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우파단체) ‘행동하는 자유시민’
“김원봉은 6·25사변 직접 책임자…정부는 ‘국군 뿌리’ 주장 근거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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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편집부
  •  2019.06.07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 전몰군경 죽음의 ‘직접 책임자’ 김원봉이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에 어떻게 등장할 수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공헌하고 6·25 남침 최선봉에 섰던 김원봉의 광복군 합류를
독립운동 역량의 결집 계기였으며 국군 창설의 뿌리와 한·미동맹의 토대로 이어졌다고 평가한 것을 두고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행동하는자유시민(공동대표 이언주 국회의원·이병태 카이스트 교수·양준모 연세대 교수)’은
7일 성명을 통해 “6·25 사변 직접 책임자인 김원봉이 현충일 추념사에 어떻게 등장할 수 있냐?”며 비판했다.




 

김원봉

김원봉



단체는 문 대통령의 김원봉 관련 발언에 대해 “현충일의 제정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그가 월북 인사로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고,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어 김원봉이 1952년 3월에 “미제 약탈자들과 그 주구들에 반대하는 조국 해방 전쟁(육이오 사변)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김일성으로부터 노력훈장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뒤

“김원봉은 독립 이전에는 ‘급좌파 단체’를 이끌었고 건국 이후에는 바로 현충일 추모식이 개최되는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
전몰군경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인 것”라고 지적했다.

 

단체는 “대한민국 국군은 1946년 1월 15일에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전신으로 한다.
1948년 8월 정부수립과 함께 창설된 육군은 남조선국방경비대 창설일인 1월 15일을 육군 창설기념일로 하고 있다”면서

“대체 김원봉의 월북 이후인 1948년 8월 이후에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과 김원봉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1946년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김원봉이 어떠한 역할을 했기에 특별히 ‘김원봉’을 언급하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지 그 근거부터 문재인 정부는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김원봉 논란과 관련 청와대와 여당은 “대통령의 발언은 애국에 대한 통합의 관점을 말한 것”이라고 했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선 “대한민국 정체성을 뛰어넘는 발언으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반발하는 등
정치권발 김원봉 논란은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다.




 


 



- 이하 성명 전문 -

 

[성명] 육이오 사변 직접 책임자인 김원봉, 현충일 추념사에 등장할 수 있나?

- “조국 해방 전쟁” 공훈으로 노력훈장 받아 육이오 사변 전사자들에 직접 책임

- 김원봉은 건군 이전 월북해 북한 건국에 참여, 정부는 “국군의 뿌리”라는 근거 밝혀야

 

문재인 대통령는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면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현충일의 제정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현충일은 1956년 4월 25일 국방부령으로 관보에 게재된 "현충 기념일에 관한 건"(국방부령 제27호)을 통해 지정된
"현충 기념일"에 연원이 있다.

추념식을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하고 있지만 추념식 대부분은 국방부에 속한 시설인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개최되며
국립서울현충원은 현충 기념일이 지정된 1956년 4월부터 안장이 시작됐다.

국립서울현충원이 건국 이후 북한과의 대치 과정에서 급증하던 전사자를 안치할 필요성에서 출발해 육이오 사변으로
15만명에 달하는 막대한 전사자가 발생하면서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해 설치된 국군 통합묘지의 후신이라는 점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영화 ”암살“, ”밀정“ 등 대중문화 작품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김원봉은
조선의용대의 전신인 급진좌파 단체인 의열단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조선의용대“의 구성원들 상당수는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인 김두봉이 이끄는 조선독립동맹으로 옮겨 가기도 했다.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됐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마저도 이견의 여지가 큰 것이다.


특히 1948년 4월 남북 협상에 참가한다며 월북한 뒤에는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고,
국가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2년 3월에는 "미제 약탈자들과 그 주구들에 반대하는 조국 해방 전쟁(육이오 사변)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김일성으로부터 노력훈장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원봉은 독립 이전에는 ”급좌파 단체“를 이끌었고 건국 이후에는 바로 현충일 추모식이 개최되는 국립 현충원에 안장된
전몰군경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1946년 1월 15일에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전신으로 한다.
1948년 8월 정부수립과 함께 창설된 육군은 남조선국방경비대 창설일인 1월 15일을 육군 창설기념일로 하고 있다.

대체 김원봉의 월북 이후인 1948년 8월 이후에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과 김원봉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1946년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김원봉이 어떠한 역할을 했기에 특별히 ”김원봉“을 언급하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지 그 근거부터 문재인 정부는 밝혀야 한다.

 

2019년 6월 7일

행동하는자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