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는 대북송금자(들), 숨막히는 진퇴양난의 늪
- 오창균 선임기자
- 뉴데일리 2026-10-08
李 지지율 뚝뚝 떨어지자 초조한 이화영의 '입'
"이 전 부지사 분노" … '피고인 이재명' 언급까지
독단적으로 추진했다는 이화영이 화가 난 진짜 이유
"대속(代贖)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발언 왜 나왔나
대통령 책상에 놓인 독촉장,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4월 14일 국회 '윤석열정권정치검찰조작기소의혹사건진상규명국
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앉아 있다. ⓒ이종현 기자
- 게임이론에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명제가 있다
- . 함께 죄를 지은 두 공범이 서로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는다. 두 사람이 끝까지 입을 다물면 적당한 처벌로 사건은 매듭지어진다.
- 그러나 상대가 먼저 입을 열어 자신만 중죄를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 셈법이 달라진다.
- 저마다 합리적이라 여긴 선택이 결국 모두에게 가장 불리한 결말로 치닫는 것이다.
- 교훈은 단순하면서도 냉혹하다. 갈라진 공범들의 신뢰에 금이 가는 순간 침묵의 값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다.
반세기 넘게 인간의 이해타산 본질을 꿰뚫어 온 이 딜레마가 우리 정치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 .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분노를
- 감추지 않으며 가석방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석방을 둘러싼 이화영 전 부지사 측의 압박은 7일 마침내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누기에 이르렀다. - 변호인인 김광민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대북송금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결론 내놓고선 정작 그 사건으로 5년째 수감 중인 사람을
- 철저히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 훨씬 더 심하고 잔인한 것 아니냐"고 적었다.
- 우회도 완곡도 없는 공개 요구였다.
- 김용 민주연구원 수석부원장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은 이미 풀려났는데, 어째서 이 전 부지사만
- 여전히 갇혀 있어야 하느냐는 불만도 터뜨렸다.
- 이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이 전 부지사가 대통령에게 최후 통첩을 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김 변호사는 다음날인 8일 페이스북에 주변 사람들의 경고가 들려온다는 말과 함께 - "정작 직접 연락해서 말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비겁한 자들"이라고 적었다.
- 직접 말을 건네는 이는 없이 주변을 통해 경고만 전해진다는 취지다.
- 김 변호사는 이전부터 이 대통령을 언급하며 이 전 부지사 석방을 요구해왔다.
- 지난달 13일 "대통령님, 이화영 5년째 수감 사유가 대북송금이 진실이기 때문이라면 2024고합474 사건(피고인 이재명,
- 이화영) 변호인인 저는 어떻게 변론해야 합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 북한 리종혁(가운데)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이 지난 2018년 11월 '제1회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
제 대회' 참석을 위해 경기도를 방문해 당시 이재명(왼쪽) 경기지사, 이화영(오른쪽)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기념 촬영을 했다. ⓒ연합뉴스
- 불쑥 튀어나온 요구가 아니다.
- 이화영 전 부지사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자 부쩍 초조한 기색이다.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수원구치소를 찾아 이 전 부지사를 접견한 뒤 "대북송금 사건의 조작 수사
- 과정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전 부지사가 강한 분노를 표했다"고 전했다.
- 다른 여권 인사들의 접견도 잇따랐다. 그 자리마다 이 전 부지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토로를 쏟아냈다고 한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에게 화가 많이 났다"는 말까지 담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 이화영 전 지사는 이후 "저의 진의와 다른 부분이 있다"며 대통령의 고뇌도 공감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후폭풍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쯤에서 불법 대북송금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 이화영 전 부지사는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800만 달러를 건네도록 공모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 항소심에서 7년 8개월로 감형됐고,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 이 대통령 역시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 사실상의 공범 관계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재판은 취임 이후 헌법 84조 불소추특권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 속에 멈춰 섰다.
- 같은 사건의 한 사람은 철창 안에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청와대에 있다. 이 극명한 비대칭(非對稱)이 논란의 발원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곡절이 있었다. 이 전 부지사는 대북송금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했고,- 이후에는 검찰청에서 술자리를 통해 회유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술자리 의혹에 대해 "100% 사실로 보인다"며 힘을 실었다.
- 이를 교두보 삼아 민주당은 사건 전체에 조작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현재는 공소 취소를 위한 특검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지경이다.
- 일련의 흐름을 이 전 부지사의 처지에서 되짚어 보면 계산법이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다.
청구서의 밑그림은 이미 2년 전에 그려져 있었다.- 2024년 7월 항소심 첫 재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수원구치소 접견 녹취록에 따르면, 1심 결심 공판 직후인 이 전 부지사는
- 배우자에게 이재명 대표를 비공개로 만나달라고 청했다. 같은 달 30일에는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현역 의원 2명을 접견해 이 대표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당부한 뒤 "당선자 여러분들도 누군가 이렇게 대속(代贖)을 했기 때문에
-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속이란 남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희생을 치렀으니 응당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계산은 그때부터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 . 자신이 이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않고 홀로 짐을 짊어졌는데 왜 외면하느냐는 것이다.
-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서늘한 예감이 깔린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 이번 가석방 요구가 이 대통령 앞에 내민 청구서로 읽히는 까닭이다.

▲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18년 7월 10일 당시 경기도지사로 재임 중인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 ⓒ경기도 제공
- 이재명 대통령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 대통령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희대의 조작"이라며 자신은 몰랐다고 부인해 왔다.
- 특히 2023년 9월 9일 수원지검 조사에서는 "이화영이 나 몰래 독단적으로 대북 사업을 추진했다"며 혐의 대부분을
- 이 전 부지사에게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 "이화영이 (쌍방울에서) 돈 받아먹은 것을 알고도 내가 그런 사람을 썼겠느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검찰은 당시 조사에서 경기도가 북한에 쌀 10만t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2019년 6월 13일자 경기도 공문을 제시했다. - 경기지사가 직접 결재한 서류였다.
- 이 공문은 2018년 말 조선아태위 김성혜 실장이 "경기도가 약속한 돈을 주지 않는다"며 격앙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 이 전 부지사가 쌀 10만t 지원을 약속하는 친필 편지를 북한에 보낸 일과 맞닿아 있다.
- 두 사람이 대북 사업을 긴밀히 논의했음을 짐작게 하는 정황이었다.
- 그런데 이 대통령은 "참 황당하다.
- 이화영이 나도 모르게 도지사 직인이 찍힌 서류를 만든 것이고 서류를 가져오니 결재한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 고 한다. 검찰은 부지사가 도지사 승인 없이 사기업을 동원해 대북 사업을 독단으로 진행했다는 진술의 신빙성이
-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부지사가 지사의 방북을 위해 쌍방울을 동원해 거액을 북한에 보냈는데,
- 이를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아이러니하다.
다른 모순(矛盾)도 눈에 띈다.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전 부지사는 상관을 속이고, 독단으로 일을 벌여- 대통령을 피고인석에 앉힌 장본인이다.
-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향해 노여움을 드러내고 대놓고 석방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 몰랐던 일로 억울하게 엮인 쪽이 대통령이라면, 분노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대통령이어야 한다.
- 그러나 이 대통령은 대북송금을 몰랐다면서도 이 전 부지사를 고소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검찰과 전면전을 벌였고, 끝
- 내 검찰청 폐지까지 밀어붙였다. 창끝은 자신을 속였다는 부하가 아니라 사건을 수사한 기관을 정조준했다.
동서고금을 돌아보면 공범의 침묵을 사려던 권력은 예외 없이 더 비싼 값을 치렀다. - 1972년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으로 기소된 공작원들은 백악관에 입막음 돈을 요구했고,
- 그중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의 독촉은 권부를 뒤흔들었다.
- 이듬해 3월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John Dean)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에게 "대통령직 바로 곁에서
-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다"고 경고했다. 침묵을 돈으로 묶어두려던 시도는 결국 의회 증언으로 무너졌다.
- 닉슨은 1974년 8월 불명예 퇴진의 길을 걸었다.
-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은 1974년 9월 닉슨을 사면한 뒤 뒷거래 의혹에 휩싸여 의회 청문회에 직접 출석해 해명해야 했고, 그 정치적 후과는 1976년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묶어두면 입이 두렵고,
- 풀어주면 의혹이 확신으로 굳는다. 역사가 남긴 이 냉엄한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세라, 내리자니 물릴 것이 두렵고 계속 달리자니 갈 곳을 알 수 없는 처지를 이른다.
- 지금 대통령이 선 자리가 꼭 그러하다.
- 이 전 부지사를 풀어주자니 몰랐다던 사건의 공범을 서둘러 챙기는 모양새가 돼 스스로 공모를 자인하는 결과가 되고,
- 그대로 두자니 수감 5년째에 접어든 이의 입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
- 야당은 "당장 '이화영'이라는 지뢰 하나만 터져도 (대통령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이화영'이라는 입술 하나에 기대어 버텨온 방어선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이번 논란이
- 여실히 드러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공범들을 지탱하는 것도 결국 상대가 끝까지 버텨주리라는 믿음 하나다.
- 노자(老子)는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기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疏而不失)"고 했다.
- 그 믿음의 유통기한이 다해가고 있음을 알리는 독촉장이 지금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 진퇴양난의 늪에서 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발을 뗄지, 국민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오창균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