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오늘은 지금은 없어진 박문사에 대해 알아보지

박문사라는 절은 일본의 국부대신 이토우 히로부미를 위해 만든 절이야.



안중근 장군님이 쏴 죽였잖아

이토우 히로부미의 한자가 이등박문이야

즉, 박문사의 박문은 히로부미란 뜻이야

지금 이 절은 없어졌고 현재 이곳은 신라호텔의 영빈관으로 바뀌었어.

신라호텔 들어갈 때 있는 솟을대문도 지금의 것은 현재 아니지만

예전에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고 해.

그럼 이 절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 지 알아보지




젊어서 이토우는 개망나니였다고 해

사무라이가 되고 싶었는데 신분도 낮아서 불가능했고

사무라이의 몸종으로 인생을 시작해

극적이지?

이런 이토우 히로부미에게 커다란 이변이 앞에 놓이게 되는데

바로 흑선 사건이야




미국이 개항을 요구하면서 무력 시위를 하게 되는데

이때 많은 사무라이들이 일본의 무능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고

존왕양이라고 해서

막부를 내보내고 천황을 실질적 국가 원수로 모시게 되는데

이로써 일본의 위대한 개화 시도인

메이치 유신이 성립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수많은 유혈사태를 통해서 만들어 진 것이고

이토우 히로부미도 이때 사람 많이 죽인 걸 자랑하다가

나중에 창피하게 생각했는 지 중단했다고 해.

이토우는 이때 유럽으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때 법치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해 감명을 받고

일본을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법치 국가로 만들게 된다.

중의원을 만들게 된 것이지.




문제는 조선이었어

조선을 빠는 국뽕 새끼들이 꽤 많은데

실제 조선은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1개 지방이었어.

당연한 건

고려는 원나라의 제후국이었고 식민지였어

그런데 원은 명에 망해

그럼 한반도의 주권은 원에서 명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이때 왕씨에서 이씨로 집권 세력이 교체되는데

명에게 명의 이념인 주자학을 갖고 통치하며 매년 숫처녀 200명을 바치는 조건으로

조선은 성립하게 되는 것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이나 여러 풍습은 명나라의 것이야

즉, 청에 의해 멸망한 명이 조선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지

즉, 조선은 나라도 아니었어

그렇기 때문에

주자학을 신봉하는 소수의 양반들이 다수를 노예 삼고

숫처녀 공양을 하던 개좆같은 나라였다고

훈민정음? 그거는 중국의 문자체계인 한자의 발음을 제대로 하자.

중국 사람답게 살자라는 것이지.

이러한 배경으로

러시아의 동진을 막고자 하는 영국과 미국은 매우 곤란해졌다.

왜냐면 조선은 중국의 천여년간의 지배국가였고

청의 힘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조선을 러시아가 먹게 되면

러시아는 곧 영국의 동아시아 식민지를 위협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야

이때 영국은 수백년간의 고립 정책을 버리고

일본을 파트너 삼고 영일동맹을 맺어

그리고 영국과 미국은 일본에 돈과 기술을 제공하고

일본은 그 댓가로 러시아로 부터 조선을 지킨다.

이게 바로 러일전쟁이야.

이때 고종은 일본에 막대한 군자금을 지원하고

동학은 일본군과 함께 러시아와 싸워

후에 동학은 일진회가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조선과 일본은 밀월 사이가 되는데

특히 이토우 히로부미는 조선 왕실을 포용해서

영국이 대영제국을 거느리듯

일본 제국을 건설할려고 해

그래서 고종을 이태왕

순종을 이왕

막내 아들은 영친왕

덕혜옹주는 덕혜공주가 된다.

이때 고종과 이토우 히로부미는 절친 사이가 된다.

고종은 이토우와 사석에 박문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게 되고

고종은 이토우에게 한학 서예등을 가르쳐 주고

이토우는 고종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를 해준다.

조선과 일본은 뿌리가 같은 두개의 가지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국도 할 수 있다.

이때 배운 한자 실력으로 유명한 글씨를 남기는 데




지금의 한국은행에 해당하는 조선은행을 설립할 때 세운 지석이다.

대한제국의 상당한 근대화가 이토우 히로부미와 이태왕의 은밀한 친분 관계에서 비롯되었고

이태왕은 이토우 히로부미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니를 묻는다.

이때 이토우 총감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이태왕께서는 일본제국 천황가의 서열 2위 이십니다.

저의 소원은 천황가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 왕의 작위를 내려 주십시요라고 하자.

고종은 머뭇거린다.

그러자 이태왕 고종은 천황폐하의 허락이 있다면 해줄 수 있다라고 답한다.

물론 천황의 답변은 딱 4개의 글자로 된 전보로 온다.

절대불가

하지만 이태왕은 자신의 절친 이토우 히로부미에게

나의 친구 친왕이라는 호칭과 함께

왕의 작위를 내리고

황실 서열 3위에 올려 놓는다.

이로서 황실 서열은

천황, 이태왕, 이왕, 친왕, 영친왕의 순으로 된다.

사무라비의 몸종에서 극적으로 천황가 제3의 존엄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태왕은 이토우에게 어렸을 때 어디서 자랐느냐를 묻자

자신은 어릴 적 봄꽃이 무성한 곳에서 자랐다고

어릴 때를 회상했다고 한다.

이에 이태왕은 친왕에게 '춘무' 봄의 무사, 봄의 사무라이라는 호를 내린다.

춘무 이등박문

이것이 이태왕 고종이 만들어 준 이토우 히로부미의 마지막 이름이다.

이토우 히로부미는

조선 왕실의 일본 천황가로의 흡수를 돕기 위해

덕혜 공주를 일본 백작과 결혼시키고

영친왕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는다.

그리고 영친왕으로 하여금 천황을 정기적으로 알현하여

국사를 논하게 하고 근대식 황실 교육을 받게 했다.

이태왕은 순종 이왕 보다 똑똑한 영친왕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그러던 어느날

이토우는 러시아와 담판을 하기로 한다.

러시아가 조선에 대한 야욕을 포기한다면

일본도 만주를 포기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아~ 일본 군부는 대발노발하였고

이토우 히로부미를 처단해야 한다는 원성이 높아져 갔다.

쿠데타 징후는 뚜렸해 졌다.

어떻게 얻은 만주인데 그냥 내준단 말인가라는 주장이

팽대해졌다.

이토우는 하얼빈에 도착한다.

명목상은 개인 여행이었지만

대규모 수행 비서단을 거느린 정상 회담이었다.

조선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대만에 걸친 일본 제국 건설하고

만주를 포기하겠다라는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군부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을 바로 병탄하고 중국을 쳐들어가

단숨에 아시아를 손에 얻겠다라는 것이 육군성의 생각이다.

그들의 병력은 이미 700만명에 달했다.

하얼빈에서 울린 3발의 총성

이토우는 자신을 죽인 사람이 바로 육군성 첩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행 비서의 대답은

조선 청년 안중근이랍니다였다.

이토우는

'조선이 망해가는 게 내 탓이더냐?'라는 답을 남겼다.

그리고 고종에게 전보가 보내졌고

고종은 이토우를 위로하고

그럴리 없다. 내 백성이 내 친구를 죽이려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수일 후 이토우는 총상으로 사망하고

고종은 백일간 상복을 입었다.

이토우의 재산은 동경수비사령관 육군 중장에 오르게 되는 영친왕이 물려 받는다.


고종은 이토가 죽자 궁에서 나지막하게 보이는 남산 자락 위에

언덕 이름 있냐고 묻는다.

대신들이 없다고 하자.

그럼 그 산 이름을 춘무산이라고 부르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사당을 지어 박문이를 안치시키라고 하자

이토우의 부인이 허락한다.

하지만 절을 짓는 돈은 고종에게서 안 받고

기금으로 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완공 시점은 매우 늦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태왕 고종의 뜻대로

춘무산 위에 박문사가 세워지게 되며

이등박문의 어린 시절 처럼 벚꽃이 만개하는 동산이 되었다고 한다.




요약

이태왕 고종과 이토우 히로부미는 앙팡떼러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