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 끝에 요약있음. 페친인 역사학 교수님의 글인데 전체공개해놓은 걸 내가 정리하고 줄여서 올린 거임.


https://www.vingle.net/posts/1182683

https://www.facebook.com/ingstudy/posts/697836207019232

https://비트.ly/2NajVfq
(비트=bit)


인터넷, 언론등을 통해 널린 퍼진 평양 미림 비행장 학살사건. 요지는 일제가 조선인 징용공들을 공사가 다 끝나고 학살했다는 것.

이 포스팅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박ㅇㅇ의 『한국사편지』  (청소년역사도서) .

800명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는  '미림 비행장 학살사건'인데 여기에 대한 논문도 1편도 없고, 정부가 조사해놓은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및 그 후신의 위원회, 부산의 강제동원 역사관 등)의 조사보고서에서도 없는 내용이다.

백년이 다 되도록 두고두고 까이는 '일제의 만행' 제암리 학살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8명. 그 열배를 훌쩍 넘어 30배 가까운 희생자를 낸 일제의 만행이다. 눈을 까뒤집고 '일제의 만행'을 찾아 다니는 연구자가 적지 않음에도, 여기에 주목하여 연구 성과를 낸 사람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 정답을 알면 놀라게 될 거임. 이제부터 추적해보자.

■ 1 ■

『한국사편지』가 평양 비행장 조선인 800명 학살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강ㅇㅇ의 『한국현대사』(초판 1984년)임.
국내에서 출간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림비행장 학살사건'이 서술된 서적.




한국현대사에서 주장하는 일제의 학살은 총 3가지.

①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조선인 노무자 800명 학살
② 치시마열도에서 조선인 노무자 5000명 학살
③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노무자 1700명을 미군 폭격에 방치

그리고 바로 이 구절이, 이후의 연구서 및 대중서에서 아무런 검증 없이 거의 그대로 재인용된다. 

ㅇ박XX,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ㅇ한국사사전편찬회 편, 한국근현대사사전

ㅇ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강의 ( 206p )

ㅇ책은 아니지만, 대학의 강의에서도 이같은 내용이 등장
http://contents.kocw.or.kr/document/lec/2012/Korea/JungTaehern/15.pdf?fbclid=IwAR1dHuC4HU05qA2PQknREHAxCG85fSndI1kUmzg1IJB8uu7GrQCy6hPo15c

그 밖에도 구글 서적 검색을 해 보면, '바로 보는 한국 근현대 100년사', '한국근대사의 이해', '한권으로 보는 한국사 100장면', '바로보는 한국근현대사' 등등 수많은 한국 근현대사 대중서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강만길『한국현대사』의 해당부분을, 빼거나 보태는 것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여기저기 재인용 반복 출판되다보니 기정사실화되어가는데 '무슨무슨 학살'들이 실증연구를 통한 검토 내지는 규명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다.




■ 2 ■

전시체제하의 '대학살'을 언급한 여러 책들이 사실은 강만길 선생의 『한국현대사』의 클론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사』대체 어디서 무슨 자료를 보고 저런 내용을 쓴걸까?

『한국현대사』 권말의 참고문헌 목록에서도 명기하고 있는 바, 박경식 선생의 저작 (朴慶植『日本帝国主義の朝鮮支配(下)』、青木書店、1973年)을 근거로 하고 있음.

박경식이 누구냐 하면 前 조총련 대학교 교수임. 조총련 = 일본에 있는 북한직통산하단체. 조총련 본부 및 조총련 소속 조선학교에는 김정일, 김일성 사진은 기본으로 붙어있음.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A%B2%BD%EC%8B%9D
https://namu.wiki/w/%EC%9E%AC%EC%9D%BC%EB%B3%B8%EC%A1%B0%EC%84%A0%EC%9D%B8%EC%B4%9D%EC%97%B0%ED%95%A9%ED%9A%8C






* * *
[번역] 

특히 전시하의 강제적 노동상황 아래에서는 가혹한 노동, 학대, 학살이 강요되었다. (생략)

항공지하공장에서는 조선인 노동자 약 90명에 일본인 중위 1명, 소위 3명, 반장인 병사 9명이 있어 조선인 7명에 1명씩 일본인 군인의 감독하에서 일했다. 여기는 군사기밀에 속한다고 하여, 간단한 기술적 작업은 일본인 노동자에게 맡기고, 조선인 노동자에게는 근육노동으로 잡역, 운반작업 등을 16시간 이상 강요하였다. 또 점심시간도 거의 없어서 일본 패전 전의 수개월 동안은 밤낮 없이 고통스러운 노역에 시달렸다. 또 임금은 일본인 노동자의 3분의 1 밖에 지불하지 않고, 일본인이 쌀을 배급받을 때, 조선인은 좁쌀이나 콩깻묵을 받으면 운이 좋은 줄 알라고 뻔뻔한 소리를 했다. 또 조선인은 같은 돈을 가지고도 구내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가 없었다. 이 지하공장은 일본인 자본가가 수천원의 돈으로 농민들에게서 수천정보의 전답을 평당 40전이라는 헐값에 사 들이곤, 농민 40여명을 보국대로 징발해서 약 4년간 공짜로 일을 시켜 지은 것이었다. 이 공장에는 40여명 수용 가능한 영창(營倉)이 있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조선인 노동자를 끌고와 감금하고는, 기합을 불어 넣는답시고 마구 때려댔다. 이 때문에 불구자가 된 사람이 많다. 1943-45년에 '군사기밀'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불온사상'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8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타지에서 끌고 와 학살하거나, 또는 싱가폴, 제주도, 만주 등의 전선에 보내서 강제노동에 종사시켰다.

이 항공지하공장에 이웃하여 미쯔이비행기회사가 있었는데, 이에 못지 않은 죽음의 수용소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곳은 한편에서는 비행기를 조립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죄 없는 사람을 잡아와 학살하는 곳이었다. 이 회사의 일본인 감독은 조선인 노동자에 대해, '군사기밀'을 지키고, 태만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며칠인가 결근이라도 하면 잡아다가 갖은 악형을 가했다.현재 미림(美林)의 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チョンスンジョン(정순정?)은, 일주일 동안 결근했다고 헌병 두사람에게서 세시간동안 목검으로 두들겨 맞아, 지금도 허리를 똑바로 펼 수 없는 상태다.(생략). ★ 근거로 쓰인 박경식의 원문에서는 비행장이 아니라 협동농장이었음.

또한 일본인 감독들은 대중에게 신망이 있는 조선인 노동자를 모략으로 학살했다. 박 청년노동자는 모두에게 신임을 받았다. 일본인 감독은 그의 집에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그가 '불온사상'을 가졌다고 헌병대에 끌고 갔는데, 고문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처남(아내의 남동생)인 キムヒョンボ(김형보?) 노인은 "그 사람은 열흘동안이나 쉬지 않고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쓰러지면 물을 뿌리고 구둣발로 가슴, 등, 허리 어디고 가릴 것 없이 걷어 차서, 눈도 뜨지 못할 상태가 되었다. 뭔가 말이라도 하려 치면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지금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몸서리가 쳐 진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약 300명의 조선인을 잡아와 고문을 가했다. (주9) (170-172쪽)

* * *

인용한 기술 내용에서도 사실관계가 틀린 것,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 모순된 것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민간 군수회사가 멋대로 사람을 납치해 와서 강제노동을 시킨다거나, 매점에서 물건조차 팔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아무리 '일제 암흑기'라 해도 있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또한 근로보국대는 연간 30일이 원칙으로 다소의 연장은 있을 수 있지만, 연이어 4년이나 잡아 놓고 일을 시켰다는 것 역시 믿기 어렵다. 만에 하나 4년 동안 잡아 놓았다고 해도, '농사꾼' 40명을 잡아다가 '지하 비밀 공장'을 건설하는 게 타당하기는 한 걸까.

한편, 1940년대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고문의 희생이 된 청년의 손아래 처남이, (후술하지만) 이 진술이 이루어진 1962년에는 기껏해야 40대 초중반일텐데, 어쩌다 '노인'이 되어 버렸을까... 등등등 지적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박경식 선생은 무엇을 근거로 이같은 서술을 한 것이었을까.


스스로 밝히고 있듯, (주9)로 제시된 전거는 다름아닌 《로동신문》1962년 12월 24일자에 실린 기사이다. 근거도 없고 학술적 검증도 받지못한 북괴 《로동신문》의 기사가 최종적 근거였음.

그리고, 박경식의 서술에는 '미림비행장'이란 말도, '비행장 공사 후에 학살했다'는 말도 없다. (미림(美林)의 협동농장이라고 하였음.)
'800명'이란 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 책에서 서술하듯 비행장 공사 종료 후에 살해당한 인원수가 아니라, 수수께끼ㅋㅋㅋ의 '지하 비행기공장'이 여기저기서 끌어와서 혹사시키고, 죽이고, 전쟁터에 보내고 한 조선인 '강제연행자'의 총수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로동신문》의 프로파간다 기사가 박경식 선생에 의해 '사료'로서 인용, 서술되고, 다시 그 서술을 국내 학자(진보계열)들이 옮겨 적는 과정에서 다소의 윤색과 상상이 덧붙여져 '미림비행장 800명 학살'이라는 가공의 '역사적 사실'이 최종적으로 확립되기에 이르렀음.


결국 또 반일을 하기 위해 휘두른 무근거 선동이었음.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까 ② 치시마열도에서 조선인 노무자 5000명 학살 ③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노무자 1700명을 미군 폭격에 방치 이건 나중에 정리할게. 이 떡밥 좋다고 물어서 인터넷에 싸지르고 다닌 좆리웹 반일씹덕, 가생이 반일정신병자 새끼들 또 병신인증함.




< 요약 >

1. 평양 미림 비행장 조선인 800명 학살 썰이 국내 역사 도서, 기사, 인터넷에 널리 퍼져감

2. 출처를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도보니 조총련 대학 교사(前) 박경식의 책이 나옴. 그 책은 북괴 '로동신문'의 기사를 근거로 삼고 있음.

3. 결국 무근거 선동이었음이 밝혀짐.

4. 인터넷에 반일정신병자 새끼들, 좋다고 떡밥 물어서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니던데 로동신문이 시키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