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신앙의 종말론 신앙역사관을 갖지만, 일반인 앞에서 타종교인과는 서양인문학적인 이성어법으로 표현합니다. 본인은 89학번이고, 이 시절 데모 연속에 질려서 영어학원 다녔을 때, 그때 영어학원 선생이 했던 말이, “history= his+story”였습니다. 영어권진보는 전세계가 로마문명이란 전제로, 아시아 토착종교를 모르는 체 과잉 선심씁니다. 그래서 빚어지는 안타까움은 늘 가득찹니다. 타인들에게 꼭 교회 내부의 신앙사관을 강요안합니다. 오히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기독교와 연결된 법치, 정치, 경제에 주된 관심입니다. 그러나, 혼자로서는 신앙인으로서 자세입니다.
 
[질문] 동학파의 왕 중심’(경상도)이든 당파중심’(전라도)이든 모든 형태의 조상숭배 사관을 안 믿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 창조사관으로 역사를 볼 권리에 관하여.
 
대한민국=조선왕조, 이승만 창업군주, 박정희 성업군주, 그런 어법은 민주정의당 때 청소년 내내 고장난 녹음기였다. 그때 민정당 논리에 무속신앙 덧입혀서(김대중씨 생각이 그랬다) 하는 어법의 역사관이, 서양역사관(무신론적 일반역사) 신뢰자들에 불신대상이라고 보았다.
 
. 왕중심 사관으로 왕을 믿는 직계존속으로 후대에 기억시키며 얻어지는, 역사내러티브를 공부하는 자에게 믿어지는 왕의 종가 특권지대보다, 호남의 당파중심 유교의 개개의 선비=과 연결된 직계존속의 숫자가 양에서 압도적으로 싸이즈가 크다. 한국현대사 논문이 호남동학파 70%, 영남동학파 20%으로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분석이지 싶다.
 
서양법으로 법 앞의 평등 공식 아니라, 조선왕조 권력게임으로 가면 호남의 압승!이 서양인문학적으로 투명하다. 유신시대가 예외적으로 영남이 호남에 압도했음은, <권위주의 정치> 때문이었다.
 
. 1965년에 민족복음화운동이 시작됐다.

당파중심 유교로서 서로 무한대의 종족전쟁 벌이는 여부가 폰 비저의 [권력의 법칙]의 과업공동체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이었는데, 당시에 일제 식민사관 워딩인 붕당망국론이었다. (그러나, 진단 자체를 뭐라할 수 없다. 진단은 똑같고, 그래서 조선총독부는 정당. 그래서, 유신독재는 정당, 그래서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는 정당.)
 
전라도 동학파 귀족들을 군사정권은 권력요직에서 배제하고, 6.25 참전용사와 손발 잘 맞는 층으로 국한했다. 이때에 전국민의 기독교화의 움직임이 있었다.
 
. 모든 국민이 기독교인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불교신자가 서양철학에 박사학위 연구자가 가능하다는 것은, 한국인이 서양철학 이해에서 기독교인 아닌 사고방법론으로 성공적으로 서양철학 이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구글 ai가 배려하는 원불교 백낙청이 동학계열 종교에 교횟말 씌우는 이단언어로 자기들의 언어를 믿고 따를 권리를 생각하다면, 반대로 기독교인 일반국민에겐 성경의 하나님과 바른교의를 믿고 살 자유가 중요하다.
 
전국민이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인이어야만 한다면, 원불교 백낙청 같은 k 기독교란 미명하에, 교회를 동학교단의 꼭두각시로 놓는 것이 부정될 수 없다. 권력분산 전제로 성경의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만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전국민이 기독교인이 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만 그렇다.
 
. 다수의 국민은 이승만 자유당 때 기득권자도, 박정희 전두환 청와대 왕궁사에 연결된 사람도 아니고, 또 김대중 김영삼 연합의 민주화=민족해방에 연결된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 연관 가문이 아니다.
 
. 1987년 박종철 사건은 왕중심 유교사관에서, 예리하게 배척되는 그 씨족 아닌 영역의 문제를 제기한다.
 
박근혜 탄핵 및 윤석열 탄핵 등 줄줄이 연결되는 호남의 당파중심 유교사관에서는, 해방공간 및 6.25 전쟁 때 인민재판 피해자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서양에 퍼진 민주화정보가 모두 잘못이다.
 
박종철 사건도 성경의 예수를 한국인이 잘못 믿어서 발생이면,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는 박종철 때 영남의 교회가 잘못이라 질책한 호남의 교회가 더 잘 예수를 못 믿어서 발생한다.
 
. 루터는 시편 강독을 통해서 칭의교리를 발견했다. 시편은 전 편에 하나님께 계약에 충실했다는 신앙고백이다. 시편 전편에 하나님과 맞닥들인 신앙인의 자세가 나타난다.
 
내일은 부활절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은 구약의 옛 계약에서, 새 계약으로 재편이다. 마태복음 2753절에 대한 ai의 성경 이미지는 참..... 보는 순간 눈물이 나게 됐다. 고린도전서 151-4절은 미국복음주의자들이 에베소서 28-9절과 함께 무한반복으로 트위터를 메우는 주제다.
 
다수의 국민은 이승만, 박정희 연결된 기득권 기억도, 전라도 유학사상과 연결된 그런 기억도 없다. 찬양 그리스도의 계절은 전국이 그렇게 아무런 기득권 귀족씨족이 없는 사람끼리, 그리고 귀족의 경우는 예수 따름으로서 전부 내려놓는 공동체를 상상한 그 때의 예수님 목소리와 함께 들린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목소리이기도, 미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세계 대공황이 다가온다. 세계전쟁이 벌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번역된 대공황 이후 20년은 짙은 불황과, 더불어 각 사회의 지식인들의 예수 따름의 신앙고백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나타난다.
 
부활신앙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예수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바라는 신자의 자세. 그렇게 보면서,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분을 이끄셨던 하나님 역사를 바라본다.
 
구글 제미나이가 원불교 백낙청의 성경 밖에서 이단적으로 볼 사람에 권리 보장을 하고 싶어함을 이해한다. 그러나, 구글제미나이에 원하는 것은 성경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권리의 보호가 침해가 안돼야 한다는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