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멸공’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이 논란은 지난 5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에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인스타그램이 ‘폭력과 선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해당 글을 삭제하면서 일이 커졌다. 네티즌들이 ‘이게 왜 폭력 선동이냐’ ‘난 공산당이 싫어요’ 등의 댓글로 항의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다음날 이마트에서 달걀·파·멸치·콩을 사는 사진을 올렸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이튿날 “달은 문재인, 파는 깨뜨릴 파(破)”라며 “문재인을 깨뜨리고 멸공하자는 뜻”이라고 반발했다. ‘지금 어느 시대인데 멸공, 어찌 보면 일베스러운 놀이를 하고 있다’(현근택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 ‘붉그스레한 색깔을 칠해두고 저 사람들 다 쫓아내자, 다 박멸하자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폭력’(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민주당의 반응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멸공·빨갱이는 과거 군사정권에서 민주 인사를 탄압할 때 써먹은 전력이 있다. 진보진영에서 치를 떨 만하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수 진영을 친일 매국노, 토왜(토착왜구)라고 공격할 때 문재인 정부의 그 누구도 ‘철 지난 색깔론은 곤란하다’고 자제를 촉구한 적이 없다.

휴전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1968년), 대통령과 정부 각료에 대한 폭탄테러(1983년) 등 도발은 끊이지 않았고,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2010년)을 가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멸공이 철 지난 것이고, 토왜는 현재진행이라고 치부할 수 있나. ‘중국을 자극하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김태년 의원)는 반응도 마찬가지다. 2019년 일본의 경제 제재로 촉발된 불매 운동 당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총선에 긍정적’이라는 내부 보고서까지 냈던 민주당이다. 일본은 자극해도 되고, 중국은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압박이다. 민주당은 말로는 인권과 자유를 앞세우면서도 집권 이후 음란·도박사이트라는 이유로 해외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민간인과 기자의 카카오톡 접속을 감시했다. 이번에는 ‘인터넷 밈’ 하나에도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멸공이란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 낱말을 사용할 타인의 권리를 빼앗아도 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농담 한마디를 확대해석해 억지 명분을 만들어 공격하는 속 들여다보이는 80년대 운동권 수작”이라며 “대중가요 검열하고 음반 뒤에 건전가요 끼워넣던 박정희·전두환이랑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사실 멸공 열풍은 진지한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네티즌들이 낄낄거리며 공유하는 밈에 가깝다. 밈(meme)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한 학술용어다. 인간의 유전자(gene)처럼 자기복제를 통해 전해지는 종교나 사상, 이념 등을 의미한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퍼지는 2차 창작물이나 패러디’로 의미가 확장됐다. 지난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친한 친구, 동반자를 의미하는 ‘깐부’라는 단어가 널리 퍼진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커뮤니티에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거야’라고 댓글을 다는 식이다.

멸공 논란을 불렀던 정 부회장은 사과한 지 닷새 만인 지난 18일 ‘강해져야 이길 수 있다’라는 글을 올리며 이번에는 ‘필승’ 해시태그를 달았다. 2차전은 어깨에 힘 빼고 웃으며 진행했으면 좋겠다.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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