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3분, 없는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처음에는 그냥 고장인 줄 알았습니다.
그 아파트가 오래되긴 했어도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일은 가끔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제가 분명히 18층 버튼을 눌렀는데, 액정에 뜬 숫자가 19, 20, 21로 계속 올라갔다는 겁니다. 그 건물은 18층이 끝이었습니다.
그날은 비가 왔습니다. 퇴근도 늦었고, 휴대폰 배터리는 9퍼센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로비 경비실은 불이 꺼져 있었고, 관리실에 전화해도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무서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제 젖은 운동화 밑창이 바닥에 들러붙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어요.
그리고 21층에서 멈췄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밖은 복도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아파트 복도가 아니었습니다.
형광등은 켜져 있었지만 빛이 이상하게 어두웠고, 벽지는 누렇게 젖어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오래된 물자국이 길게 번져 있었고, 복도 끝에는 비상구 표지판이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구조는 분명 제가 사는 층 복도와 비슷했는데, 모든 게 낡고 눅눅하고 기묘하게 조용했습니다. 누군가 살고 있는 흔적은 없는데, 방금 전까지 누가 걷다 간 것처럼 미세하게 젖은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닫힘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시 눌렀습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잡음이 섞인 안내음이 나왔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이미 열려 있는데요.
순간 등골이 싸해졌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안에 있지도 못한 채 문 바로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복도 끝에서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맨발로 젖은 바닥을 걷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휴대폰을 켜서 손전등을 비췄습니다.
복도 끝에 누가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긴 머리에, 흰 옷 비슷한 걸 입고 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게 서 있는 위치였습니다. 사람이라면 비상구 앞 바닥에 서 있어야 하는데, 그건 벽에 너무 바짝 붙어 있었어요. 아니, 붙어 있었다기보다 거의 벽 안쪽에 반쯤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 숨소리가 커졌습니다.
그 순간 휴대폰 화면이 꺼졌습니다.
배터리 8퍼센트였는데 갑자기 화면이 검게 죽어버린 겁니다. 손전등도 같이 꺼졌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불빛만 희미하게 복도를 비추고 있었고, 그 사람 같은 형체는 여전히 끝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얼굴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눈이 어디에 있었는지, 입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나는 건 하나예요.
그 얼굴이 저를 보는 순간,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아주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저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 형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걷는 게 아니었습니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젖은 천이 끌리듯이 미끄러져 왔습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 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거리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닫힘 버튼, 1층 버튼, 비상벨을 미친 듯이 눌렀습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갑자기 닫히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딱 닫히기 직전, 그 형체가 문 사이로 손을 넣었습니다.
사람 손이 아니었습니다.
손가락이 너무 길었고, 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손톱은 없었고, 피부는 마치 오래 물에 불은 것처럼 허옇게 일어나 있었습니다.
문은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손이 문을 천천히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비상벨을 주먹으로 내려쳤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제야 엘리베이터 안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경고음도, 안내음도 아니었습니다.
낮고 갈라진 여자 목소리였어요.
“이번엔 늦었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확 닫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미친 듯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숫자가 거꾸로 떨어졌습니다. 21, 20, 19… 그리고 갑자기 0, -1, -2가 떴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엔 지하 1층 주차장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고 있었어요.
그때 천장 쪽에서 뭔가 떨어졌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차가운 물인 줄 알았는데 손등으로 닦아보니 끈적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검붉은 자국이 번졌습니다.
저는 숨도 못 쉬고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
환풍구 틈 사이로 검은 머리카락이 한 올씩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이 열렸습니다.
지하 1층이었습니다.
주차장은 평소랑 똑같아 보였습니다. 밝았고, 차들도 있었고, 멀리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도 났습니다. 저는 뛰쳐나왔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으로 올라가 경비실까지 갔습니다. 야간 경비 아저씨는 분명 거기 있었습니다. 제가 횡설수설하자 처음엔 술 마신 줄 알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저를 보고 CCTV를 같이 확인해줬습니다.
그런데 화면엔 이상한 게 찍혀 있었습니다.
제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뒤, 문이 닫혔습니다.
그다음 17초 동안 영상에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저는 혼자 엘리베이터 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얼굴은 바닥을 보고 있었고, 오른손으로는 비상벨을 계속 누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17초 동안 엘리베이터가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층수 표시도 계속 1층이었고, 위로 올라간 기록도, 아래로 내려간 기록도 없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화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분명 저는 21층까지 올라갔고, 없는 복도를 봤고, 그걸 봤습니다.
그런데 CCTV 속 저는 단 한 번도 1층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습니다.
매일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18층까지요.
처음엔 사람들이 미쳤냐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이상한 일이 다시 생겼습니다.
매일 새벽 2시 13분이 되면 휴대폰으로 알림이 하나 옵니다.
번호도 없고, 발신자도 없습니다.
내용은 항상 같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처음엔 장난 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젯밤엔 처음으로 사진이 같이 왔습니다.
흐릿한 엘리베이터 CCTV 화면이었고, 안에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젖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요.
그 사진 구석에 찍힌 층수는
분명히 21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