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들까지 양치문화가 보편화 되는 시기는 1600년대 에도시대(근세)였다.

*칫솔
17세기 에도시대때 칫솔이 개발되었다. 버드나무 가지를 삶아서 부드럽게 만든 뒤 한쪽 끝을 망치로 두드려 칫솔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칫솔과 거의 형태가 비슷하다.


<일본 에도시대 버드나무 칫솔>
버드나무 칫솔 사용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앞부분 칫솔 모양을 이루는 부분으로 이를 닦았다.

2. 반대편의 뾰족한 부분으로 치아 사이의 이물질을 제거하였다.

마지막으로 손잡이의 굽은 부분을 혀에 문질러서 설태를 제거하였다. 양치질 뿐만 아니라 설태로 인한 입냄새 제거에도 신경을 썼던 것이다.

* 치약
일본상점에서 치약이 대중적으로 팔리게 된 시기는 1625년 부터였다.
하얀 방주사에 용뇌꽃에서 채취한 결정, 정향나무 등을 섞어 만든 항료 그리고 구운소금(죽염)을 섞어서 치약을 제조하였다. 이 재료들은 살균효과가 탁월하여 충치균을 억제할 수 있기에 아주 효과적인 치약재료들이었다.

<에도시대 치약>
1600년대 일본의 치약광고 문구는 아래와 같다.
「歯を白くする」"치아를 하얗게 만든다"
「口の悪しきにおいを去る」"입의 나쁜 냄새가 떠난다"
이후 박하 등의 향료를 더해서 오늘날과 비슷한 치약들이 등장하였고 에도시대 후기가 되면 치약종류만 100여가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게다가 의치와 틀니도 등장하였다. 세계 최초의 틀니는 에도시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아래 그림들이 에도시대 의치와 틀니 유물들이다.


<에도시대 의치와 틀니 유물>
에도시대 일본 백성들은 양치질을 할수 있었기에 입냄새와 치통없이 살아서 생활수준이 높았다. 일본은 상업이 발달하고 경제적 수준이 높아서 보건과 위생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반면에 조선시대 백성들은 원시적인 수준의 양치질도 거의 할수 없었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어떻게 양치질을 할수 있었겠는가?

<조선시대 백성들: 평민과 노비>
조선의 지배층들인 왕과 양반들도 칫솔과 치약이 없어서 원시적인 방법으로만 양치질을 했기에 입냄새와 치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래 그림들은 조선시대 왕들의 양치질 방법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은 칫솔과 치약이 없어서 궁녀가 자신의 손가락에 소금을 발라서 왕에게 양치질을 해주었다.



조선은 성리학의 중농억상(重農抑商) 사상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지 못해서 수공업이 쇠퇴하였고 기술이 발전될 수 없었다. 상업이 발달해야 자본이 축적되어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발전된 상품들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후기때 바늘과 철사하나 제조하지 못해서 전량 청나라에서 수입했다고 하니 조선시대때 수공업 기술이 얼마나 쇠퇴했는지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