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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暴徒) 백남기 묘갈(墓碣)에는 '농민'이라고 새길까, 

'열사'라고 새길까? 


1. 백남기는 폴리스 라인을 넘어 >>> 경찰을 향해 공세를 

펼치는 무리에 가담해 >>> 밧줄로 경찰버스를 당기던 중

 >>>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2. 백남기는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부춘 마을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입학했지만 소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박정희 정부시기에 2회 제적을 당해 가톨릭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 초까지 계속 민주화운동을 벌이다가 

5·18 광주사태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이어 중앙대학교에서 퇴학 당하고,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3. 백남기는 가석방 후 고향으로 귀향해 1986년에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여, 1992년~1993년 

카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을역임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토종밀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

본부의 창립을 주도하여 1994년 공동의장으로 활동하였다.


4. 백남기는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폭력시위에서 폴리스 라인을 넘어 경찰을 향해 공세를 

펼치는 무리에 가담해, 밧줄로 경찰 버스를 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후 뇌출혈로 오후 

7시 30분에 구급차에 실려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317일 

동안 투병하다가 2016년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위키백과 중에서]


[출처]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백남기


"백남기의 일생은 농민이라기 보다는, 한 평생 

조국에 돌맹이를 던지던 폭도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