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일본은 이미 대부분의 해군을 잃었고 숙련된 파일럿들도 대부분 잃고서 패배가 확정적인 상황이었음

 

버마에서는 미국 영국 호주 인도군 연합에 밀려나고 있었고 겨우 버마 국경지대에서 방어 성공하며 태국으로 들어가는 길만 지키는 수준

 

필리핀에선 일본이 끌어모은 모든 정예병력 50만명이 말 그대로 미군의 화력과 필리핀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버림....

 

더군다나 미군의 끝없는 공습으로 전국토가 불바다가 되어버린 상황...

 

당시 일본의 공업 능력은 미군의 공습으로 인해 1944년 대비 무려 96%가 하락하는 절망적인 수치를 보이며 패전의 목전까지 와 있었어

 

그럼에도 일본은 항복을 하지 않았는데...

 

 


 

 

아직 만주에 남아 있는 관동군 71만명 중국에 남아있는 병력 112만명

 

그리고 동남아 각지에 남아있는 일본군들이 수백만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 수뇌부는 아직도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특히 인도네시아에 있던 병력들은 일본군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던 부대들이었는데 미해군 때문에 본토로 가지도 못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유유자적하게 놀고만 있을뿐이었어.

 

 

 

 

 


 

이제 일본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모든것을 포기하고 천황제만은 수호하자였음. 문제는 미국은 ㅈ까라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당연히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그대로 묵살해버렸어

 

그렇게 히로시마에 신형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히로히토와 군 수뇌부는 진지하게 항복을 결심하기 시작했는데

 

내각 회의에서 3대3으로 갈려버리고 히로히토는 막상 항복 결심을 주저하는 상황이 펼쳐져. 이유는 천황 옥체 보존이 확실하지 않게 때문...  이때 소련에게 남사할린과 쿠릴열도 만주 절반 그리고 홋카이도를 주고 천황제 유지 조건으로 중재하는 방법도 검토되었다고 해

 

 

 

 

 

 

그러나... 3일 뒤에 소련군은 대대적인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공격해.

 

 

 

 

 

 


 

당시 일본군 수뇌부는 이미 자체 평가에서 만주에 있는 만주군 25만과 관동군 71만명을 전부 합쳐도 미군 6개 사단보다 못한 전력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막장이 된 상태였는데. 그 이유는 관동군이 차출의 부대였기 때문이야.

 

 

남방 친다고 정예병력들 빼가고 필리핀 지킨다고 빼가고 오키나와 이오지마 제주도 지킨다고 빼갔어...

 

그러다보니 1945년 기준으로 관동군 31개 사단 중 무려 26개의 사단이 신편된 신병들이었어... 말 그대로 오합지졸

 

심지어 기름도 없어서 탱크 전투기도 가동률이 10%가 안되는 수준이었다고해... 한때 일본군 최정예로 꼽히던 관동군이었지만 이미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은 4개 사단이 채 안되었고 그마저도 태평양으로 물자를 차출 당해 제대로된 물자도 없던 상황이야

 

 

 

 



 

반면에 소련군은 독소전쟁이 끝난 3개월동안 무지막지한 준비를 하고 미국의 하고에 힘 입어 150만의 병력과 어마어마한 물자를 준비해서

 

8월 9일 항복하지 않고 있던 일본을 공격해

 

 

 

 

 


 

당연히 오합지졸이었던 만주군과 관동군은 대부분 싸우기도 전에 도망가거나 항복해.  실제로 71만의 관동군 중 소관군과 싸운 병력은 10만명도 안되는데다가 

 

무단정 전투 하나를 빼면 사단 아니 연대 단위의 전투도 벌어지지 않을만큼 싸울 의지 자체가 없었어. 

 

 

 

 

 



 

 

그나마 이 무단장 전투도 관동군에서 싸울 수 있는 병력들 영끌해서 싸운 전투고 그럼에도 소련군 30만에게 포위당해 개고생한 전투야.

 

이 전투 이후로는 대부분 일본군은 대대단위 이하로 전투가 진행되.

 

 

 

만주작전 결과 일본군은 2만 1000명의 병력이 죽고 

 

소련군은 1만 1000명의 병력을 잃어.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본제국은 항복을 거부하고 어전회의에서는 3대3으로 나뉘고 히로히토는 여전히 항복을 주저하는 상황...

 

 

 

 

 


 

그러나 당시 어전회의가 열릴 당시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떨어지고 일본군 수뇌부가 엄청나게 당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당시 8월 6일 어전회의에서는 이런 괴물 같은 원자폭탄은 1기뿐일거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야. 근데 이러한게 2기 혹은 그 이상이라면 답도 없다고 느꼈을것이기 때문

 

8월 9일 소련의 참전과 나가사키 원폭에도 일본은 항복 결정을 내리지 못해 ㄷㄷㄷ

 

 

 

 

 


 

그러나 이때 히로히토천황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버리는 전보가 하나 도착해.

 

맥아더사령관이 직접 보낸 전보이고. 천황제 유지한다는 메시지를 돌려서 보내. 미국도 소련군이 홋카이도와 도후쿠를 요구하며 일본 분할을 요구하자 천황제는 수용하고 히로히토는 처벌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꾼것도 있었어(맥아더가 나중에 막음)

 

이에 히로히토가 끝내 직접 항복을 하자고 선언했고 천황의 발언으로 3대3이던 어전회의는 순식간에 6대0으로 돌아가버려

 

그럼에도 육군에서는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란이 터지기도 해(궁성사건)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되고 한국 북한 중국 베트남 내몽고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등이 독립되게 되었어.

 

 

 

 

 

3줄 요약

 

1. 일본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항복을 주저함

 

2.이미 1945년 시점에 남은 병력들은 대부분 오합지졸

 

3.맥아더가 항복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