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짱깨를 존나게 싫어함을 알림과 동시에 한나라 이후는 미개한 이민족의 역사로, 지금의 중국을 바퀴벌레 취급함을 알립니다.

*본인이 다루는 삼국지는 우리가 흔희알고있는 소설 삼국지가아닌 정사의 삼국지를 다룸을 알려드립니다.




1부: http://www.ilbe.com/view/11209719741


저번에는 제갈각의 범상치않은 어린일화들과 대권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다뤘는데

이번에는 대갈각이 본격적으로 1인자로서 자신의 그림을 그려가는 이야기니, 1편보다는 더 스케일도크고 재밌을거야.

모두 저번 편을 재밌게봐줘서 고맙고 이번편도 재밌게 봐주길 바랄게!

1. vs 사마사(동흥제 전투)

오나라에서 제갈각이 정권을 잡은 사이, 위나라에서도 중요한 권력의 변화가 있었다.






바로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정치적 걸림돌들을 싸그리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마의가 죽고, 그의 장남 '사마사'가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렇게 제갈씨와 사마씨의 2세들이 각국에서 정권을 잡았으나 그 둘에는 큰 차이가 있었으니, 사마사는 이미 쿠데타로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군권을 장악해 정치적 기반이 단단히 만든 상황인 반면,

제갈각은 탁고대신이라는 명분하나로 어린 황제를 보위하고 대권을 잡고있는, 아직 황족을 비롯한 정적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기에 정권을 잡은 제갈각과 사마사. 동생이 안경썻다는 말은 만화에서의 픽션이다. 출저-최훈의 삼국전투기) 

그러나 제갈각은 서슬퍼런 권력 싸움에서 살아남은 원숙미 넘치는 정치인이면서도 전쟁 경험이 풍부한 무장인 반면,

사마사는 공적없이 아버지 빨로 높은 자리에 오른, 정치나 전쟁 모든 분야에서 경험 부족한 신참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신참인 사마사, 원숙미를 갖췄으면서도 그 기반은 불안한 제갈각 모두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위해서는 위치에 걸맞는 공을 세워야했으며,





그렇게 촉나라 전선에서 벌어진 제갈씨와 사마씨(제갈량 vs 사마의)의 대결의 2라운드가 그 2세들에의해 오나라 방면에서 펼쳐지게되었다. (심지어 제갈각과 사마사는 나이도 비슷했다.)

도발은 제갈각의 쪽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동흥제의 위치. 동흥제가 있는 얇은 강 이름이 유수)


제갈각은 동흥에 사람들을 모아 '유수' 양쪽의 산을 기둥삼아 각각 성을 쌓고 그 가운데에 제방을 건설해 각 성에 1천명씩을 남기고 돌아왔다.




이 제방을 '동흥제'라 부르며 제방을 쌓으면 소호의 물이 불어 범람한다면 수군이 강력한 오나라가 위나라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기에 이는 위나라를 침공한다는 뜻이며,

이처럼 제방과 성을 쌓아 위나라를 침공하는 모션을 통해서 사마사의 어그로를 크게 끌면서도 내부결속을 도모했다.

사마사 역시 제갈각이 제방을 쌓았다는 소식을듣고 도발을 받아들이기로한다.

그리고 3명의 동쪽전선 지휘관들에게 작전에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참모들의 의견이 통합되지 않았는데 다음과 같은 의견이 나왔다.




(장강은 오나라와 위나라의 경계가되는 남쪽의 큰 강으로  오나라의 든든한 방어선이었다.)


1. 장강을 건너 오나라를 공격하는 것. 
2. 사방의 길로 동시에 진격하는 것.
3. 오나라 쪽 변경에 대규모의 *둔전을하여 기회를 보는것

*둔전은 일반 백성이 아닌 군인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방식을 말한다.  

이에 사마사가 '부하'(인물이름이 부하다)에게 물으니 부하가 말했다.





"현재 손권은 죽었고 어린아들은 제갈각의 보좌를 받고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백성들을 은혜로서 다스려 조정의 안과 밖에서 국사를 걱정하며 같은 배를 타고가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끝까지 안정을 지킬 수는 없을지라도 국가의 생명은 연장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오나라가 군주(손권)를 잃어 상하가 국가의 위기를 근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요충지를 점거하더라도 장강을 가로지르는 계책으로는 성공하기 힘들 것입니다.

단지 군사만 오나라 접경지역에 진출시켜 대규모 둔전을 통해 기회를 엿보는 것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둔전을 한다면 병사들이 앉아서 쌓아놓은 곡물만 먹으면 운송의 노고를 줄일 수 있으면서도 적군을 습격하여 원정하는 노고와 비용또한 없을 것입니다.

장강을 넘어 원정하는 것은 법령을 밝히고 병사를 훈련시켜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 계책을 피는 것만 못합니다."






즉, 도발에 넘어가 교전하기보다는 둔전을 통해 위나라의 최대 장점인 물량을 이용하여 역으로 압박해 오나라를 불안하게하며 보급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작전을 제시한 것이다.

더불어 제갈각의 전쟁 목표가 오나라 침공을 유도한 자신의 권위 상승인만큼 부하는 이 점 역시 포착하여 선제공격하기보단 오히려 선제공격을 하지않음으로서,

제갈각을 불안하게 만들고 도리어 침공을 유도해 동흥제 축조의 목적을 흐뜨려 제갈각의 권위실추를 실추시켜 내부혼란을 부추긴 심리전이었다.






그러나 사마사 역시 오나라 침공을 실적이 전무한 자신의 권위 상승으로 삼으려는 만큼 시간이 오래걸리는 둔전제를 채택할 수 없었고, 제갈각도 사마사의 이러한 약점을 노렸기에 적극적으로 시행한 도발이었다.


그리하여 사마사는 동시에 세방향을 공격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오나라의 남형주 지역에 해당하는 '강릉'과 '무창'에는 각각 '왕창'과 '*관구검'을 보내고, 

오나라 본진인 양주지역 입구에 해당하며 2천명이 지키고있는 '동흥'에는 '**제갈탄'에게 7만의 군사를 주어 침입케한다.

*고구려를 침공한 그 관구검이다.
**제갈탄은 제갈량하고는 직접적으로 관계가없으나 같은 서주출신으로 먼친척이다.




(건업 위치)

왕창이나 관구검의 공격이 성공하면 남형주를 차지할 수 있어서 좋고 동흥을 먹으면 오나라의 수도인 '건업' 을 공격할 수 있기에 

어쨋든 간 한사람이라도 승리한다면 꽤 괜찮은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전략이었다.     






제갈탄은 부교를 만들어 호수를 건넌 후, 제방위에 진을 치고 부대를 나누어 두 성을 공격하도록했으나 성이 높고 험준해 병력이 적었음에도 쉽게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제갈각 역시 이에 맞서 4만의 군을 이끌고 수도와 가까운 전투의 핵심지역, 동흥으로 밤낮을 가리지않고 향했다.

구원을 가는 도중 장수들이 제갈각에게 말했다.





"적은 공께서 오신다는 것을 들으면 반드시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맹장 '정봉' 혼자만이 반론을 제기했다.(정봉은 이후 오나라의 대장군에 오를 정도로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적은 크게 군을 일으켜서 왔으니 이미 정한 계획이 있을것인데 어찌 물러나겠습니까. 적이 물러날 것이라는 말을 믿지 마시고 우리들이 승리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합니다."

제갈각은 이에 정봉과 여러 장수들을 먼저 선봉으로 파견해 산의 서쪽을 올라 성을 구원케했다.

행군도중 정봉이 말했다.




"지금 군의 행동이 더딘데, 만약 적이 유리한 지형을 점한다면 싸우기 어렵습니다"

이에 여러군대를 불러들여 길을 열게하고 휘하의 3천명만을 데리고 지름길로 재빠르게 진격했다. 

당시 날은 추웠고 눈이 내렸는데, 적의 여러장수들은 방심하여 성대한 주연을 베풀고 있었는데, 이에 정봉이 병사들에게 갑옷을 벗고 투구를 쓰게하고는 칼만을 지니게하며 말했다.

"후작에 봉해지는 것은 오늘이다!"





그러나 오군이 코앞에 다다랐음에도 위군은 오나라의 병력이 적고 가벼운 몸차림으로 둑에 오른 것을보고는 오히려 비웃으며 방비하지않았다.





이에 오나라 선봉대가 북을치고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니 적들은 대혼란에 빠졌고 이후 추가로 오는 오나라 군대에게 한마디로 개박살이난다.

제방에서 도주하는 위나라 군들은 부교가 파괴되어 육지로 도망도 못가고 물에빠져 죽거나 밟혀죽은 자들이 수만에이르렀으니 피해를 끼친 규모만 보자면 자신의 삼촌 제갈량의 북벌 이상의 성과였다.

그외에도 노획한 소, 말, 당나귀가 수천마리였으며 수많은 물자를 획득했으며 또한 본대가 무너지니 남형주 방면의 왕창과, 관구검의 부대는 철수하게된다

사마사의 약점을 비집고 외통수로 몰아넣은 성공적인 판짜기로 제갈각의 위용이 더욱 높아지니 안그래도 자신감 짱짱하던 제갈각은 이 전투로 더 적을 경시하게되었다.


2. 반대에 부딪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다시 한 번 출전을 결정하기 앞선다.

그러나 이번에는 위나라에 지대한 타격을 주려했는지 제갈각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린 북벌을 시도하려했으니 바로 촉나라와의 협력공격이었다.




(촉나라의 대장군이자 마지막 명장, 강유)

이에 제갈각은 촉나라의 대장군 '강유'에게 사자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옛 사람이 말하길 성인도 떄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나, 때가 이르면 놓치지않는다 하였소. 지금 위나라의 정치가 사마씨로 넘어가 안팎이 서로 의심하며 병사는 꺾이고 백성은 원망하니 형세가 크게 위태롭소. 

만약 크게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로 하여금 동쪽을 공격케하고 촉나라로하여금 서쪽을 공격케하면 그들이 서쪽에 대비하면 동쪽이 빌것이고, 동쪽을 대비하면 서쪽이 빌것이니 단련된 군대로 적의 허한 틈을 타면 반드시 격파할 수 있소.'






그러나 여러 대신들이 자주 출병하면 병사들이 피로해진다며 일제히 제갈각에게 간언했으나 이제 이런 것들은 제갈각에게 들어오지않았다.

이 제갈각의 지속된 출병에 하두 빡친 오나라의 대신 '장연'도 완강히 간언하다 사람들이 부축하여 나갈정도였다.

한편, 손권이 죽기전 같이 명을 받은 사이자 제갈각과 친한 '등윤'도 출병에 반대하며 제갈각에게 이르길,





"당신은 선제(손권)께서 세상을떠나고 새 군주가 지위를 계승했을때, 중임을 맡아 조정안에서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강력한 적을 물리쳐 명성이 천하를 진동시켰으며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당신에게 의지하여 편히 쉬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갑자기 또 군대를 일으키면 백성들은 피로하고 국력이 소모되며, 먼 곳의 군주는 이미 준비가 되있을 것입니다. 만일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이전의 공로를 상실하고 이후의 책임을 초래하게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안락함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위나라의 군주(조방)는 어리석으며 그 나라의 정치는 신하(사마사)의 손에있으니 그곳의 신하와 백성들은 떠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국가의 재력에 의지하고 전승의 위세에 기댄다면 어찌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제갈각은 언급했던 것처럼 사마사의 불안정한 권력을 위나라의 최대약점으로 보았고 또 자신의 대승으로 그의 권력과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촉과의  연계까지한 공격이기에 지금이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점을보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반대하자 글을 지어 알리니 다음은 그 요약이다.  

'무릇 하늘에는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땅에는 두마리 용이 있을 수 없다. 왕 된자가 천하를 통일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그 자리만을 후세에 남기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있을 수 없다.

옛날 진나라는 단지 서쪽 지역만 가지고 있었음에도 6개국을 멸하여 천하를 통일했는데, 지금 위나라는 옛날 진나라에 비해 토지의 수는 배나 되고 오와 촉을 6개 국가와 비교하자면, 절반도 되지않는다.

그러나 오늘 위나라를 이길 수 있는 까닭은 조조시대의 병사들이 힘을다했고 이후에 출생한자는 아직 성장하지 않아 적군이 쇠약해지고 그 수가 적으며 사마의는 죽었으며 그의 아들은 어리고 약한데, 독자적으로 대임을 맡고있으니 지혜와 계책이 있는 선비라도 임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근래에 집안의 숙부(제갈량)가 표를 올려 적과 천하를 다투는 계책에대해 진술한 것을 보았는데 일찍이 탄식하지 않을 떄가 없었다. 나는 밤마다 뒤척이며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제갈각이 그저 자신의 계책을 실행하기위해 합리화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엄청난 공으로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제갈각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자는 없었다.

이에 제갈각과 평소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던 단양의 태수 '섭우' 역시 제갈각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 당신은 대업을 보좌하여 선제의 유지를 완성하며 직접 출정하여 하루 아침에 비상한 공을세웠는데 어찌 신령과 사직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병사들에게 날카로움을 기르도록하고 기회를보아 출동해야합니다.

지금 공이 승리의 기세를타고 대대적으로 출병하려하나 떄가아닙니다. 그런데도 공은 공의 생각을 고집하고 있으니 나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제갈각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끝낸지 오래. 친한 이의 편지 하나로 흔들수가 없었으니 제갈각이 답장했다.

'그대는 국가의 존망의 법칙을 보지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문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꺠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반대의견을 모두 묵살해버리고 출병에나섰다.
 

3. vs 사마사 2라운드(합비신성전투)
 





특히 이번 출병은 지금까지 전투와는 급이 달랐으니, 무려 국가의 모든 군대를 싸그리 긁어모은 Total War 수준의 20만을 출병시킨 것이다.

당연히 나라가 이 20만의 병력 준비를 위해 뒤집어졌으니 백성들은 소동을 일으켰고 제갈각은 선정을 통해 쌓아왔던 인망을 단숨에 잃게되었다.

호족연합 국가인 오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동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갈각이 대승을 거둠으로서 호족과 중앙정부 간 파워게임에서 우위를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면서도 대규모에, 많은 반대에 부딪힌 이 출정은 호족 및 황족 등의 여러 정적들이 서슬퍼리 노려보는 상황에처한 제갈각에게 자신의 운명이 걸린 큰 도박이었다.(언급했다시피 이 병력들은 오나라 군사시스템 상 호족들의 병력에서 차출한 것이다.)




(회수밑 회남 지역의 위치)


한편, 오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기위해서는 특히 회수 밑, 회남 지역의 회복이 필수였다.



(오나라가 중원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3개의 강, 비수-회수-와수 라인을 확보해야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합비와 수춘을 공략해야했다. 위나라 역시 오나라를 수비하고 장강넘어 오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합비를 꼭 점거해야했다. )

그렇기 떄문에 손권도 회남 지역을 회복하기위해 요충지가되는 '합비'를 여러차례 공격했으나 조조휘하 만총, 장료 등의 괴물같은 장수들의 미친 활약으로 번번히 패배했다.(진짜 많이 공격했는데 다 실패했다.) 




(회남 지역은 위로는 강을, 옆에는 산을끼고있는 천혜의 요새로 오나라가 생존을 연장시키기위해서도 이쪽 공략이 필수였다.)

그리하여 제갈각의 전략은 과거처럼 요충지인 합비를 공격하는 것이아닌 방어 준비가 덜 된 위나라에비해 엄청난 동원으로 물량에서 우위를 점한만큼 합비를 제외한 회남 모든 지역을 싸그리 초토화시키며 강북으로 북진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때 한 사람이 말했다.





"지금 군대를 인솔해 깊이 들어간다면, 변방의 백성들은 반드시 멀리 달아날 것이고 이리되면 병사들이 수고로우면서도 공은 적을 것입니다.

만약 '합비신성'을 포위한다면 적의 구원병이 이를 것이고 구원병이 이르렀다가 계책을 세운다면 크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안그래도 옛날 조조 휘하의 장수들이 부재와 동흥제에서의 대승으로 위나라를 깔본 제갈각이였기에 기존 전략을 다시 손권이 번번히 실패한 합비공략으로 수정하게된다.






이에 다시 군대를 돌려 '합비신성'을 포위한다.

제갈각이 합비를 포위했다는 소식은 위나라에 전해졌고 안그래도 제갈각에게 제대로 꺠진데다가 그가 다시 20만의 군대를 끌고왔다는 소식에 위나라는 바짝 긴장하게된다.




(사수와 회수 위치)

제갈각 진공의 대응 방안으로 조정에서는 한창 회의가 벌어졌고 사람들이 의논하길, 대군을 끌고온만큼 동쪽인 서주와 청주까지 공격할 것을 대비해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지켜야한다했다.

사마사가 말했다.





"제갈각은 오나라에서 새로 정권을 얻었으므로, 한때의 이익을 구하고자 합비에 병사를 모아 요행을 바랄 것인데 어느 겨를에 서주와 청주를 공격하겠소.

또한 강을 지키게되면 수비할 곳이 많아져 군사를 많이써야하고 적게지키면 제갈각을 막기엔 부족하오"

즉, 사마사는 제갈각 역시 정권을 얻은지 얼마안되 빠르게 공을 얻고자하므로 예측처럼 쭉 위로 치고올라가는 것이아닌 합비신성을 공격할 것으로 예측했고 이번엔 사마사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번에 공격은 동쪽에서만이 아니였으니 곧이어 오나라와 연계한 촉나라의 강유도 수만의 군을 이끌고 치고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양방향 대규모 공격에 어디에 집중을 해야하는지 참으로 근심하던 사마사였으니 '우송'에게 대처 방법을 물었다.





"지금 동방과 서방에 일이있어 두 쪽이 모두 급한데 군대의 사기가 꺾였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일에는 약해보이지만 강한 것이있고 강해보이지만 약한 것이 있으니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 제갈각은 정예병을 모두 끌고와서 족히 예기를 드러내 신성에 주둔하여 한번에 결전을 내려하고 있습니다.

만약 적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전투를 청해도 응하지않으면 오나라 군이 장차 피로하게 될 것이니 장수들이 출전하지 않는 것이 이득입니다."

이어 촉나라 군대의 대응법에 대해서도 대답했다.





"강유는 대군을 거느리고 제갈각의 군세에 호응하고있는데, 우리 땅에서 식량을 구하는지라 뿌리가 깊은 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동쪽에 힘을 모으고 있어 서쪽이 반드시 비게 될 것이므로 이로서 빨리 진군한 것입니다.

지금 서쪽의 군대에 빨리 진군할 것을 명해 예상치 못하게 출병한다면 반드시 도망칠 것입니다."





"훌륭한 생각이오"





이에 사마사는 대촉전선으로 기존의 대촉전선 사령관 '곽회와 진태'에게 수비를 명하고,

핵심이라 생각되는 대오전선에는 사마의의 동생이자 자신의 삼촌인 '사마부'를 총대장, '관구검과 문흠'을 휘하대장으로 삼아  20만대군을 딸려 지원보낸다.

수춘성에 도착한 관구검과 문흠이 제갈각을 공격할 것을 청했으나 사마사가 말했다.




"제갈각이 적진 깊이들어와 병사들을 사지에 던져넣었으니 그 예기를 쉽게 당해낼 수 없소. 또한 합비신성은 작으나 견고하니 이를 공격하더라도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오."

즉, 사마사는 우송이 말했던 것처럼 제갈각을 공격하기보단 그저 그들이 합비에서 지쳐 사기가 떨어지는 시기를 기다리게했다.





이리하여 합비에서 기다렸다가 위나라의 본대와 한판 붙을 생각을 하던 제갈각의 대전략은 완전히 꼬여버렸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합비신성마저 뚫리지 않았다.

합비신성은 요충지로서 오나라와의 오랜 전쟁으로 튼튼하게 요새화가 진행되있었고 성주 '장특'은 매우 유능한 장수였으니,

3천명에 불과한 수비병으로 그는 무려 90일을 버티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죽거나 병들어 병사들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고 급기야 제갈각이 토산을 쌓으며 급히 공격하자 성이 함락직전 상황까지 왔다.

이에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장특은 항복을 청하길,

"이제 나는 다시 싸울 마음이없다. 우리 위나라 법에는 적의 공격을 받아 100일이 넘었는데도 구원병이 오지않으면 항복해도 가족들이 연좌되지 않는다.

적의 공격을 받은지 90일이 지났고 이 성에는 본래 3천명이 있었는데 전사자가 그 반을 넘어 성이 함락된다해도 이 반쯤 남은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지금 돌아가 상의하여 항복하는 사람들의 명단을보내 항복하려한다."





이에 오나라 군은 이것을 믿어 공격하지 않았으나 이것은 장특의 시간을 벌기위한 속임수, 장특은 밤 사이 다시 성의 뚫린 부분을 수리하였고 다음 날, 오나라 사람들에게 외쳤다.  

"나는 다만 싸우다 죽을 뿐이다!"

속았다는 것을 안 오나라 군이 크게 화가나 다시 침공했으나 쉽게 뽑을 수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성의 함락보다도 더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풍토가 다른데다 날씨까지 더워, 상한 물을 마셨기에 설사병이나 각기병에 걸린 병사가 태반이었으며 죽거나 부상당한 자로 땅을 뒤덮었다.

각 진영의 관리는 날마다 병든 자가 많다고 보고했지만 승리만 해온 오만한 천재는 도저히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으니, 이런 안좋은 보고들을 모두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목을 베려했다.





점점 답답해지는 상황 속에서 제갈각은 자신의 계책이 실패한 것을 치욕스러워하며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장 '주이'가 옳고 그름을 논하자 제갈각은 크게 분노하여 그의 병권을 회수했으며,

또 다른 부장 '채림' 역시 그에게 옳은 방안안에 대해 여러차례 진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패배할 것을 직시한 나머지 위나라로 도주해버린다.


4. 천재의 몰락

오나라 군대가 성을 함락시키지못하고 병에걸려 스스로 자멸하는 상황에서, 무려 한달 동안 밖에서 관망만하던 위나라 지원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승리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사마사는 즉시 조칙을내려 문흠과 제갈각의 퇴로를 점거하게하고 관구검에게는 제갈각의 뒤를 끊게했다.



(수춘성에서 형세를 관망하던 위나라 군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사마사의 삼촌이자 총대장인 사마부가 본대를 이끌고 합비신성으로 내려와 오나라 군을 공격하는 모션을 취하자 더 이상 싸울 힘이 떨어진 제갈각은 퇴각을 결정한다.

그러나 하늘은 퇴각마저 돕지 않았다. 





퇴로를 미리 점거했던 문흠과 관구검이 이내 들이치니 안그래도 병들어 지친 오나라 군은 대혼돈에 빠지게된다.

오나라 군은 혼란 속에서 구덩이 속으로 빠지거나 포로로 잡히는 등 위나라 군이 오나라 군을 크게 격파하니 이 싸움에서 오나라 병사의 머리만 무려 만 여급을 베는데 성공한다.

모두가 나라가 뒤집어지는 무리한 출병에도 모잘라 제갈각이 충격의 대패를 당하자 오나라 사람들 모두가 제갈각에게 앙심을 품었으며 귀한자든 천한자든 모두가 통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제갈각은 반성의 기미없이 태연자약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어, 모두가 분해하는 가운데 그는 민심을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위나라에게 복수를하여 자신의 권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에 해안가에서 또 둔전을하며 전쟁 준비를 계획하였으나 그를 부르는 조서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결국 완전히 철수한다.

안그래도 바닥을 친 민심인데 이러한 제갈각의 태도에 사람들은 또 실망하였다.

전장에서 조정으로 돌아온 제갈각은 자신의 둔전을 통한 재침공 계획을 방해한 관리들을 불러 크게 질책하며 이르길,




"당신들은 어떻게 감히 망녕되게도 몇 차례나 조서를 작성했소!"





이에 제갈각은 자신이 기존에 임용한 관리들을 모조리 자르고 다시 선발하였으며, 또한 위엄을 크게 드러내며 사람들을 항상 꾸짖었고 그를 만나야만하는 사람 모두가 그를 크게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내 또 군대를 정비하여 북으로 진출하려하였다.


5. 천재의 죽음

한편 전쟁이 끝난 후, 위나라의 장군 '등애'가 사마사에게 말했다.




"손권이 이미 죽었고, 대신들은 새로운 군왕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또한 오나라의 이름있는 호족과 황족들 모두 사병을 가지고있어 그들의 세력만으로 제위를 찬탈하기에 충분합니다.(중앙정부가 많이 약해졌다는 뜻)

제갈각이 새로 정권을잡았는데, 군주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 상하를 위로하며 나라의 근본을 굳건히 하지않고,

외부의 일만 신경쓰며 백성들을 잔혹하게 다루면서도 나라의 군대를 견고한 성에서 꺾이게하고 많은 자를 죽게하여 그 화를 지니고 돌아갔으니, 이제 제갈각이 죄를 얻을 때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갈각의 민심이 바닥을친 틈을 탄 황족들의 제갈각 암살모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동자는 바로 한때 손권 사후, 제갈각을 오나라의 뒤를 맡을 인물로 추천한 황족 '손준'이었다. 

손준은 사람들이 제갈각을 싫어하는 것을 기회로 그를 암살하여 정변을 일으키려했으니. *어린 황제와 상의하여 이에 가짜 술자리를 만들어 제갈각을 초대한다.

*당시 황제 '손량'의 나이는 9살이였으니 황실의 어른인 손준이 하자니 허락했을 것이다.  





제갈각이 손준을 만나기로 한 전날밤, 뒤숭숭하여 한밤 내내 잠을 자지못했다.

그렇게 밤을새고 날이 밝아 세수를 하려하자 물에서 역한 냄사가 났고 그를 모시는 사람이 갈아입을 옷을 주자 옷에서도 역한 냄새가났다.

제갈각이 이를 수상하게여겨 물과 옷을 새로바꿨지만 그래도 역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됬든 다 준비를 마치고 걸어나왔는데 갑자기 개가 그의 옷을 물어 당기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시 앉았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떠나려하자 개가 또 그의 옷을 물어뜯으니 제갈각은 시종에게 개를 쫓도록하고 연회장으로 향하는 수레를 탔다.

그리고 드디어 제갈각이 황제를 알현하려 수레를 궁궐 문앞에 멈췄다. 

손준은 이미 연회장에 병사들을 숨겨놓고 제갈각을 기다린 상황. 





그러나 제갈각이 위의 뜻하지않은 일들로 도착시간이 늦어지자 일이 누설될 것을 걱정한 손준이 직접 제갈각을 만나러갔다.

손준이 제갈각의 의중을 떠보기위해 말했다.




"공께서 만약 불편하시다면 이후에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주상께 보고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저는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제갈각과 친한이로부터 밀서가 도착했으니 이렇게 적혀있었다.

'오늘 손준이 평상시와는 다르게 진술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제갈각은 등윤에게 이 밀서를 보여주었다. 등윤이 말했다.




"오늘은 위험하니 돌아가야합니다."




"손준같은 어린놈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다만 술과 음식을통해 사람을 해칠까 두려울 뿐이오."

이에 자신이 마시는 약주를 따로 챙겨 들고갔다.





제갈각은 패기넘치게 궁궐로 들어와 정권의 1인자답게 칼을차고 신발을 신은채 전당으로 올라와 황제에게 인사드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내 술상이 차려졌고 모두 술을 몇 차례마시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때 손준이 화장실에 가는 척 몸을 일으켜, 긴 옷을벗고 짧은 옷을 입고나와 말했다.

"조서가 있으니 제갈각을 체포하라!"





이에 제갈각이 크게 놀라, 그 자신도 칼을 들고 대항하려했으나 이미 칼을 뽑기도전에 손준이 한발짝 빨랐으니 그를 여러차례 찌른 후였다.

그러나 제갈각을 호위하던 자가 이내 손준을 찔러 왼손에 상처를 입혔으나 손준이 다시 응수하여 그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이떄 숨겨뒀던 병사들이 연회장으로 달려오고있었는데, 손준이 말했다.

"죽이려고했던 제갈각은 이미 죽였다."

그러고는 칼을 집어 넣도록 명하고 제갈각의 시체를 꺠끗이 치운후, 다시 술을 마셨다.

(제갈각 사망 후 이야기는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이나 흥미로운 부분이라 집어넣는다.)

제갈각이 죽은 날, 제갈각의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못한 제갈각의 부인이 노비들과 같이있었는데 말했다.




"왜 너한테서 피냄새가 나느냐?"

노비가 말했다.




"안 나는데요?"

잠시 후 냄새가 더욱 심하게나니 부인이 재차 물었다.




"너 눈동자가 왜 평소와 그리 다르느냐?"

그러자 여자 종이 펄쩍 뛰어올라 기둥에 머리를 박고, 팔을 걷어 부치고 이를 가는 등의 괴상한 행동을 하며 말했다.




"제갈공께서 손준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제야 모든 식구가 제갈각이 죽은 것을 알아챘으나 떄는 이미 늦었으니, 뒤이어 관군이 제갈각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제갈각의 오만함이 결국 제갈각의 가문은 예전에 아버지 제갈근이 말했던 것처럼 결국 자신 뿐아니라, 집안을 멸족시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정권을 잡은지 2년도 채 되지않은 일로, 그의 나이 51세였다.

더욱이나 그의 이름 '각(恪)'이 '삼갈 각'을 뜻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인생이었다.



이처럼 오만함은 능력있는 자도 멸망시키게하는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뭐 잘난거 하나없는 빈껍데기들이 꼴에 자존심은 세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위에 올라간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일개 아라바이트까지 뭐라도 된 것마냥 구는 경우가 많은데 제발 게이들은 겸손하여 이런 화들을 피했으면 좋겠다.

이상 능력으로 일어나 오만함으로 죽은 제갈각의 일화였어.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