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쌀=화폐에 입각한 농촌식 인심의 논리에 기반하여, 재정문란을 극대치로 하여 공적회계를 철저하게 눈감는 방식이 존재한다. 자본주의에 덧입힌 19세기 노론독재다.
씨족내부의 원리가 타씨족에 당연히 불법행위로 판단되는데, 이를 듣기 싫다고 제도적 장치에 손질해 들어가는 일이다.
<질문 2> 제도경제학의 요소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영정조 탕평대동이라는 맹자를 통해 읽는 주역 어법에 기초된 것이 경제학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질문 3> 유신체제에서는 권력 후원하는 영남은 권위주의에 안주했습니다. 지난 30년은 권력에 줄 선 호남은 구조조정의 서사를 철저하게 남의 일처럼 봅니다. 유신체제에서 권위주의 피해 눈감던 방식은, 지난 30년(김대중체제)에서는 제도 문란을 눈감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신체제는 항시 권위주의에 대한 사회적 불만의 법적 쟁점화를 두려워하는 지배층의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지금, 대공황이 경제의 물을 빼고,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상황에 지배층이 공포감이 있다고 봄은 합리적 아닐까요? 영어권 유튜브도 각 영어권 자유진영 국가의 제도적 장치의 왜곡에 대한 각 나라의 불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나, 한국은 누가 관직 차지하느냐로 블랙홀로 다 빨아들임)
<질문 4> 아임에프는 김영삼의 유발인가요? 아니면, 제도경제학 요소가 거의 공백지대여서, 기업부채를 제도적으로 정부가 콘트롤 할 수 없던 상황의 필연적인 상황일까요?
(질문 5)
유신경제학에서 영남왕권제 유교가 왕의 宗家영역에 특혜지대를 마련하는 것이 쟁점화됐다. 김대중경제학에서는 지배당파중심으로 엿장수 맘대로 하는 법적 제도문란이 많고, 이것이 경제가 불황에서는 바로 문제가 된다. 민주당 지지층은 구조조정의 서사에 무관심하고 무조건 전가만 하고, 국힘 성향 정치유튜브는 권력쟁취만 생각하고 역시 본질은 무관심하고 있지 않나요? 유신경제학의 왕중심의 수직적 종법제에서, 19세기 노론독재의 당파중심의 종법제로 바뀐 구조적 재편에서, 여전히 자유시장경제는 유신시대와 다를바 없이 왜곡이 진행중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의 맥락)
유신시대에 끝난줄 알았던, 한국기득권층의 ‘정략개헌’이란 몹쓸 병이 또 도진 이유
구글에 이 기사가 실렸다. 보건사회연구원이란 이름으로 정부 기관으로 나왔지만, 한국사회의 잘못된 경제관념을 그대로 안고 있다.
《경제&머니, 「청년 채무조정…빚 19% 줄고 우울감도 ‘뚝’」, 이희선 기자입력 2026.04.04. 17:21댓글 0, 「뉴스에듀」
[nEn 뉴스에듀신문] 정부의 청년 채무조정 제도가 단순한 ‘빚 탕감’을 넘어 경제적 재기와 정신적 회복까지 이끄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뉴스에듀신문(https://www.newsedu.co.kr)》
이 논리의 뿌리를 고찰하자. 1990년대 중반에 모 사립대학교 국문과에서 나온 ‘문학치료학’에서 시작이며, 그 문학치료학은 김대중 민주당 지지자들의 시위 때마다 ‘무당 굿’이 동원된 것의 전면화다. 유럽좌파 진영의 사회심리학을 그대로 끄집어냈지만, 실제 이면 심리는 이 부분이다.
어제, 한국에 퍼진 <희년신학>이 성경적이 아니라, 전라도 씨족신앙에 대충 성경 말 덧 붙인 왜곡이 아닌가? 한국의 dibipia ai등에 비판한 바 있다. 지금 이 기사는 어제 한국의 ai에 비판한 실례일 수 있다. 희년신학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고, 실제는 患難相恤 전라도 농촌 버전이었다.
탕감은 무당굿이며 치유의 서사라는 이 주장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국에 <제도경제학>이 김영삼 정부 이후에 철저한 실종 상태임을 드러내는 증거다.
더글러스 노스나 하이에크, 대런 애쓰모글루의 제도경제학의 전제조건은 그 국가공동체가 공동의 사회계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 여당의 배경씨족인 호남씨족만의 독자적 씨족논리에 기초하여, 17-19세기 내내 호남씨족은 자기씨족의 사랑을 외부씨족에 대한 착취로 구사했던 역사가 있다. 다시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영어권 진보가 아니라, 소련 스탈린주의 혹은 모택동주의 계열의 권력정치(엿장수 맘대로 민주주의)의 추구인 것이다. 송시열 예송논쟁에서 당파싸움이 실제인데 주자 도덕이 명분론이 된 과거가, 동학 권력쟁탈전이 실제인데 기독교가 명분적 허구가 된 것으로 바뀐 것이다.
씨족종교의 치유효과는 타씨족에 대한 덮어버림을 전제한다.
이렇게 집권정당은 엿장수 맘대로로 자기들 추종자들에 풍성한 치유(엽기적 약탈 강화. 긴급재정경제명령은 그 예)를 위해서, 그들에게는 늘 <구조조정 서사>를 회피하는 것은 실제 이익이다. “화천대유”의 내러티브도 타씨족의 것을 자기씨족에 끌어오는 문제다.
실제 목적은 결국은 그들 추종자들에게 풍성한 치유이고, 태어나는 동시에 괴로운 것이 유독 집권정당 지지자들에게만 괴롭다는 전제 아래에서 그것을 치유한다는 무당굿으로서 비용집행을 위해서, 권력구조로서 공정한 질서가 안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 실제이고 나머지는 명분적 허구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있었던 일이 윤석열 탓이라는 조선왕조 관념은 벗어버려야 한다. 윤석열 정부 때에도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보수층이 당연히 이해하는 구조조정의 서사를 민주당 호남지지층은 이해하지 못한다. 권력만능론이다. (물론, 보수층이 전부가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대적 개념이다. 지금 보수정치유튜브는 막상막하로 개념이 없다)
조선시대 농촌에서 자기들 씨족의 서민을 위해서 타씨족의 것으로 인심쓰는 삶이 있다면, 경상도 스타일도 분명히 스타일은 다르면서 본질은 비슷한 것이 있다. 상명하복 개념으로, 진실을 소명하는 상위층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외부인 진입에 상대적으로 여느 지역보다 높은 가능성을 허락한다.
문제는 이것이 ‘씨족신앙’으로 대동사회를 이루었다는 상상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계는 철저한 노론독재 호남에 쳐발린 영남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재명 화천대유의 고대중국적 상상력과, 윤석열 정부의 그 화천대유에 대한 서양법인식 못지 않게, 호남농촌 우주중심론으로 그 씨족중심적 대동세상은, 다양한 의미의 다씨족의 것을 그대로 들어다쓰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 논리로서 공정한 법질서가 아니라, 귀족은 빼고!! 라는 어법의 연장판에서, “제도경제학”을 고의로 삭제하고 엿장수 맘대로 하는 내용에서, 경기침체로 물이 빠지면 누가 반칙을 했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제, 그 반칙전문가들이 자기들까지 안 오게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