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배경의 ‘진보기독교’는 한국과 진짜 동북아시아를 오독했다-

한국에서 말하는 진보기독교는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이며, “동학신앙에 교횟말 씌운 토착화신학”이며, “호남동학은 일제 강점기 소련마을 씨족주의 역사를 갖고 있다,” 즉, 표현만 기독교이지 실제는 일제 강점기에 소련공산주의에 연동돼서 움직였던 씨족역사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챗 지피티에 의견을 물어보니, 이 부분을 거의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공자 맹자에 하늘 天이 있다. 이를 성경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어떨까? 시천주 인내천을 하나님을 섬기다. 민중(사람)이 하나님이다 라고 쓰면 어떨까? 실제는 공산마을 씨족종교인데, 성경의 하나님을 전하는 양 표현만 빌려쓰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시천주 인내천 동학교리로서 전봉준이 민중이고, 민중이 전봉준이라는 농민군 원리로 작동하면서, 여기에 명분적 허구로 교횟말 씌우는 것이다. 그게 민중신학이다. 그러면 민중신학은 샤머니즘 조상신 신앙이니까,...... 삼위일체가 있겠나 없겠나? 없다. 민중신학은 씨족 내부를 감싸고, 씨족 외부를 적대시한다. 민중신학 자체가 히틀러 파시즘의 유대인적대감의 생산의 100만 배 수준으로 한다. 그런데, 이들의 논조를 비판하면 혐오다? )
대한민국 건국은 해방공간 미군정에서 친중좌파가 주류인 사회에서 유일한 기독교인인 이승만 노선의 승리였다. 민중신학 세력의 조상들은 이승만 세력에 정치적 패배한 남로당 세력에 닿아 있다. 이제, 그들은 이승만의 후원이 된 기독교세력과 다른 배경의 기독교를 후원 받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핵심이 되는 쟁점이 되는 사실만 요약해보면 이러하다.
①. 1922-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의 공작금은 오직 소련만 대어 주었다. 호남파는 소련에 의리를 지키자(결코 소련 공산주의 자체를 이해하지 않은), 영남파는 이승만에 줄서자. 미국에 맞추자. 그렇게 갈렸다.
②. 남로당에 줄 닿던 호남파는 정치적 패배를 했다. 그러자, 월북하여 북한 요직을 차지했다.
③. 김일성은 6.25 전쟁(커밍스 용어로는 ‘더 코리안 워’)을 남로당 구출작전으로 남한을 침략했다.
④. 그때에 월북하지도 못한 호남 동학파는 김일성의 인민군 부대 남침에 수수방관했다. 6.25 전쟁 지도를 놓고 보면 강원도와 영남은 철벽 방어막이지만, 호남파가 중심인 서쪽은 줄줄이 뚫린 것을 볼 수 있다. 이때에 공산군 부대에 투항하여 부역하여, 군복 바꿔 입은 이들이 있다.
⑤ 한미연합군이 승승장구하여 북한영토까지 쳐들어가자, 모택동은 김일성 구출작전 명목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다.
⑥. 박근혜 정권 때 사드 문제에서 대놓고 중국 정부는 속내를 드러냈다. 중국의 공식의 ‘친한 감정’은 6.25 전쟁 때에 김일성 구출작전으로 전쟁 개입할 때, 그때에 인민군 안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남로당원(호남 동학)이 있더라.
무비자입국으로 나타남이 이명박 정부 때에 중국 공식 속내를 몰랐을 때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선명하다.
우리는 모두 남로당원인가?
우리는 모두 인민군에 부역했나?
그래서, 우리는 모두 중국인민해방군에 감사해야 하나?
지금 이재명 정부가 우격다짐으로 친중 분위기 내는 결정적 이유는, 한국의 헌법을 파괴하여 중국식 당 국가주의를 마련하여,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귀족들을 영구히 관직과 기득권에 꽂고 싶은 속내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반중이 혐오라 한다’.
모든 더불어 민주당 정치계몽의 뿌리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한국 및 동북아 영향력에 있다.
모든 것을 미국 헤게모니는 백인보수 우월주의로 세뇌시켰다. 그런 관점은, 모든 것을 진보 기독교로 왜곡했다는 것을 감춘다. 레이 달리오나 제프리삭스 교수의 생각도 비슷한데, 아시아식 내면 해석으로 중국을 해석자체를 못하는 것이다.
한국 성경 용어로 블레셋, 공식 표현으로 팔레스타인까지도 품는 이방기독교의 전제는 로마민법이라도 기독교신앙 외곽에서 공동체의 룰이 있음을 전제한다.
챗 지피티는 오늘 놀라운 소개를 해줬다.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박근혜 정부 초기에 대한민국의 책읽었다 하는 사람은 1권씩 다 가진 책인데, 이 책이 바로 <정치적 올바름>(피씨주의)의 교과서쯤 되는 책으로 말해줬다.
진짜 문제는 그러하다.
중국사람이 정치적 올바름으로 센델 교수식으로 사고하나? 공자 맹자사상을 춘추를 통해서 읽는 것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해석한다. 즉, 기독교 영화 [창끝]에서 복음전도 이전의 무한한 종족전쟁과 살육전 속에서 생존의 방법론이, 중국인의 정치적 올바름이자 전라도 동학공산파의 정치적 올바름이다.
더불어 민주당의 윤석열 내란죄 재판은 내란죄를 묻는 거 자체가 웃긴 일이다. 법학은 철학의 일부이면서, 서방자유진영의 법인식에는 유대 기독교 윤리가치관이 연결된다. 그러나, 더불어 민주당은 원불교에 깔린 극도의 ‘전라도 종족주의’의 초강도 근본주의 신앙을 제대로 장착했다. 이는 증거가 많아도 너무 너무 어마어마하게 많다.
실제 이분들의 <정치적 올바름>은 뻬이징 중심의 종족전쟁 살육전이다. 실제 이분들의 생각은 이러하고, 명분적 허구이자 자신을 포장하는 행위로서 ‘진보기독교’의 표현만 빌려서 쓰는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 백인보수 공화당 중심의 우주로 아시아를 억지로 끼워 맞춘 부분을 비판했다. 미국 민주당은 더 심각하게 미국 내부의 진보문화로, 동북아시아를 ‘엽기적으로 정신나간’ 버전으로 오독을 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서방 질서)는 1인독재 뿐만 아니라 1당독재 모두를 거부한다. 미국 민주당은 유신시대 논리만 고집하며 1인독재만 막고, 1당독재로 히틀러 파시즘 때 게르만족 잇권 독점 및 러시아 볼쎼비키 혁명 때 제헌의회조직이란 잇권 독점 조직이, 마치 사도행전 공동체처럼 엽기적으로 오독한다. 더불어 민주당이 반중을 혐오라고 하는 것은 미국 민주당의 ‘엽기적 지원’이 있으니까 나타나는 일이다.
공자 맹자를 춘추좌전, 춘추공양전 시각으로 읽으면, 중국사회는 1명의 히틀러가 아니라, 중국의 지역마다 각각 무수한 히틀러의 존재로 나타난다. 미국 민주당은 중국 내부의 높은 지성인이 자기들 배웅을 정말로 중국인이 다 그런 줄 착각한다. 레이달리오의 책에서 중국 보는 표현에서 그런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혐오라는 말의 사용하는 실제상황으로 트럼프 1기 시절에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의 가치관에 맞는 발언을 혐오라고 미국 민주당은 받아쳤다. 그 상황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즉, 교회법, 로마민법, 보통법 등 모든 형태의 질서가 없는데도, 손실은 일반인에게 돌아가는 무질서 진흥을 통해서 이익을 보려는 귀족들의 부도덕한 행위가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 민주당 성향의 경제학책에 비판된 유신체제 기득권자들의 사고방식에서는 권위주의로 억압하여 자기들의 성장만 노릴 수 있고, 이분들은 이제 정치적으로 정반대로 바꿔타며 일반국민의 기본권을 파괴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노릴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미국 민주당은 한국 현실의 오독이 크다.
미국민주당이 공화당과 백인보수를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가나, 그 감정이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아전인수로 부풀린 가짜 이미지를 씌운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미국 국민은 ‘IN GOD WE TRUST’의 기독교 공동체의 토대로 돌아갈 때라고 생각한다.
미국 민주당의 잘못된 후원은, 결국 한국의 공산파가 법치질서를 운영할 의지가 없이 권력만 장악하면 시스템 들어엎어서, 중국경전식 야만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의 구현자와는 비교가 안될 실수라고 본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진지하게 ‘히틀러 파시즘’을 비판하면 혐오인가? 라고 묻고 싶어진다. 모든 종족전쟁으로 인한 민생 고통을, 백인보수에 세뇌됐다고 바라보는 그 프레임은 정당한 것인가?
<혐오>라는 미국 민주당의 사용용례로, 한국국민이 중국인민해방군과 공동체를 이루는 그 역사를 보편적으로 강요당할 때, 대한민국 국민의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기본권은 소멸함의 자인이 된다.
따라서, 반중을 혐오라고 한국인에게 보는 관점은 불가능한 평가로 보는게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