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려는 영토 대부분이 산지라 유목민족 몽골 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없는 땅이었음. 말을 먹일 데가 없잖아?

2.넓은 평야와 초원, 발달한 문화와 높은 생산력 아릿따운 백마들이 살고 있는 땅들이 많은데 적은 인구의 몽골제국이 굳이 고려까지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음. 만약 일게이들이 몽골제국의 칸이라면 몽골 인구도 적은데 굳이 고려에까지 대규모 군대 파견해서 직접 통치하고 싶겠냐? 직접 통치하면 오히려 통치 비용이 더 많이 들 텐데? 통치 비용을 떠나서 더 좋은 땅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고려는 밀려난 거임

3.운이 좋았음

1259년 형 뭉케가 남송 원정 도중 사망하자, 모든 이목이 쿠빌라이에게 집중 되었다. 칸으로 즉위하는 문제로 막내동생인 아릭베케와 대립했던 것이다. 1260년, 쿠빌라이는 상도에서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고 제5대 대칸에 올랐다. 아릭베케는 몽골에서 별도로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을 선언하는데 킵차크 · 어거데이 · 차가타이칸국이 아릭베케 편에 서고, 훌레구가 이끄는 일한국은 쿠빌라이를 지지했다. 그 뒤로 두 칸이 싸우기를 4년, 마침내 아릭베케를 굴복시킨 쿠빌라이는 도읍을 베이징으로 옮겨 대도(大都)라 일컫고, 이어 1271년 국호를 원(元)이라 칭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쿠빌라이 [Khubilai khan] (몽골 개황, 2016. 7.)

원종이 태자일 때 뭉케 칸의 사망으로 몽골제국에서 형제의 난이 발생했고 이때 쿠빌라이를 찾아가 쿠빌라이에 줄을 섰고 이후 쿠빌라이가 칸에 등극했고 자기 아들 충렬왕과 쿠빌라이 칸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와 혼인을 성사시킴. 이때부터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신분이 상승함. 충렬왕의 부인이 쿠빌라이의 딸이다 보니까 몽골에서도 고려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됨.

예를 들면 고려의 국정을 간섭하던 다루가치가
1278년(충렬왕 4) 원나라에 친조()하여 그 폐지를 약속받은 뒤 다루가치는 완전히 철수하였음.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고 얼마 후 다루가치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됐음.

몽골과 고려의 관계는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와 유사함. 몽골 청나라 둘 다 유목민족이고 유목민족 입장에서는 고려나 조선은 메리트가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직접 통치를 하지 않은 거라 봐야함. 무슨 민족적 동질성 때문에 대우를 해준 거라는 둥 하는 건 개소리. 돈과 이권 앞에서는 부모형제도 없는 게 세상사인데 무슨.


이렇다보니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처럼 몽골의 직접 통치를 받은 국가들과 달리 고려에서는 몽골인들과 혼혈이 거의 없었던 거임. 징기즈칸 유전자인 Y하플로그룹 하플로C3가 한국인 남성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고 이마저도 남방계C3임. 하플로O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제일 가까움. 몽골과의 28년 전쟁 중에 혼혈됐을 거라고 하는데 몽골군대는 항복하지 않은 적은 살려두지를 않음. 몽골군이 지나가면 개미새끼 한마리 살아 남을 수가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임. 그렇게 따지면 임진왜란 7년 전쟁 동안 일본인과도 대규모 혼혈이 발생했겠지. 하지만 역사 기록에 그런 기록이 없잖아?

한국인, 유전적으로 일본인과 가장 비슷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050804/8216151/1
"세계 최대의 유전체 연구협의체인 미국 TSC연구팀과 함께 대규모 유전자 염기서열 연구를 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적 차이는 5.86%로 가장 낮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밀도 인간 유전체의 단일염기 다형성 지도'라는 제목으로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인 '지노믹스' 8월 호에 실렸다.

4줄 요약
1.고려는 영토 대부분이 산지라 말 먹일 데도 없고 생산력도 낮고 메리트가 없는 지역이라 패스
2.적은 인구로 몽골제국을 통치할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는데 그 우선 순위에서 밀렸음.러시아 백마 맛있다 이기야!
3.뭉케 칸이 사망하고 형제의 난이 발생했을 때 고려 원종이 쿠빌라이에 줄은 선 게 적중함.아들 충렬왕과 몽골 공주 결혼해서 부마국으로 승격
4.충렬왕 마누라가 쿠빌라이 딸이다보니 고려에 파견된 다루가치도 철수시키고 어느 정도 자치권을 얻음. 명나라 청나라 때 조선과 비슷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