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렸던 정보글을 좀 더 다듬고 내용 보충하여 재업함)







이웃나라인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서로 교류하며 지내왔기에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건축, 예술 쪽으로 비슷한 부분도 많으나

하나하나 세세히 따져보면 매우 상이하며 더 나아가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야나기 무네요시, 1899-1961)

일본의 미술사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는데


그는 일평생 조선의 미술품과 건축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조선의 예술에 대해 이러한 평을 남겼다.


"무기교의 기교" "무관심함" "여백의 미"


이를 몇개의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의 미로 대표되는 조선의 미(美)는


"검소", "여백", "자연그대로", "수수함"  


이정도로 정리된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평한 조선의미를 제일 잘 드러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김정희의 세한도는 


흑과 백의 대치, 큰 여백, 간략하면서도 수수함 정도로 요약되고


이것이 조선, 곧 한국의 전통 미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사실 좀 억울한것은 한반도는 삼국과 고려시대 동안


미륵사 황룡사같은 랜드마크가 될만한 거대한 건축물과



(신라 서라벌의 황룡사 복원 모형)


신라의 금목걸이, 백제의 금동대향로 같은 고급 금속공예품들을 남겼다.







즉, 검소하고 소박한 미는 사실 조선 중후기에나 대표되는 것이고


조선이 세워지기 이전,


불교에 기반한 한반도의 예술문화는 일본이나 중국에 뒤지지 않을 만큼 ㅆㅅㅌㅊ였다.



불교를 탄압하고, 검소함을 강조하던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은 


그때까지 잘 전수되어오던 삼국과 고려의 


뛰어난 금속공예술, 건축술, 조각술 등의 명맥을 그냥 싸그리 뽑아버렸다.







신라의 석굴암과 불국사도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석굴암 그리고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신라의 ㅆㅅㅌㅊ 석조공예술은


조선 유학자들 눈에는 그저 척결해야할 미개 문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소중한 고대 유물들을


제대로 관리할 생각도 없었고 여러 사찰들은 그대로 방치된 채 사라지거나


그나마 운이 좋으면 뼈대만 남아 일제시대때까지 쭉 내려오게 된다.





(아프간의 바미얀 석불을 미개하다고 폭파시킨 탈레반과 사실상 동급)







석굴암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산 속에 뭍혀있었기에 운이 좋아 


일제시대에 발견되어 보수공사를 거쳤지만





몽골의 침입까지 겪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백제의 대사찰 미륵사는


조선에 이르러 무관심 속에 그냥 방치되고 잊혀져버려






이렇게 석탑의 일부만 남은 채 사실상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조선의 예술품, 건축들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했단 느낌이 들정도로 


과거와 비교하여 그냥 조또 볼품 없어져버렸다.


이걸 다시 말하면,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와 예술을 천시하면서 생긴


투박하고 거친 미의식이


독립 후 한국에도 그대로 전수되어 현재 대한민국 일반인들의 미의식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었단것임.




예를 들어 조선중기에 들어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온돌이 확산되어 사람들이 땔감으로 나무를 죄다 베어버리자


새 건물을 올릴때 쓸만한 나무들이 심각하게 부족해져버렸는데


그 당시 조선의 목수들은 


"다 땔감으로 베어가서 좋은 나무 구하기가 힘드네 좋은 나무 구하기도 힘든데 그냥 있는거 그대로 갖다쓰지 뭐..."


이런 생각으로 건물을 짓기시작함.


그 결과,




(조선의 선운사 만세루. 위 초록색 길다란 나무들이 서까래인데 반듯하게 다듬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건물에 박아올렸다)



(조선의 금산사 미륵전. 빨간 네모 안이  서까래인데 사이즈도 살짝 다르고 서로 거리도 일정하지 않으며 방향도 제각각.)




(조선의 화엄사 구층암. 여기도 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나무를 기둥으로 쓰는 대담함을 보임)




(금산사 미륵전 공포. 빨간 네모안에 층층히 쌓아올린 건축부재들인데 저 4개의 공포들은 사이즈가 전부 제각각이다,)







(조선 때 지어진 내소사 담장의 기와 마감. 빨간 네모 안이 용마루인데, 용마루의 기와와 지붕의 기와를 연결시키기 위해 흰 회칠로 마감을 했다. 회칠은 시멘트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요하긴 하지만 흰색 죽을 덕지덕지 칠해 놓은 것 같아 미관상으로 보기 좋지 않다)




(노란 네모 안은 수키와 대신 흰 회칠로 마감을 해논 모습인데 이 역시 수키와를 따로 구워 하나 하나 올리기 귀찮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즉 조선 건축은 이런 조그마한 분야에서 디테일과 통일감이 너무 떨어진다.)




아무튼 조선에서부터 이어진 이러한 건축 현상들을 보고


한국의 메인스트림의 건축학자들을 이걸 그나마 좋게 봐준다하며 


"자연 그대로의 가공되지 않은 조선의 미학" "조선 건축 특유의 개성과 호탕함과 자유분방함"


이렇게 평가를 하는데


솔직히 냉정하게 보면 이건 그냥


"조선 건축기술의 퇴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시간상 1000년전의 백제나 신라의 건축보다도 더 퇴화해버렸다.




쉴드 칠거를 가려가면서 쳐야지


저런 기술의 퇴화를 "조선 특유의 미학" 이라고 포장하고 선동하는건 더이상 없어져야 한다. 
 



반면에 질서와 정합을 극도로 중요시했던 일본 목수들은


아무리 귀찮아도 정해진 질서와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일본 제호사의 서까래. 서까래 하나하나의 길이, 너비, 폭이 일정하고 통일성을 보인다.)


(일본 니시혼간지의 서까래 역시 마찬가지. 매우 절제되고 어디하나 튀어나오는 구석없이 공을들여 매우 세심히 다듬었다.)'




(일본 제호사 5중탑의 공포. 위 4개의 공포가 통일된 사이즈로 전부 동일하다)




(일본의 한 사찰의 용마루 마감법. 네모 안을 보면 회칠을 쓰지 않고 오로지 못과 철사를 이용하여 깔끔하게 고정하고 마감함.)



(일본 한 사찰의 지붕 수키와 마감법. 회칠은 찾아 볼수 없고 수키와를 하나 하나 제 모양에 맞게 올린 후 못으로 고정하여 짙은색 통일감을 줌.)



(이 담장의 벽 역시 기와 사이 회칠을 하지 않고 틈새를 다 짜맞추어 질서 정연히 기와를 올렸다.)



종교 건축에 있어서 "질서"와 "통일감"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이러한 사소한 구조의 질서 하나하나가 합쳐져서


보는 이에게 심리적 압도감을 느끼게하기 때문이다.









교토의 지은원(知恩院). 높은 계단과 그 위에 웅장하게 솟아있는 문은 참배객으로 하여금 경외감을 갖게한다.


가파른 계단과 그 위에 질서정연하게 펼쳐진 지은원의 문은 일본 특유의 절제와 질서의 미를 빈틈없이 구축해냈다.  


즉 일본은 건축 세부의 섬세하고 정밀한 가공, 정연하고 가지런한  배치.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엄밀한 질서. 이런것에서 조화와 아름다움을 찾아낸 것임.





아무튼 이러한 조선의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미의식은


독립후 20, 21세기 한국인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내려왔다.


이제 한국의 1000년 고도라는 경주와 일본의 1000년 고도라는 교토의 거리모습 위주로


한반도의 조선과, 일본열도의 에도의 미의식이 현대 한국인 일본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자.




그 유명한 경주의 간판 사진. 


그냥 한숨만 나온다. 기와집 식당들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원색의 간판들에서


전통미는 커녕 "질서정연함" "통일감" "절제미" 같은 건 찾아볼수 없다.




교토의 메인거리인 산넨자카 거리. 목조건축 그대로의 잘 정돈된 도로.


튀지 않는 흰색 바탕에 전통의 느낌을 살린 붓글씨의 간판이 주변 경관과 위화감 없이 잘 녹아든다.


이번엔 경주 시내와 골목으로 나가보자








사진만 놓고보면 경주인지 여기가 다른 지방 도시인지 전혀 알길이 없다. 

 
"1000년고도 경주"라는 색깔이 그어디에도 없기 때문.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건물 외관과 


아주 개성이 뚜렷한 원색의 간판과 불법주차된 차들,


전통과 현대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버린 느낌이 들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져버린다. 안타깝지만 그 어디서도 신라의 향기를 느낄수 없다.


그나마 황리단길을 비롯하여 한옥건물들 위주로 허가를 내주고 하기에 전보다는 다행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토여행 다다미 방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스타벅스 커피 교토 니넨자카 야사카차야














교토의 거리와 골목은 굳이 말안해도 사진으로 다 느꼈으리라 믿는다.


심지어 스타벅스마저 "교토화"되어 교토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일본인들만의 군더더기 없이 "질서와 정합"을 중시하는 철학이


거리의 미관에서도 나타난다. 어디 하나 각자의 자리에서 튀어나오거나 모난데가 없다.


이웃한 집들끼리 벽의 색깔, 도로의 바닥, 간판들이 전부다 통일성을 가지며 서로 조화를 이룬다.



다시 경주로 돌아가 전통시장을 봐보자

.






경주의 성동시장.


거리앞에 내놓은 박스들, 질서없는 가판대, 여기저기 파라솔들, 원색적인 간판들, 유리에 대충 써붙인 광고, 현수막 비위생적인 노점 등등...


경주는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교토의 니시키 시장.


가판대의 음식들은 위생을 위해 전부 포장되있으며, 사람이 다니는 길에 상인들의 자재들이 널부러 댕기지 않는다. 


교토의 메인 거리나 골목보단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경주의 시장보단 훨씬 정돈되있고 질서가 있다.



사찰이나 약수터의 바가지 디자인을 마지막으로 비교해보자.






한국의 사찰이나 약수터의 바가지들은 대부분 이런 파란색의 플라스틱들이다.


수도꼭지 또한 그냥 파이프를 가져다 쓰는 것이 흔하다.


물론 이런 것들이 실용성은 좋겠지만은 과연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맛이 있냐하면 그건 결코 아니다.






반면 일본에 있는 사찰들의 바가지는 전반적으로 금속 혹은 나무이며 


수도관 역시 스테인리스 배관이 아닌 대나무를 이용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통일감을 준다.







경주에는 불국사 석굴암 등을 비롯한 고대 신라의 훌륭한 유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단순한 유적보존에서 나아가


경주라는 도시 자체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꾸미고 개성있게 만들어 나가려면


조선의 허접한 미의식을 포장하는 행위를 그만두어야하며


조선의 미학에서 그만좀 허우적대고 교토를 벤치마킹하여 본받아야 할것이다.





덤으로 몽골한테 박살나서 풀밭이 되버린 황룡사와 월성 복원도 좀 했으면


경주는 훨씬 더 전통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될거라 예상한다.


-끝-



3줄요약

1. 한국은 삼국이나 고려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하고 거친 조선의 미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음

2. 일본은 건축세부의 섬세함과 그것이 모여 주변과 이루는 질서를 중요시 했음

3. 그 결과 교토는 일본 전통을 나타내는 도시가 되었지만 경주는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