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종들은 조선에서 조공을 바치면,  중국에서 책봉을 하사했다면서 


조선이 명예 대신에 경제적 실익을 챙긴 거라고 주장하는 데.



 실제로는 조공,책봉을 


당시 시대의 금전적 가치로 비교하면.  경제적 실익면에서도 조선이 10배나 금전적인 적자를 봤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1&cp_code=cp0301&index_id=cp03010473&content_id=cp0301047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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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뿐 아니라 그 이전 명나라 때도 조선이 적자를 봤다. 


https://books.google.co.uk/books?id=PQlbCwAAQBAJ&pg=PT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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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조공,책봉은 의리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독특한 경제적 무역 방식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민간무역을 금지하고.  


국가에서만 무역하며. 국가에서 하는 무역은 조공무역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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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co.uk/books?id=PQlbCwAAQBAJ&pg=PT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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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역 방식은 조선도 그대로 담습했다. 중국을 본떠 조선은 주변국인 일본이나 여진에 대해 조공을 바치면 그 대가를 하사한다는 식으로 무역에 임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첫째, 조선은 중국에 사대하는 처지였으므로 그 자신도 조공을 바치는 위치였다. 둘째, 조선의 생각과 달리 일본과 여진은 조선을 상국으로 받들지 않았다. 셋째, 위(중국)로는 바치고 아래(일본, 여진)로는 베푸는 조선의 무역은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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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저자에 대한, 한국 전문가들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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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 소중화사상이 있어. 무역방식도 중국을 담습했었는 데. 


소중화사상이란, 자신들을 중화의 유사중화, 소중화라고 부심을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소중화사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38262&cid=42044&categoryId=4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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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민간 무역은 금지했으며,  국가간 무역만을 합법적 무역으로 삼았는 데. 


중화사상의 중국에서는  중국과 다른나라가 대등하게 거래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사상에 어긋나는 일이였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교역'은 필요했기에 


중국은 자신들을 상국으로 받드는 나라와만 조공,책봉 형태로만 교역을 하였으며,



중국은 자신들을 상국으로 모시지 않는 나라와는 무역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으며 


실제로 일본,서양은 중국을 상국으로 받들지 않았기에 중국에서는 일본,서양과 무역을 하지 않았다.  허세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국에서는 일본,서양과 무역을 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조공외교를 하는 조선을 통해서.  중국의 물자가 조선을 통해서 일본으로 유입되고 


중국과 서양은 민간영역에서 불법 밀수로 거래가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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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과 교역하는 것은 대등한 거래가 아니라 조공,하사라는 중화사상의 중국 행태를 담습한 것이


소중화라고 부심을 부리는 조선인 데


조선은 다른나라와 교역하면서 그걸 조선이 다른나라에 문물을 전수하는 것이며 하사하는 것이라고 당시 조선인들이 자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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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들은 문물을 전수했다고 정센승리 했었다 


하지만 그건 조선인들이 환각을 보는 것이였고 



 일본, 여진 등 주변국가는 모두 조선을 주제에 맞게 취급했고,  


다른나라에서는 조선을 지능이 떨어지는 국가라고 판단했었고. 그게 사실이였다. 


무역에서 조선이 매번 적자를 보며, 자신에게 유리한 무역이 되도록 주도할 외교력도 없었던 조선은 후진국으로 평가된다. 



( *여담으로,  한국에서 손님이 왕이라며 갑질이 있는 것도. 이 소중화사상의 잔재이다. 


일본에서는 직원이 서비스를 제공하면, 손님이 대가(현금)을 지불한다는 대등한 거래라는 인식인 데


한국에서는 손님이 상전이라며 소중화사상에 따라 진상을 부린다. )



 조선은 다른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문물을 전수하는거니, 하사하는 거라고 소중화 부심을 부리며 환각을 보다가 



일청전쟁으로 조선인이 현실을 겪게 된다.



일본이 청나라 군대를 죽이고, 일청전쟁에서 승리하며


조선인을 죽이겠다고, 일본제국의 강대함을 나타내자. 



조선왕 고종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감히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라를 바친다. 



일본 : 조선인을 죽이겠다. 


조선왕 :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나라를 바치겠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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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한국인들은 조공무역에서 특히 명나라에서 받은 회사품(하사품)이 많았다고 주장하는 데. 



한국인들은 


조공무역이 아닌 다른 경우로 받은 하사품까지도 


조공무역으로 받은 회사품(하사품)에 넣어서 조공무역으로 이득봤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하사품이 아닌 경우까지 하사품이라고 날조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표 사례로는 한국 보물 제440호인 '八賜品(팔사품)'이 날조된 유물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3&aid=0006206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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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조선은 청나라와 조공무역을 하면서 



과거사 날조 습성을 가진 조선인들이 과거 명나라 유물을 날조하는 것이 성행한다. 


소중화부심이 있던 조선인에게 조선이 후진국인 게 그들 사상과 어긋난다며 


명나라에게 이쁨을 많이 받았다고 환각보는 조선인들이 지들 입맛에 맞게 


명나라 황제 하사품이라고 가짜유물을 날조를 해댔다. 



팔사품은 명나라(1368∼1644) 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1861년 신관호가 날조해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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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정리>


조공,책봉은 의리로 하는 게 아니라. 


중화의 존심으로 허세 부린 '무역방식'이며,  그 외에 다른 무역은 하지 않았다. 중국이 인정하는 유일한 무역이다. 그게 아니면 밀수업자들의 밀수 범죄 밖에 없다. 



 조공으로 조선이 실익을 봤다는 주장은 


중국-조선의 무역에서 조선이 이익을 봤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인 데. 


실제로 당시 가치로 환산해보면 중국이 이익을 보고 조선이 적자를 본 무역으로 드러난다. 조선이 실익을 봤다는 한국의 주장은 거짓이다. 


무역에서 중국이 이익을 봤다. 



당시 시대의 무역이란 강대국이 이익을 보고, 후진국이 손해를 보는 게 일반적이였으며 


조선은 유리한 무역이 되게 주도할 외교력이 없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