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에 먹힘

 
국제중동·아프리카·중남미

방탄조끼까지 입었는데… 멕시코 시장 또 피살

작년 9월 취임 후 마약 조직과 전쟁
'망자의 날' 행사 중 총격받고 사망
정치인 등 1년 새 20여 명 살해당해

박강현 기자
입력 2025.11.04. 00:53업데이트 2025.11.0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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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도시의 현직 시장이 전통 명절인 ‘망자(亡者)의 날’ 행사 참석 중 범죄 조직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 시장은 피살 전 인터뷰에서 범죄 조직에 희생된 역대 멕시코 지방 도시 시장들의 수난을 거론하며 “죽지 않고 싶다”고 말했지만 총탄을 피하지 못했다.

 카를로스 만소 페이스북
멕시코 미초아칸주 우루아판 시장 카를로스 만소가 지난해 9월 취임 후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그는 지난 1일 ‘망자의 날’ 행사 도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https://www.chosun.com/resizer/v2/477ICGPPBJGKPJ64YQO3UOLEQU.jpg?auth=a96eeb2e7478a595b00eba67f974950eab28cc47f38b1dcafc021e4386ce7338&width=464 464w,https://www.chosun.com/resizer/v2/477ICGPPBJGKPJ64YQO3UOLEQU.jpg?auth=a96eeb2e7478a595b00eba67f974950eab28cc47f38b1dcafc021e4386ce7338&width=616 616w" decoding="async" src="https://www.chosun.com/resizer/v2/477ICGPPBJGKPJ64YQO3UOLEQU.jpg?auth=a96eeb2e7478a595b00eba67f974950eab28cc47f38b1dcafc021e4386ce7338&width=616">
카를로스 만소 페이스북 멕시코 미초아칸주 우루아판 시장 카를로스 만소가 지난해 9월 취임 후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그는 지난 1일 ‘망자의 날’ 행사 도중 총격을 받고 숨졌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멕시코 미초아칸주(州) 도시 우루아판의 카를로스 만소(40) 시장이 전날 시내 광장에서 열린 ‘망자의 날’ 행사 참석 중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용의자들은 시민들이 죽은 친지와 지인 등을 추모하는 의식을 치르던 상황에서 시장을 겨냥해 일곱 발의 총격을 가했다. 만소 시장은 테러에 대비해 평소 방탄조끼를 입고 다녔는데 피격 당시 착용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 한 명은 사살하고, 두 명은 체포했다. 멕시코에서 현직 시장이 피살된 것은 지난달 이달고주 피사플로레스의 미겔 바헤나 솔로르사노 시장이 귀가 도중 괴한의 총에 숨진 뒤 2주 만이다.

경찰은 범죄 조직 척결을 공개적으로 외쳐온 만소 시장에게 앙심을 품은 범죄 조직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우루아판은 멕시코의 핵심 수출 작물인 아보카도 재배의 중심지로 ‘멕시코의 아보카도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보카도 산업 이권을 둘러싸고 범죄 조직들이 농가를 상대로 갈취와 폭력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또한 마약 원료 작물 경작지가 있어 마약 밀수의 핵심 경유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만소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공언했다. “체포에 저항하는 범죄자는 사살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직접 방탄조끼를 입고 흰색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경찰과 함께 순찰에 나서기도 했다. ‘카우보이모자 쓰고 방탄조끼 입고 범죄와 싸우는 시장’으로 인지도를 높인 그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지원도 요청했다.

지난 9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선 “또 한 명의 ‘살해된 시장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끝내 범죄 조직에 피살된 또 한 명의 멕시코 시장이 됐다. 멕시코는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의 핵심 루트와 중간 기지 역할을 하고 있고, 멕시코 카르텔은 마피아 못지않은 글로벌 마약 조직으로 성장했다.

2일 멕시코 미초아칸주 우루아판에서 전날 피살당한 카를로스 만소 시장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명복을 빌고 있다. /EPA 연합뉴스https://www.chosun.com/resizer/v2/UNQ6TKSBHFN43ETHW65VKA6KII.jpg?auth=3ff22a6bf6cd261efe0e45c7b7f939b0fbcea75747a6c06b51cee2e33a98eff7&width=464 464w,https://www.chosun.com/resizer/v2/UNQ6TKSBHFN43ETHW65VKA6KII.jpg?auth=3ff22a6bf6cd261efe0e45c7b7f939b0fbcea75747a6c06b51cee2e33a98eff7&width=616 616w" decoding="async" src="https://www.chosun.com/resizer/v2/UNQ6TKSBHFN43ETHW65VKA6KII.jpg?auth=3ff22a6bf6cd261efe0e45c7b7f939b0fbcea75747a6c06b51cee2e33a98eff7&width=616">
2일 멕시코 미초아칸주 우루아판에서 전날 피살당한 카를로스 만소 시장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명복을 빌고 있다. /EPA 연합뉴스

마약 문제가 멕시코의 최대 리스크로 떠오르면서 20년째 ‘마약과의 전쟁’이 전개되고 있지만, 공권력을 겨냥한 잔혹한 보복 살해가 끊이지 않고 있고 피해자 상당수가 지방 도시 시장들이다.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해 마약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사람은 보수 성향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2006~2012년 재임)이다. 칼데론 재임기 군경과 마약 조직 간 충돌이 빈번하게 이어졌고, 지방 도시 시장 등 지역 정치인 90여 명이 범죄 조직의 총격 등으로 희생됐다.

중도 엔리케 페냐 니에토(2012~2018년 재임) 대통령은 무력 충돌 대신 강력 범죄 단속에 비중을 뒀고, 좌파 안드레아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2018~2024년 재임) 대통령은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이른바 ‘카르텔 포용 정책’을 채택했다. 이 같은 방향 전환에도 두 지도자 재임 기간 시장과 시의원 등이 살해당한 사례는 100건에 육박했다. 오브라도르의 정치적 후계자 셰인바움은 전임자보다 적극적인 마약 조직 단속 정책으로 전환을 꾀했지만, 시장과 시의원 등을 겨냥한 공격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재임 이래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셰인바움 취임 직후인 지난해 10월에는 게레로주 도시 칠판싱고의 알레한드로 아르코스 시장이 취임 엿새 만에 참수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 6월에는 미초아칸주 도시 테팔카테펙의 마르타 멘도사 시장이 남편과 함께 총격에 목숨을 잃었고, 같은 달 오악사카주 도시 산마테오 피냐스의 릴리아 헤마 가르시아 시장과 직원들도 총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