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 외곽에 자리한 선그로우의 수전해 설비 공장에는 거대한 원통형 장비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길이 6m, 직경 2m에 달하는 장비들은 오만의 그린수소 프로젝트 현장으로 출하를 기다리는 5메가와트(MW)급 알칼라인 수전해조다. 수전해조는 물에 전기를 흘려보내 수소를 뽑아내는 핵심 장치다.
한국수소연합과 포스코홀딩스, 포스코, 에어리퀴드, 효성중공업, SK이노베이션E&S,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은 지난 1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위치한 변압기·수전해조 제조 기업 선그로우 본사를 방문했다. 중국의 수소 생태계 현황을 파악하고 한중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선그로우 관계자는 “오만뿐만 아니라 브라질, 이탈리아, 케냐 등 세계 각국으로 나갈 물량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탈리아와 브라질 등에는 3MW급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조를 납품할 예정이다. 총수주 잔고는 1.2기가와트(GW)에 달하고, 이중 알칼라인과 PEM이 각각 90~95%, 5~10%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수소 산업이 ‘먼 미래’가 아닌 ‘돈이 되는 사업’으로 이미 전환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선그로우는 기존 주력 제품이었던 변압기(직류를 교류로)와 정류기(교류를 직류로) 등 컨버터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10년 전부터 태양광 모듈, 수전해기,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등 그린수소(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얻는 무탄소 수소) 생산에 필요한 모든 기기를 직접 제조하고 있다. 현재 연간 3GW 규모의 수전해기기 생산 능력을 갖추고 중국 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선그로우의 핵심 역량은 자체 개발한 지능형 에너지관리시스템 하이브레인을 통한 '설비 가동률 최적화'에 있다. 수소 플랜트 전체를 규격화된 모듈로 공급하는 'PaaP(Plant-as-a-Product)' 솔루션도 선그로우의 강점이다. 선그로우 관계자는 "이곳의 테스트베드는 태양광과 풍력만 연결된 독립형(오프그리드·off-grid) 실증단지로, 누적 2만3000시간 동안 가동되면서 엄청난 데이터를 쌓았다"고 말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내 수전해 업체는 150여 개에 달하며 난립했다. 기술력도 없이 정부 보조금만 노린 ‘가짜 기업’들이 쏟아졌고 실체 없는 장밋빛 전망이 시장을 뒤덮었다. 현재 산이(Sany), 롱기(Longi) 등 선도 기업들조차 수익성 악화와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펑차오차이 선그로우 하이드로 회장(선그로우 부사장)은 "최근 1군 업체들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악의적인 저가 경쟁이 잦아들고 기술력 있는 소수만 살아남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며 "향후 5년 내에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공급망이 완전히 안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태양광과 배터리 시장이 겪었던 성장통과 유사한 경로다.선그로우의 수소 사업 확장은 철저히 ‘전력 제어’라는 핵심 역량에 기반한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를 수전해조가 망가지지 않게 안정적인 전기로 바꿔 공급하는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선그로우 관계자는 “전력 전자(컨버터)에서 배터리저장장치로, 그리고 다음 단계인 수소로 확장하는 것은 '하나의 원(Circle)'이자 '자연스러운 연결'”이라며 “한쪽 산업(재생에너지)만 알고 수전해를 모르면 실제 운영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 방식도 훨씬 정교해졌다. 과거에는 단순히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을 줬지만, 이제는 여러 도시를 묶어 수소 생태계를 조성하는 ‘수소 도시군’에 최대 16억 위안(약 2800억 원)을 쏟아붓는다. 특히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으려면 생산 전력의 20%를 반드시 수소를 만드는 데 쓰도록 설계해 강제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규제 완화도 파격적이다. 예전에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국가 전력망에 팔았다가 다시 사서 수소를 만들어야 했지만, 이제는 발전소와 수전해 설비를 직접 연결해 전력망 이용료 없이 수소를 뽑아낼 수 있게 허가하고 있다. 화학 산업 단지로 제한됐던 생산 설비 구축 요건을 완화해 비화학 단지에서도 수소 생산이 가능해진 점도 산업 성장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부터 '쌍탄(듀얼 탄소)' 계획을 수립하고 신에너지를 통한 탄소 중립을 본격화했다. 쌍탄 계획이란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탄소다봉), 2060년까지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탄소중립) 중국의 단계적 국가 환경 전략이다. 2024년을 기점으로 수소차 보급이 급성장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이는 '수소에너지 산업 발전 중장기 계획(2021~2035년)' 덕분이다. 중국 정부는 이 계획에 따라 수소 경제를 점(거점 도시), 선(운송 회랑), 면(전국망)의 3단계로 확장 중이며, 올해부터 거점을 잇는 '선'의 단계인 2단계가 본격 시작됐다. 특히 2025년 1월 시행된 에너지법을 통해 수소를 공식 에너지원으로 편입한 뒤, 2단계 계획에서는 핵융합과 함께 수소를 미래 산업으로 지정해 선제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2025년 기준 중국의 연간 수소 생산량은 3710만t으로 세계 1위이며, 이 중 그린수소 생산량인 25만t은 전 세계 그린수소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규모다. 중국 내 수소차 누적 보급량은 약 3만9000 대로 전 세계 보급량의 33.7%를 점유하고 있다. 충전소의 수소 가격은 kg당 30~50위안이다. 일반 승용차 시장에서는 전기차 대비 가격 경쟁력이 밀려, 대형 트럭(비중 60% 이상) 등 상용차 위주로 시장을 넓히는 추세다.

최근에는 연료전지와 충전소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며 상용화의 문턱을 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중순 발표된 신규 육성 정책인 '종합응용시범정책(1+N+X)'은 수소 산업의 패러다임을 차량 중심에서 전 산업 분야로 확장하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여기서 '1'은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 및 중장기 계획을, 'N'은 각 부처 및 산업별 세부 지침을, 'X'는 지방정부별로 특화된 다양한 응용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암모니아·메탄올 등 화학물질 합성 원료, 수소환원제철, 수소혼소 발전 등 수요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전국 단위의 환상형 수소 교통망인 '수소 회랑' 구축을 통해 2030년까지 수소차 10만 대 보급과 수소 가격 kg당 25위안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