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7년 8월 20일, 형조판서 노한이 길을 가는데 거리에서 한 노비가 알 수 없는 물건을 지고 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었으나 뼈와 가죽만 초췌하게 붙은 처참한 모양이었다


놀라서 노비에게 물어보니 그 지고가는 물건은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로 재직하고 있는 권채의 노비인 덕금(德金)이라는 여자로 밝혀졌다


이후 형조판서 노한이 세종에게 이 잔혹한 사건에 대해서 조사해달라고 상소한다












형조에서 권채와 그 일가족을 조사한 결과, 무서운 사실이 밝혀졌다


권채는 덕금이라는 노비를 사랑하여 첩으로 삼았는데, 이로인해 권채의 아내 정씨(鄭氏)는 여종인 덕금에게 강렬한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덕금은 덕금의 할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되자 권채의 아내 정씨에게 할머니를 찾아 뵈러 집을 잠시 떠날 것을 청했다


하지만 평소에 덕금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정씨는 덕금이 그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금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할머니 생각이 너무도 애틋하여 허락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잠시 집을 떠나게 된다




덕금이 집을 비웠을때 권채가 덕금을 찾자 정씨는 권채에게 덕금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간통하러 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권채는 격렬하게 질투하고 분노하여 덕금이 돌아오자마자 덕금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몽둥이로 덕금을 마구 구타한뒤 덕금의 왼쪽 발에 족쇄를 채워서 외딴 방에 감금하였다


이후, 권채 일가는 잔혹하고 변태적으로 덕금을 괴롭히게 된다


권채의 아내 장씨는 덕금을 바로 칼로 베어 죽이려 했는데 또다른 여자종인 녹비(祿非)가 칼로 죽인 시신은 소문이 나기 쉽고 금새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으니 서서히 고문하면서 병들고 굶어 죽도록 하자는 잔인한 제안을 한다


장씨는 녹비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감금되어 있는 덕금을 그대로 굶어 죽이기로 한다




장씨는 덕금에 대한 증오심으로 덕금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비참한 모습으로 족쇄를 차고 방에 갇혀 있는 굶주린 덕금에게 그 오물을 먹으라고 지시한다


덕금은 오물 사이의 구더기를 보고 질겁하여 격렬히 저항하였는데 장씨는 덕금의 항문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덕금을 괴롭혀서 결국 덕금이 구더기와 오물을 먹게 만든다


덕금은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갇힌 채 매일 고문 받으면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갔고 마침내 비참한 몰골의 굶어 죽은 시체처럼 되자 노비를 시켜서 버리게 한것이다




하지만 덕금은 발견되던 순간까지 죽지 않은 상태였다


제정신과 온전한 몸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해 살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권채와 정씨, 권채 집안의 종들을 모두 조사하게 되었고 진상이 밝혀지게 된것이다















그러나 괜히 헬조센이겠는가, 권채를 살인죄로 처벌하는게 마땅함에도 강상의 문란함을 초래할수 있다는 이유로 세종은 권채를 처벌하지 않았다


세종의 입장에서 노비의 목숨이란 사람 목숨의 무게가 아니었던것이다


대신 권채의 아내인 정씨만 장 90대를 맞게 되었다


세종은 권채의 관직만 파직시켰으나 1년 후 조선왕조실록에 세종과 함께 대학과 중용에 대해 대화하는걸 보면 금방 복직된듯 싶다




실제로 권채는 유능한 학문적 재능을 보였으므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당시 조정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 하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덕금에 대한 온갖 잔혹한 고문을 방조해놓고도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처신하는데 성공한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권채가 남긴 저작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것은


인간의 예절과 도리에 대해서 사례를 든 책인 "삼강행실도"의 서문을 쓴 것이다




노비 덕금은 곧 사망하였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지만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 한문학의 걸작선을 모아 편집한 "동문선"에까지 등재 되어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의 서문 본론 부분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임금과 어버이와 부부의 인륜에 대한 충, 효, 절의(節義)의 도리는 바로 하늘이


내린 천성으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천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같이 생겼고 천지가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천성이다."













권채는 세종 20년에 사망하였는데 조선왕조실록 졸기를 보면 벼슬이 승정원 우승지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출처 : 마코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