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까봐 bgm도 같이 올림)




(실제 원소는 소설과 다르게 상당히 유능했고 카리스마가 상당히 뛰어났다. 사진은 웹툰 삼국지톡에서 표현된 원소)

한때 삼국지 최강자로 조조가 가장 두려워했던 군웅인 원소.

그러나 충만한 꼰대 기질과 우유부단함으로 꽤나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되었지만

4대에 걸쳐 삼공이라는 최상위 벼슬을 지닌 '사세삼공'이라는 최고의 명문가 출신답게 그의 글은 상당히 품격있으며 진짜 배운사람의 티가 팍팍난다.

이번에 올린 원소의 글은 실제 역사에 기재된 글로 원소가 황제(헌제)에게 억울한 의심을 사게되자 그에 대한 억울함을 항변하는 글로서

자신의 충성심을 논리적으로 잘 서술함과 더불어 극한의 분노와 억울함을 황제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굉장히 절도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큰 우두머리가 되려면 이정도 말빨, 글빨은 되야한다는 것은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싶다.

이에 글쓰기와 논리에 관심이 많은 게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글을 올리니 짧다면 짧을 것이고 길다면 길 것이다. 

다음은 원소가 편지를 올리게된 배경이다.  



건안 원년 (196),조조가 천자를 맞이하여 허도에 도읍하였고이에 원소에게 조서를 내렸는데,땅은 넓고 병력은 많은데도 오로지 자신의 무리를 심으면서,왕을 모신다는 군사라는 소리는 아니 들리고 제멋대로 서로 토벌만 한다고 꾸짖었다。(그러자) 원소가 (변명하는) 글을 올렸다



신(원소)이 듣기로 옛날엔 그 슬픔에 의해 서리가 내리고, 애달픈 곡으로 성을 무너뜨린 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항상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는 틀림없이 사실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접하니 이 고사가 망령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신은 국가를 위하여 몸을 내놓았으며, 대사를 위하여 가문을 멸했습니다.(동탁에게 원씨 일족이 몰살당한것을 말함.) 그에도 상관없이 마음에는 충심을 품었으나 그 결과 중상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에 밤낮으로 간을 부수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었습니다.

하지만 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서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고로)옛 고사는 능히 통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신은 천하고 보잘것없는 출신으로, 하인들 가운데 뽑혀 황실을 위하여 직무를 완수하고, 융교를 발탁했습니다. 일찌기 중상시 장양등의 무리는 하늘의 도를 어지럽히고 조정의 위신을 침탈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도적과 같이 충의와 덕을 해채며 간당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장군 하진은 의로운 마음에 이에 분노했으며,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병란을 거두려 했습니다. 신은 변변찮으나마 일개의 약간의 힘을 보탤 수 있었기에, 대장군에게 충고하였고, 그 결과, 신에게 감독의 관직을 맡게 했고, 장양 등을 물리칠 방법과 계략에 대해 자문했습니다.

신은 감히 강어(強禦=강하게 압력을 가한 것.)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다만 재앙을 피하고 복을 구하는 듯이 하진과 계획을 세워,
그 일에 있어 대립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충책(忠策)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대장군은 패하게 되어, 태후께선 인질이 되어지고, 궁실은 분소되었습니다.

폐하의 성덕은 유충(나이가 어림)하시어, 가까운 사람들이 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진은 이미 피해를 입어 그 무리는 크게 혼란해 있었습니다. 단지 신이 홀로 백여명을 거느리고 창을 뽑고 검을 뽑아, 호랑이와 같이 군사와 관료들을 질책해, 마음을 떨쳐 흉추한 무리(환관과 탁류파 관료.)을 공격하게 하니, 이에 협간(12일)이 되기도 전에 죄인들을 멸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이 어리석은 신하가 국가에 효명을 걸고 있는 그 첫번째 증거입니다.

이 때 마침 공교롭게도 동탁이 이 혼란함을 틈탔으므로 신의 계획은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신의 부형 친종들은(父兄親從= 일족) 모두 고관으로 있었으나, 신은 일가의 재앙에 탄식하지 않을 것을 각오했으며 오직 진실로 국가의 안녕을 구하는 의를 쫓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신은 절(節) 을 풀어해치고 (낙양을) 떠났으며 바깥에서 사업을 도모했습니다.

이때 동탁은 바야흐로 바깥의 원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영호(英豪=각지의 군웅)들을 열렬히 부르고 있는데, 신을 발해태수로 하며 거듭 군호를 부른 것도 이러한 연유입니다.

즉, 그때까지 신과 동탁의 관계란 섬개지혐(纖芥之嫌=부스러기와 같은 사소한 대립.)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신이 파도를 일으키고 도리를 진흙과 같이 더럽히며 영화를 훔치고 이익을 탐하였다면신은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녹봉을 훔쳐먹으며 사는 것이 가능했겠지요. 물러나, 가문이 없어지는 재앙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절개는 우직하였고, 경탈하고자 하는 뜻도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마침내 영웅들을 끌어모아 백만의 군사를 일으켜 맹진에 모였으며 장하에서 삽혈하며 맹세했습니다.(18로 제후 소집을 뜻함) 하지만 이때, 전 기주목 한복은 오로지 권력에 대해서만 욕심을 품고 있었으므로, 맹세를 거스르고 음모를 꾸몄고 신의 군량을 끊어버렸습니다.

신은 꼼짝할 수 없이 발을 붙잡혔으며, 교활한 자(동탁)의 해독에 의해 한 가문은 존비 노소를 가리지 않고 같은 날에 모조리 주륙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금수도 정이 있어 슬퍼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신은 그러한 슬픔마저도 허물어뜨리고 불태워 잊어버렸습니다. 일가의 몰살로 인하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진실로 충효의 절조라는 것은 양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보건데, 사사로운 감정을 몸에 품는다면 능히 국가에 대한 전공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 어리석은 신하의 일족이 멸해진다고 해도 국가에 효명을 걸고 있는 두번째 증거입니다.


또한 10만의 황건 무리가 청주를 불태우고 흑산과 장양은 업성을 짓밟았습니다.이에 신은 명을 받들어 역도들을 모두 격파하고 징벌했습니다. 북이 울리기도 전에 교적들은 뿔뿔히 달아났고, 그런 연유로 한복은 두려움을 품어 스스로 물러났으며, 장양, 흑산적의 무리는 항복을 구걸하였습니다.

이때 신은 오로지 폐하의 뜻을 받들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은밀히 두융에 비견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조조로 하여금 연주목을 맡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공손찬은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어지럽게 질주하며 노략질을 일삼아 북방을 어지럽혔으므로, 신은 공손찬과 더불어 싸웠습니다.

이를 말하자면 하늘의 위엄이 신에게 내려 항상 승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은 공족의 출신으로 수도에서 태어나 자라며 항상 조두(俎豆=학문. 혹은 충의에 대한 마음?) 에 대해서만 들어 왔고. 간과(干戈=전술. 혹은 모반의 의지.)는 전혀 접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더해 신의 선조들께서는 대를 거듭하며 황실을 보필하고 모두가 그 덕을 마음에 세기어 충성을 다하였는데, 어찌 신이 반역의 의지를 품겠습니까. 신이 공손찬과 다투는 것은 그와 더불어 누가 더 군대를 잘 부리는지 그 재주를 겨루어 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는 높은 지위의 장교로서, 많은 청년들을 깊은 덕으로 이끌며, 좋은 명성이 들어나 창을 높이들고 칼을 휘두르며, 죽은자가 절반을 넘었고, 근각(勤恪之功: 근면하고 삼가함)의 공이 이전의 어느책에서 볼수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많은 지역의 태수들은, 지위와 명성을 이용해 서로 경쟁하며 도적질하고, 다른 마음을 품고, 태평하며, 각자 땅을 나눠갖고, 주는 주끼리 군은 군끼리 한놈도 빠짐없이, 이로인해 이곳저곳에는 의심많은 여우들이 되었으며, 논의만 쓸데없이 하는 놈들 뿐입니다.

신이 듣건데, 나라가 평화로울때는, 덕이 높은 자가 존경을 받지만, 나라가 혼란스러울때는, 공이 많은 자가 상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폐하께서 수도를 떠나 떠돌아다니셨던 때에 낙양에서는 더이상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온세상이 근심걱정으로 가득하고, 뜻있는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금 충신들은 간과 뇌를 쏟아내고 살가죽을 칼로 가르고해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금은 공이 없어도 상을 죽고, 덕이 있어도 상을 안주니, 충성을 다해 세운 공을 막는 것이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 도대체 누가 과연 깊은 원대한 꿈을 꾸겠습니까?

나중에 사악한 놈들이 어쩌다 보니 그런 것이다 라고 하실 것입니까? 저는 작위를 받아 후가 되었고, 2,000석이 넘으며, 남들과 다르게 덕을 후하게 받아, 폐하의 노여움을 이미 받았으니, 어찌 감히 건방지게 나서고, 천자의 꾸지람을 받고 싶었겠습니까?

열심히 부하들과 부상당해가며, 열심히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죽어라 국가를 위해서 진력하다 보니까, 큰허물을 뒤집어 썼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몽염(蒙恬)이 변방의 감옥에서 슬피 울었고, 백기는 쫒겨나 한숨시었습니다(왕으로부터 자살하라는 칼을 받았다.)

*몽염, 백기 -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장
 



총명한 자를 엉뚱한 곳에 임명하고, 평범한 사람을 중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로인해 버려지게 됩니다. 폐하께서는 그(조조)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그를 정책담당자로 삼아, 저의 골육형제들에게 명하여, 저의 원수와 적이 되게 하여, 창을 맞부틷치고, 칼을 서로 부딛지게 하여, 해결하기 어럽게 되었습니다. 신은 갑옷을 벗고 창을내려두고 싶으나, 그래가지고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두렵습니다., 폐하의 태양과 달과 같은 밝음에도 불구하고, 비추지 않은 곳이 있을까, 사방팔방으로 들어도 못 드는것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신이 부탁하건데 신은 폐하가 똑똑한 놈들의 자문을 받으시고, 관리들을 저의 죄와 허물을 논의하게 하십시오.

만약에 저의 지금 행동이 허물이 되어야 한다면, 예전의 *환공(桓)이나 문공(文)들도 마땅히 주살되어야 할 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적을 토벌하지 않은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한다면, 예전의 **조돈(趙盾)은 역사책에서 "왕을 죽였다"는 허물을 받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환공, 문공 - 춘추전국시대 패권을 잡은 5명인 춘초오패의 일원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대신으로 섭정하였으나 조나라 왕의 난폭함과 끝없는 암살시도를 못참고 끝내 왕을 죽였다. 


신은 비록 소인이라, 작은 뜻을 지켰습니다. 만약에 본마음을 밝히라고 다시 명령하신다 해도 저는 앞 황제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어, 망나니의 칼앞에 머리를 수구리고 해도, 옷을 걷어 붙이고, 가마솥에 떠밀어도, 신은 따를 것 입니다.

폐하께서는 시경에 나오는 한결 같은 뻐꾸기 처럼 한결 같으시고, 올바르지 못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버리시고, 미련한 제가 삼천처럼 깊은 원한이 쌓일지도 모르는 명은 내리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