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팬픽은 상상에 기반한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사건, 지명, 단체는 실제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고, 만약 일치하더라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합니다.




































 
감은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예나는 마주 앉았다.



"엄마... 우리가 운명을 속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유리와 엄마처럼...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유리의 말처럼 여전히 어머니는 말이 없다. 

다만 예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궁금해, 어떻게 됐을지..."



예나는 어머니의 주름진 볼에 손을 대고 엄지로 부드럽게 쓸었다. 

그 거친 살결에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 예나는 울고 싶어졌다. 



엄마.

나의 어머니...



"오면 안 되는데... 유리처럼 이 말만 해주고 싶어서 왔어.
이 세상에 태어나... 유리를 알고, 혜원이를 만나게 해줘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예나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왔다.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다른 건 다 잊어도 절대 나는 잊지 마...?
혜원이 말고는... 모두 진짜 날 모르고 있으니까... 
엄마만... 나 꼭 좀 기억해줘..."




지켜보는 혜원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손으로 입을 막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이미 새하얗게 번져진 예나의 얼굴. 

예나의 손이...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손끝에 얼굴을 묻었다. 

억지스레 울음을 참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나... 엄마 딸... 유리었잖어..."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는 소리가 아주 조그마한 소음조차 없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 

그렇게 마지막을 고한 예나는 방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급하게 집을 나서려는 듯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후회... 안 하겠어?"



울음을 참으며 묻는 혜원을 보며 예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혜원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혜원아... 이걸로 충분해. 이해... 하지?"



혜원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예나와 혜원은 집 밖으로 나섰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 

예나는 뒤를 돌아 집을 한 번 더 둘러본다. 

어렴풋이 어머니와 어릴 적 자신의 행복했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버지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 목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다. 

예나의 입가에 힘없는 웃음이 흘러내렸다. 

이제...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

예나의 몸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지 말랬잖아."



왜 이곳을 왔을까라는 후회를 이제야 예나는 하고 있었다. 

집 밖에서 기다리던 유리와 함께 정류장을 향해 막 걷기 시작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그리운 목소리에 예나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엄마! 정신이 좀 들어?"



유리는 화들짝 놀라 어머니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예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일 수도 없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등 뒤에 사람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예나는 뒤도 돌지 못했다. 

이대로 뒤를 돌면, 

분명 자신은... 

어머니에게 달려가 그 품을 와락 끌어안을 테니...



"그렇게 착해서 어떡할래?"



걸음이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고운 음성이 예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웠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 아련했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와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둔 듯한, 어머니의 모습이 등 뒤에 느껴진다. 

예나는 눈을 감았다. 




"가면을 쓰려면 제대로 써야지, 독하지도 못해가지고 대체 왜 온 거야! 
이... 이! 병신 같은 년아!!"


"무슨 소리야 엄마! 언니들 미안해... 먼저들 정류장에 가 있어. 금방 따라갈게."




예나의 입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저 빠르게 이 공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가는 분명 무너져 내릴 테니, 

한시라도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멈춰있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예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유리야."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다시금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바보처럼 예나의 걸음이 멈추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 끝에 묻어 나오는, 

어머니의 눈물 때문에... 



"어, 엄마? 나 알아보겠어?"



유리의 목소리에 여전히 뒤돌아선 예나는 실없이 웃었다.

분명 예나는 실없이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다.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는 슬픔이 웃음과 함께 예나의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켜보는 혜원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지금 예나 앞에서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은 혜원의 입을 딱딱하게 만들어 낼 뿐이었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예나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저주받은 운명의 만남이 힘겹게도 눈앞에 있었다.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다신 찾아오지 마... 제발 잊고 살아..."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움에 몸부림치던 예나의 마음은 이토록이나 부질없었다. 

간절히 바라던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예나의 마음은 이렇게 아무런 힘조차 써보지 못한 채로 무너져 내릴 뿐이었다. 

반쯤 풀려버린 눈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길 때에도 예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유리였다.



"엄마. 대체 무슨 소리야...? 집에 들어가자 엄마. 응...?"



혜원은 더 이상 바라보기 힘들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예나는 그때에도 울지 않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예나의 몸이 다시금 멈춰 섰다. 

그리고 예나는 그 순간 감지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담겨 있던 그 어떤 것을. 




안돼, 

들어서는 안돼...




예나의 입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듣고 싶지 않아 예나는 이를 악 물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어머니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와 버리면, 

지금껏 애써 추스르며 다잡았던 마음이 한순간에 붕괴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예나는 떨구어진 두 손을 모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제발 어머니.

말하지 마세요...

지금껏 잘 버텨오셨잖아요.

어머니가 그 말을 해버리면, 

전 무너질지 몰라요... 

제발...






"엄마가... 많이 사랑해. 알지...?"







간절한 기도를 외면한 채, 

기어이 어머니의 입에선 사랑이라는 단어가 새어 나왔다. 

예나의 몸도, 혜원의 몸도, 한순간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추어졌다. 

혜원은 천천히 어머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예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멈추어진 시계처럼 딱딱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혜원의 시선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왜 이러냐며 어머니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유리의 모습,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예나의 뒷모습도...

그것들만이 혜원의 시야를 가득 메운다. 

한적한 시골길 위로 비극이 몰아치고 있었다.

운명이 이렇게 지독할 수 있는지... 

혜원은 자신의 눈가가 다시금 뜨겁게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잊고 혜원은 조용히 예나의 앞에 섰다. 

예나는...

이제야 울고 있었다.




"예나야..."

"됐어... 이제 됐어. 혜원아."




예나는 광대처럼 혜원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지었다. 

그 순간 혜원은, 예나의 눈물 젖은 미소 속에서 해방감을 보았다. 

몇 년 동안 가슴속에 꼭꼭 담아두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운명에 대한 원망을 지워내는 해방감.

그 모습이 상당히 피곤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주 오랜 달리기를 끝마치고 이제야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예나는 울었다. 

혜원은 그런 예나를 아프게 바라보았다. 

예나는 혜원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는 눈물을 닦아내고 말했다.




"이제, 꿈을 꿀 시간이야..."




그때에도 말없이 바라보는 혜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예나는, 

여전히 어머니에게 등을 보인 채.

그대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사랑해...  



라는 말을 시골 공기 속에 가득 담아둔 채로...

예나는... 

지겹도록 자신을 옥죄던 모든 어둠의 사슬을 그렇게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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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분량 창렬이라 더 ㅈㅅ;; 갈수록 힘빠져서...ㅋ;;
에필로그 남았는데 뭐 별거 없습니다. 내꺼야 8화 라디오씬 복붙하고 예나 독백만 조금 추가할 건데...
레알입니다. 전작 보셨다면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구색 맞추기인데...ㅈㅅ;;
좀 천천히 올릴게여. 지치기도 하고, 끝내기 아쉽네요. 완결까지 함께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