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어느 산사에 유명한 선승이 살았다.
유명세가 흐르고 흘러서 많은 사람들이 선승을 뵙고자 찾아갔다.
어느 젊은 유학자도 그 소식을 듣고 몇가지 묻고자 길을 나섰다.
산사에 도착하니 이미 선승를 만나려는 사람들의 줄이 꽤나 길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으나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도 만나주지를 않았다. 선사가 아는 지인들의 순서대로 만나주는 듯하더니 밀리고 밀려서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지나고서야 선사를 만날수 있었다.
젊은 유학자는 섭섭한 마음에
" 아니 노스님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십니까"
그러자 노스님이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지 않은 것과 같다"
젊은 유학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스님의 따귀를 올려부치며 이렇게 이렇게 말했다.
"따귀를 때리는 것은 때리지 않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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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중도라는 말은 같다만 해도 맞지않고 다르다만 해도 맞지 않다는 뜻이다.
꿈과 현실이라는 말이 따로 있는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부처가 따로있고 중생이 따로 있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그럼 부처와 중생이 같습니까?
평상심이 도 이니라 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그럼 평상심을 평상심이라하지 왜 도라 합니까?
밝음은 어둠의 부재요 어둠은 밝음의 부재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내 친구에게 원수가 하나 있는데 그럼 내친구가 아닌 모든 사람은 친구의 원수입니까?
몸속에 암이 생긴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몸속 세포나 암세포나 같은 세포인데 분별해야합니까?
같은 세포인 줄 알기만 하면 치료 않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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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한 선승인 도겐스님은 젊은시절
'모든 존재가 이미 부처라면 왜 수행이 필요한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유학도 하고 여러 공부끝에 깨달았다
'내가 부처라는 사실을 더욱 알기위해 수행해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