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돌이들의 신: 스즈키 토시후미
지금은 흔한 직업인 편의점 직원, 속칭 편돌이. 우리가 알고 있는 편돌이라는 직업이 탄생한 것은 일본의 사업가 스즈키 토시후미라는 사람 덕분이다.
1932년 태어난 스즈키 토시후미는 1956년 출판사 판매원으로 사회인 생활을 시작했다. 판매원 생활을 약 7년 경험한 후, 스즈키는 수퍼마켓 체인점 '이토요카도'로 직장을 옮겼다. 그곳에서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이토요카도 근무 8년째에는 임원이 되었다. 스즈키는 스스로에 대해 말주변은 없지만 늘 남과 달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생각하던 은둔형 타입이라고 한다.
1970년대. 일본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사업 확장을 모색하던 스즈키는 시장 연구 삼아 미국에 여행을 갔다가 편의점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사업을 발견한다. 미국보다 일본에 더 적합하다고 내다본 스즈키는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던 미국 기업 사우스랜드와 제휴하여 '세븐일레븐 저팬'을 설립했다. 그리고 일본의 세븐일레븐 1호점이 1974년 문을 열었다. 1년간 미국식 편의점은 일본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으며 좋은 수익을 올렸다. 새로운 사업을 찾아내고 추진한 공을 인정받아 스즈키는 세븐일레븐 저팬의 대표이사로 발탁되었다.
스즈키는 이토요카도에서는 일개 상무에 불과했지만 세븐일레븐 저팬에서는 대표이사였다. 스즈키도 이제는 자신의 성을 가진 성주이다. 그리고 그는 이토요카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철학대로 세븐일레븐을 운영해나가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 24시간 영업을 선언했고 도시락 판매도 추진했다. 이는 당시의 경영 상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경영이었다. 24시간 영업은 손님이 올 것 같지 않은 심야에도 운영을 하면 비용이 수익보다 더 들어간다고 비판을 받았고 유통기한이 극단적으로 짧은 도시락 판매는 '다 못 팔면 재고들은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스즈키는 일본 같은 도심지에서는 손쉽게 찾아갈 수 있고 있을 건 모두 있는 가게는반드시 통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스즈키는 세븐일레븐의 사업을 계속 확장해나갔다.
세븐일레븐은 단순히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와 파는 가게 뿐만이 아니라 현지 상황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여 판매한다는 야심찬 구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소매업에서는 그날의 결산을 당일 영업을 끝낸 다음에 했었다. 이러한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단기 전략을 개발할 수 없다고 내다본 스즈키는 당시 미국에서 막 도입되고 있었던 Point of Sales system을 도입했다. POS 시스템은 점원이 가격을 실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품목과 가격을 미리 레지 머신에 입력한 것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가게에서 쓰이는 시스템인데 이것을 일본에서 제일 처음 도입한 기업이 세븐일레븐이었다.
스즈키는 레지 머신에 찍히는 판매 기록을 빅데이터로 활용했다. 어떤 계절에 어떤 상품이 잘 팔린다는 점을 계속 연구하여 한정된 기간동안에만 판매하는 인기상품을 개발해냈다. 한정판매는 당시 '늘 같은 물건을 판다고 알려진' 편의점 경영에 혁신을 가져왔다.
스즈키의 세븐일레븐은 승승장구했다. 1991년에는 사우스랜드의 경영원을 사들이며 이제 세븐일레븐은 미국기업이 아니라 일본기업이 되었다. 또한 스즈키는 이토요카도의 사장에도 취임했다. 그러나 스즈키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사업을 확장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세븐일레븐 뱅크를 설립하여 납세나 결제 등을 편의점에서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블랙기업으로 비판받으며 언론 앞에서 사과 회견을 하는 스즈키 회장
그러나 스즈키가 늘 바람직한 혁신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스즈키는 (요즘 한국에서 갑질로 알려진)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고통도 개발해낸 장본인이다. 스즈키는 세븐일레븐 확장의 전략으로 '도미넌트 전략'을 선택했는데 이는 세븐일레븐 가맹점을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여러개 내어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 지역은 세븐일레븐이 꽉 잡고 있다'는 인상을 주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도미넌트 전략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 입장에서는 본사가 가맹점주들의 상권을 존중해주지 않고 가게만 마구 내면 된다 식의 만행이다. 게다가 스즈키는 본사에서 개발해낸 상품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반드시 구매하도록 의무화했다. 설상가상으로 24시간 영업은 기본인데 그 부분은 본사가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에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장시간 근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일찍 일본에서는 편돌이가 지위 낮은 직장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세븐일레븐이 처음 확장해나갈 때에는(직영점 시절) 점원들에게 손님들에게 인사할 것을 의무화했는데 지금은 그냥 각 가맹점주들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편돌이는 불친절하다'는 이미지는 일본도 다를 거 없다.
편돌이들의 신화: 이사카 류이치
스즈키가 계획을 세우면 이를 현장에서 실행에 옮기는 실무자는 이사카 류이치였다.
1957년생인 이사카 류이치는 소위 금수저였다. 증권사 임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랐다.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1980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세븐일레븐 저팬에 입사한 그는 물류 유통의 최전선에서 뛰게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있던 시간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트럭을 타고 각 가게들을 돌아다니던 생활의 연속이었다. 크리스마스나 설날 때에도 트럭을 타고 각 지점들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이사카는 그 고난의 세월을 용케 견뎌냈다. 가혹한 업무에도 군소리하지 않고 견디는 이사카를 눈여겨본 스즈키는 그를 발탁하여 한정판매 상품 개발팀으로 옮겼다.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제는 연구실이라는 이름의 주방에서 조미료의 양, 시식단의 평가, 판매 기록 등을 수시로 기록하고 다니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도 제때 돌아가지 못하는 말단 생활은 29세 때까지 계속 되었다.
29세가 되던 해, 스즈키는 이사카를 불러 "도시락 세트를 개발하라"는 프로젝트를 맡겼다. 삼각김밥과 달리 도시락은 반찬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조합을 만들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이사카는 자신의 미래가 열린 것은 이 프로젝트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이사카는 하도 오랫동안 주방에서 근무하다 보니 왠만한 주방장들보다 요리에 대해 더 박식하게 될 정도였다. 9번 실패했는데 10번째에서 겨우 스즈키로부터 합격을 받았다. 이 일을 통해 스즈키는 이사카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스즈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업은, 다른 편의점들과의 차별화에서 가장 중요한 '한정판매 도시락 개발'인데 그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이사카가 스즈키의 오른팔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도시락 분야를 이사카에게 맡기고 스즈키는 사업 확장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세븐일레븐이 기본의 유통에서 벗어나 금융업, 벤처투자 등에 관여할 수 있었던 것도 편의점 사업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 저팬의 식품개발본부장으로 몇십년에 걸쳐 편의점 사업을 지탱해오던 이사카는 2009년 정식으로 세븐일레븐 저팬의 사장이 되었다. (스즈키는 세븐일레븐 산하 기업들의 그룹인 세븐아이홀딩스 회장) 그리고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전국의 편의점들과 주방을 돌아다니던 이사카 류이치는 이제 편돌이들의 신화가 되었다.
사장이 된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현장을 오랫동안 알았다 하더라도 사장실에 갇힌 사람은 현장의 변화를 볼 수 없다. 현장의 변화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급화'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자기가 승진했으니 이제 자기가 인생을 바쳐 돌본 사업도 '고급'이 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착각이다. 이사카는 세븐일레븐의 고급화를 내세우면서 가격 인상을 감행하는 등, 편의점의 본분을 잊은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프랑스 고급식빵이나 브라질 원두커피를 굳이 편의점에서 살 사람이 있을지는 나도 의문이다.
쿠데타
2016년 2월, 성장세가 둔화되고 설상가상으로 세븐일레븐의 가맹점주들을 착취하는 행태가 알려지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자 스즈키는 고심 끝에 경영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마도 깨끗하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의 레전드가 된 혼다 소이치로(https://www.ilbe.com/6615205383)를 떠올렸을 것이다.
스즈키는 이사카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면서 동반 은퇴를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스즈키는 이사카가 이번에도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즈키보다 25살이나 젊은 이사카는 2009년에서야 간신히 자신의 성을 가진 성주가 되었는데 아직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세븐아이홀딩스의 각 사장들이 자신을 지지하자 이사카는 스즈키에게 아직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스즈키는 격노했다. 이것을 이사카의 쿠데타로 간주한 스즈키는 자신의 은퇴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먼저 세븐일레븐 저팬의 사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사카는 세븐일레븐의 위상이 나빠진 것은 스즈키 회장이 도입한 도미넌트 전략의 문제이지 결코 자신이 책임을 질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경영 실적 악화는 스즈키 회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원인이고 기존의 물류 쪽은 건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사카가 스즈키의 명령에 항명하면서 결국 이사카의 거취 문제는 세븐아이홀딩스의 주주총회의 투표로 결정나게 되었다. 스즈키는 이사카가 사장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퇴진하겠다고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올해 83세가 되는 '편돌이들을 창조해낸 신'의 권위는 아직 한창 나이인 '편돌이 레전드'보다 약해져 있었다. 스즈키가 요구한 사장 퇴진은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부결되었다. 스즈키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그는 약속대로 세븐아이홀딩스에서의 은퇴를 발표했다.
2016년 5월. 이사카는 주주총회에서 세븐아이홀딩스의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주주총회에서는 창업주를 저렇게 쫓아내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스즈키에게경영 최고 고문 자리를 주자는 의견이 있었으니 이사카 회장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경영에 참여할 실권이 없는 명예회장 자리만을 주기로 결정되었다. 쿠데타를 통해 세븐아이홀딩스의 새로운 성주가 된 이사카에게 스즈키의 자녀들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상하차, 편돌이, 주방보조(개발팀장이었지만)를 거쳐 세븐아이홀딩스 회장이 된 이사카 류이치
그러나 경영면에서 세븐일레븐의 미래는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스즈키 회장보다야 젊지만 이미 노년에 접어든 이사카 회장이 여전히 신제품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모든 신제품은 이사카 회장이 시식을 해보고 합격시킨 것만이 상품이 된다. 게다가 편의점의 고급화 전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대로라면 싼 가격으로 승부하는 경쟁자 편의점들에게 밀린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가맹점주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거론되지 않은 채이다. 눈앞의 실적을 위해 이사카도 도미넌트 전략을 계승한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편돌이들에게
나는 한국의 편돌이들이 꿈을 크게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결코 편돌이로서 성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사카 류이치처럼 성공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카 류이치를 소개한 이유는 그가 편돌이로서 성공한 정말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편돌이가 적성에 맞는다고 말하는 게이가 있다면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사카 류이치처럼 살 자신이 있는지. 자신이 있다면 편돌이로 한 우물을 파라. 약 40년간 편돌이로 활약하여 기어이 한국 최고의 편돌이가 되기 바란다.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자신의 무기를 찾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시작하기 바란다.
좆제동이 지금 저렇게 깝치는 것은 JTBC 손석희가 자신의 기둥서방임을 믿기 때문이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까지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지금 갖고 있는 직장이 영원히 자기를 지켜주리라고 믿는 것은 한심하다. 편돌이들이 지금 어쨌거나 돈을 벌게 해주는 편의점을 떠난 이후의 삶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종들이라면 좆제동이야말로 방송계의 편돌이이다. 개 손석희에게 된장 바를 날이 온다면 개진드기 좆제동의 미래는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일게이들은 적어도 좆제동보다는 잘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