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에 조연으로 등장한 괴수 라돈.

마하 7의 속도로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전투기 편대를 박살내버리는 장면도

압권이였으나 그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라돈의 처세술이였다.

처음에는 자기보다 몸집이 몇 배 더 큰 기도라에게 겁없이 덤볐으나

얄짤없이 털린 직후에는 금새 태세를 바꿔서 기도라에게 복종하고

고질라가 기도라를 없애버리니까 또 고질라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관객들의 반응은 "정치질하는 괴수" "사회생활 잘한다" 였다.



행복의 90%는 인간관계가 달려있다고들 한다. 

역으로 불행의 90%도 인간관계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고민이 있어서 심리상담사를 찾는 내담자들은 거의 대부분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를 토로한다는 것. 그만큼 인간관계는 고차원적이다.

답이 정해져있거나 시험을 쳐서 되는 것도 아니기에 어려운 것이다.

인간관계에 능통한 사람을 보고 "사회성이 좋다." "처세에 능하다." 라고 한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이 사회성, 즉 처세, 연애, 친목, 정치하는 능력과 인성은 다르다는 것이다.

"애는 착한데..." "나쁜 애는 아닌데..." 로 시작하는 말 뒤에는 "그러나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 친절하게 뒤따른다. 가령 "애는 착한데 눈치가 없다.", "애는 착한데 꾸밀 줄을 모른다." 등.

그래서 요새는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자가 있는 걸 착하다는 말로 두루뭉실하게

포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 그런고로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 취지에서 처세술에 능했던 인물을 우리 현대사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너무 멀리 갈 필요는 없고 20세기의 정치사를 수놓았던 삼김의 사례를 통해서 힌트를 얻어보도록 하자.

이들은 한평생 정치에 몸담아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다. 정치적인 호오와 평가야 진영에 따라서

상반되겠으나 오랜 세월 무리를 이끌며 우두머리의 노릇을 해온 관록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 다 노년기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서 그렇지 젊을 적에는 인물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김두한, 두번째가 YS

소싯적 곱상한 외모를 가졌던 YS는 최연소 국회의원으로서 외모와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실제로 건강미 넘치는 ‘예쁘장한 모습’이 점수를 따는 데 많이 기여했다는 것이다.

YS 자신도 이 부분을 얘기하면 “무신~”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흡족해했다. 

이런 YS였기에 양복도 몸에 착 달라붙게 해서 가슴과 허리선을 살렸으며

키를 커보이게 하려고 뒷굽이 조금 높은 구두를 신고 바지자락을 길게 해서 굽을 감추었다.

옷맵시나 넥타이에 대해서 칭찬하면 소년처럼 웃으며 기꺼워했다.



몸에 붙는 양복과 더불어 YS 스타일링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는 헤어스타일이였다.

1970년대 그의 동안과 은빛 장발은 잘 어울렸다.

흰머리 휘날리며 ‘40대 기수(旗手·대통령 후보)’를 외치는 야당 지도자의 모습은 근사했다.

(훗날 대통령이 된 YS가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자 여성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던 YS.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 청와대에서 조깅을 했는데 승부욕이 강해서 지는 걸 싫어했기에
 
키가 큰 클린턴과 달리기를 하면서도 한 걸음이라도 뒤지지 않으려고 했다. 

배드민턴을 해서 건강하신 모양이라고 덕담하면 "내, 복싱도 안 했나?" 라고 응수했다.

정치적 라이벌인 DJ를 의식할 때는 더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에 의지하는 DJ더러

들으라는 식으로 "지도자는 건강해야제~" 라고 으스대고는 했다는 것이다. 



한평생 투쟁해온 YS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큰소리치며 버티는 배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두둑한 배짱의 배경에는 그의 외모와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

배짱이 두둑한 만큼 시원시원하고 호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잇뽕이라는 별명의

김두한에게도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 "이렇게 조그마한 손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냐?"

라고 말을 걸고는 했는데, 이에 호감을 느낀 김두한이 자신에게 온 편지를 YS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찾아오고는 했댄다. 머리랑 말재주는 좋았으나 까막눈이였기 때문.



씀씀이도 화끈했다. 길가다가 아는 동생을 마주치게 되면 이러쿵 저러쿵 하지않고 호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서 용돈하라고 건네주고 "밥은 잘 챙겨묵고 댕기라~" 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사라지고

기자들과 회식을 하고나서도 금액이 얼마인지는 묻지도 않고 지갑을 통째로 투척하며 이걸로

계산하라고 호쾌하게 지르는 게 일이였다. 시간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서 항상 5분 전에는 미리 와있었고

기자들의 질문도 잘 받아주었으며 밥값도 잘 냈기에 YS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언론이라는 말이 있다.



호탕한 성격의 YS와는 달리 DJ는 꼼꼼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였다.

YS는 복잡한 걸 싫어했지만 DJ는 매사에 모든 걸 체크하고 계산했다.

그래서 DJ의 보좌진들은 늘 신문을 달고 살아야 했다는 것.

DJ 본인이 신문을 언론사별로 10여 개 씩 챙겨보면서 새로운 뉴스와 정보를

갈구했기에 측근들이야 당연히 머릿 속에 뭔가 새로운 소식을 지녀야 했던 것이다.



박지원과 정동영은 아침 6시부터 DJ에게 일일 브리핑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DJ의 심복으로 활동해온 박지원이 DJ의 비서실장을 하고 있을 무렵의 일이였는데

기자들을 상대로 밤새도록 술상무를 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술냄새가 진동을 했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으나 DJ는 

"비서실장이 밤새 일을 한 모양이군요. 기자들 술상대를 하는 것도 비서실장의 일이죠."

라고 말하면서 박지원을 챙겨주더라는 것. 총재가 그러는데 다른 사람들이 감히 뭐라할 리 없지.

(이런 걸 흔히 "기름칠"이라고 표현한다. 언론인들과 만나서 이런 저런 소식을 주고 받고

관계를 개선시키는 것은 정치가로서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사람 만나는데 음식과 술이 빠질 수 없고.)



월간조선의 조갑제 기자가 DJ와 인터뷰를 했을 때의 일화도 재미있다.

장장 7시간에 달하는 마라톤 인터뷰를 마친 후 인터뷰 초고를 DJ에게 건네며

확인해보라고 했두만 하루만 말미를 달라고 하더니 빨간 사인펜으로

하나하나 빠짐없이 교정교열하고 수정해서 다시 보내왔더라는 것.

그런데 문장이 그렇게 적확할 수가 없고 글씨도 달필인지라 감탄한 나머지

주변 기자들에게 "이야~ 이거 돈되겠다! 보관해놔라!" 라고 농을 던졌댄다.



독서 중인 DJ와 그의 서재

이는 그의 엄청난 독서량에서 기인한 것이다.

운동광으로서 "머리는 빌려도 몸은 못 빌린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던 YS와 달리

몸이 불편했던 DJ는 독서에 집착했다. 옥중에서도 책을 읽거나 영어를 공부하는 등

자기 자신이 저술가로서 적지 않은 수의 책을 집필한 바 있고 이와 관련해서

JP는 YS가 읽은 책보다 DJ가 쓴 책이 더 많을 거라고 평가한 바 있다.



사형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기자에게 빼갈을 따라주는 JP

그렇다면 양김과는 출신부터 이질적이였던 JP의 사회성 및 처세술은 어떠하였을까?

그를 만나본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석에서는 머리아픈 정치 이야기는 일절 하지않는다 한다.

분란이 될 만한 쓸데없는 말은 애시당초 꺼내지도 않을 뿐더러 그저 문화예술로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것.

얼마 전에 본 영화 이야기나 미술, 음악 등.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의 풍부한 교양에 감탄하고는 했다.

입에서 날선 말이나 험악한 말이 나오는 법도 없었다. 기껏해야 "그 친구 참 심하구먼." 정도?




본인이 화가이기도 했고 악기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취미가 성격을 따라간 것인지 성격이 취미를 따라간 것인지 

5.16 군사정변 이후 중앙정보부장으로 YS를 찾아온 JP가 민주공화당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때 YS는 JP가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태도나 분위기가 군인답지 않게 부드러웠다고 회고했다.

물론 YS는 JP의 영입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으나 JP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대강 봐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거든. 다만 동년배로서 기분 좋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댄다.

YS는 퇴임 후 자신의 후임으로 JP를 대통령으로 밀어줬어야 했는데

잘못했다며 후회하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개인으로서의 인지도나 역량으로야 양김에 전혀 밀릴 것이 없었던 JP였지만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는 인간관계의 원칙 탓에 세력이 부족했다.

DJ는 동교동계, YS는 상도동계가 있었지만 JP에게는 패거리가 딸리고 지지기반이

취약했기에 대통령은 못되겠으니 독일식 내각제 개헌으로 대통령 대신 수상을 하고자 했다.

3당 합당을 결의할 때에도 전제조건은 내각제였고 DJP연합을 할 때도 전제조건은 내각제였다.



물론 YS나 DJ도 내각제 개헌이라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노회한 정치가답게 눈치가 장난이 아니였던 JP는 DJ가 내각제 개헌을 놓고

주저하고 있을 때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는데

"임자가 운전하지." 라고 논설위원에게 운전대를 맡겨놓고는

작심한 듯 불평을 늘어놓았다. 논설위원이 "그렇다고 공동정부를 깰 수도 없는..."

이라고 되묻자 "왜 못 깨? 참 나쁜..." 이라고 여운을 남기더라는 것.

이는 자신의 결연함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 흘리라고 눈치를 준 것이였는데  

당시에는 "나쁜 사람 = DJ(대통령)" 이였기에 보안에만 급급했고

훗날 그 논설위원을 다시 만난 JP는 "그렇게 눈치가 없는데 어떻게 신문사에서 일하냐?"

라고 꼬집었다고 한다.



필리핀의 정치가 베니그노 아키노의 암살 역시 예견한 바 있다.

1983년, 하버드대에서 JP와 함께 강의를 한 후 식사자리를 가진 아키노는

필리핀의 대통령 마르코스로부터 귀국을 권유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고국으로 돌아오면 야당 후보로서 나와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것.

그 말에 진정성이 느껴져서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JP는 거듭 만류했다.

"안됩니다! 돌아가면 불행한 일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아키노의 고집은 요지부동이였고 JP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아키노는 JP의 말대로 마닐라 공항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정치권에서 장수한 이들에게는 뭐라도 참고할 부분이 하나씩은 다들 있는 것 같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만큼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가족이 아닌 이상 치열한 심리전이나 밀당, 정치질이 동반되는데

(비즈니스 관계에서든 남녀관계에서든 예외없이 적용되는 것이다.)

나 이렇게 순수하고 불쌍한 애라고 어필해봐야 오히려 얕보이기만 하고 병신 취급만

받는 게 현실인 만큼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몫은 내가 책임지는 자세는 필수적이다.

성인으로서 깔끔하게, 당당하게 의사표현을 해야지, 징징대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추신

사회성과 처세술이 부족한 사람을 속된 말로 찐따라고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