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력군이 조선왕을 먼저 잡기 위해서 경상도,충청도를 거쳐 한양으로만 진격하는 바람에

주력군은 전라도로 진격을 안함.

후방의 일본군 소수 병력이 진주성에서 전투를 벌이긴 했다고 함.

그래서 1592~3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 팔도 중 유일하게 전라도만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음.

물론 4년뒤 1597년 정유재란때는 일본 주력군이 전라도 부터 공격을 해서 전라도 전역이 개박살이 나긴 했지만.

어쨋든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후방중의 맨후방인 전라남도 맨끝자락에서 안전하게 있었고,

일본 주력군이 한양을 거쳐 평양까지 점령한 상태에서 명나라 군대가 참전해가지고

평안도에서 한창 명나라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때

이순신은 저 멀리 맨끝 후방에서,

자기는 공격당할 위험 없이 안전하게, 일본군을 먼저 공격하기만 한거임.





임진왜란때 휴전을 하고 이후 4년뒤에 일본이 재침공한걸 정유재란 이라고 하는데,

정유재란때는 일본이 먼저 조선 수군을 공격해서 싹쓸어 버림.

그때는 때마침 이순신이 조정의 미움을 사서, 수군통제사에 짤리고 딴데 있을때임.

그게 칠천량 해전인데 그때 원균이 아니라, 이순신이 있었더라도 대패 했을 가능성이 높음.

일본은 1000척 이상이 대규모로 급습해 왔는데, 조선군 배는 163척 이었으니까

그리고 이후에 이순신이 수군통제사로 복귀해서 12척 남은배로 명량해전에서 대승 했다는건데

이순신은 일본군이 남은 조선 수군 잔당을 토벌하러 올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고

미리 함정 셋팅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가 운좋게 걸려들어서 이긴거임.

이순신이 원하는 장소로 일본군이 안왔다면 명량해전은 없었음.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했어도, 어차피 전라도 육지는 일본군에게 전부 점령을 당해서

이순신은 복귀할 해군기지가 없었고

전쟁 끝날때까지 전라도 섬지역에 숨어있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바람에 전부 철수하게 된 일본군을

그냥 놔둬도 되는데, 굳이 뒤쫒아서 먼저 공격하다가 죽은거임.





이승만 정권때 까지만해도 이순신은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김종서, 최영, 계백, 양규, 권율,곽재우, 광개토대왕, 김유신 등등 같은

유명한 위인들 중에 하나일 뿐 이었음.

근데 박정희 시절에 유독 이순신만 띄운거임.

이순신은 업적에 비해서 너무 과대평가 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