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복숭아 맛.


나는 매일 가지고 다니는, 나연 언니가 준 막대 사탕을 유심히 살펴봤다.


집에서 먹으려고 했다가 차마 아까워서 못 먹었다. 어제도, 그제도, 그제의 어제도, 그제의 그제도.


그래서 그냥 가방에 넣고 다닌다. 그리고 다현이라는 애가 준 사탕은 정말로 정연이 가져가버렸다. 도둑놈.


매점에서 막대 사탕을 샀다. 나연 언니가 준 거랑 똑같은 걸로.


두근두근하는 기분으로 껍질을 까서 입에 넣었다. 으, 복숭아 맛. 달짝지근하다. 역시 복숭아 맛은 이제 질려. 나연 언니가 준 것도 이거랑 똑같은 맛이 날까?


나는 사탕을 입에 물고 매점 의자에 앉아있었다.


정연이랑 지효, 쯔위랑 같이 매점을 왔다. 쯔위는 빵을 샀다. 지효는 초콜릿. 정연은 아이스크림.


계산을 마친 애들이 내 옆으로 앉았다.




지효 - 왜 나는 금방 배가 고프지?




지효가 초콜릿을 먹으면서 말한다.




쯔위 - 언니, 단 거 많이 먹으면 이 썩어


지효 - 얘는 저번부터 자꾸 이 썩는대. 야, 빵도 밀가루라서 좋은 건 아니거든?




냠냠 빵을 먹는 쯔위에게 지효가 버럭 말했다.


정연은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며 얘네 뭐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사탕만 먹었다. 이만 잘 닦으면 되겠지.




정연 - 모구리, 아~ 해 봐




나는 정연이 주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물었다.


평화롭고 심심한 점심시간이다. 정연이 이따금씩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디선가 머리가 떡지는 소리가 들린다.




지효 - 나연 언니는?


정연 - 뭐, 연습하고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 무슨 평가 있다는 거 같던데




마침 내가 궁금한 걸 물어주는 지효가 처음으로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점 의자를 드르륵 밀며 일어났다.


어디 가, 라고 물어보는 정연에게 손을 휘휘 흔들어주었다. 나름의 인사다.


매점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포카리스웨트를 뽑고 뺨에 대봤다. 표면이 차갑다. 그 바람에 맺혀있던 물이 얼굴에 묻었다.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으며 일어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연 - 모구리, 어디 가는데?




정연이다. 언제 따라왔지?




모모 - 나욘 온니




정연의 말을 듣고 오랜만에 나연 언니가 연습하는 걸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연 언니가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으니까. 아, 예쁘고 멋진 나연 언니.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긴장이 되려고 한다.




정연 - 나연 언니가 뭐? 체육관 간다고?


모모 - 응


정연 - 같이 가자




또또또. 어깨에 둘러지는 손을 보다가 그냥 포기하고 걸었다.


멀리 체육관 입구가 보이는데 정연이 손으로 내 귓불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이건 진짜 변태 같은데.


나는 어깨를 뒤틀며 정연을 떨쳐냈다. 왜 이래 변태 아저씨같이.




정연 - 야, 모구리. 있잖아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나는 아주 작아진 사탕을 오독오독 깨물고 주변에 휴지통을 찾다가 그냥 바닥에 막대를 버렸다.




정연 - 너 그거 알아?


모모 - 아니


정연 - 아, 야~! 왜 다 듣지도 않고 그래


모모 - 말 안해쓰니까 당욘히 모르지


정연 - 아니, 그러니까 이제부터 말하려고 그랬지!




무슨 말을 하든 얼른 했으면 좋겠다. 나는 심드렁하게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얼른 나연 언니 보고 싶은데. 한 손에 든 음료수 캔을 엄지로 더듬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연 -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모모 - 아니


정연 - 진짜 엄청 많이 좋아하는 것도 알아?


모모 - 아니


정연 - 진짜 되게 엄청 많이 좋아하는 것도 알아?


모모 - 아니


정연 -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거든


모모 - 아니




생각 없이 대답하다 보니까 마지막에 잘못 말한 거 같다. 미안하지만 딱히 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장난으로 하는 건지, 진짜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정연이 건조하고 뜨거운 손으로 내 볼을 꾹 잡아당겼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힘 조절하라고 바보야!




정연 - 넌 가끔 되게 나빠




정연이 힘없이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갑자기 뭐랄까, 정연이 좀 이상해보였다.


정연에게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연이 내게 사귀자는 카톡을 한 적이 있었지. 왜 갑자기 이게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정연을 봤다.




모모 - 유정욘


정연 - 왜. 이번엔 아예 난 아니라고 하려고?




이상하다. 정연이 이러니까 이상해.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연 - ..됐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어




내 정수리를 덮는 정연의 손.


맞아. 또 생각해 보니까 우리, 키스를 한 적이 있었지. 양호실에 누워서.


그리고 그 전에는 정연이 우는 나를 달래줬었다. 언제 이렇게 우리가 가까워졌지? 나는 잠깐 혼란스러워졌다.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된 거야. 멍하게 있는 내게 정연이 팔을 걸쳤다.




정연 - 나연 언니 보러 간다며


모모 - 응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도착하니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할 나연 언니가 없었다.


나는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차가운 계단 위에 앉았다. 정연이 옆에서 탁탁 하고 제 무릎을 두드려서 곧 옮겨 앉았지만.




정연 - 모모야


모모 - 아니


정연 - 뭐가 아니야


모모 - 구냥 말 하지 마


정연 - ..그래




정연이 내 등에 이마를 댄다.


후우 하고 뱉어지는 한숨 소리가 지나치게 잘 들렸다.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한 건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조금 젖혀 창밖의 하늘을 봤다. 하늘이 파래서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쓸 수 있다. 하늘색 우산. 나연 언니의 하늘. 좁고 어색한 공간.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나연 - 유정연! 모모야~! 둘이 거기서 뭐 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있는 나연 언니의 턱 끝에서 물이 똑 하고 떨어졌다.


앞머리가 젖어있는 걸로 봐서 세수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앉아있는 내게 걸어오는 나연 언니. 하얀 운동화가 가까워진다.


나는 얼른 들고 있던 음료수 캔을 나연 언니에게 내밀었다. 드디어, 드디어 줬다.




나연 - 나 주는 거야?


모모 - ..응


나연 - 대박~! 진짜 목말랐는데! 고마워, 모모야~ 잘 마실게




웃어주는 나연 언니를 보며 나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조리 하얗게 리셋되는 걸 느꼈다.











다현 - 언니




화장실을 가려고 교실을 나오다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 아이를 쳐다봤다.


이제 보니 얼굴이 되게 하얗게 생겼다. 두부 같아.


나는 저번에 편지에서 본 이름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모모 - 김다횬




이름을 말해주자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기야 잊어버릴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편지 임팩트가 너무 강해.




다현 - 편지 읽어봤어요?


모모 - 응




살면서 그런 이상한 편지는 처음이었어.


나는 아이를 보던 것을 그만 두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안녕, 편지 잘 봤어.


두 걸음 쯤 걸었는데 다현이 나를 따라와서 언니, 언니, 하고 부른다. 얼굴은 애기같이 생겼지만 달라붙으니까 좀 귀찮다. 시달리는 건 유정연으로 충분했다.




다현 - 언니, 언니, 언니




나는 귀찮아져서 인상을 찡그렸다.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다현 - 저 귀엽죠? 뿌잉


모모 - 응, 기여워. 잘 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손을 씻고 있는데 다현이 날 보면서 또 언니, 언니 하고 불렀다.


나는 무시하면서 손에 묻은 물기를 박수를 쳐서 털어내고 있었다.


왜 2학년 복도까지 와서 나를 따라오는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애야?


교실로 돌아오다 말고 사나네 반을 힐끔거렸다. 아, 오늘도 같이 있다. 묘이 미나. 언제쯤 떨어질까.




다현 - 언니도 귀여워요. 말투도 그렇고 너구리 닮아서 더 귀여워요!




뭐래? 옆에서 쫑알쫑알 내게 말을 거는 다현을 한 번 보고 다시 교실까지 걷는다.


사나는 5반, 나는 7반. 같은 반이 됐다면 더 좋았을 텐데.




다현 - 언니, 언니는 왜 말을 안 해요?


모모 - 해


다현 - 해봐요


모모 - 말


다현 - 또요


모모 - 잘 가




나는 손을 흔들었다.


이상한 애다. 근데 자꾸 말 시키고 그러니까 페이스에 말려드는 느낌이 들어서 무서웠다. 조심해야겠다.




다현 - 벌써 보내는 거에요? 알았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언니~




김다현은 눈이 사라질 거 같은 웃음을 날리고는 후다닥 뛰어갔다. 다시 올 필요는 없는데.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사나한테 카톡을 했다.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몇 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옛날에는 바로 바로 왔었는데.


나는 휴대폰을 책상서랍에 넣고 책상에 엎드렸다.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린 채 멍하니 하늘을 봤다.




정연 - 모구리




정연이 머리를 쓰담쓰담 해준다.


손길이 익숙해진 듯 눈이 슬슬 감겼다. 다음 시간이 뭐였더라. 아, 근현대사구나. 어쩐지 벌써부터 졸린다 했어.











집에 갈 때쯤 사나한테 답장이 왔다. 답장 늦어서 미안. 오늘 좀 바빴어. 내 맘 알지?


나는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치마 주머니에 넣고 교실을 나왔다.


복도에 나있는 창밖으로 몸을 조금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다 눈을 크게 떴다. 아, 나연 언니다.


나연 언니는 드물게 휴대폰을 보면서 걷고 있었다. 나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그 모습에 창틀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괸 채 나연 언니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나연 언니 주위로 하교하는 아이들이 지나간다. 신기한 듯 나연 언니를 보고 수군거리는 아이들.


나연 언니는 신경 쓰지 않고 휴대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나연 언니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준다. 연습하느라 고생했어.


나연 언니가 휴대폰에서 고개를 떼는 것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사나인가, 하고 휴대폰을 꺼내서 봤다.




나연 「모모야」

나연 「집에 갔어?」




카톡을 확인하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니, 하고 답장하자 저 아래의 나연 언니가 또 걷다 말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내게 카톡을 보내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연 「진짜?」

나연 「그럼 아직 교실이야?」

나연 「잠깐만 기다려 거기로 갈게」




휴대폰을 손에 꼭 쥔 나연 언니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이러는 건 좀 반칙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가 이러면 나는, 나는...


금세 복도 끝에 나타난 나연 언니를 봤다. 한달음에 내 앞까지 온 나연 언니가 숨을 고르고, 나를 본다.




나연 - 갑자기 톡해서 놀랬지?




나연 언니가 쑥스러운 듯 히히, 하고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은 처음이라서 나는 그 얼굴만을 멍하게 봤다. 예쁜 나연 언니.


 


나연 - 모모가 그냥 갔으면 어쩔까 했어


모모 - ..응


나연 - 어쨌든 만났으니까! 같이 갈 수 있겠다. 그치?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걸었다.


나연 언니가 걸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흔들린다. 달짝지근한 향기가 났다.


왜 떨리는 걸까. 그냥 같이 걸어가고 있는 것뿐인데. 우산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연 - 누가 음료수 준 건 처음이야


모모 - ..거짓말


나연 - 진짜루! 그래서 좋았어. 모모가 준거라서 더...




하긴 옆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니까 주려고 해도 못 줬겠지.


연습할 땐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는 그 무심함을 모르는 게 아닌지라 어쩐지 납득이 쉽게 갔다.


대화가 끊어져 아래를 보면서 걷고 있는데 나연 언니의 팔이 스쳤다. 너무 가까이 붙어서 걷는 건가 싶어 옆으로 조금 떨어지려는데 나연 언니가 손을 잡아왔다. 움찔하고 몸이 굳었다.




나연 - ..불편해? 놓을까?




내 안색을 살피는 나연 언니.


나는 나도 모르게 느슨해지는 나연 언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니까, 나는 언니랑 손을 잡은 게 싫지 않아.




모모 -...아니




그래. 싫지 않아.


좋아.











-


그래도 봐주시는 분들이 있기는.... 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