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협상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맞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다. 관세는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발동됐고, 협상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은 중립의 시간이 아니라 손해가 누적되는 시간이다. 그 손해는 통계로 잡히기 전까지는 조용히 기업의 원가를 잠식하고, 기업은 그 비용을 가격에 얹고, 결국 소비자가 떠안는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건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트럼프는 늘 방식이 비슷하다.

먼저 때리고, 그다음에 대화를 하자고 한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상대는 지치고, 버티는 쪽은 불리해진다. 그래서 시간은 항상 강자의 편이다. 한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맞은 상태로 링 위에 서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조용하고, 언론은 애매한 표현으로 상황을 흐리고, 정치권은 책임질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더 답답한 건 이 침묵을 지켜보는 사회의 태도다.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과 정치권, 시민들은 가만히 있다. 정말 바보 같은 민족이다.

 

 

누가 관세를 내주고 있는지, 누가 비용을 떠안고 있는지, 그 결과가 물가와 고용으로 어떻게 돌아올지에 대해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협상이 타결되면 성과라고 떠들고, 타결이 안 되면 그냥 조용히 넘어간다. 그 사이 손해는 일상에 스며든다.

 

이건 외교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철강,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같은 산업은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다. 일자리이고, 지역 경제이고, 국가의 허리다. 그 허리가 조금씩 꺾이고 있는데도 “논의 중”, “협의 지속” 같은 말로 모든 걸 덮어버린다. 맞고 있으면서도 맞고 있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사회, 그게 지금의 모습이다.

 

 

협상은 빨리 끝내든가, 아니면 판을 깨든가 둘 중 하나다. 지금처럼 질질 끌며 맞는 건 최악의 선택이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이미 기울어진 판에서의 묵인이다. 관세는 숫자로 찍히기 전에 먼저 삶을 때린다. 그걸 외면하는 순간, 다음에 맞을 몫은 더 커진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맞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을 건가. 다들 멍청한 건가, 바보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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