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ilbe.com/153186257 (1편 - 전쟁 프롤로그)
https://www.ilbe.com/153220626 (2편 - 알프스 행군)
https://www.ilbe.com/156383566 (3편 - 트라비아 전투, 트레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https://www.ilbe.com/158193101 (4편 - 파비우스 전략)
https://www.ilbe.com/160099287 (5편 - 칸나이 전투 )
https://www.ilbe.com/163928394 (6편 - 카푸아와 한니발의 동맹)
https://www.ilbe.com/167393061 (7편 - 이탈리아 전역)
https://www.ilbe.com/174975159 (8편 - 지중해 전역으로의 전쟁의 확대)
http://www.ilbe.com/10797401441 (9편 - 시라쿠사의 반란)


거두절미하고 바로 시작한다




로마와 시라쿠사와의 협상이 결렬되었고 마르켈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즉시 바다와 육지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마르켈루스의 공격 방향)


이전 레온티네의 함락시켰을 때 로마군은 준비가 미처 되기도 전에 들이쳐 함락했는데

그때처럼 시라쿠사도 준비가 미처 끝내기 전 공격하면 바로 함락할 수 있다고 본 것이지.
 


공성전의 대가인 마르켈루스는 실력이 확실히 있었음. 

기습적인 공격이었음에도 상당히 조직적으로 공격을 시작하였지. 

언제 벌써 그 정도의 채비를 갖춘 건지 모르겠다만 바다에 벌써 60척의 전함이 띄워졌음. 

이들은 세 분대로 나뉘었음.

한 전함대에는 궁병과 투석병이 잔뜩 타고 있었는데 이 선단은 멀찍이 떨어져 원거리 공격을 하였고, 그러는 동안 나머지 두 선단이 성벽에 접근한 거임. 

한 함대에는 성벽 높이의 타워와 병사가 실려있었고 이들은 그 타워를 통해 성벽 위로 오를 생각이었음. 

다른 함대는 성벽을 치는 해머를 싣고 있었고 성벽에 접근하면 이들로 성벽을 쳐서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로마군이 대단했던 건 배로도 이 정도의 공성전을 벌일 수 있는 공병기술이 있었던 거지. 




보통 이 정도의 공격이면 시라쿠사는 무너질 거라 보는 게 타당함. 

게다가 시라쿠사는 급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군대가 제대로 조직되지도 않은 상태였음. 

그런데 문제는 시라쿠사에 73세에 접어든 한 명의 천재 과학자가 있었다는 거임.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임. 



(아르키메데스)


이 사람의 공성 무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제작했는지, 진짜 실존했는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1. 먼 거리에 있는 배에는 엄청난 크기의 바윗덩어리가 날라왔다

2. 가까이에 있는 배에는 가볍지만 굉장한 연사 속도의 투석 무기가 쏟아져 내려왔다

3. 성벽 틈새마다 작은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었고 이곳에서 스콜피온, 화살이 날아왔다

4. 빔이 발사되어 배를 쬐어서 불을 붙였다






5. 성벽에 접근한 배는 거대한 포크 같은 거로 잡아다 허공에 날려버렸다 





이거 뭐 완전 공격하는 병사들이 불쌍해 죽을 지경이노 ㅋㅋㅋㅋ 



이 정도의 엄청난 방어 무기가 배치되어있기 때문에 공격은 대실패로 끝났음. 

마침내 마르켈루스는 바다의 공격을 포기하기로 함. 그 대신 육지로 공격하려고 하였음. 

그런데 성벽 아래의 바닥이 울퉁불퉁한데에 경사 진 데가 많아 병사들이 발 디딜 곳이 없었고 설령 발을 디뎠다 쳐도 바윗덩어리가 성벽 위에서 날라와 경사 위를 구르면서 병사들 머리를 직격하였음. 

괜찮은 곳에는 당연히 아르키메데스의 무시무시한 방어무기가 배치되었음. 

이래서는 절대 공격은 무리였음. 그래서 마르켈루스는 포위한 다음 식량의 공급을 끊기로 함




이렇게 방침을 정한 마르켈루스는 3분의 1의 병력을 이끌고 로마를 배신한 시칠리아섬의 도시들을 점령하러 다님. 

그중 메가라라는 도시의 경우 다른 도시에 대한 경고로서 완벽하게 학살한 뒤 파괴하였음.




이때 카르타고에서 히밀코라는 사령관을 시칠리아섬에 파병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보낸 장교라 하는데, 

시라쿠사의 소동 내내 시라쿠사에 머물고 있다가 한니발의 편지를 들고 시라쿠사의 전령과 함께 가서 25,000 보병, 3,000 기병, 12 코끼리를 받아서 온 거임. 










시칠리아에 상륙한 히밀코는 일단 아그리젠툼을 점령해 놓았음. 


그러자 시라쿠사의 히포크라테스와 에피사이데스는 상의한 뒤 에피사이데스는 도시를 맡기로 하고 히포크라테스는 10,000 보병, 500 기병을 이끌고 히밀코의 군과 합류키로 함. 


이때 마르켈루스는 자신의 육군을 이끌고 아그리젠툼으로 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히포크라테스군을 요격함. 

히포크라테스는 도망가 히밀코와 합류하였음.



뒤이어 히밀코와 히포크라테스 군이 시라쿠사 성벽 근처에 나타나 진영을 꾸렸고, 55개의 카르타고 전함도 등장하였음. 

로마 본국도 이에 대응해 팔레르모에 병력을 추가로 상륙시킴. 

히밀코는 군을 물려 팔레르모에 상륙한 로마군을 요격하러 갔는데 로마군은 빙 우회하여 마르켈루스와 합류하였고, 

시라쿠사에 도착한 카르타고 전함은 로마 전함과 전투하면 질 거라 보고 카르타고 본국으로 돌아감. 



이렇게 되자 전황은 교착상태가 되었음. 

다만 시라쿠사에 묶인 로마군에 비해 히밀코의 카르타고 군은 자유로웠고 그래서 로마의 동맹도시들을 공격하거나 회유해 카르타고 쪽으로 붙게 하러 돌아다님.

많은 도시가 카르타고 쪽으로 붙었고 그 도시에 설치된 로마 수비대들이 살해당하였음. 



여기서 헨나라는 도시가 있었음. 

이곳에 머무는 로마 수비대는 도시의 성채를 점거해 사용하였고 성문과 성채의 열쇠를 갖고 있었는데 시민들이 여기에 분통을 터뜨린 거임. 

왜 성채와 도시의 성문을 로마 수비대가 관리하느냐, 

동맹이면 동등하게 대우해야지 우리를 노예로 취급하느냐 이러면서 항의한 거지. 



로마 수비대장은 자기는 도시의 수비를 맡았고,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받아서 하는 것일 뿐이라 말함. 

그리고 불만 있음 집정관 마르켈루스에게 사절을 보내라고 답하였다. 

헨나 시민들은 마르켈루스에게 사절 보내는 것만큼은 절대로 못 한다고 답하고 (마르켈루스 이미지 알만하노) 막무가내로 떼를 썼지. 

수비대장은 그럼 도시 대표와 시민들 앞에서 공개 회담을 하겠다고 답함





수비대장은 그날 밤 자신의 병사들에게 우리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 

자신이 신호하면 시민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해놓음. 

다음날 열린 공개회담장에서 수비대장은 군복이 아닌 토가를 입고 회담을 하였는데, 그가 자신은 명령을 받았을 뿐 이리 말하자 시민들이 에워싸 열쇠를 내놓으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는 손을 들어 신호함. 

그러자 로마군은 일제히 칼을 뽑아 시민들을 학살하였음. 

Enclosed in the seating area, the people of Henna faced a massacre. The piles of bodies grew, not just from the killing but also from the stampede, as they charged down over each other’s heads and ended in heaps, the uninjured falling on the wounded, the living on the dead. Then the Romans took off in all directions, and the entire scene was one of flight and panic, as in a city taken by storm. And the fact that they were butchering an unarmed crowd did not diminish the fury of the soldiers––danger shared by both sides, and the heat of battle, would not have excited them more (Livy 24.38)

번역: 좌석에 갇힌 채로 헨나 시민들은 살육을 맞닥뜨리게 된다. 살해당하거나 우왕좌왕하다 깔린 시체가 겹겹이 쌓였다. 

다치지 않은 사람은 다친 자 위로,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 위로 깔리면서 죽어갔다. 

로마인은 사방에서 돌진하였고 그 광경은 도주와 공황으로 넘쳐났다. 마치 도시가 습격을 당한 것과 비슷하였다. 

비무장 시민들임에도 로마 군인들의 흥분을 가라앉히기엔 불충분하였다. 무르익은 전투도 이와 같진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야 어쨌건 로마가 비무장한 시민을 학살하게 된 거라 시칠리아섬의 민심은 로마를 떠나 카르타고 쪽으로 향하게 된다







(필리포스 5세)


한편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는 오레쿰을 공격하였고 오레쿰 시민들은 브렌디시움에 있는 로마 법무관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함. 

발레리우스가 4천여 명의 병력과 함께 바다를 건너 그리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오레쿰은 점령된 뒤었고, 필리포스 왕은 아폴로니아를 공격하는 중이었음. 

여기서 필리포스 왕이 한니발과 동맹을 맺은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는데, 

칸나이 전투의 지휘관인 집정관 파울루스가 과거 일리리아 전쟁을 지휘해 승리한 이후 일리리아는 로마 패권에 편입되게 된다. 

필리포스가 공격한 지역이 바로 일리리아로서,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한니발이 로마와 싸우는 중 자신은 일리리아 지역의 정복을 하는게 이 사람의 본심이었던 거지



이들은 로마군은 이탈리아 반도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등장을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음.

발레리우스는 몰래 밤중에 마케도니아군의 캠프를 공격했었고, 

난데없이 등장한 로마군의 공격에 마케도니아군은 몰살당하다시피하고 패주해서 달아남




한편 스페인에서는 두 스키피오 형제가 에보로 강을 건너 스페인으로 진입하였다. 

이때 스페인의 마고와 하스드루발은 스페인 부족과 전쟁을 치르느라 두 형제를 막을 수 없었음. 

이때 부족들이 엄청난 병력을 조직했는데, 마고, 하스드루발은 둘의 군대를 합쳐 이들과 회전을 벌여 격파하는 일도 생겼음. 




이때 스페인 전황은 완전히 개판으로서, 로마와 카르타고 지지하는 부족들이 서로 갈리고, 하스드루발과 마고는 배신한 스페인 부족들을 진압하러 돌아다녔고, 

로마의 스키피오 형제들은 카르타고 편의 스페인 부족들을 진압하러 돌아다니고, 스페인 부족들은 연합체를 구성해 로마 또는 카르타고군과 싸우거나 서로 싸우는 등 사방에서 난장판이 벌어지는 중이었음. 

단순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결장이라 볼 수가 없는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였던 거지.




드디어 한해가 지나서 집정관 선거가 개최되었음

지구전법 파비우스의 아들인 소 파비우스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집정관으로 당선되었는데, 파비우스 아들 당선은 사실상 파비우스를 당선시킨 것이나 다름없었음. 





(파비우스 막시무스)

소 파비우스의 군에 파비우스가 종군하였고, 원로원의 최고 우두머리이자 한니발 대항 전략의 총지휘관인 아버지를 집정관 달았다고 아들이 거역할 수 없었던 거지. 또 집정관도 아버지 땜에 당선된 거이고.



그리고 원로원은 20개가 넘는 군단병을 그 해에도 투입기로 결의함

이 병력 규모에 대해 Oxford Classic 출판사 측에서 주석을 다음과 같이 달았는데,

eighteen legions: eighteen legions of Romans and allies would amount to some 200,000 men; in fact the total was probably twenty legions (J. Lazenby, Hannibal’s War: A Military History (Warminster, 1978), 100). The fleets must have required another 45,000–50,000 as crews. For an ancient state, even Rome, this was a gigantic military effort.

번역: 18군단 - 로마군, 동맹시 18군단은 대략 20만에 달한다. 

사실 18군단이 아닌 (아마 스페인의 군단까지 포함하면) 20개 군단을 투입하였다. 

선단을 유지하는데 4만 5천서 5만까지 필요했을 것이므로 고대국가로서는 엄청난 군사적 노력이었다 할 수 있다



군단병 20개는 당시 기준으로 4천 200 즉 8만여 병력인데, 

여기에 동맹시 군단을 합치고, 선단의 노잡이 등등을 합치면 총규모 25만씩 해마다 투입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물량을 쏟아내는 역량을 가졌으니 정말 굉장하노. 




(10만 대군의 규모)

여기서 내 주관적인 의견을 내보는데, 칸나이 전쟁 이후가 좀 아쉽다 생각한다. 

보통 공성무기가 부족해서 포위망의 구축이 어렵다 하지만, 칸나이 전투 직후에 로마에 잠시 군사적 공백기가 생겼었고, 

이때 점령을 시도할 생각 말고 그냥 로마로 가서 일단 포위만 해놓았다면 로마가 이 정도 물량을 뽑는 시기를 늦췄을 것이고, 

로마의 위신에 정치적인 타격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이게 나만의 근본없는 뇌내망상이 아니다

L.’s view is usually rejected by moderns, on the grounds that Hannibal could not have captured heavily fortified Rome, in any case had an exhausted army, and was therefore right to stay in southern Italy to consolidate his victory by winning over defecting Roman allies. Still, he could have done this as effectively, or more so, from outside Rome; and could have disrupted all Roman efforts at recovery by blockading the city. There were few Roman troops left to prevent him. The alarm he caused when he made his famous, but totally ineffective, march on Rome in 211 (see Book 25) suggests how much greater panic would have erupted in summer 216.

Oxford Classic 출판사 측의 주석

번역: (포위를 해야 했다는) 리비우스의 관점은 현대 학계에 의해 보통 부정되는데, 이는 한니발의 군대로는 요새화된 로마시의 점령이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한니발 군은 지쳤으므로 남부에 머물면서 동맹시 이탈을 유도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니발은 포위를 다른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포위함으로써 로마의 회복속도를 늦출 수가 있었다. 

로마는 당시 한니발 군을 막을 만한 군대가 증발한 상태였다. 

또한 이후 리비우스 25권에 나오는 한니발이 211년 BC에 로마에 나타났을 때 로마인들이 보인 패닉을 미루어보아 

만약 (칸나이전 직후인) 기원전 216년 여름에 나타났을 경우 로마인들이 얼마나 큰 패닉을 보일지 짐작할 수가 있다. 



한니발 생각은 칸나이 전투로 인해 동맹시들이 상당히 많이 이탈할 것이니 

이 동맹시들이 지원을 받아 로마군을 상대하고 카르타고 본국의 지원까지 합치면 국력 상 로마를 능가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고 본 듯한데, 

문제는 동맹시들이 이탈했음에도 불구 아직도 25만씩 뽑아내는 물량 동원력을 갖고 있었다는 거임. 



카르타고군도 상당수 물량을 뽑아내 백여 척의 선단과 스페인, 누미디아, 시칠리아, 이탈리아 반도에 총 6~7개 군단이 투입되고 

이것도 19만 ~ 20만 정도에 해당하나 로마군의 물량 동원력이 5만여 정도 더 되었고 

이 차이 때문에 승부의 추가 점점 기우는 모습을 보임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아들인 신임 집정관 소 파비우스와 함께 군사 활동을 하였음. 

이들이 지휘한 로마집정관 군단은 삼니움의 아르마 족을 공격하러 감. 한니발은 아르피에 5천 명의 병력을 남긴 상태임. 



잠깐 여기서 한니발이 남긴 5천 명의 수비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카르타고 수비대들이 2천, 3천, 5천 이렇게 로마군이 도시를 공격할 때마다 등장함. 

이를 보면 생각보다 한니발도 병력을 꽤 많이 동원한 것을 알 수가 있음. 

보통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3만 보병, 1만 기병만으로 전쟁을 쭉 수행했다 생각하지만, 

한니발도 이탈리아에서의 동맹시를 확보한 이후부터는 병력을 꾸준히 조달했을 거라 보는 게 타당함. 

가령 마르켈루스가 이탈리아에 있었을 때 삼니움을 공격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삼니움 사절이 한니발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때 이들은 “우리 청년들은 다 당신과 싸우는데 누구로 우리나라를 지킵니까?” 이렇게 말하였음




 


암튼 이 5천 명의 수비대와 아르피군은 연합해 로마군을 상대하였는데, 

싸우는 도중 아르피군은 배신하여 카르타고군을 공격하였고 그 결과 아르피족은 로마의 세력권으로 편입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누미디아의 왕 시팍스는 로마와 동맹 맺기로 하고 로마 고문단을 받아 보병을 조련하여 카르타고와 전쟁을 벌임. 

이때 카르타고 군단은 시팍스 군을 크게 무찌르고, 다른 누미디아 왕 갈라의 아들인 마시시나는 기병을 이끌고 카르타고군과 함께 맹활약하였음


이때 한니발은 타렌톰 근처에 진영을 꾸린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음. 



이탈리아 브루티에서 친로마파 브루티 동맹시들이 군대를 조직해 친 카르타고 도시들을 공격하고 다녔는데, 

이들을 요격하러 온 한노의 카르타고군과 대결을 벌였다. 

한노는 한니발의 사촌으로서 론강 도하 때 기병을 지휘하였고 

폴리비우스 사료에 따르면 칸나이 전투의 우익을 지휘하였던 즉 기병지휘관인 3인자의 포지션의 인물이었음. 

칸나이 전투 직후 한니발은 2인자인 동생 마고에게 군대를 쪼개 따로 맡겼는데, 

마고가 카르타고 본국으로 간 뒤 스페인으로 가자 한노가 이를 지휘하게 된거지.


이게 리비우스 사료에만 등장하는 마하르발과 묘하게 포지션이 겹치는데, 마하르발은 조금만 조예가 있음 누군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마하르발은 리비우스 사료에 따름 기병대장이자 사촌으로서 칸나이 전투에서 우익을 지휘하였는데 

폴리비우스에 따름 이 한노가 칸나이의 우익을 지휘하였다 하고, 또 론강에서는 기병대장 직책을 한노가 맡았음. 

왜 기병대장직이 마하르발과 한노를 왔다갔다가 하는가? 

또 마하르발은 칸나이 이후 갑자기 자취를 감춰 버린 뒤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데, 

어쩌면 한노와 마하르발이 동일인물일 수 있지 않겠노. 



암튼 이 한노는 브루티의 동맹시 군단과 회전을 벌여 이들을 섬멸하고 반란을 진압한다.

즉 보면 "한니발이 지휘하지 않는 카르타고군"이 포에니 전쟁 내내 로마한테 함량미달의 전과를 보였지만, 

특이하게 로마만 아니면 "전승"을 찍는 전력이긴 하였다는 거지. 스페인, 브루티, 누미디아 모두를 상대로 승리하였노.






이때 로마시에서는 전쟁에 지친 시민들 사이에 이교 신앙이 유행하기 시작하였음. 

로마는 안 그럴 거 같지만 생각보다 종교적인 국가였는데, 많은 원로원이 제사관 경력을 역임하였고, 

전조를 선포하는 행위가 우리 생각보다 정책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 

이들은 이것을 묵과할 수가 없었고 이들을 모두 체포하고 서적을 압수한 뒤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함. 

즉 이를 보면 로마인들도 이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마음고생이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한해가 또 지나고 집정관 선거가 개최됨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와 시칠리아 법무관 출신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집정관에 선출된다. 

이때 선출된 공직자 중 안찰관에 당선된 인물로 22살 먹은 푸빌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훗날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있었음. 

원로원은 그해 군단 수를 더 늘려 무려 25개 군단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때 원로원에 칸나이 패잔병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칸나이 패잔병은 원로원에게 시칠리아에 주둔하면서 어떤 도시에서의 입성도, 어떤 전투에 투입되지도 못하는 형벌을 받는 중이었음. 

즉 길거리서 노숙하는 군대 생활을 무려 6년간 계속하는 중인데 고대 사회라고 정말 인권이고 뭐고 없노 ㅋㅋㅋ 


(칸나이 전투 상상도)


이 칸나이 패잔병들은 일단 마르켈루스를 만나 눈물로 호소하니 마르켈루스도 이들이 불쌍해 보였나 봐. 

하지만 자기는 이 일을 결정할 권한이 없으니 이들의 편지를 원로원에 보내겠다 하였지. 

서신에서 장교단과 지휘관은 멀쩡히 공직 생활하는데 우리한테만 책임을 지우고 형을 내리는 게 너무 가혹하다

최소 전투에 투입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달라는 요청을 담겨있는데, 원로원은 이것을 강경하게 거부함. 

답신은 철회할 수 없다, 마르셀루스가 이들을 기용하는 걸 막지는 않겠다. 하지만 전공을 세운다 해도 철회 못한다임




여기서 원로원이 왜 이렇게 이 칸나이 병사들에게 가혹한지 가설이 있다



칸나이 전투가 벌어진 배경을 보면 시민들이 원로원을 강력하게 디스하고, 조기 결전을 강경히 요청하였음. 

즉 원로원에게 대들은 시민들이 바로 칸나이 병사들이었던 거라 할 수가 있는 거지. 

또한 이때 벌써 그라쿠스 형제 사건 때 모습을 보인 민중파라 보일 수 있는 집단이 등장하였음. 

이들의 수장이 저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의 패배한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로서, 

그는 호민관시절 이들의 지지를 얻어 원로원의 모든 상업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전적이 있었음. 

이것은 원로원의 기득권을 크게 침해한 것이었음. 

즉 그라쿠스 형제 때 나타난 호민관을 내세운 평민과 원로원을 구성한 귀족의 대결이 이때 이미 등장했던 것임. 







한니발의 침입으로 전쟁하느라 늦춰졌을 뿐, 

두 세력의 불평등으로 인한 두 세력 간의 갈등은 50년 뒤의 그라쿠스 형제까지 갈 거 없이 벌써 로마에 나타났던 거지. 

그리고 사료상 칸나이 전투를 주장한 게 이 평민 세력이었음. 

따라서 원로원이 이들에게 매우 가혹했던 것은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