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이케우치 요시히로'라는 이름의 아기가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이타미 만사쿠라는 예명으로 일본제국에 비판적인 영화를 만들던 인물이었다. 당국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이케우치 가족은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핵으로 1946년 사망했다. 항상 의연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요시히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의 성인 이케우치 대신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가 반전운동을 할 때의 가명이었던 '이타미'를 계승한다. 그는 본명보다 이타미 주조라는 예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다. 여기서는 이케우치 요시히로가 아니라 이타미 주조로 쓴다.



이타미는 천재였다. 일본 정부가 인정한 천재였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놀라운 재능을 보인 그는 일본정부가 운영하던 영재반에 들어갔지만 1947년에 이 영재반이 군사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의혹을 가진 미군정에 의해 폐쇄된다. 그때부터 이타미는 다른 평범한 학생들과 같이 일반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수학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타미가 고등학생 때, 그는 외국 문학에 심취하여 학교 공부를 통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그는 낙제점을 받았고 유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와 똑같이 문학에 빠져 살면서 공부를 안해서 유년 처리가 된 또 하나의 낙제생이 있었다. 그들은 의기투합했고 형제처럼 지냈다, 그리고 그 낙제생은 이타미의 여동생과 눈이 맞아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 낙제생이 바로 훗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문호 오에 켄자부로였다.



대학생 시절의 오에 켄자부로. 

 



비록 생활을 위해 대학에서는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첫 직장은 전기 기술자였지만 그는 일하는 틈틈히 연기학원에 다니며 자신의 꿈을 쫓았다. 그러다가 방송용 의류 제작을 담당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이 묘하게 풀렸다. 그의 뛰어난 화술을 알아본 방송사 사람이 그에게 방송 일을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관계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배우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화배우로서는 조연급에 불과했지만 이타미는 이미 제작자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있었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번역 업무도 같이 하던 이타미는 함축성 있게 잘 요약하는 문장력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영화에 매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1960년대부터 방송과 영화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50세의 이타미는 그간 쌓은 실력과 경험을 발휘하여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이타미 주조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것은 바로 영화 제작자로서였다. 50년간 갈고 닦은 재능이 이제서야 폭발하는 셈이다. 블랙코메디 영화를 주로 제작했던 그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누들 웨스턴, 혹은 라멘 웨스턴이라 불리우는 영화 '탄포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풍자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타미의 철학이었다. 이번에 그는 임협 영화(야쿠자를 미화하는 일본 전통의 오락영화)를 풍자하는 영화 '민보의 여자'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한껏 미화하던 야쿠자의 민낯을 까발리는 영화로 야쿠자가 민간인을 협박하는 수법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 영화로 이타미 주조의 이름은 역사에 새겨지게 된다. 이 영화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 야쿠자 대책법으로 알려진 야쿠자 단속을 위한 법적 근거들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야쿠자 조직원들이 이타미를 암살하려고 했다. 야쿠자 조직 3명이 도스(휴대용 단도)로 무장하고 이타미에게 칼침을 놓았다. 얼굴과 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중상은 면했다. 하지만 이타미는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고 의연한 태도를 지켰다.





이타미는 그후로도 2년에 작품 하나를 만드는 왕성한 감독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어느날 1998년 그는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타미가 평소 성매매업소에 다니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이 폭로되어 상심 끝에 자살했을 거라고 자살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타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겨우 섹스 따위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타미가 야쿠자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야쿠자들은 집중적인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이타미에게 집착하지 않았고 야쿠자가 암살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이타미와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그가 야쿠자의 민낯을 까발린 민보의 여자와 같은 새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창가협회(일본의 종교단체)를 폭로하기 위해 취재를 벌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비록 경찰은 창가협회가 암살에 연루된 증거를 찾지 못했으나 창가협회가 이타미를 암살했을 거라는 추측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타미 주조의 영화는 엄청나게 미화되어 오던 야쿠자의 실체를 까발렸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크다. 게다가 그 영화는 일본사회를 바꾸어놓았다. 민보의 여자에 나오는 야쿠자들의 수법이 실제 수법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은 일본 국민들과 정계는 야쿠자를 철저하게 단속하게 된다. 현재 야쿠자의 정식 명칭은 반사회집단이며 야쿠자 조직원은 은행에 구좌를 개설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일본영화의 서브장르로 V-시네마라고 해서 야쿠자를 소재로 하는 저예산 영화들이 꾸준히 나온다. 솔직히 내용은 죄다 비슷비슷하지만 갈수록 남성다움이 줄어드는 일본에서 마초배우들이 몰리는 장르이기 때문에 매니아층이 두텁다. 







하지만 V-시네마가 그리는 것은 그저 낭만적인 야쿠자의 모습이고 실제 야쿠자는 그냥 사회의 쓰레기이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면 거기에 대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이타미 주조가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운, 그리고 자신의 신념이었다.





한국에서 민노총, 영화계 좌파세력, 폴리페서, 우리법연구회 등등 이것들 소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새끼들 현실을 폭로하는 영화 하나만 만들면 다 해결됨.

물론 그런 배짱을 가진 인물이 있느냐 없느냐가 한국이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겠지.








민보의 여자 풀버전 (영어 자막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