒤로 밀리다보니 어느덧 로마군은 삼면으로 포위된 형태가 되버렸음. 즉 이런 식으로 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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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은 이때 움직이지 않았던 아프리카 중보병에게 전진해서 로마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였음. 그러자 버티기만 하였던 이들이 무기를 가지고 앞으로 전진한 뒤 로마군의 양 측면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지. 로마군은 다소 지쳐있었는데 아프리카 보병은 체력을 비축한 상태인데다 이들의 전투력이 막강했으므로 로마군은 갑자기 맹공격을 받으면서 죽기 시작였지.




이때까지도 로마군의 좌익에서는 누미디안 경기병과 로마 중기병은 싸우고 있었음. 로마 중기병은 누미디안 기병에게 여러차례 돌진했지만 누미디안 기병은 슬슬 뒤로 빠지면서 투창을 던졌을 뿐이었지. 그런데 이때 강가에서 승리한 뒤 로마 중보병의 배후를 쭉 돌아서 이동해 도착한 한니발의 중기병이 후방에 나타난거야. 로마기병이 말을 돌려 이들을 상대하자 누미디안 기병들이 로마기병에게 접근해 투창을 던져서 죽임. 이렇게 앞뒤로 협공당해 공격당하자 이들도 무너져 내려서 달아났고 기병을 깨끗이 청소한 한니발의 기병들은 방해받지 않고 중앙에서 싸우고 있던 로마 중보병의 배후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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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기병들은 배후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면서 전열을 가다듬었음. 그리고 로마군이 벌써 삼면의 공격을 받아 고전하고 있었고 특히 한니발의 아프리칸 중보병이 로마군을 밀어붙이는 광경을 보고나서 드디어 공격을 개시하였지. 즉 이제는 중앙의 로마군이 완전히 싸발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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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도 이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로마군의 죽이기 시작하니까 로마군은 집단 패닉과 혼란에 빠지게 됨. 이때 로마군 일부가 탈주를 감행했는데 카르타고 기병 대장이었던 하스두르발은 누미디안 기병을 따로 뽑아 내보내 탈주병을 보이는 대로 죽이게 하였지.




이 상황에 이르자 이젠 전투가 아닌 살육이 되버렸음. 한니발의 아프리칸 보병은 싸움보다는 살육으로 인해서 지친 상태가 되었을 정도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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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집정관 파울루스가 전장에 남아있었는데 그는 강가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기병들과 함께 아직도 근처에서 버티고 있었나봐. 이러다 파울루스는 투석병에 명중당해 말을 탈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상을 입게 됨. 그래서 말에서 내리자 파울루스를 호위하던 기병도 말에서 내렸지. 이때 누가 한니발에게 파울루스가 기병들에게 말에서 내려서 싸우라는 명령을 했다고 전달하자 한니발은 다음과 같은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그는 그런 명령보단 차라리 그들의 팔다리를 결박해 나한테 항복하라는 명령을 하는게 더 나을텐데."





파울루스의 군대는 계속 공격을 받았는데 (아마도 이들을 공격한 카르타고 기병은 일부 남겨진 전력이고 주력은 이미 로마군의 배후를 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안 파울루스는 자신의 부하장교를 불러 자신의 말을 건네면서 즉시 로마로 가 원로원에게 패배는 확정적이니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고 전달하라고 말하고 숨을 거둠. 그리고 집정관 바로는 이미 50명의 기병과 함께 전장을 떠나 탈출한 상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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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미 로마군은 사방에서 둘러싸인 상태로 계속 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때 로마군은 앞의 서있던 병사가 죽으면 뒤에 있던 병사가 나와 다시 죽으면서 쓰러져갔음. 그래서 둥그렇게 포진해 사방에서 공격당하고 있었던 로마군의 전열의 크기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고 이것은 서있던 병사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지. 그리고 장교로 참여한 원로원도 모두 죽었는데 이들 중엔 이전 편에서 파비우스와 함께 등장한 기병장관과 3편에 플라미니우스와 함께 집정관으로 등장했었던 제미누스도 전사해버렸지.




 





여기서 하버드 박사 출신의 역사학자 카울리는 이 전황을 이야기하면서 1분에 6백명의 로마군이 계속 죽었나갔다고 설명함. 그러니까 완전무장을 갖춘 로마군이 일초가 흐를때마다 10명씩 죽는거야. 이런 상황에서는 나오는 비명과 시체 무더기는 병사들의 공포심을 완전히 높혔고 그래서 로마군 중 어떤 이는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의 얼굴을 땅에 파묻어 버릴 정도로 공포에 질렸다고 한다.






이 전투는 로마군 모두가 전멸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전투가 종료되었을땐 대략 5만이 넘는 로마군 전사자의 시체가 남게 되었지. 그리고 1만명 정도가 포로로 잡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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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한니발의 전사자는 7-8천 정도였고 이들의 과반수는 주전력이 아닌 용병과 갈리아 인들이었지. 즉 한니발은 압도적 다수의 로마군을 맞이해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물 정도의 완벽한 승리를 해버린거야.





이 전투는 후대에 칸나이 전투라고 불리는데, 얼마나 전술로 불리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함. 이 전투는 로마인들조차도 사상 최악의 참사라고 불리면서 한니발을 경외하게 되었고, 걸핏하면 제 2의 칸나이 칸나이하고 노래를 불렀음. 그리고 로마 시대 이후로도 모든 학자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전투야.





이게 왜 그렇게 굉장한 것이냐면, 저렇게 보병과 기병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면서 적을 싸발리는 전투의 형태는 한번도 나온 적이 없었거든. 한니발이 이전에 쓴 전투에서 기병을 활용해 로마군의 양익을 협공해서 승리하긴 했지만 칸나이 전투 이것과 달라. 그 이유는 여기서 아프리칸 보병이 포위전술에 동원된 것이거든. 즉 포위전술에서 보병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승리에 기여하는 형태를 처음 보여준 것이고 이 보병과 기병이 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움직임을 보여줬다는 것에서 전술사의 하나의 혁신인 것이지. 한마디로 여지껏 전투 형태는 죄다 즉 "일렬로 늘어놓고 전투력이 쎈 쪽이 승리" 이런 식의 간단한 방식었거든, 그런데 한니발은 최초로 "전투력이 아닌 기병 + 보병의 배치와 움직임으로 승리"라는 승리공식을 만들어 놓은거야.






솔직히 로마군의 전술 역시 당시로써 생각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식에 가까웠지. 그리고 로마인들과 정치가들은 모두 이러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을거야. 하지만 한니발이 이렇게 새로운 전투의 개념을 들고 나왔을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겠지. 이런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이런 천재전술가일 줄 누가 알았을까?






어쨌건 전투 이후 한니발은 자신의 병력을 쉬게하였고, 캠프에 남겨진 로마군을 공격하지는 않았어. 이 로마군들은 양쪽에 쪼개져 있었는데 서로의 전령을 보내 서로에게 자신의 캠프로 오라고 다투는 촌극을 보였는데 그건 서로 캠프를 먼저 떠나는걸 두려워했기 때문이지. 결국 이들 중 개념있는 장교 하나가 칼들고 분위기 잡아 간신히 한쪽에서 캠프를 출발, 합류해서 근처의 동맹시로 달아났지.






그리고 한니발에겐 마하발이라는 기병 장교가 있었는데 칸나이 전투에서는 얘가 우익의 누미디안 기병을 지휘했고 위에 나오는 하스두르발은 좌익의 중기병을 지휘했었지. 얘는 한니발보고 즉시 로마를 공격할 것을 건의했어. 그런데 한니발은 이걸 거부했는데 이것은 설령 칸나이의 승리에서도 공성전하기엔 부족하다고 본 것 같아. 사실 로마가 인구 40 - 50만의 대도시고 로마를 포위해도 동맹시가 후방에서 공격할 수도 있었으므로 4-5만의 병력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 같음. 그리고 공성무기가 충분치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어쨌던 요즘 학계의 대세는 한니발 판단이 일리있다 이런 식으로 흐르고 있음.





다음날 아침이 되자 한니발의 군대는 전리품을 챙기고 아군을 장사하려고 전장터를 방문했는데 이들조차도 공포에 떨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이때 로마는 완전한 패닉에 빠졌는데 원로원이 긴급히 소집되어 대책을 논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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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도 당황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거야. 이때 분위기는 완전 개판이었는데 이들이 회의하는 내내 바깥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초상난 분위기었다고 함.




원로원은 일단 사람들을 진정시키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서 의원들이 뿔뿔히 흩어져 시민들을 달래러 떠남. 이때 도망간 집정관 바로가 전령을 보내 자신이 생존했음을 알리고 휘하에 1만명의 잔여병이 있음을 알림. 그리고 그는 추가로 한니발이 칸나이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뒤이어 또다른 급보가 날라왔는데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카르타고 해군이 출몰해서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함. 이런 위기상황에서 원로원은 희생양을 찾았는데 이는 바로 여사제들. 로마엔 평생 처녀로 신을 모시면서 살고 있는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대충 이렇게 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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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신의 분노가 임박한 책임을 물어 한명 생매장시키고 한명을 자결하게 한 뒤 한명의 남자 사제의 경우 채찍질해서 죽임.






그렇게 한 뒤 다시 인신공양을 하기로 해서 갈리아남녀와 그리스 남녀 넷을 생매장시킴. 그렇게 한 뒤 주니우스란 사람을 독재관으로 선출한 뒤 병력을 징병하는데 워낙 많은 수가 죽어 노예까지 국세로 무장시켜 군대를 편성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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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길어졌으니 일단 여기서 끊을께. 전투 하나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어졌는데 칸나이 전투면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내용을 많이 넣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