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문제는 가족주의, 개인주의, 공공주의 세가지 중에서 가족주의만 중시하여 나머지 사고 틀을 없애버린 것이다.


가족주의가 열등한 이유는 인간이 "감정적이고 유아기적인 연령적 특성"속에 정신이 박제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교를 없애야 하는데, 한국의 유교는 이런 '가족주의'를 강제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독립'이 아닌 서로에게 '의존'을 가르치고 실습한다. 이렇게 의존심만 길러놔서 가족들에게 의존만 하니, 인식의 지평은 늘 좁아지기만 하는 것. 이것이 반복되면, 내가 틀렸어도, 가족들이 나를 받아주고 동의 동감해주고 편들어주는 것에 취하려들고 그 편안함 속에 유아기적 가족주의 정신연령에 박제가 되어버린다. 그 외의 다른 사고 옵션을 모르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인의 집단은 함께 좁아지고, 열등해진 것이다.


그 결과, 공공 속에서 나 개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모르는 타인과 함께 공리를 위해 희생하는 사고와 행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 공공 따위는 그냥 가족 밖의 것들이므로, 어기고 배신하고 망쳐도 되는 못난것들로 격하되기 때문이다. 개인 또한, 그냥 가족보다 못한 약한 것으로 가볍게 퉁쳐 버리고 개무시하며 넘어가는 사고 행태에 이른다. 강한 지적 모험심과 공공과 공리를 위하는 프론티어 창조자 정신 등이 이런 가족주의적 폭력성과 안온함 속에서 당연히 나올 수가 없다.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을 통해, 개인 능력과 개인 지성을 길렀다. 그리고 가족집단이 아닌, 회사적인 사업 집단인 다이묘 산하의 사무라이 집단 속에서 공공 집단 지성을 잘 키워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충분히 개인 능력 발휘나, 집단의 항해나 무역 등을 통한 모험심과 진취적 기업가적 기상을 습득하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해서 개인과 공공집단 지성이 함께 뛰어나게 되었다. 가족은 오히려 강한 결속 관계는 아니고 그냥 잘 쉬는 장소 정도였다. 서양인들도 도제인 제도 등, 가족이 아닌 공공의 회사집단과 개인의 훈련이 결합된 형태로 모험과 사업과 군대가 함께 발달된다. 일본과 구미는 함께 이런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쳐왔다.


이렇듯 가족주의, 개인주의, 공공주의 중 후자 두 가지를 잘 발달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가정이란, 무난하고 잘 쉬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걸 무슨 미친듯이 애틋하게 신격화 하고 그러는 것은, 유아기적 애착기를 졸업 못하고 박제된, 성장이 '덜 떨어진' 인간의 병크짓일 뿐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개인주의와 공공주의가 중심이 되고, 그런 '남부 이탈리아 마피아적 가족 이기주의'는 중심이 아니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후진국인 것이다.


한국인의 가장 큰 문제는 '남부 이탈리아 마피아식 가족 이기주의'가, 개인도, 공공도 싹 다 밀어버려서 없애버린 것이다. 개인과 공공을 크게 살리고, 가족은 거들뿐의 (당연한)수준으로 격하시켜야만 한 단계 더욱 한국이 도약한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아니, 한국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질척한 가족주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유교까지 종교적 압박으로 결합까지 되어 있으니 더욱 어렵다. 가족이 곧 종교인 것이 한국이다.



왜 이민을 가세요? 흔히들 그렇게 묻는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데 구차하게 물고 늘어지는 지긋지긋한 '가족주의의 덫'을 확찢해서 없애버리고, '개인주의'와 '공공주의'가 활짝 꽃피워져 있어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하며 살 수 있는 선진국이 좋아서 입니다. 그곳에서 공리를 위해 헌신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인생을 살며 누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본심의 대답이다. 시골에서 벗어나 대도시에 잘 정착하면, 실패하지 않는 이상 시골에 정착하러 돌아가진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