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때 전라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것이다

인민군이 전라도에 진입하자 전라도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군인가족, 경찰가족, 관청 공무원들을 표적으로 학살을 했던 것이다.






5만 9천명의 민간인 피살자 가운데 약 5만명의 학살이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읽다가 소름이 돋고 말았다

다름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전라도에서는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실록 >> 선조 30 11 12일 기해 4번째기사
 
*전라 우수사가 왜군 앞잡이인 향리 사노 등의 실상과 그 처단법을 아뢰다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시언(李時言)이 치계하기를,
 
"해남(海南강진(康津장흥(長興보성(寶城무안(務安) 등의 고을은
인민이 거의 다 적에게 붙어 사족
(士族)의 피난처를 일일이 가르쳐 주어, 거의 다 살육되었습니다.
해남(海南)의 노직 향리(老職鄕吏) 송원봉(宋元鳳)과 가속 서리(假屬書吏) 김신웅(金信雄) 등은
혹은 좌수
(座首)라느니 혹은 별감(別監)이라느니 하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을 제멋대로 살육하였으며,
육방(六房)을 차정(差定)하는 데 있어서도
사노
(寺奴) 심운기(沈雲起)는 이방(吏房), 향리 송사황(宋士黃)은 호방(戶房), 사노 서명학(徐命鶴)은 예방(禮房),
사노 박인기(朴麟奇)는 병방(兵房), 향리 차덕남(車德男)은 형방(刑房), 사노 박희원(朴希元)은 창색(倉色),
사노 다물사리(多勿沙里줏돌이(注叱石乙伊) 등은 도장(都將), 사노 윤해(尹海)는 각처의 정탐,
사노(私奴) 언경(彦京)은 응자 착납(應子捉納)으로 각각 차정하여,
왜노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모든 성의와 힘을 다하여 왜노에게 아양을 떨었으며,
또 왜진(倭陣)이 철수하여 돌아갈 적에 뒤떨어진 적에게 머물기를 정하여 세 곳에 주둔시켜 놓고서,
그를 빙자하여 온갖 흉악한 짓을 다 하였다고 합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011012_004
 

전라도 사람들이 전부 왜구에게  붙어, 선비나 양반이 숨어있는곳을 일일이 가르쳐 주어 다 죽였고
왜구에 항거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을 제 멋대로 죽이고 다녔으며
왜노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모든 성의와 힘을 다해 왜노에게 아양을 떨며 온갖 흉악한 짓을 다했다는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기록은 그뿐만이 아니였다


<<선조실록
 >>  26 7 28일 경진 2번째기사 

작란자, 도망친 장수나 정탐에 실패한 장수 등의 처벌을 명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적이 진주를 침범하였으니 전라도는 마땅히 엄하게 경계하여 적변(賊變)에 대비해야 하는데도 복병장(伏兵將)이 먼저 도망하고,
연해(沿海)의 수령들은 서로 전통(傳通)까지 하며 창고의 곡식을 흩어
무지한 난민(亂民)들로 하여금 왜놈의 형상으로 꾸며 분탕과 노략질을 하게 하였으니 통분하기 그지없습니다. 처음 작란을 주도한 자를 잡아다가 효수하소서."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607028_002


왜구가 진주를 침범하였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라도 지휘관은 먼저 도망가고
전라도 사람들은 왜구로 변장해서 분탕치고 노략질을 했다는 기록





<<선조실록>> 27 5 15일 임진 1번째기사

전라 감사 이정암이 도적의 발생한 일과 그 대책을 아뢰다
 
"도내에 도적이 일어나 간혹 수백 명씩 작당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나주(羅州남평(南平남원(南原광주(光州임실(任實전주(全州김제(金堤부안(扶安고부(古阜태인(泰仁흥덕(興德정읍(井邑고산(高山여산(礪山금산(錦山) 등의 지역이 더욱 심하여
대낮에도 사람을 협박하여 약탈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추포(追捕)되어 갇힌 자가 옥()에 가득 찼고 형장(刑杖)을 받아 죽는 자가 뒤를 잇고 있는데도 도둑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705015_001


<<선조실록>> 27 12 21일 갑자 2번째기사

생원(生員) 유숙(柳潚)이 상소하였다.

"지금은 개나 쥐 같은 무리들이 작당하여 작게는 백명, 크게는 수백 명으로 없는 데가 없습니다.
"경기와 황해도는 절반이 도적의 소굴이 되고 전라도는 전부 도적의 소굴이 되었으니, 왜구(倭寇)의 걱정쯤은 다급한 것이 아닙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712021_002


등등 무수히 많은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져 있었다



결론

1. 전라도는 학살만이 답이다

2. 전두환의 잘못은 전라도를 학살하지 못한것에 있다

3. 5.18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탄 국가전복 폭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