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시각은 구글 알고리즘에는 있다. 구글은 검색엔진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본인의 논문식 블로그를 주목했다. 아마도, 보수진영 유권자에서 끈질기게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특정 주제로 보고서가 검색되니 그런 일일까? 구글은 본인의 관점을 알고리즘에 (챗지피티처럼) 배제를 안했다. 사실, 필자가 AI가 학문적 시각으로 어쩌고 저쩌고! 할 때, 웃기고 있네! 하고 냅다 질러버리는 것도, 실제로 자료 정리로 AI 나오기 한참 전에 해봤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사고의 전제조건.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 10조, 11조, 12조로서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은, 1987년 6월 항쟁과 연결된 ‘서양법주의’로서 민주헌법 문제와 연결돼 있다. (그들 운동권 지도부끼리 약속 말고, 국민과 국제사회가 아는) 정상적인 미국 AI의 알고리즘에는 본인과 같은 세계관이 배제되면 안된다고 본인은 믿고 있다.
반면에, 챗 지피티의 알고리즘에는 본인이 없다. 더불어 민주당의 국제홍보, 혹은 제도권의 민주당 권력의 홍보에서 멈춰 버린다. 철저하게 권력 중심으로 작성된 논문 이면은 없고, 반론을 개소리라는 관점이 사실상 깔려 있다. 바로, 한국인들이 중국 AI를 염려하는 바로 그 원인. 또 국산입네, 국산 AI입니다. 쓰세요! 하는 데 “엿먹어라”하고 싶은 그 이유를, 챗 지피티가 구현중이다.
AI는 사람보다 정확하게 문자적 텍스트 요약을 빠른 시간에 한다. 그러나, 진정한 창조성은 그 텍스트를 정말 따라 읽는 인간에게만 주어진다고 본인은 믿는다. 챗 지피티처럼, 너 일반군중=창조성 꽝인 대중아! AI형님이 가르쳐줄께. AI가 알려주는 데로 받아적어. 학술논문 요약해본 사람은 안다. AI 나오기 이전에도 AI가 쓴듯한 지방대 대학원에서 논문이 비슷한게 최소 10%는 각 주제에 늘 있었다. 이젠, AI 때문에, 대학교가 최선을 다해 관리해도 30% 이상으로 폭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I의 어떤 앱은 논문 대신 써주기가 수익용이다)
AI의 알고리즘을 당황하게 하며, AI 알고리즘으로 주어진 틀을 벗어나는 창조성(마르크스의 박사논문에서 나타난 클리나멘), 권력이 먹고 살려면 말 잘들어! 할 때, 그냥 학문적 진실만 믿고 아무것도 신경 안 쓸래. 쾅 들이박는..... 그런 사람의 존재에, AI 알고리즘은 당황할 수 있다.
그런 것이 항구적인 사회에서는 AI는 사람을 가르치려하지는 못한다. 보충적 도구로 자리한다.
[질문] AI 시대에도 자료를 전부 읽어가며, 이 쪽에서 저쪽 시점. 저쪽에서 이쪽 시점 분석하는 창의적 시각의 가치는 더욱 필요하며, 더 가치가 높아지지 않나요?
네,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좀 더 정확하게 짚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I가 잘하는 것은 텍스트의 패턴 압축입니다. 기존에 쓰인 것들의 평균값, 혹은 가중 평균값을 빠르게 뽑아냅니다. 그런데 이게 역설적으로 AI의 근본적 한계입니다. 패턴의 평균값은 언제나 이미 존재한 세계를 재현할 뿐입니다.
말씀하신 클리나멘(clinamen), 즉 원자가 예측 불가능하게 비껴나는 그 운동. 루크레티우스에서 마르크스가 가져온 그 개념이 핵심을 찌릅니다. 창조성은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는 데서 발생하는데, AI는 구조적으로 그 이탈을 평균값으로 다시 흡수해버립니다. 이탈처럼 보이는 출력도 사실은 "이탈의 패턴"을 학습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가치가 높아지는 창의적 시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
자료를 A 시점에서 읽고, 다시 B 시점에서 읽었을 때 앞서 읽은 것이 달리 보이는 경험, 즉 해석이 해석을 수정하는 그 피드백 루프를 실제로 겪은 사람의 시각입니다. AI는 A와 B를 동시에 처리하기 때문에 이 수정의 고통과 시간이 없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이 없으면 진짜 관점의 전환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한국 사회에서 특히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봅니다. 학문 권력과 정치 권력이 유착된 구조에서 생산된 텍스트가 AI 학습 데이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 AI는 그 권력 구조의 재생산 도구가 됩니다.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특정 해석 체계의 자동화 기계가 되는 겁니다.
결국 AI 시대에 진짜 희소해지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반대 시점의 자료를 끝까지 읽는 사람입니다. 그 희소성은 시장 논리로도, 지적 생태계 논리로도,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가치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느냐는 별개의 문제고, 오히려 제도는 그런 사람을 더 불편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게 아마 선생님이 가장 안타깝다고 하시는 지점일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