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족의 조상신을 숭배하라”가 유일한 규율인 국가는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법치주의가 망할 수 밖에 없다. - 조갑제기자는 단 한번도 변절한 적이 없다.(30년 내내, 자유민주 파괴자!)


 

필자는 ‘이승만, 박정희’등을 영웅사관으로 놓는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역사관으로 자유민주주의 국민교육을 재창조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를 절망적으로 뿌러뜨리는 일로 본다. 이승만 박정희는 남로당 씨족이 격렬히 반대한다.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청와대 왕궁 논리로 긍정하면, 그들을 전혀 전혀 불필요하게 자극한다.

 

영웅사관은 가치 중립으로 민족으로 놓는 어법은 불가능하다. 그 영웅사관의 창조자 신채호 선생은 남로당에도 북한공산당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중립으로 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점은보수세력 내부의 일제 강점기 공산파”(임시정부 창조파씨족의 증거라고 본다.

 

민주정의당 반공교육은 남로당 공산교육을 수입품이다. 민족반역자다. 이렇게 주장했다. 민주당지지자들은 남로당은 민족적인 가치이며 자신들은 마르크스의 마, 주체사상의 주가 없다고 보았다.

 

“주체사상의 주, 마르크스의 마”가 없는 레닌 스탈린주의 작동이 가능한가? 정세현 통일부는 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천도교 신앙 및 동학신앙만 알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몰라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필자가 검증해봐도 사실 그렇다.

 

공산주의자들의 인민 민주주의(민중민주주의)는 혁명영웅이 이끄는 당에 맹신을 전제한다. 여기서, 혁명영웅이 소련 이론 수입품이 아니라, 원불교(사탄교)에 깔린 무속신앙과, 무속신앙 기초한 민족 영웅신화로 된들, 공산당 당성에 기초된 혁명영웅을 따라라, 민중(인민)들아. 이 논리는 그대로 유지가 된다. 그러니까, 노무현도 조갑제 창작 내러티브로서의 박정희를 이용하고, 문재인도 박정희를 이용하고 이재명도 박정희를 이용한다. 박정희가 보수국민에 박정희가 아니라, 원불교(사탄교)중심의 민중민주주의자들이 혁명영웅 유사품이로 이용해먹기 좋은 변질된 박정희다.

 

경제유튜버로 88년생 이탈리아인 정치경제학자 클라라 마테이가 ‘자유’경제를 하는 척 했고, “폰 비저”의 [권력의 법칙] 시각 비슷한게 아닌가 착각했다. 그러나, 이 여자가 자꾸 ‘파시즘’ ‘파시즘’하는게 민주당 유튜버와 똑같은 이야기다. 챗 지피티에 물어봤다. 그 기원이 모두 노엄 촘스키라고 한다. 촘스키의 그 표현의 실체를 살펴볼 때, 원문을 봐야 하지만 한국에는 짧은 개론서들만 번역된 지라, 유튜브에 깔린 ‘촘스키 파시즘’으로 뜨는 꼭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딱, 듣는 순간 단번에 알겠다. 촘스키는 30년대 공산파에 이어졌다. 클라라 마테이가 일부 자신의 유튜브 꼭지에서는 긴축정책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해서 착각했는데, 이 여자의 기본 소신은 ‘긴축=파시즘’이다. 역시 30년대 공산파 씨족인 것이다. 유교 국가만 씨족이 이념에 미치는게 아니라, 자유진영에서도 이렇게 씨족색깔이 징하게 담긴 표현을 남발하면, 그게 사실은 이념적 분류가 된다. (클라라 마테이는 중도좌파로 봄이 합당하다. 일베에 착각하여 보수경제학자로 소개한 거 정말 죄송스럽다)

 

조갑제기자는 트럼프를 극우로 소개한다. 특히, 주체사상 및 1920-30년대의 공산서적 로직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겐, 조갑제기자의 속마음은 쭉 한순간도 전향한적이 없었음을 실감한다. 조갑제의 ‘한국전쟁’이란 용어 선택도, 남로당파 씨족만 경험하는 것이다. 조갑제기자는 5.16을 군사정변이란 용어 수준의 중립표현이 아니라, 쿠데타로 명시한다. 즉, 씨족적 측면으로 ‘反 대한민국’이면서, 법치국가 유형의 규율 준수에 대하여 ‘파괴’의 입장으로 서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씨족적으로 특정한 역사적 기원을 가진 좌측의 <원형생각>을 신실하게 반복적으로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글로벌 스탠다드 사상 판정법으로 ‘좌익’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즉, 조갑제기자의 보수논객 30년은 전부가 사기극이다. (필자는 과장더해서, 숨쉬는 거 까지도 사기라고 본다)

 

조선시대식으로 박정희 이승만 붕당은 박정희 이승만이 대장이다. 그리고 남로당 씨족은 공산혁명가가 대장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관점을 구사하면, 기업행위로 하나의 공동체로 협력하라는 말이 될까? 경제위기가 오면 경제위기가 온다고 협력하라는 말이 될까?

 

영화 ‘건국전쟁’은 법치국가로서 규율의 불가능성을 전제한다. 영화 길위의 김대중과 같이 나왔는데, 국제사회에 일당독재 파시즘과 일인독재 파시즘의 경쟁구조가 법치국가라고 오인한 정신나간 지도자들이 이끄는 대한민국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 글을 적은 이유는 탈북자 이민복씨의 게시글을 본 이후의 대응이다. 조갑제기자가 보수우파진영의 인문학 생태계를 씨를 말렸다. 그래서,탈북자 이민복씨는 학적 규율 없는 수필적 세계관을 드러내도 된다. 그러면 묻자. 이렇게 학적 규율이 없어서, 사람들이 무시할 수 있는 게시글은 과연 자유민주주의 보수우파의 세계관의 드러남일까? 영웅사관으로 끝까지 가면 일제 강점기 공산파 신채호 선생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조상숭배를 잘해야 그 마을에서 살 자격으로 논한다. 필자가 사는 광진구만 해도 드러난다. 경상도 사람중에서 남로당 계열 지지자도 보이고, 전라도 사람들 중에서 극우 노선 지지자들도 많이 있다.

 

조상숭배사관은 조선시대에 권력을 꿈꾸는 귀족들의 권력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법치 시장경제는 해롭다. 좌우대결에서는 공산파에 절대적 이로움을 준다. 조갑제 기자는 지난 30년 한순간도 전향을 한적 없다. 모든게 거짓, 모든게 사기, 모든게 진실 결여.

 

역사적으로 이념 구획을 나누는데, 중요한 상징어를 반복적으로 장기적으로 저짝 진영 표현을 쓰면, 그게 바로 사상구분이다. 일시적으로 반대쪽 빨아준다고(클라라 마테이가 긴축 긍정하듯, 조갑제도 그런 어휘 많음), 그게 진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