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교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
특히 당시 유럽인들은 중국의 도자기와 동인도의 향신료에 푹 빠져있었는데,
육로는 험난했기 때문에 교역이 힘들었어.
그래서 유럽인들이 동아시아에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바닷길을 찾기 시작했지.
그 중에서도 특출났던 사람들은 포르투갈인이었어.


아프리카 서해안을 직접 탐험한 왕자 엔히크(Herique)를 필두로,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돈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와
희망봉을 돌고 인도까지 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를 배출한 포르투갈이야.
하지만 포르투갈의 이런한 업적들은 스페인의 더 큰 업적에 가려져.
바로 신대륙 아메리카 발견이야.
재밌는건 스페인이 처음에 신대륙 발견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였어.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서쪽으로 가면 더 빨리 동아시아에 도달 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어.
결국 애도 향신료 찾으러 간거지.
그래서 1492년, 콜럼버스는 당시 스페인의 통치자,
페르난도와 이사벨(Ferdinand and Isabella)을 설득해 지원을 받고,
그 해 8월 세 척의 배와 90명의 선원을 이끌고 10주간 항해를 해.

콜럼버스는 10월 중순에 바하마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섬을 인도로 착각해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은 "인디언"이라고 불렀어
(이 잘못된 명칭은 최근에야 '토착 아메리카인' 으로 정정됐어 - Native American)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콜럼버스가 지구를 작게 생각해서 그래.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또 다른 대륙이 있을거란 상상을 못한거지.
콜럼버스는 섬을 세 차례나 더 갔다왔는데도 죽을 때 까지도 자기가 인도에 갔었다 믿었어.
사실 모험심빼면 병신이였던거야.

이 신대륙이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건 1507년이야.
그리고 이 이름은 남아메리카 해안을 탐험해 본 피렌체 상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에서 비롯됐어.

콜럼버스와 다르게 베스푸치는 자신이 다녀온 곳이 신대륙이라 주장했고,
그의 주장을 주목한 한 지도 제작자(Martin Waldseemüller)가
베스푸치의 이름을 기려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른거야.
스페인은 이 신대륙에 관심이 많아져서 더 탐사해보기로 했어.
1513년엔 바스코 데 발보아(Vasco de Balboa)가
파나마 지협을 건너 최초로 태평양을 본 유럽인으로 기록되었고,

1519년~1521년 사이에 스페인이 고용한 포르투갈인
퍼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은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해엽을 지나 필리핀까지 갔어.
그래서 오늘날 이 해엽은 마젤란 해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태평양(Pacific Ocean)이란 이름도 마젤란 게이가 붙혀준거야.


마젤란의 선원들은 세계 일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원주민들에게 운지를 당해(1521).


다구리 당하노ㅋ
신대륙 주위를 둘러본 스페인은 돈 좀 벌어볼라고
탐험가들과 정복자들을 아메리카에 계속해서 보냈어.
그 중 유명한 놈들이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와 프란시스코 피자로(Francisco Pizarro)야.


코르테스는 1519년에 600명의 원정대를 이끌고 오늘날의 멕시코,
테노치티틀란(아즈텍 수도)에 도착해.

그리고 아즈텍의 황제 몬테주마(Montezuma)와 대면을 하게 되는데,
동네 힘쎈 코르테스가 바로 황제를 인질로 잡고 황금을 받아내.
하지만 코르테스와 병사들은 아즈텍인들에게 기습 공격을 당하고,
코르테스는 빠르게 테노치티틀란에서 도망을 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스페인 병사들과 아즈텍인들이 죽었어.

몬테주마도 이 과정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아즈텍인들이 몬테주마를 코르테스와 한 패라고 생각해 돌을 던져 죽였다는 것도 있고,
스페인인들이 몬테주마가 쓸모가 없어지자 그냥 죽여버렸다는 주장도 있어.

코르테스는 어떻게 하면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역 분열을 이용할 생각을 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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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즈텍 제국은 주위의 여러 부족들을 식민화하였는데,
아즈텍이 강요하는 인신공양같은 이상한 풍습때문에
다른 부족들은 아즈텍에 대한 반감이 심했었어.
이 점을 이용해서 코르테스는 주위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지원군을 받아내.

또 스페인에서 온 지원군 중 한명이 천연두를 퍼뜨렸고
면역력이 없는 아즈텍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었어.
(인구의 10분의 1 사망)

이렇게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한 코르테스는
결국 1521년 항복을 받아내.
총 인구 500만의 제국이 이렇게 무너져 내린거야.
이후에 다른 정복자들이 아즈텍(오늘날 멕시코)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오늘날 미국의 남서부 지방(캘리포니아 쪽)과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를 차지해서
중앙 아메리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어.
그리고 이 지역을 '뉴스페인'이라고 칭한거지.
10년후 코르테스에게 자극을 받은 피자로가 등판해.

1530년, 피자로는 168명의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오늘날 페루에 위치한 잉카 제국에 도착했어.

잉카 황제 아타후알파(Atahualpa)는
무려 80000명의 원주민들과 함께 피자로를 맞이해줘.
근데 전라도 피가 섞여있는지 피자로는 자기 군사들을 매복시켜놓고
아타후알파 통수를 씨게 쳐.

순식간에 168명의 군사가 80000명을 제압해버리고
아타후알파는 피자로에게 잡혀.
이 날에만 7000명의 원주민들이 죽게 돼.

그런데 제아무리 ㅆㅅㅌㅊ 양남들이라도
어떻게 168명이 80000명을 제압했냐고?

그건 그냥 스페인인들이 존나 쎄서 그래

이건 총,균,쇠에 자세히 나와있는 내용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피자로 군사들에겐
원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총,
원주민들이 본 적 없는 말,
그리고 튼튼한 쇠로 만들어진 장비들 덕분에 그런거야.
여기서 총은 살상용이 아니라 굉음으로 그냥 놀래켜주는 용도였어.

잡힌 아타후알파는 피자로에게 만약 자신을 풀어준다면,
자신이 갇힌 감방을 금으로 채워주기로 했어.

그런데 아타후알파가 약속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전라주민 피자로는 그를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불로 태워버려.
이렇게 잉카도 허무하게 막을 내린거지.
이후 멕시코처럼
페루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먹고,
북쪽으로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차지함으로써
포르투갈을 제외한 중남미 대륙의 모든 지역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어.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런 식민지화가 꼭 죽음만 낳은 건 아니야.
아메리카와 유럽이 만남으로써
서로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을 교환했어.

예를 들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옥수수, 감자, 호박 등의 농산물은
기근(famine)에 자주 시달리던 유럽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유럽에서 아메리카로는 소, 돼지, 양, 염소 등의 가축들이 들어오면서
아메리카의 식량 자원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어.
원래 개와 라마밖에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말과 당나귀 또한 중요한 운송 수단이 되어주기도 했지.
이렇게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화를 마칠께.
계속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ㅋㅋ
많이 아는 내용이라 지겨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시간이 돌아 글을 처음 써봤는데,
어색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어.
만약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고,
누가 이 내용을 이미 다뤘었으면 그것도 알려줘.
읽어줘서 고맙다.
만약에 반응이 좋으면 영국의 북미 식민지화에 대해서도 써볼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