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료의약품(완제의약품의 주성분)의 약 80%를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싼 가격'을 앞세운 중국·인도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이 낮고, 수입 비중이 높아져 '완제의약품 수급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 트럼프발 관세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최근 10년간 총 108개 의약품이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정'을 이유로 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원료의약품이란 합성·발효·추출 또는 이 방법들의 조합으로 만든 물질로, 흔히 병원·약국에서 접하는 '완제의약품'의 주성분 원료다. 우리나라 완제의약품 자급률은 평균 75% 정도지만 정작 완제의약품에 사용되는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은 20%도 채 되지 않는다.

그 배경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인도 등 2개국 원료의약품의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6년 중국·인도 두 나라에서 수입하는 원료의약품 수입액 비중이 35.6%(중국 26.8%, 인도 8.8%)였다. 하지만 지난해엔 그 비중이 50.5%(중국 36.3%, 인도 14.2%)로 껑충 뛰었다. 수입 원료의약품 절반이 중국·인도산인 셈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원료의약품을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인도산 원료의약품을 수입해서 쓰는 게 완제의약품 생산비용을 줄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박희승 의원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속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우리나라는 원료 대부분을 중국·인도에서 수입해 정세 변화, 수출규제 같은 외부 변수에 취약하고, 가격 측면에서 경쟁이 어렵다"면서 "의약품도 안보라는 생각으로 공급망을 다각화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원료의약품 자급화 대책을 수립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안 중 하나가 수급 불안정한 의약품에 대한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이다. 앞서 지난달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은 의사가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처방할 때 처방전에 의약품의 '명칭'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예컨대 처방전에 '타이레놀500㎎' 대신 '아세트아미노펜 500㎎'으로 기재하는 식이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대가 거세다. 의사가 처방권을 빼앗길 것이란 위기감에서다. 의협은 전날(13일) 성명을 내고 "성분명 처방이 국민 건강 위협할 것"이라며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주요 원인은 정부의 일방적 약가결정 구조, 제약사 생산 라인 부족, 원료 공급 부족 등 다양한 구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의협은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꾸리고, 25일 서울 용산구 의협 대강당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해 총력 저지하겠단 전략이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처방한 약의 이름 대신 성분명만 기재하고, 약사가 임의로 의약품을 변경·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며 "이는 환자의 치료를 위한 맞춤 처방의 핵심인 의사의 의학적 판단권을 침해하고, 약물 부작용과 치료 혼선을 초래해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약품 수급 불안정은 단지 특정한 상품명 하나의 약제 공급이 불안정한 게 아니라, 같은 성분의 모든 약제 공급이 중단될 경우를 의미하는데, 이를 성분명 처방으로 해결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라며 "수급 불안정 의약품의 근본적 문제 개선은 외면한 채, 성분명 처방이라는 위험하고 잘못된 방식을 택하는 건 국민 안전과 생명에 대한 포기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30일 대한의사협회 김택우(가운데) 회장, 김성근 공보이사(왼쪽) 등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홍효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