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년전 이맘때쯤 내가 공익근무를 할때의 일이다너무나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정말 충동적으로 밤 10시경에 집을 나섰다.내일 근무지에 가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담당자에게 늦은시간 죄송스럽지만 내일 연차처리를 부탁한다고 연락을 일단 한뒤정말 충동적으로 아무곳이나 돌아다녔던것 같다. 버스와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타면서.그러고나니 꽤나 한적한 , 6차선 도로였지만 인적과 차량이 굉장히 드문 거리에 있었는데 그 한켠에 택시를 세우고 스트레칭을 하는 중년택시기사가 보였다.단정한 상고머리에 어딘가 반항적이면서도 착해보이는 인상, 넥타이에 조끼를 갖춰입은 모양새가 매우 단정해 보였다.어떠한 이성적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그 분의 택시로 걸어갔다. 내가 오는것을 보고 나에게 어서오라는 의미의 목인사를 한뒤 바로 스트레칭을멈추며 운전석 으로 들어간 그는 느낌대로 완전히 중년의 신사였다.어디까지 가냐는 물음에 사실 생각해둔 곳이 없어 순간 당황했지만 이 아저씨와 최대한 오래있기 위해선 사람이 없으면서도 약간은 분위기있는곳엘 가야겠다 해서 내가 평소에 종종가던 한 공원쪽으로 가달라 했다. 또 커피를 먹고 싶었기에 거기에 편의점이 있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운전하며 가는동안 나는 최대한 공상을 했던거 같다. 이 순간만큼은 나는 멋진 한 남자와 드라이빙을 즐기고 있는, 행복한 한 소녀라는 것을 계속생각했고 실제로도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중 하나였던것 같다. 그런데 이 남자와 만남을 이어가려면 내가 진짜로 어디에 가려고 택시를 한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외로워서 탄 것이라는 것을 빨리 기사에게 말해야 했는데 어떤 멘트로 말해야 할지 계속 고민되었다. 막상 말하려 하니 무엇보다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 게이로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에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몇번 속으로의연습 끝에 말을 열었던것 같다. 사실 지금 너무 차가 타고싶어 나왔는데, 혹시 같이 이야기 하실 수 있냐고.. 이렇게 지르고 나니 아저씨는 조금 황당하면서도 쑥스러워 보이는 웃음을 짓더니 그러자고 했다. 그때쯤에 공원에 도착했고 나는 커피를 마실거고 기사님것도 사다드리고싶은데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역시나 또 쑥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내가 사줘야되는건데 하면서 미안해하는 그 중년의 남자. 역시나 인품과 인성도 좋아보이는그였다. 그런 남자와 평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남자와 결혼안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지,, 하는 부러운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커피를 사와 나눠 마시는데 사실 그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남자와의 데이트에서 느끼는 설렘이 얼마만인가. 신기하고도, 행복했다그러더니 그 아저씨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딸이었다. 거기서 바로 스쳐지나가는 생각.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구나. 왜인지 몰라도 안타깝고속쓰린 느낌. 그러나 안타까워 할 것이 있나. 이 남자는 원래 내것이 아니었으니깐. 전화를 끝내고 또 멋적은 웃음으로 말했다. 자기 딸이라고, 중학교 3학년된 딸이 있고 아들은 고2라며. 인서울 대학만 해도 좋겠다며 이 세상을 사는것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나의 직업 대학을 오픈하고 내친김에 부모님 직업까지 말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볼때 사실 나와 우리집은 그럭저럭 괜찮은 스펙들이기 때문에 당당하게말한것도 있었다. 그러나 게이라는 나의 정말 중요한 정체성 때문에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나는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생각과 시선으로 병들어 있었다. 물론 당연히 그것은 그분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훌륭한 부모님이시고 자식도 잘 자랐다는그 아저씨의 말에기분이 잠깐 좋아졌다. 그렇게 계속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당시의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얘기들... 정치적인 얘기도 꺼낼까 했지만 왠지성향이 다를수도 있기에 꺼내지 않았다. 낚시를 좋아한다던 그 아저씨는 낚시얘기를 계속 했지만 내가 거의 알지 못하는 분야이지만서도 정말 집중해서 들었다. 보통 나는 내 관심분야가 아닌 얘기에 대해서는 듣는척만 하고 제대로 듣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도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르구나 싶었다. 그렇게 얘기가 흐르니 나는 심각하게 갈등했다. 이쯤되서 볼에 키스를 한번 해볼까, 아니 그것은 너무 말도안되게 나갔다. 그냥 손만 잡아볼까. 아니면 좀더 과감하게 허벅지? 아니면 어깨? 배? 머릿속에선 자꾸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라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러다간 정말 경찰서에 갈수도 있다는 이성의 목소리가 자꾸만 신경쓰였다. 그냥 어찌저찌 팔짱만 한번 꼈던것 같다. 역시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 분은 다행이 내 손을 빼진 않았다. 그러나 추잡한 내 성욕은 완전히 절제를 하지 못했기때문에, 팔짱을 낀 상태에서 계속 그 아저씨의 배를 팔로 살짝 살짝터치했던것 같다. 배가 약간 나오긴 했지만 굉장히 단단했던 느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알고도 모른채 한것인지, 정말 신경을 안쓴것인지 모르겠지만 다행이 나의 신체접촉에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듯 보였다. 그렇게 되서 시간을 보니 새벽 1시정도가 다 됐던것 같다. 아저씨는 이제 운행을 해야 될것 같다며 넌지시 말했지만 나는헤어지고싶지 않았다. 헤어지고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앞섰던지 나는 정말 순간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한 10만원을 줄테니, 그냥 오늘은 저하고만 같이 있어주시면 안되냐. 그게 적으면 더 줄수도있다. 보통 지금 운행 안하면 얼마정도를 버냐. 내가 그만큼을 주겠다' 라고 말이다. 나는 이미집을 나올때부터 현금으로 30만원 정도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놀라면서 내가 이미 준 10만원을 돌려주며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했다.그냥 여기까지 온 택시비만 받겠다 했다. 아. 이런 비현실적인 멋진 남자가 있는건가. 자꾸만 갈수록 놀라면서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런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게 정말 인생의 행복 아닐까. 난 정말 행복할수있는 것일까. 또 계속해서 우울하고 염세적인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그렇게 약 2시간 동안 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더 이야기할 것도 없고 이젠 정말 이 남자를 보내줘야 겠다는 생각이 내게도 들었다. 이렇게 양심적인 사람을 돈을 못벌게 하고 붙잡아 두는 내가 너무나 나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 있고싶더라도 빨리 보내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아저씨와의 대화동안 내가 이야기한것보다 그 아저씨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은게 더 많았다. 나이차이 많은중년의 남자와 이야기를 해 나간다는게 결코 녹록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도 그 아저씨가 억지로 나와 대화하는게 아닌 그분도 나름대로 얘기하고싶어 하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분도 어쩌면 약간은 외로운 마음이 있었던것 같았다. 어쨋든 지금까지 그와의 시간을 내가 일방적으로 강제하고 강요한것은 아닌것 같아 약간은 다행이라는 생각. 그러나 연락처는 꼭 받아야 했기에 또 다시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말했다.다음번에 제가 어디 갈일 있을때 꼭 아저씨 택시 이용하고 싶다고. 저 장거리로 이용할일이 생길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며 번호를 알려달라했더니 다행이 순순히 알려주었다. 그렇게 그 번호를 신주단지 모시듯 꼭 저장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완전한 새벽이라 그 인적이 드문 공원에서헤어질순 없었고 대로변까지 그 아저씨가 태워줬는데 그 비용을 안내도 된다 했지만 나도 지금까지 사실 그 아저씨를 이용한 과정이 너무마음에 쓰여 5만원을 주고 인사를 하고 바로 문을 닫고 왔다. 그렇게 그 아저씨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그러나 그 후로 그 아저씨를 전혀 만나진 않았다. 너무나 마음 떨리게 했고 내마음에 들었던 남자였지만 그뒤로 연락하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름대로 인생에 바빠서 였을수도 있고, 계속 사적으로 연락하면 혹시 그 부인에게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되어 머리채를 잡히지않을까(사실, 오해가 아니겠지만)하는 걱정, 그리고 만성적인 내 귀찮음에 기인한 것일수도 있고, 또 그때의 추억을 깨고 싶지 않을 수도 였을 수도있다. 요즘 드는 가장 유력한 생각은, 어차피 어떤 짓을 해도 내것이 될수는 없으니 이미 무의식에선 체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저 분명한것은, 나에겐 그의 번호가 아직도 있고 그 분은 아직도 택시운전을 하고 있고, 나는 그분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