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글을 쭉 읽어보신 분들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필자에겐 보수진보가 없다. <기독교 세계관이냐, 아니냐>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필자의 글은 동학가짜 보수가짜 진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19세기 노론독재 300년 원리를 소환하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전라도 종족주의임을 금지시키고,
 
국민의 힘은 노론독재에 처발리던 영남 양반 원리를 소환하고,
 
국힘 지지자들은 이 내부비판을 내부 단속한다. (필자는 힘에서 쳐발리는 양반싸움으로 호남에 붙지말고, 서양민주 논리는 늘 언제나 노론독재 부술 힘이 영남에 있다고 강조해왔다)
 
영어권 경제유튜브는 있는데,
 
한국의 진보호소인 원불교’(사탄교)인들에겐 없는 게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왜곡된 중산층의 삶 같은 분석이다.
 
동시에, 군사정권 보수는 있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게 있다.
 
보수주의는 자기 책임원칙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 국무부 한국팀 핵심을 뺀 대부분의 해외 영어권 석학보다, 솔직히 한국은 본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뒤집어 이야기해서, 한국의 미국전문가로 미국에서 박사학위 딴 분으로 한국 거주하는 분보다, 실제 미국 거주하는 미국의 경제유튜버들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
 
하나의 귀족세력이 양쪽을 주머니속 공깃돌처럼 하는, 그냥 역대급으로 생산성을 압도하는 귀족의 양(이 표현은 유신시대에 제1-2공화국 워딩을 그대로 다시 재활용)으로 나타난다.
 
필자는 이승만을 긍정하지만, <이승만 광장>이란 직설적인 그 시절 자유당 기득권자 후손 자아중심주의를 부정한다. 동시에, 유신시대도 비상계엄 옹호쪽에 깔린 유신기득권자 자아중심주의를 부정한다.
 
자유진영의 사회.....
 
기독교신앙은 결국은 삼위일체 창조신앙이 자유진영의 사회만들기다.
 
필자에게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인간의 생각이 신학이론에 끼어든 것 자체를 의미없다고 보는 쪽이다.
 
정말로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분만 제대로 이웃의 얼굴을 바라본다. 생각이 아예 다르다. 아무리 정결한 신앙인체, 성경 어떤 부분을 복사 붙임하는 글 적더라도, 자기 생각 나오는 거 보면, 태권도 발차기보고 무술의 힘을 알듯이 알게 된다. 이 분이 정말 예수님을 주님으로 보는지 아닌지. 하나님은 더 잘 아실 것이다. 비판을 안하는게 성경에 원칙이다. 그런 일탈에서도 깨달음을 갖는 것이 기독교인이다.
 
필자는 매우 아쉽다. 군사정권 때 즉, 90년 이전의 인문학 대폭발 이전에 기성세대엿던 노인세대들은, 맹자의 양명학 양지양능같은 깨달음과 혼재돼 있는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더 나은 인문학 대폭발 이후의 세대들을 무시하고 건너뛰고, 바로 .... 가난의 시대에서 느꼈던 신앙양심을 미래세대에 전하고 싶어하신다.
 
답답하다.
 
주님은 아실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