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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이 친절하것은 사무라이가
    백성들을 마구 죽일수있어서다'
    라는 낭설이 자꾸 올라오는데
     
     
    일본인이 친절한것은 사무라이가 막 죽일수 있어서가 아니고 상업이 일찍 발달해서임

    일본도 농경사회라 백성을 막죽이면 생산성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어려움.

    백년이라는 기간동안 전쟁을 했는데, 전쟁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함,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함, 장사를 잘하려면 제품력 말고도 감동을 줘야함 그래서 친절해짐.
     
    전국시대라고하면 무조건 죽이고 부수는것만 생각하는데 전쟁은 돈임.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출전하기전에
    전쟁대상국의 쌀 된장 소금등을 전부 비싼값에 사들였음.
    그돈이 다 어디서 나오겠음?
    돈임
    일본 영주들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고
    기업 CEO들이였음.
     
     
     
     
  • 통일이후에는 "참근교대"정책이 시행됨. 지방영주들이 지방자기 영지와 에도를 번갈아가며 거주해야했고 영주자신뿐 아니라 가신들, 호위무사들, 짐꾼들등 많은 인원이 여행을 하게되고 여관, 밥집, 온천드에 들르게 됨.

    이때 손님들에게 잘해주면 상경하다가 들러서 감동먹고 낙향하다 또 들르고 다음에 또 상경하다 또 들르게됨.

    게다가 여관,온천,밥집등이 자기네만 있는게 아니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함,제품력은 금방 한계에 다같이 다다르게 됨. 결국 손님을 감동시키는 친절이 관건임
  • "사무라이가 막 죽여도되서 친절하다"는 반일감정 조장하는 낭설임

    일본이 친절한것은 일찍부터 상공업이 극도로 발전했고 상인들 끼리 경쟁이 치열해서임
     
    이렇게 경쟁이 치열해진 이유엔
    좁고 길죽한 국토의 형태가 큰 영향을 끼침
     
    국토가 가늘고 길다보니 지방영주들의 여행경로도 가늘고 긴 몇몇 도로에 집중됨
     
    결국 여관, 온천, 밥집들도 그 제한된 라인을 따라서 집중되고 결국 경쟁이 심해짐
     
    여러 지방 영주들이 동서남북에서 따로따로 다양한 루트로 이동한다면 가게들도 흩어져서 경쟁도 약해짐. 
     
    그래서 조선주막이 독점형식이 되고 그래서 조선은 친절함과 거리가 멈 중국도 마찬가지
     
     
    또 한가지 이유는 일본은 서양과 같이 무가사회였음. 근대까지도귀족이면 총칼차고 다니던 나라였음.
     
    그래서 상호평등의 개념이 발생함
     
    나도 상대를 해칠수 있지만 반대로
    나도 상대에게 상해를 입을수 있다는것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낌
     
    거기서 매너가 발생하는것잉
     
    존중은 공포에서 비롯됨.
     
    서양의 악수, 매너
    사무라이의 예의작법이
     
    이런 무가사회를 배경으로해서
    불필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발생한것임
     
    똑같은 친절이라고 해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발생경위가 다른것잉
     
     
    여담으로 조선은 양반의 갑질과 평민의 굽신대기 밖에 없었음
     
    그러다거 갑자기 신분제가 사라지니 너도 나도 양반이 되고 갑질을 해됨
     
    반면 
    서양과 일본은 자력으로 근대화되며 귀족이 갖고 있던 예의작법, 에티켓이 그대로 시민사회로 흘러내려감
     
    이것이 
     
    서양 일본은 선진국
    한국 중국은 졸부국가로
    가르는 차이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