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칼럼] 나라의 도덕적 기둥은 아직 서 있는가?





김명수 칼럼니스트
경기데일리  202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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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31. 김명수(보병) 박사
    ©박익희 기자

나라의 도덕적 기둥은 아직 서 있는가?

 

한 나라가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경제도, 군사도, 제도도 아니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나라 전체를 떠받치고 있던 나라의 도덕적 기둥이다.

 

그 기둥은 헌법 조문 속에만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자의 연설문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려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 위에 서 있다.

 

우리 역사에는 그 기둥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증명한 이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승리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모함과 좌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나라를 원망으로 흔들지 않았고, 끝내 책임은 스스로 감당했다.
 

안중근 의사는 개인의 생명을 던져 민족의 존엄을 지켰고,

유관순은 스무 해도 살지 못한 몸으로 만세를 불러 역사의 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나라의 도덕적 기둥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증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독재와 인권유린으로 수천만 국민을 기아로 몰아넣은 마두로 대통령에게는 침묵하거나 두둔하면서, 
자유를 갈구하는 베네수엘라의 민초들에게는 조롱을 퍼붓고 있지는 않은가.

 

부패와 권력 앞에서는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이면서,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정의의 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남을 먼저 꾸짖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 또한 역사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나라의 도덕적 기둥은 누군가 대신 세워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 애국 시민들은 불의에는 분노하고, 정의에는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가 있는가.

편을 가르기 전에 옳고 그름을 먼저 묻고 있는가.

 

나라가 무너질 때 “나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그대들은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나라의 도덕적 기둥은 이미 많이 흔들렸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묻는 사람이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있으며, 침묵이 옳지 않음을 아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 그 한 질문에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나라의 도덕적 기둥은 바로 거기에서 다시 세워진다.



 

2026년 1월 8일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김명수(육사31)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