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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성근 일본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한국 야구의 '방향 설정'과 야구인의 '사명감' 강조

"한국 야구는 위기다." 2020 도쿄올림픽 직후 나온 얘기가 아니다. 여든 살의 나이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는 '야구 장인(匠人)'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 야구의 위기를 직감하고 있었다. 그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고, 야구 대표팀은 아쉬운 경기력으로 올해 도쿄올림픽을 4위로 마쳤다. 일본·미국과 비교해 뒤처지고 있는 한국 야구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한화 이글스 사령탑을 거쳐 현재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 고문을 맡고 있는 김성근 전 감독은 최근 국제전화를 통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야구가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근 고문이 말하는 '원점'은 무엇일까.

ⓒ연합뉴스

"투수만 놓고 보면 일본보다 10년 이상 뒤처져"

야구 대표팀은 6개국이 참가한 도쿄올림픽에서 개최국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도미니카공화국에도 밀렸다. 한국은 올림픽에서 단 3승(4패)을 거뒀는데, 이스라엘(2승)·도미니카공화국(1승1패)을 상대로만 올린 승이었다. 일본(1패)·미국(2패)에는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프로선수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된 뒤 야구가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 시드니올림픽 때는 동메달을, 2008 베이징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때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예선에서 일본·대만에 밀리면서 탈락해 본선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2024 파리올림픽 때는 야구가 다시 정식종목에서 제외된다. 2028 LA올림픽 때 다시 채택될지는 알 수 없다.

김성근 고문은 도쿄올림픽 실패 요인 중 하나로 "타자들이 못 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이 일본·미국을 상대로 뽑아낸 점수는 경기당 평균 2점에 불과했다. 김 고문은 "대표팀 타자들이 KBO리그에서 잘 친 이유는 투수들이 약했기 때문"이라면서 "올림픽에서 빠르고 다양한 공을 던지는 일본·미국 투수들을 만나니 제대로 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에는 시속 150km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많다. 그런데 한국은 시속 150km를 던지면 '와~' 한다"면서 "투수만 놓고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10년 이상 뒤처진 것 같다"고 했다.

소프트뱅크의 경우 1군에 트레이닝·컨디셔닝 파트에만 13명가량의 인력이 있는데, 신인급 투수들이 이들의 관리 속에 1년 만에 구속이 5~6km씩 는다고 한다. 김 고문은 "입단할 때 시속 140km대를 던지던 선수가 1년 뒤 시속 150km를 쉽게 던져 놀란 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의 경우 공 잡는 기본조차 갖추지 못하고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들이 더러 있다.

물론 일본과의 준결승전에 선발 등판했던 사이드암 고영표(kt 위즈)처럼 일본 관계자들의 눈길을 끈 선수도 있었다. 김 고문은 "예전에 일본 최고 언더핸드 투수였던 와타나베 스케가 '정대현의 커브를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선수들이 내게 '고영표 싱커를 어떻게 던지죠?'라고 물었다"면서 "대표팀에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분명 있었다"고 했다. 이의리(KIA 타이거즈), 김진욱(롯데 자이언츠) 등 어린 좌완투수들의 투구도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올림픽 금메달 수성에는 실패했으나 그 안에서도 한국 야구의 희망은 있었던 셈이다.

8월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 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6대10으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성적 부진에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김성근 고문은 크나큰 실패에도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한국이 13년 만에 열린 올림픽 야구에서 최악의 성적을 냈다면 응당 KBO 총재(정지택)의 사과문 발표가 있거나 김경문 대표팀 감독의 책임지는 모습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KBO 관계자는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까지 지휘봉을 잡고 상호 계약에 따라 연봉을 분할 지급받는다. 마지막으로 받는 게 10월"이라면서 "계약 만료는 예정된 것이라 입장 표명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과 함께 대표팀을 꾸리는 데 일조한 기술위원회는 올림픽 직후 해체됐다.

선동열·김경문으로 이어지는 대표팀 전임 사령탑들의 잇따른 실패로 현장 감독들에게 겸임을 맡기자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 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는 KBO리그가 역대 아시안게임 때와는 달리 리그를 중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위 싸움이 한창일 때 수장이 팀을 3주가량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성근 고문은 "원칙은 자주 바뀌면 안 된다. 한 번 정했으면 일정 기간은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최악의 성적을 낸 야구 대표팀을 향한 비난이 엄청났을 터다. 하지만 올림픽 직후 잠시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을 뿐 그 후 여론은 이상하리만큼 잠잠한 편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따고도 대표팀 선수 선발 공정성을 놓고 대회 전후로 엄청난 역풍을 맞은 것과는 대비된다. 그만큼 당시와 비교해 지금 야구 인기가 많이 하락했다는 방증이다.

김성근 고문은 "야구를 갖고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야구를 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후회라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인데 우리는 자꾸 뒤로만 가려고 한다.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으니까 올림픽을 계기로 그 원인을 잘 따져봤으면 한다"고 했다.

나아가 아마추어 선수들의 기본기를 다질 육성 시스템 체계화도 강조했다. 김 고문은 "세계 리틀리그에서 우승했던 아이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2014년 미국에서 열린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미국 팀을 꺾고 29년 만에 우승했다. 당시 우승 멤버들은 2020 신인 드래프트에 나왔으나 단 2명만이 프로에 지명됐다. 어느 시점에서 성장이 멈췄다는 뜻이다. 김 고문은 "한정된 인프라에서 10개 구단이 나서서 10년 후를 바라보는 육성 시스템을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성근 고문은 한국 야구를 모래성에 비유했다. 김 고문은 "모래성은 물이 한 번 들어오면 사라지고 마는데 한국 야구는 지금 파도가 코앞까지 닥쳐 있는 형국"이라면서 "모래성을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 것인가를 원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 파고가 너무 높다고 뒤돌아서지 말고 지금 무엇을 할지 야구계가 진지하게 다 같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인터뷰 내내 한국 야구의 '방향 설정'과 야구계 사람들의 '사명감'을 누차 강조한 김 고문이었다.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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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정론만 말하시는 야구원로 김성근 감독님이시다..
KBO는 새겨듣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