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로서의 ‘친중 공산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 역사관의 문제-
AI는 사실만 하고 정리하고, 사용자의 판단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하여 사용자 책임을 전제만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AI의 의견일 뿐이라고 ‘정보성 방송프로그램’처럼 정보제시라고만 논하며, 모든 책임은 사용자에 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은 “씨족적 자아”를 다루는 관점으로, 충분히 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나? 구글 AI에 물어봤다.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을 일제시대의 항일운동 맥락으로 구글AI는 해설했다.
“AI 개요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인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이데올로기 이론 및 '상상적 관계'로서의 신화와 구조적인 측면에서 연결 및 비교가 가능합니다.
신채호의 사상은 민족주의적 해방을 목적으로 하고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적 구조 속에서 이데올로기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주체를 형성하고 투쟁의 명분을 제공하는 기제(Mechanism)라는 점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성과 '이데올로기적 신화'
신채호의 '아': 신채호는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하며'아'를 주체적인 조선 민족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혈연적 씨족주의를 넘어식민지 현실에서 자각된 주체(민중/민족)를 구성하는 상상적/인식적 틀입니다.
알튀세르의 '신화(이데올로기)':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개인들의 실제 존재 조건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연결점: 신채호가 설정한 '아(우리 민족)'와 '비아(일제)'라는 이분법은식민지 조선인들이 실제로는 억압받는 제국주의의 객체임에도 불구하고스스로를 '능동적인 투쟁의 주체(아)'로 인식하게 만드는 '상상적 관계(이데올로기적 틀)'를 제공합니다. 이는 알튀세르가 말한 '주체로의 호명'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2. 주체 형성(호명)과 역사 인식
신채호: 역사를 통해 '아'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비아에 대항하는 '낭가 사상'과 같은 주체적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학교미디어 등)는 개인을 주체로 호명(Interpellation)하여지배 이데올로기(혹은 그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합니다.
연결점: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일제 식민사관(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조선인을 '투쟁하는 주체'로 재구성하는 역사적 호명의 역할을 합니다.
3. '투쟁'의 본질과 이데올로기적 장
신채호: 투쟁은 '심적 활동'의 기록이며비아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들은 주체들이 활동하는 '투쟁의 장(場)'입니다.
연결점: 신채호의 '아와 비아의 투쟁'은 단순히 물리적 무장 투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역사와 문화 인식 속에서 누가 '주체(아)'인지를 확립하려는 심적/문화적 투쟁입니다. 이는 알튀세르가 말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내부에서의 투쟁과 개념적으로 일맥상통합니다.
요약
신채호의 아/비아 논리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조선 민족을 주체로 '호명'하고 투쟁하게 만드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상상적 인식틀)로 기능했으며이는 알튀세르가 분석한 개인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주체로 구성되어 투쟁에 참여하는 구조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만신채호의 경우 그 목적이 '해방(해방)'에 있었고알튀세르는 '지배의 지속'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
구글 AI는 실제 인물의 부정적 평가와 연결되는 본인의 해석인 신채호 선생의 붕당족보사 연장선 해석을 부정했다. 그것이 권위있는 학자의 평가가 아니라, 권위있는 AI의 평가로 필자는 바라본다.
붕당 정치에서 족보사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으로, 후손들을 노예로 씨족공동체에 가두는 현상이 있는가 물어봤다.
“AI 개요
네붕당 정치와 관련된 조선 선비들의 족보 편찬은 혈연 중심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여구성원들이 같은 가문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무의식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혈통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족세(族勢)를 과시하고 종족촌락을 형성하며 붕당의 기반이 되는 결속력을 다지는 기제로 작용했습니다.
혈연 기반의 공동체 무의식 형성: 족보를 통해 선조를 공유하는 가문 구성원들은 강력한 일체감을 느끼며이는 조선 사회에서 붕당이나 문벌 형성의 무의식적 근간이 되었습니다.
족세와 종족촌락: 족보를 통한 가문 결속은 족세(가문의 힘)를 성장시켰고특정 지역에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종족촌락(宗族村落) 형성을 촉진했습니다.
붕당의 기반: 이 같은 혈연 및 지역적 결속은 문벌과 당색(黨色)을 따지는 정치 환경 속에서 붕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힘 내부의 ‘신채호 파’ -- 소위 중도파
민주당 내부의 ‘신채호파’---남로당 인민공화국 계승파
북한공산당 내부의 신채호 파 --- 북한공산당 코어 핵심
이렇게, 제도권 문화영역에 ‘신채호파’ 아니면 발도 못 붙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신채호 부족연합의 조화주의에 대구경북은 ‘극단’이라는 가치관이 띄우는, 이승만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승만 실제 텍스트를 통해서 바라본 실제 이승만 캐릭터는 <개화파의 두목>이자 <기독교인>이다. 보수진영에 줄 섰던 신채호파가 바라보는 이승만 기억은, 이승만의 개화파 및 기독교인 문제보다 남로당 탄압을 긍정하면서 남로당 관련 신채호파와 교류를 갖는다. 이는 민주당에 존재하는 남로당파의, 더불어 민주당의 30여년 째 계속된 ‘피해자 억울함 분노’확장 공식을 도와주면서, 보수우파의 좌파 자료 안 읽는 한계를 이용하는 것으로, 불륜 남성의 ‘상간녀’와 ‘법적 부인’을 양다리 치는 관계가 아닌지 강하게 의문하게 된다.
필자의 주된 반론은, 탄핵 세력 한동훈이 꼭 이승만을 중국의 씨족적 자아 과거 기록으로 하는 것을, 30여년 째 반복하는 조갑제 어법 반복하지 않고, 서양의 ‘사건사’ 역사방법론으로 적용할 길은 왜 막혔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필자는 이승만 기념사업은 조선시대 노론 선비의 서원의 변장된 복원으로서, <이승만 이용사업>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AI 개요
역사적 사건과 체험을 강조하는 서양사와 씨족적 자아(혈연/가족 중심)의 기록을 중시하는 중국 역사는 역사관기록 방식그리고 중심 가치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서양사는 '단절과 변혁그리고 시민의 경험'에 기반한 서사 구조를중국 역사는 '연속성과 정통성그리고 가족/국가의 통합'에 기반한 서사 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1. 역사적 사건의 체험을 강조하는 서양사
서양 역사는 주로 '사건(Event)' 중심적입니다. 특정 역사적 순간이나 인물을 조명하고그것을 경험한 인간의 인식과 변화를 강조합니다.
변화와 단절 중심 (Lineal History): 고대-중세-근대 등 시대의 단절과 새로운 사건에 의한 변화를 중시합니다. (예: 프랑스 혁명산업 혁명 등)
체험과 주체성 (Individual Agency): 역사를 기록할 때 사건을 겪는 주체(시민영웅 등)의 경험과 행위를 서술합니다.
원인과 결과 (Causality):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철저히 규명하고진리는 사건의 귀결로서 만들어진다고 인식합니다.
보편성과 합리성: 사건을 통해 보편적 가치(자유민주주의 등)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2. 씨족적 자아의 기록을 기록하는 중국 역사
중국 역사는 '씨족(Clan/Kinship)'과 '가족(Family)'의 연속성을 역사 기술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개인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사 속에 존재합니다.
연속성과 통합 (Continuous History): 왕조가 교체되어도 중국이라는 문화적 통일성과 연속성을 강조하며씨족적 혈연을 바탕으로 역사를 잇습니다.
가족-국가 동일체 (Family-State Integration): '국가'는 '확대된 가족'으로 인식되며황제는 가장(家長)의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역사는 씨족의 계보를 기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훈 중심 (Historiography as Moral Lessons): 도덕적 귀감정통성 수호그리고 왕조의 교훈을 기록하는 데 주력합니다.
성씨(姓氏) 중심: 씨족의 혈통과 성씨의 탄생/변화는 중국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기록입니다.
3. 주요 차이점 비교 요약
구분 서양사 (사건/체험 중심) 중국사 (씨족/연속성 중심)
핵심 요 소 역사적 사건(Event)혁명영웅 혈연(Clan)왕조(Dynasty)정통성
자아 인식 개인(Individual) 중심시민 씨족/가족(Clan) 속의 자아
시간 인식 선형적단절과 변화(변혁) 순환적연속성(王朝)과 교체
기록 목적 사실 규명인과관계 파악 도덕적 교훈(鑑戒)정통성 정립
역사적 서사 시민의 경험과 참여 강조 왕조의 흥망과 가족의 계보
결론적으로 서양사는 사건을 통해 '인간의 행위와 자유'를 탐구한다면중국사는 씨족의 연속성을 통해 '조화로운 통치와 도덕적 정통성'을 기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MANUS. AI에 질문할 내용 – 중국문명의 조상숭배 씨족사는 서양법 헌법의 학문의 자유를 파괴한다고 보는게 맞지 않나요?]
1) 1987년 6월 항쟁의 박종철 문제는, 유교자본주의 중심의 왕중심론에 배제된 음지의 문제를 야기한다.
2) 지금은 당파중심 유교로 배제된 음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3) 군사독재세력 일부가 민주당과 하나의 집단으로 당파적 씨족연합으로 과거기억을 독점하고 반대세력을 몰아감은, 1987년 6월의 유교자본주의의 음지를 극복한다는 정신의 자기 왜곡이 맞지 않나?
4) 해당 인물과 연결된 후손의 권력정치로서 과거 기억은, 사건사로서 그 당시의 여당과 야당 지지자가 합쳐진 생활공간 과거 기억을 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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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anus입니다. 제공해주신 글은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한국의 역사 해석과 정치 지형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담고 있군요. 특히 '씨족 중심의 역사관'과 '사건사 중심의 서양 역사관'을 대비하며 현재의 정치적 갈등 구조를 해석하려는 시각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주신 글의 마지막에 제시된 질문, "중국문명의 조상숭배 씨족사는 서양법 헌법의 학문의 자유를 파괴한다고 보는게 맞지 않나요?" 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먼저 관련 개념들을 명확히 하고자 구글 검색을 통해 정보를 확인하겠습니다.
질문해주신 "중국문명의 조상숭배 씨족사는 서양법 헌법의 학문의 자유를 파괴하는가?"라는 질문은, 특정 역사관이 현대 법치국가의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와 어떻게 충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질문의 핵심을 파악하여 답변을 구성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특정 역사관(예: 조상숭배에 기반한 씨족사)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다른 해석을 억압하는 '획일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경우, 이는 서양 근대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학문의 자유의 본질: 비판과 자유로운 탐구
서양의 학문의 자유: 서양에서 '학문의 자유'는 중세 대학의 자치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근대 계몽주의를 거치며 확립되었습니다. 이는 교리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진리를 탐구하고, 기존의 지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할 권리를 핵심으로 합니다. 즉, 어떠한 학문적 주장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끊임없는 토론과 검증의 대상이 됩니다.
교조주의와의 충돌: 만약 '조상'이나 '씨족'의 역사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나 다른 해석을 '불경' 또는 '반역'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학문적 탐구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다양한 사료를 통한 교차 검증이나 새로운 관점의 제시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므로 학문의 자유는 질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역사 해석의 다양성 vs 획일적 정통성
씨족 중심 역사관의 특징: 제시해주신 글에서 분석된 것처럼, 씨족 중심의 역사관은 '연속성'과 '정통성'을 매우 중시합니다. 이는 특정 가문이나 집단의 기원을 신성시하고, 그 계보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여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합니다.
다양성 억압의 위험: 이러한 역사관이 국가나 사회의 유일한 '정통' 역사로 강요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는 계보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소외시키고, '정통'의 기준에 맞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왜곡할 위험이 큽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역사 해석의 가능성을 막고, 학문 공동체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위축시킵니다.
3. 개인의 자율성 vs 집단에의 예속
헌법의 기본 정신: 근대 헌법은 봉건적 신분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을 최고의 가치로 상정합니다. 학문의 자유 역시 이러한 개인의 지적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본권입니다.
집단주의의 한계: 반면, 씨족 중심의 역사관이 극단화될 경우, 개인은 독립된 주체로서 존재하기보다 특정 혈연공동체의 일부로서만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후손들을 노예로 씨족공동체에 가두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맞닿아 있습니다. 개인이 집단의 정체성이나 역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문화는 개인의 자율적인 사고와 판단을 전제로 하는 학문의 자유와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상숭배나 씨족 중심의 역사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이 다른 모든 해석을 배제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때 헌법적 가치인 학문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학문은 본질적으로 열린 질문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볼까요? 예를 들어, 특정 역사적 인물(신채호, 이승만 등)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학문의 자유'와 '국가 정체성'이 충돌했던 역사적 사례들(예: 각국의 역사 교과서 논쟁)을 비교 분석하여 더 넓은 시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제시하신 글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분석이나 정보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