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유로 지금 시골에 약 일주일 째 거주 중인데
전화기 인터넷 연결속도가 대략 40킬로바이트인지 되는 듯 한데
이게 서울 사람살던 사람들이 지방에 내려오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여러 생각을 하다 필언을 떠올린다.
일정 타수가 넘어가면 갑작스레 폰트크기를 키우는 os상의 문제인지 브라우저상의 문제인지가 오늘따라 더 좆같다.
저런 문제를 묘사하는게 좆같다는 빈약한 표현력도 괜히 오늘따라 좆같다.
각설하고 필언을 내 생각대로 재단하는게 혹 그가 눈팅을 여전히 하고 있다면 못내 미안하지만 갑자기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필언은 인간적인 우상이었다. 실지 그의 강박증적 질환 따위에 고통받는 글을 보면서 까지 나는 내게도 저런 류의 강박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고기러브를 레퍼런스로 들이 밀며 https everywhere을 추천하는 그의 글을 보고 괜히 나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더 생각하고 알아보기도 했다.
마음가짐 부분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가 한 말 중 남에게 절대 약점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에 괜히 공감되어 그 글을 읽은 이후로 어느사람에게도 내 약점이나 고민을 털어 놓는 걸 의식적으로 주저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래서 걸렸다. 사실 신변잡기적인 글을 공개된 게시판에 약한 익명으로 게시한다는 건 어떻게 분석 당해서 뭐가 약점으로 뽑힐지 모르는 셈이니. 내가 그정도 거물이냐는 차치하고 말이다.
여튼 그러나 그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는지 사실 남에게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최소한의 업무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것 아니겠는가? 유감이지만 그에게도 아스퍼거 기질은 없었는지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람과의 교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무슨 연유로 떠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게시판을 떠나기 위한 시도를 여러번 하다 어느 순간 오지 않고 있다.
후에 그와 비슷한 인물로 추정되는 이를 찾았으나 한 번 떠 보곤 말았다.
여러 생각이 덮친다 우선 나는 글을 정말 못 쓴다는 것과 ...
내 인생을 여기로 몰고온 기질과 사람 본성이 흰 천과 같다는 말이나 루소의 스위스에서의 나날이 유교의 안빈낙도와 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과 상앙도 분명히 학자였다는 것.
후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고행자는 어떨까? 고행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있지만 그 세기가 약해 후에 변심할지 모르는 고행자는 우선 지금의 마음을 따라 고행하는게 맞을까 아니면 후에 변심할 일을 생각해 고행을 그만 두는 게 맞을까?
난 내가 선택한 사고 방식이나 행동 강령들이 모두 내게는 고행같다. 왜 그런 걸 골랐느냐고 물으면 부끄럽지만 멋있어서 라고 밖엔. 아집인가? 라는 물음에는 속에서 타협하려는 셈이냐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타협도 하지 않는게 아집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치 문턱 에너지처럼 이 결정의 순간이 견디기 힘들다. 결정 하면 내겐 그 타협이 평생 나를 괴롭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 약한 고행자는 결국 고행자의 길을 택한 순간 어느 길을 골라도 고통 뿐인가? 그게 고행자니까?
머릿속은 소용돌이 치지만 나는 도망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