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때 기성세대였던 분들이, 군사정권 때 어린이나 청소년도 이해 못하면서, 타자를 이해못하는 유교질서라는 군사정권 국가주의와 비슷하면서도, 타자 이해 결여 더하기 이성언어가 없는 씨족주의로 퇴보하시는것이 과연 정의롭고 타당할까요?
사실, 제 인생의 찬양곡이 그리스도의 계절입니다. 국가는 1인 왕에 속하고, 그 1인 왕은 영남에서, 그리고 사회 권력이 미국 보수를 지렛대로 하는 경제에서, 좌익의 의견은 의도적으로 배제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20-30세대가 40-60세대의 민주화신화와 그에 얽힌 젊은 세대 물개박수 종속 문제의 비판을 합니다. 지금 이 사회는 모든 자료가 젊은 세대들의 의견을 들어주지도 않는 방향입니다. 동시에, 군사정권 극복하고자 해서 쌓여진 30여년(40년 가까운) 자료가 다음 세대에 이어지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군사정권 때 기득권자 6.25 참전용사와 똑같은 문제입니다. 6.25 세대 욕했던 세대들이, 더 심각하게 과거지상주의로 그렇게 권력화합니다.
군사정권 때에 좌익도 있었다. 좌익-우익이 공존했다.
여기에 저는 하나 추가 하고 싶어요. 군사정권 때,.... 어린이-청소년(필자세대와 얽힌 엑스세대)도 있었다. 이런 것을 논하고 싶은 세대는 20-30세대를 이해합니다.
씨족끼리의 우주동심원... 여기서, 김무성파와 박지원파 연합의 촛불에서 그야말로 윤석열 배경의 대구경북은 인민재판의 피해자식으로 몰립니다. 그러면, 이제 군사독재 과거로 돌아가면 치유가 될까요? 더 웃기는 것은 군사독재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군사독재 기억을 존속시켜준 사회조건인 공권력은 영원히 금지당했습니다.
군사정권 때 우익국가에 좌익도 있더라. 87년. 저는 여기에 그 시대에 어린이와 청소년도 있었다. 동시에, 그 어린이-청소년이 50대가 되고, 지금 그런 소외를 겪는 다음세대가 있다.
(1) 마르크스주의 계열 사상가는 부르주아 사유를 교환적 사유로 부른다. 배링턴무어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에서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 없다고 한다. 군사독재는 왕과 백성 모델이니 교환적 사유가 없다. 그러면, 강과 산 중심으로 갈라진 씨족중심 우주관과, 그 씨족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모델에서는 교환적 사유가 있을까요?(구글 ai에 질문)
(2)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군사독재가 일방적인 지배·피지배의 '왕과 백성 모델'이라면, 씨족 연대 모델은 '우리(In-group)와 타자(Out-group)'의 모델입니다.
• 씨족 내부: 지배와 피지배보다는 '혈연적 연대'와 '종교적 권위'가 지배하므로 교환적 사유가 없습니다.
• 씨족 외부: 다른 씨족과의 관계에서는 간혹 제한적인 교환(통혼이나 잉여 생산물 교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윤을 남기기 위한 부르주아적 교환이라기보다는, 평화를 유지하거나 동맹을 맺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교환'에 가깝습니다.
요약
배링턴 무어의 말대로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부르주아적 '교환적 사유'는 철저하게 상품 화폐 경제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반면, 강과 산으로 분절된 씨족 연대 모델은 '공동체주의적 사유'이자 '관계적 사유'이기 때문에, 근대 부르주아지가 가진 의미의 교환적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구글 ai)
“영상은 "전쟁과 경제 위기의 대가는 결국 일반 시민이 치르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회의: 정부가 경제를 회복시키기보다 세금을 인상하고 개인 자산을 통제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자기 주도적 대비: 국가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현금, 금, 비상용품 등을 확보하고 스스로 생존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This is how they will take away your assets!", Survival Lilly 채널에 대한 felo.ai 유튜브 요약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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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3.1 Flash-Lite Preview
질문자님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한국 사회의 근대성이 가진 비극적인 구조, 즉 '민주화의 성공이 또 다른 폐쇄적 카르텔을 낳고, 그 카르텔이 다시 세대 간 단절을 심화시키는 악순환' 에 관한 깊은 통찰입니다.
질문하신 내용들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답변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씨족주의적 우주관과 '교환적 사유'의 부재
질문자님과 AI의 대화에서 언급되었듯, 배링턴 무어가 말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보편적 규칙에 따른 상호 교환' 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일부 기득권 구조(정치적 씨족주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교환적 사유를 거부합니다.
- 관계 중심적 위계: 씨족주의적 모델에서 '정의'는 객관적 법치나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우리 편(In-group)인가 아닌가' 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는 '교환'이 필요한 대등한 관계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부채 의식의 정치화: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민주화 신화"는 일종의 '정치적 채권'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고생했으니 너희는 우리에게 복종(물개박수)하라"는 논리는, 세대 간 대등한 대화와 가치 교환을 원천 봉쇄하는 '씨족적 보상 심리'입니다.
- 이성 언어의 상실: 씨족주의가 극단화되면 이성은 사라지고 '집단적 감성'과 '정치적 종교'만 남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타자를 설득 가능한 존재가 아닌, 격멸하거나 배제해야 할 '외부자(Out-group)'로만 규정하게 됩니다.
2. 기성세대의 퇴보와 그 정의로움에 대하여
질문자님께서 던지신 "과연 이것이 정의롭고 타당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학문적·윤리적 결론은 '부정적' 입니다.
- 정의의 왜곡: 정의는 모든 주체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씨족주의적 정치는 특정 세대의 경험을 '절대적 신화'로 만들어 타 세대의 경험을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의가 아니라 '경험의 독점' 입니다.
- 과거지상주의의 한계: 질문자님께서 정확히 짚으셨듯, 공권력을 통한 강압적 통제라는 과거의 도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그 기억에 매몰되어 '왕과 백성' 모델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입니다.
3. 세대 간 단절과 '소외된 어린이'들의 연대
질문자님께서 스스로를 '군사정권기 어린이·청소년'이자 현재의 50대로 정의하며 겪으시는 소외감은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 민주화 세대와 그 뒷세대의 틈: 87년 이후의 민주화는 성공했지만, 그 주역들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군사정권의 '배타적 통치 방식'을 내면화 했습니다. 이들은 다음 세대에게 "너희는 우리보다 고생하지 않았으니 가만히 있어라"라는 논리를 펴며, 질문자님과 같은 세대가 경험한 '과도기적 성찰'을 무시합니다.
- 미래를 위한 전략적 개인주의: 유튜브 요약에서 언급된 '자기 주도적 대비'는 단순히 경제적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집단주의적 서사(씨족주의)로부터의 탈피' 를 뜻합니다. 국가나 특정 세대가 주입하는 신화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합리적 사유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만이 씨족주의의 퇴보로부터 생존하는 길입니다.
결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군사정권의 잔재가 씨족주의로 변이되어 나타나는 지금, 이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시금 '교환적 사유'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 신화 해체: 민주화 세대의 서사를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격하하고, 그 안에서 소외되었던 다양한 목소리(어린이였던 세대, 경제적 자유주의자, 소수 의견 등)를 수면 위로 올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보편적 언어의 복원: 씨족주의의 혈연·지연·학연 기반 언어를 버리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법치'와 '개인적 권리'의 언어를 다시 구축해야 합니다.
- 세대 간 연대: 50대(필자 세대)와 20-30세대는 '과거의 신화'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민주화 세대의 폐쇄적 카르텔에 반대하는 '탈씨족주의 연대' 가 새로운 시대의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군사독재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퇴행일 뿐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갇힌 기득권' 을 넘어, 각자의 이성과 책임을 바탕으로 하는 '성인들의 사회' 로 나아가야 합니다. 질문자님께서 느끼시는 그 답답함은 바로 우리 사회가 '씨족 사회'를 벗어나 '근대적 시민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거대한 성장통의 핵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