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살 살아있는 ATM기 쉰내 아니 썩은내 나는 좀비 틀딱 할배야.

꼬추 잘서는데 와이프가 안해줘서 맨날 싸우니까 꼬잘서는 패스하자.


암튼 암환자 가족이었던 입장에서 개 구충제 썰 풀어볼께 내용이 길수있고 과학적 근거나 팩트보다

암환자 가족과 암환자가 겪는 과정과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 할꺼고 그리고 그 이후 과정에서도 썰 조금 풀어본다.


본인의 가족의 암환자는 가족인 어머니었음.

아마 2년전 초여름이었나? 나는 2층 어머니는 3층 사시는데 계단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는데 너무 힘 없이 터덕터덕 

들리더라고? 2층에서 일베 읽다가 한번 나가보니 어머니께서 윗층에서 내려오는 중이셨는데 얼굴이 너무 아파 보이심.

이전까지는 아픈데 하나 없으니고 엄청 건강하셨거든?

어디 아프시냐고 물어보니 체하신거 같다고 하시더라고?

암튼 약은 드셨냐고 물어보고 병원 가시라고 말 한 후에 다시 들어와서 웃으면서 일베함.

다음날 윗층 올라가 봤는데 누워 계시더라고? 그리고 3일째 되는날 일때문에 나가는데 집에 들어오시는 어머니를 봤는데

다 나으신거 같다고 하시면서 웃으면서 집으로 가심.

근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 얼굴에 황달이 오셨다는거야?

올라가서 확인해보니 눈동자까지 노랗게 변함.

어머니가 다른데 아픈데는 없다고 일단 동내 병원가셨는데 동내 병원에서 빨리 큰병원 가보라고 소견서 써주셔서.

집근처 S 병원으로 감. 몇가지 검사하고 의사가 가족들 전부 불러서 설명해줌.

담도가 막혔다는데 담도 암이고 일단 담즙 배액술? 인가 할거고 암표지자 검사인지 해봤는데 암 99프로 확실 하다고 하더라.

엄마한테 요즘 암도 다 치료가 되고 너무 걱정 마시라고 하고 집에와서 어머니 검사결과 물어보는 이모 전화받고 미친듯이 쳐울음.

엄마가 당장 죽는것도 아닌데 걱정과 불안때문에 전화통화 붙잡고 진짜 한참을 대성 통곡한거같음.


이렇게 암이라는게 예고없이 갑자기 본인한테나 가족한테 충격적으로 찾아온다. 처음에는 암이라는 사실에 망연자실 하는데

치료가 안되는 병이 아니기에 희망을 가지고 치료에 임하게 된다.

의사는 개복수술을 권했는데 어머니 연세가 적지않고 복부 대동맥 근처에 기형적으로 다른 동맥이 자라있어서 개복이 위험할것 같아서

아는 인맥 다 동원해서 Y병원에서 복강경 수술로 담낭 담도 췌장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게됨.

여기서 6군데 림프구인지 림프절인지도 광범위하게 잘라내고 수술전 간이검사로  전이소견 없으면 수술하는데 전이소견 있으면

수술 못한다고 했음.

의사는 수술중에 전이소견 없으니 수술 하겠다고 했고 수술후 각 부분에서 떼어낸 조직에서 정밀 검사 하였는데 간쪽 림프에서 

전이 소견이 발견됨. 이게 수술 15일 후임.

의사는 항암 방사선을 권하였고 방사선과 항암을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10회인가 12회인가 까지 하심

문제는 중간에 어머니가 너무 항암을 힘들어 하셔서 8회차쯤에 잠적 하셔서 (2-3일?) 회차 한번을 못하시고 한번 모자란 11회인지로

항암 마감함. 구토가 심하지 않은 항암제를 사용했자디만 그건 사람마다 달라서 어머니는 거의 아무것도 못드시고 며칠간 구토와 탈력감에 시달리셨고 몸무게는 계속 빠지기 시작함.


항암이 끝나고 6개월 간은 그래도 소화도 잘되는 편이고 다른 문제가 없으셔서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시골에서 요양도 하시고 그렇게

6개월 지나고 정기검사 받으러갔는데 간에 1cm 정도의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하더라.

어머니가 항암받다가 암 치료전에 죽겠다고 하시니 의사가 항암을 권하지는 못하고 주저하길래 나을수 있는 방법으로 권해달라고 했음.

간에 난 종양은 지져서 없애고 항암을 하는데 면역 항암제? 좋은게 있는데 검사해서 적용 가능하면 하자고 하시더라고.

간에있는 종양을 제거하고 다행스럽게 K 항암제 가능하다고 해서 수술후 한 두달 회복후에 K항암제 맞으러 가심.

그리고 K항암제 맞은 후 일주일 후 갑자기 고열 거동 불편하심.

저녁시간에 119불러서 급하게 Y병원으로 입원. 입원 사유는 전신폐혈증. 그리고 며칠후 담도 다시 막혀서 배액술 다시 시작하고

이 삼주간 계속 폐혈증 치료 받음. 의사는 폐혈증 치료하고 상태봐서 항암하면 치료 기회는 있다고 했는데 폐혈증 치료 4주차 되는날

갑자기 나한테 호스피스 병동 알아보라고 함.


이미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서 더이상 어떤 치료도 불가능하고 빨리 호스피스 병동 알아보라고 함. 

분명 며칠전만해도 기회는 있다고 했는데 손바닥 뒤집듯이 갑자기 태도 바꾸는 의사를 이해할수도 없었고 이해도 안됨.

어머니는 위독하신데 의사랑 싸우면 뭐하냐 호스피스 병동도 병상이 워낙 적고 사람은 대기가 많아서 길게는 한달까지

기다릴수 있다고 해서 여러군데 신청을 해둠.

신청한지 3일쯤 되었나? Y병원에서 언제 옮기냐고 자꾸 압박이 들어옴 일주일 지났을때는 병원에 아버지가 계신데

나한테까지 전화해서 빨리 병원 옮기라고 푸쉬함.

더웃긴건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라면서 장기입원 환자의 경우 항생제 내성 바이러스 검사를 해서 가지고 가야 일부 병원 입원이 되는데

Y병원에서는 그걸 못해준다는거임. 왜 못해주냐니깐 아버지한테는 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댄거 같아서 처음으로 담당자랑 전화해서

지랄을함. 결국은 항생제 내성 바이러스 검사를 해서 바이러스가 있으면 지내 병원에 눌러 앉아야 하니깐 못해준다는 거였는데

내가 그래서 못해준다는거냐? 치료과정 내내 불만스러운부분도 다 참아왔는데 이제 사람 죽을꺼 같으니까 짐짝 취급이냐

그 검사해서 문제 생기면 내가 델고나가서 우리집에서 모실꺼니까 해달라고 지랄 하는데 때 마침 다른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여의도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리가 있으니 입원 하라고 연락이옴 Y병원 담당자한테 전화해서 다른병원 갈꺼니까

더이상 이야기 말자고 하고 전화끈음. 성모병원은 해당검사가 필요 없다고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문제없이 입원함.


지금까지 병원 이름이나 항암제등은 이니셜로 적은 이유가 해당 병원이나 항암제에 선입견 생길까봐 이니셜로 했는데

여의도 성모병원은 내가 풀내임으로 적는다. 정말 도움 많이 받았고 아마 종교가 없었으면 천주교 다녔을꺼같음.

개종도 심각하게 고려중일 정도로. 호스피스병동 수녀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봉사자분들 간호사분들께도 감사드림.

병원비도 한달 보름인가 있었는데 50만원인가 나왔던거같고 1인실 쓰면 비용 많이 나오니까 환자 없다고 임종준비시에

임종방이라고 길게 빌려주시고 감사한걸 나열하자면 지금까지 쓴 글보다 더 길어서 이만줄임.



무튼 그렇게 호스피스 병원 입원시켜드리고 이때부터는 배에 복수도 많이 차오르고 Y병원에서도 차오르는 상태였지만

먹는것도 계속 토하셔서 거의 못드심. 살은 나날이 빠져가고 거동도 거의 못하심. 몸에 진짜 뼈만 남아서 어깨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하시는데 너무 뼈만 만져져서 해드릴수가 없었음.


나는 가족들과 조용히 어머니 임종을 준비중이길 원했는데 호스피스 병원 있다니까 외가 친가쪽에서 병문안들을 많이오심.

와서 씹 틀딱 새끼들 나도 틀딱이지만 어머니 장례준비를 미리 해놔야한다. 묘지 보러같이자가 우리엄마는 아직 살아있는데

나는 아직 당장 내일이라도 조금씩 호전되진 않을까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장례식장 알아봐라 장지 알아봐라 상조 알아봐라

어른이니까 뭐든지 도와준다고 개소리 해대면서 결국 도와주는 사람 아무도 없고 주댕이로만 겁나게 나불댐.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아직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엄마 묘지랑 장례식장 계약하러다니는게 사람 할게 못됨.

자괴감 상실감은 말로 못하고 진짜 주변에 말기암으로 호스피스 입원한 가족 있으면 장지 장례식장 같으거 같이 알아봐주고

직계 가족들이 환자 옆에서 임종 지킬 수 있게 도와줘라 아마널 평생 은인으로 생각할거다.


그렇게 호스피스 병동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고 병원에 계신 아버지한테 전화가 옴.

"누구누구야 엄마가 보고싶다는 구나"

일하다말고 불이나케 달려감 엄마가 그동안 아들로 살아줘서 고마웠고 자기는 힘들어서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 하심.

휠체어 밀어드리면서 한참을 눈물흘림 그리고 손톱을 보니까 좀 기셔서 손톱을 깍아드리고 집에옴.

그후로는 하루하루가 불안임... 아버지 전화가 안오길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되서 아버지한테 먼저 전화를 하게됨.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지났나? 임종실로 옮긴다고 아버지께 연락이와서 업무 인계하고 병원으로 들어감.

이때는 어머니가 고통때문에 수면을 계속 시켜서 눈도 못뜨시고 말도 못하심. 

임종 지키겠다고 친지들이 너무 많이와서 제발좀 직계가족이 임종 준비할수있게 일부는 가까운 우리 집에 계시다가 연락오면 좀 오시라고

부탁드려도 들은척도 안하고 병원에서 십수명이 버티고 나가질 않음. 어머니가 중간중간 깨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해도

본인들이 먼저 달려드니 손한번 잡아볼 기회가 없음.

그렇게 둘째날 밤이 되었는데 어머니 손을 보니 손톱이 너무 길더라고? 누나가 며칠전에 다녀갔는데 왜 안깍아 드렸냐니깐

엄마가 손톱은 내가 잘 깍는다고 내가 올때까지 안 깍으시겠다고 하셨다는거임. 손톱을 깍아드리고 비상계단에 나와서 한참을 울었음.

그리고 삼일째 힘들어서 그만 하고싶다고 말씀하신대로 새벽에 숨도 한번에 못 거두시고 몇번에 걸쳐서 아주 힘들게 떠나심.

이게 말기 암 환자와 환자 가족이 겪들 일들중 일부분임.

이게 올해 구정때 일이고.



구충제 이게 몇달만 먼저 발표했으면 어머니께 구충제 권유 당연히 했다. 하루하루 가족이 죽음으로 가는 모습을 본다는게

이게 맨정신으로 사람이 할게 못된다. 더군다나 의사들의 치료와 그 과정들 그리고 호스피스 오기까지의 과정들

면역항암제 때문이라고는 정확히 말 못하겠지만 투약후 주일만의 폐혈증등 현재 암 치료 나와 우리가족한테는 부족했던 부분이었고

면역항암 안했으면 좀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반년만 더 버티셨어도 개 구충제 시도라도 해볼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 해봄.



혹시 지금 암 환자를 가족으로 둔 본인이나 가족들이 있다면 개구충제를 적극적으로 하라는게 아님

의사가 권하는거 다 해보다가 의사도 포기해버린다면 진짜 마지막으로 시도라도 해볼수 있는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