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대장동 라쇼몽을 끝내라



중앙일보

입력 2021.10.18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대장동 아귀다툼은 이 나라 윤리와 사법 시스템의 오작동을 실증한다
힘없는 원주민이 피눈물을 흘리는 동안 고위 법조인과 정치인, 언론인이 토건업자들과 어울려 질펀한 탐욕의 파티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속·철저 수사” 지시에도 검찰 수사는 속 빈 강정이다.
계좌 추적도 없이 업자들의 녹취록에만 의지해 화천대유 김만배 대주주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수사 착수 16일 만에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지만 핵심인 시장실과 부속실은 뺐다.

 

김만배가 “천화동인 1호 배당금의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하자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감사에서 “정치인 ‘그분’을 얘기하는 부분은 아니다”며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면죄부를 선사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였다.
이러고도 대장동 개발의 최종 결정권을 쥔 성남시장이었던 이 지사의 연루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낼 수 있을까?



 

농지개혁은 통합의 경제민주화
공산화 막고 경제 성장 이끌어
‘대장동’은 역사를 모욕한 범죄
결백하다면 특검 자청해야 마땅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의 기개를 생각한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강대국에 멸시받았지만 삶의 터전인 땅의 가치는 확실하게 지켰다.

철저한 반공주의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였던 죽산(竹山)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해 농지개혁에 착수했다.
지주 중심의 정당 한민당 당수인 인촌(仁村) 김성수가 협력했다.
정부가 지주들에게 사서 농민들에게 파는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이었다.

 

소작농은 매년 수확량의 30%씩 5년만 내면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일제강점기의 1년 소작료가 수확량의 50%였으니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농지개혁법은 한 차례 개정을 거쳐 1950년 3월 10일 공포됐다.

이승만(李承晩)은 “춘경기(春耕期)가 촉박했다”며 시행규칙도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여 4월 15일까지 분배를 끝냈다.
자칫하면 두 달 뒤 터진 6·25 남침전쟁으로 농지분배는 일장춘몽이 됐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제헌 헌법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86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못 박고 출발한 나라다.
인촌의 요청을 받은 현민(玄民) 유진오 고려대 교수가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그는 “농지개혁만이 공산당을 막는 최량(最良)의 길”이라고 했고, 인촌은 적극 찬성했다.

지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헐값에 땅을 몰수당하고 받은 국채는 전쟁 중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이 됐다.
몰락한 지주들은 “
이승만(李承晩)은 김일성과 똑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대지주인 인촌의 이타성이 빛나는 대목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은 남한 주민 8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80%가 사회주의, 7%가 공산주의 체제를 원했다.

하지만 농지개혁으로 처음 내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은 6·25 남침 때 “이 박사 덕분에 쌀밥을 먹게 됐다”며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다.
양반과 상민의 신분 차별이 없어져 상민들도 자식을 교육시켰고, 이는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

 

1950, 60년대 한국의 토지소유 평등지수는 세계 1위였다.
세계은행은 2003년 정책연구보고서를 통해 “건국 초기 토지분배 상태가 평등할수록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높다”고 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자국의 빈곤 원인을 “한국은 1950년대에 토지개혁을 했지만 브라질은 아직도 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00여 개 가문이 국토의 절반을 소유한 필리핀은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농지개혁은 한국 최초의 경제민주화 조치였다.


70여 년 전 한국은 반공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대지주와 지식인이 국가 공동체의 통합과 번영을 위해 하나가 됐다.
선각자들은 인간 존엄성의 출발점이자 생산과 풍요의 원천인 땅을 평등하게 분배했다.

아마도 대지의 여신(女神) 데메테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장동을 아수라장(阿修羅場)으로 만든 특권층 괴물들과는 달랐다.


대장동 게이트는 기적적으로 성취한 경제 민주화 역사를 모욕했고, 나라의 근본 가치를 전복시키고 있다.
모든 의혹의 정점에 이재명 지사가 서 있다.

그는 “단 1원이라도 받았으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뢰하기 힘든 검찰 수사보다는 중립적인 특검을 자청해 지체없이 결백을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팩트를 놓고 두 개의 기억이 맞서는 라쇼몽은 국민을 고문(拷問)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윤석열 후보는 주술(呪術) 논란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 “그분”과 “왕(王)”이 21세기 한국을 흔들고 있다. 국민은 민주공화국으로 이주했는데 후보들은 아직도 근대 이전의 왕궁에 혼곤히 잠들어 있다.

 

국제사회는 포스트 코로나와 미·중 패권경쟁의 기로에서 경제 강국이자 미들파워의 선두인 한국의 역할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합당한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하고 있다.
언행(言行)이 따로 노는 여야 후보에 대한 상대 진영의 비호감도는 사상 최고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불안한 권력자는 오직 나의 진지를 더 높이 구축하고 반대자를 공격하는 진영의 리더로 만족할 것이다.


함량 미달의 후보가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대선 판은 국가의 비극이다.



이하영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