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얼마전에 모르고 일베똥을 가공해서 일베에간 北끄러운 게이야
일베에는 자지들 밖에 없어서 차에 관심이 좀 있겠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동차 브랜드는 현대라는거 다 알제?
물론 횬다이가 국내와 해외 차별하는게 좀 있지만 그래도 몇십년전만해도 자동차의 자짜도 어울리지 않았던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해외에서 잘알려진 브랜드라는건 사실이지 않盧?(사실 원조가카께서 고속도로깔아서 왕회장이 그거에 필받아서 요시~!하며 자동차 산업 추진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현대차의 기함들을 간략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해.
자 우선
1세대. 그라나다 V6




포드에 대해서 좀 아는 게이들은 포드가 북미포드와 유럽포드가 따로 따로 있었었다는걸 아는 게이도 있을거야
1977년 독일포드는 신형 그라나다를 출시했다.
검은 라디에이터 크릴에 검은창틀과 몰딩 등이 특징이었다.
안전유리, 타이어, 뒷유리열선, 앞좌석의 헤드레스트, 할로겐 헤드램프 등을 기본장비로 했다.
배기량 1933cc, 최대출력 102마력의 고성능 6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왠만한 악조건의 도로에서도 강력한 힘을 냈다.
구동방식은 RWD였다.
또 한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단단한 차체, 정면충돌 때의 충격을 줄이는 긴 보닛, 신속하고 강력한 제동효과를 거두는 유압식 진공배력 2중 브레이크, 충돌시 운전자를 보호하는 충격흡수식 스티어링 휠, 넓은 휠베이스와 트레드, 네바퀴 독립 현가장치 등으로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
이외에도 각종 최신식 자동조정장치, 4스포크 핸들과 파워 스티어링은 발매당시 쉽게 볼수없는 편의장비였다.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안락하고 안전한 시트, 중후한 실내분위기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남겼다.
뒤 윈도에는 전기열선을 장착하고 앞 윈도에는 라미네이트 안전 2중유리를 사용했다.
야간 안전운행을 위해 할로겐 헤드램프, 어린이 보호용 잠금장치, 헤드램프는 오버라이더에 설치된 헤드램프 워셔가 있어 실내에서 조정해 닦을 수 있다.
1985년 3월 13일에 독일에서의 그라나다 생산이 종료되었다.
1972년 3월부터 1985년 3월 13년간 1619265대가 생산되었고 그 중 반은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현대자동차는 1978년 11월 독일포드와 기술제휴로 한국에서 그라나다를 생산하였다.
1985년 12월 생산이 중단될때까지 현대자동차의 최고급차였다.
본넷의 포드마크는 당시 현대가 포드의 부품을 받아서 조립하는 정도여서 포드 엠블럼을 그대로 박은거다
또한 국내 최초로 차안에 카폰이라는 부의 상징을 탑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대 v6엔진 탑제한 놈이지도 하지
무한도전에서 명수옹은 6살?인가 거기보면 차덕후인 매뚝형이 길이 아빠차가 그라나다라는걸 듣고 개깜놀하며 보픈카본 김치녀마냥 지려댄걸 본 개이들 많겠지?
그정도로 그당시 초 고가 차였지. 그리고 전땅크시절을 그린 제5공화국에서도 땅크성님이 그라나다안에서 순자여사와 타고 집에가다가 10.26사태 터진걸 알게 되는 장면도있고 나중에 탈라甲인 안기부장 장세동이 타고다녔제
그리고 여담이지만 현대 왕회장 장자인 고 인천제철 회장 정몽필씨가 노짱보다 먼저 갈때 타고 간 차여서 비운의 기함이라고도 하지.
그럼 2세대를 알아볼까?


자 이녀석으로 말하자면 뭔지 알지?
바로 각그랜져... 80~90년대의 부의 상징이자 어깨성님들의 허새 필수품중 하나인 놈이지
당시 현대는 자신들을 부품기지로 만들려던 포드의 야욕을 느끼고 포드좆까를 외치며 결별한후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지
더군다나 그쯤에는 쌍팔(88)올림픽이 열리고 여러 국제 행사들이 개최될 시기라서 대형 기함이 필수적으로 필요헀었는데.....
그때 마침 쪽국의 미쓰비시에서도 지들 대형 기함을 풀모델 체인지 해야되는대 하도 안해서 욕을 한바가지 처먹다가 지들 눈에는 호갱처럼 보였던 현대가 눈이 띈거지...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한테 탈탈 털리지만
그렇게 현대와 미쓰비시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서 그랜져가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그라나다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도입했지만 이녀석이 ㅅㅌ처서 후에 미쓰비시에게 기술을 뜯어 낼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제원을 살펴보자면
전장(mm)4865
전폭(mm) 1725
전고(mm) 1450
실내(mm) 장 1955
폭 1460
고 1180
윤거(mm) 전 1455
후 1405
축간거리(mm) 2735
차량중량(kg) 1390
배기량(cc) 1997(4기통)
최대출력(ps/rpm) 120/5000
최대토오크(kg.m/rpm) 16.2/3500
최고속도(km/h) 162
최저지상고(mm) 180
최소회전반경(m)
연료탱크용량(ℓ) 72
타이어 162
이렇게 그랜져는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날개 돋힌듯 팔리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라이벌이였던 도요타 크라운하고 닛산 프레지던트에의해 밀려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것이 바로 미쓰비시 입장에서는 잘못된 만남의 초기단계이기도 하지.
그럼 다음 3세대 기함으로 넘어가볼까?

각그랜져에서 쫌 순화된 이미지로 돌아온 2세대 뉴그랜져다.
이녀석부터는 현대 또한 같이 공동개발을 해서 나온 차량이다. 이때부터 디자인에 현대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디자인만 봐도 각그랜져에비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될정도로 곡선미를 넣어서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미쓰비시는 당시 베스트셀링카였던 자사의 중형세단인 디아망테/시그마의 뼈대를 이용하여 현대의 디자인을 받아드려 2세대 그랜져이자 3세대 디아망테가 탄생하게 되었다.
엔진은 데보네어는 V6 2.5와 3.5가 사용되었지만 그랜져는 구형의 엔진인 4기통 2.0과 2.4 그리고 V6 3.0을 쓰다가 나중에 데보네어와 똑같은 엔진을 쓰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놈또한 무진장 잘팔려서 희소성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현대에서 짱구를 잘굴려서 뉴그랜져의 고급형이라고 할수있는 다이너스티가 나오게 된다.
자 다음 死세대 기함인 다이너스티

앞서 뉴그랜져에서 말했던것처럼 뉴그랜져 고급형버전이라고 생각하면된다
예를 들자면 토요타 셀시오하고 렉서스LS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이녀석은 왕회장이 북괴로 소때 셔틀할때 왕회장 의전차량으로 사용되었고 정일이도 다이너스티를 보고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에 감탄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녀석은 리무진 버전또한 존재하고 소비자 평도 좋아서 에쿠스가 데뷔하고 나서도 05년까지 출시된 차량이다.
어떻게 본다면 제네시스 포지션의 원조격 차량이기도 하다.


자 그럼 다음은 5세대 기함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면 북괴간첩소리를 듣는 각쿠스랑께
탄생비화에대해서 썰을 풀자면 90년대말까지 세계시장에서 현대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헀지.
그렇다고 이렇다할 기술도 없었고
미쓰비시와 협력관계... 말이 좋아 협력관계지 그냥 최상위 기술말고는 엔진 파워트레인 대부분 서로 같이 공유했었음
근데 미쓰비시가 자금사정이 엄청 어려워져서 생존이 목적이었다면 현대는 튼튼한 내수시장 기반으로
슬슬 미쓰비시를 추월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임. 흔히 시리우스 엔진이라고 불리우는 4G63을 GEMA 엔진으로
바꾸기 까지 25년 넘게쓴건 자금상황이 어려웠기때문. 여전히 XG에 쓰던 시그마 엔진을 아직까지 개량해서 써먹고있으니깐 말 다했지.
문제는 미쓰비시가 파워트레인 상당수를 현대의 한국공장에 의존했었다는거(당연 단가가 싸게 먹히니깐)
안그래도 IMF 이후 외국 완성차 메이커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국내 소비자 눈을 한없이 높아져만 가고
현대도 자기 기술이 없으면 도태된다는건 뼈저리게 느끼게 된거지.
그렇게해서 결단을 내리게 된게 최상위 플래그쉽 그것도 8기통 차량의 개발
당근 현대가 먼저 미쓰비시에 제의했지
근데 미쓰비시 왈
"ㅅㅂ 지금 생존이 목푠데 먼 8기통 플래그쉽타령"
일언지하에 거절
근데 결국 미쓰비시가 거절을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현대가 미쓰비시 파워트레인 공장 라이센스 계약을 종결하겠다고 했었음.
그말은즉슨 미쓰비시= 좆망을 의미하는거였기 때문에
결국 미쓰비시는 울며겨자먹기로 현대와 마지막 협력관계의 산물은 에쿠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던거
이 과정에서 디자인또한 현대와 미쓰비시가 극렬할정도로 대립을 하게되. 물론 결국은 롤스로이스를 모티브로한 각쿠스가 선택되어지지만 나중에 현대가 디자인한 제규어(항간에는 벤틀리라고 한다)를 모티브로한 디자인이 기아로 넘어가서 오피러스가 되어불지.
만약 기아가 없었다면 다이너스티 후속이 되었다고 하더나.
어쨋던....
현대는 8기통 오리온 GDI도 마찬가지고 이 개발과정에서 6기통엔진기술도 싹다 흡수해버렸지
그리고 미쓰비시는 한국에서 만든 에쿠스를 자국에 수입해서 프라우디아로 시판(결과는 좆망인거 알지? ㅋ)
미쓰비시가 람다엔진도 공유하자고한건 그간의 정때문에 부탁을 한거였는데 이제 쓴물 단물 다 빨았다고 판단한
현대는 이제 미쓰비시와 완전 결별한거지. 그 기술을 바탕으로 이제 람다 타우엔진을 개발한거고
그리고 위의 탄생비화를 현대가 먼저 요구한게 아니라 미쓰비시가 먼저 요구했다라는 비화도 존재하니 만약 틀렸다고 해서 까지말아줘.
그리고 여담이지만 남양 현대차 연구원들은 역대 현대차 똥차중에 하나를 각쿠스로 생각한다.
이유인 즉슨.....
에쿠스가 마이너 체인지로 응딩이를 바꾼건 알지
바로 아래 사진이야. 좌가 페이스리프트 전이고 우가 페이스리프트후다.


이유인 즉슨 당시 라이벌인 체어맨보다 뛰어나야 된다는 말도안되는 생각때문에
억지로 차 크기를 늘리다가 철판이 찟어지는 상황까지 초래해서 두꺼운 철판으로 바꾸었지 결과는 연비가 씹망이던게 좆망이되었고.
또한 2년이라는 테스트 기간을 개무시하고 급히 투입한덕에 잘팔리고 잘 리콜되는 아롱사태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그리고 부품들이 늘어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서 서스펜트 마운트가 민주화되어서 트럭처럼 삐걱거리는 현상까지 뜬다더군
또한 열리고 문이 안닫히는 좆같은 상황이나 갑자기 파워윈도우가 오작동되는 상황이 초래해서 당시 구매자들이 개빡첬었지.
중요한것은 미쓰비시로부터 설계도를 넘겨받지 않고 무작정 뜯어 내는 덕분에 차가 주행도중 파워분리를 한다는 악성 루머도 생겼지.
그래도 어쨋든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중에 한페이지를 기록한건 사실 아니盧?
다음은 5.5세대 기함인 제네시스를 알아보자

이건 순전히 개인적으로 정한거다.
내가 왜 제네시스를 기함으로 집어넣었냐면
제네시스는 현대한테는 존나 기념비적인 차량이지
왜냐하면 현대는 북미등 해외에서 독일 3사와 쪽국 렉서스를 조지는것을 언제나 앙망했지만 그들보다 기술이 딸렸지.
그걸 만회할려면 후륜구동플렛폼이 필요했었고 수차레 개발에 들어간결과 나온 결정체가
바로 제네시스지
개발 초부터 현대차 회장인 몽쿠스(정몽구)가 직접 전면에 나서면서 애정을 과시했지
그리고 출시되고 직접 자신의 의전차량으로 타고 다니기도하고 했다.

(제네시스 컨샙카)
그런데.....
막상 뽑아보니

몽쿠스: 엎드려 십팔새끼야.
이걸 본 몽쿠스는 순간적으로 박통을 시해한 김재규를 보는듯한 전땅크의 눈빛과 기세로 담당자를 개 좆처갈구면서 직접 필터링을 하게 되.
바로 그게 몽쿠스 필터링이라고 하지 그렇게 해서 현제 제네시스가 나왔고 북미에서는 슈퍼볼 광고까지 띄우면서 사활을 걸었지.
그 결과 좆망하지는 않고 나름 북미에서도 팔리고 있다더라.
그리고 현제는 이테리 프라다와 손잡고 제네시스 프라다를 출시 하기도 했지.
참고로 제네시르 궁딩이짝에 BH라고 숫자과 같이 있는데 BH가 BMW 헌터의 약자라더라.
그정도로 몽쿠스가 이놈에게 사활을 걸었던거지.
그 결과 이놈의 뼈대를 통해서 에쿠스 후속을 뽑게 되는데........
자 마지막 대망의 6번째 기함이자 현행 기함

에쿠스(VI)다.
제네시스의 후륜구동 플렛폼을 이용해서 완전하게 뜯어 고쳤지.
과거 각쿠스라고 불리울정도로 투박했던 모습 대신 잉어같은 미끈한 몸뚱이로 다시 돌아왔다
원래 이놈은 제네시스 프레스티지라는 이름으로 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에쿠스란 이름에 큰 애착을 가지신 우리의 몽쿠스께서 에쿠스로 ㄱㄱ하자라는 말에 군말없이 차명을 에쿠스로 달고 출시했지.
과거 여타 현대차의 기함들과는 달리 현대차 독자개발차로서 어찌보면 진정한 현대의 1세대 기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에쿠스는 작년 말경에 한번 대대적인 마이너 리프트를 했다.
겉모양은 그닥 변하지 않았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형제차인 K9과 흡사하게 변했다

(바꾸기전)

(현재)
그리고 현대또한 벤츠나 bmw등이 만든 방탄차와 경쟁하기위해 에쿠스 방탄을 내놓았고 각각 싸이와 박근혜 대통령 각하와 반기문 UN사무총장께 기증했다.

(방탄 에쿠스에서 시민들에게 화답하시는 각하)

(반기문 사무총장 with 방탄에쿠스)

(싸이 with 방탄에쿠스)
제원을 살펴보자면

자 이상 끝마치면서
부족한글 봐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어제 뭣도 모르고 싸지른 똥 가공 글에대해서 심심한 사죄를 한다.
그럼 게이들아 좋은차 타고 다니길 앙망한다~
1977년 독일포드는 신형 그라나다를 출시했다.
검은 라디에이터 크릴에 검은창틀과 몰딩 등이 특징이었다.
안전유리, 타이어, 뒷유리열선, 앞좌석의 헤드레스트, 할로겐 헤드램프 등을 기본장비로 했다.
배기량 1933cc, 최대출력 102마력의 고성능 6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왠만한 악조건의 도로에서도 강력한 힘을 냈다.
구동방식은 RWD였다.
또 한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단단한 차체, 정면충돌 때의 충격을 줄이는 긴 보닛, 신속하고 강력한 제동효과를 거두는 유압식 진공배력 2중 브레이크, 충돌시 운전자를 보호하는 충격흡수식 스티어링 휠, 넓은 휠베이스와 트레드, 네바퀴 독립 현가장치 등으로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
이외에도 각종 최신식 자동조정장치, 4스포크 핸들과 파워 스티어링은 발매당시 쉽게 볼수없는 편의장비였다.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안락하고 안전한 시트, 중후한 실내분위기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남겼다.
뒤 윈도에는 전기열선을 장착하고 앞 윈도에는 라미네이트 안전 2중유리를 사용했다.
야간 안전운행을 위해 할로겐 헤드램프, 어린이 보호용 잠금장치, 헤드램프는 오버라이더에 설치된 헤드램프 워셔가 있어 실내에서 조정해 닦을 수 있다.
1985년 3월 13일에 독일에서의 그라나다 생산이 종료되었다.
1972년 3월부터 1985년 3월 13년간 1619265대가 생산되었고 그 중 반은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현대자동차는 1978년 11월 독일포드와 기술제휴로 한국에서 그라나다를 생산하였다.
1985년 12월 생산이 중단될때까지 현대자동차의 최고급차였다.
본넷의 포드마크는 당시 현대가 포드의 부품을 받아서 조립하는 정도여서 포드 엠블럼을 그대로 박은거다
또한 국내 최초로 차안에 카폰이라는 부의 상징을 탑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대 v6엔진 탑제한 놈이지도 하지
무한도전에서 명수옹은 6살?인가 거기보면 차덕후인 매뚝형이 길이 아빠차가 그라나다라는걸 듣고 개깜놀하며 보픈카본 김치녀마냥 지려댄걸 본 개이들 많겠지?
그정도로 그당시 초 고가 차였지. 그리고 전땅크시절을 그린 제5공화국에서도 땅크성님이 그라나다안에서 순자여사와 타고 집에가다가 10.26사태 터진걸 알게 되는 장면도있고 나중에 탈라甲인 안기부장 장세동이 타고다녔제
그리고 여담이지만 현대 왕회장 장자인 고 인천제철 회장 정몽필씨가 노짱보다 먼저 갈때 타고 간 차여서 비운의 기함이라고도 하지.
그럼 2세대를 알아볼까?

자 이녀석으로 말하자면 뭔지 알지?
바로 각그랜져... 80~90년대의 부의 상징이자 어깨성님들의 허새 필수품중 하나인 놈이지
당시 현대는 자신들을 부품기지로 만들려던 포드의 야욕을 느끼고 포드좆까를 외치며 결별한후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지
더군다나 그쯤에는 쌍팔(88)올림픽이 열리고 여러 국제 행사들이 개최될 시기라서 대형 기함이 필수적으로 필요헀었는데.....
그때 마침 쪽국의 미쓰비시에서도 지들 대형 기함을 풀모델 체인지 해야되는대 하도 안해서 욕을 한바가지 처먹다가 지들 눈에는 호갱처럼 보였던 현대가 눈이 띈거지...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한테 탈탈 털리지만
그렇게 현대와 미쓰비시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서 그랜져가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그라나다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도입했지만 이녀석이 ㅅㅌ처서 후에 미쓰비시에게 기술을 뜯어 낼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제원을 살펴보자면
전장(mm)4865
전폭(mm) 1725
전고(mm) 1450
실내(mm) 장 1955
폭 1460
고 1180
윤거(mm) 전 1455
후 1405
축간거리(mm) 2735
차량중량(kg) 1390
배기량(cc) 1997(4기통)
최대출력(ps/rpm) 120/5000
최대토오크(kg.m/rpm) 16.2/3500
최고속도(km/h) 162
최저지상고(mm) 180
최소회전반경(m)
연료탱크용량(ℓ) 72
타이어 162
이렇게 그랜져는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날개 돋힌듯 팔리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라이벌이였던 도요타 크라운하고 닛산 프레지던트에의해 밀려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것이 바로 미쓰비시 입장에서는 잘못된 만남의 초기단계이기도 하지.
그럼 다음 3세대 기함으로 넘어가볼까?
각그랜져에서 쫌 순화된 이미지로 돌아온 2세대 뉴그랜져다.
이녀석부터는 현대 또한 같이 공동개발을 해서 나온 차량이다. 이때부터 디자인에 현대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디자인만 봐도 각그랜져에비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될정도로 곡선미를 넣어서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미쓰비시는 당시 베스트셀링카였던 자사의 중형세단인 디아망테/시그마의 뼈대를 이용하여 현대의 디자인을 받아드려 2세대 그랜져이자 3세대 디아망테가 탄생하게 되었다.
엔진은 데보네어는 V6 2.5와 3.5가 사용되었지만 그랜져는 구형의 엔진인 4기통 2.0과 2.4 그리고 V6 3.0을 쓰다가 나중에 데보네어와 똑같은 엔진을 쓰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놈또한 무진장 잘팔려서 희소성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현대에서 짱구를 잘굴려서 뉴그랜져의 고급형이라고 할수있는 다이너스티가 나오게 된다.
자 다음 死세대 기함인 다이너스티

앞서 뉴그랜져에서 말했던것처럼 뉴그랜져 고급형버전이라고 생각하면된다
예를 들자면 토요타 셀시오하고 렉서스LS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이녀석은 왕회장이 북괴로 소때 셔틀할때 왕회장 의전차량으로 사용되었고 정일이도 다이너스티를 보고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에 감탄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녀석은 리무진 버전또한 존재하고 소비자 평도 좋아서 에쿠스가 데뷔하고 나서도 05년까지 출시된 차량이다.
어떻게 본다면 제네시스 포지션의 원조격 차량이기도 하다.


자 그럼 다음은 5세대 기함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면 북괴간첩소리를 듣는 각쿠스랑께
탄생비화에대해서 썰을 풀자면 90년대말까지 세계시장에서 현대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헀지.
그렇다고 이렇다할 기술도 없었고
미쓰비시와 협력관계... 말이 좋아 협력관계지 그냥 최상위 기술말고는 엔진 파워트레인 대부분 서로 같이 공유했었음
근데 미쓰비시가 자금사정이 엄청 어려워져서 생존이 목적이었다면 현대는 튼튼한 내수시장 기반으로
슬슬 미쓰비시를 추월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임. 흔히 시리우스 엔진이라고 불리우는 4G63을 GEMA 엔진으로
바꾸기 까지 25년 넘게쓴건 자금상황이 어려웠기때문. 여전히 XG에 쓰던 시그마 엔진을 아직까지 개량해서 써먹고있으니깐 말 다했지.
문제는 미쓰비시가 파워트레인 상당수를 현대의 한국공장에 의존했었다는거(당연 단가가 싸게 먹히니깐)
안그래도 IMF 이후 외국 완성차 메이커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국내 소비자 눈을 한없이 높아져만 가고
현대도 자기 기술이 없으면 도태된다는건 뼈저리게 느끼게 된거지.
그렇게해서 결단을 내리게 된게 최상위 플래그쉽 그것도 8기통 차량의 개발
당근 현대가 먼저 미쓰비시에 제의했지
근데 미쓰비시 왈
"ㅅㅂ 지금 생존이 목푠데 먼 8기통 플래그쉽타령"
일언지하에 거절
근데 결국 미쓰비시가 거절을 못하게 된 이유가 있었으니
현대가 미쓰비시 파워트레인 공장 라이센스 계약을 종결하겠다고 했었음.
그말은즉슨 미쓰비시= 좆망을 의미하는거였기 때문에
결국 미쓰비시는 울며겨자먹기로 현대와 마지막 협력관계의 산물은 에쿠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던거
이 과정에서 디자인또한 현대와 미쓰비시가 극렬할정도로 대립을 하게되. 물론 결국은 롤스로이스를 모티브로한 각쿠스가 선택되어지지만 나중에 현대가 디자인한 제규어(항간에는 벤틀리라고 한다)를 모티브로한 디자인이 기아로 넘어가서 오피러스가 되어불지.
만약 기아가 없었다면 다이너스티 후속이 되었다고 하더나.
어쨋던....
현대는 8기통 오리온 GDI도 마찬가지고 이 개발과정에서 6기통엔진기술도 싹다 흡수해버렸지
그리고 미쓰비시는 한국에서 만든 에쿠스를 자국에 수입해서 프라우디아로 시판(결과는 좆망인거 알지? ㅋ)
미쓰비시가 람다엔진도 공유하자고한건 그간의 정때문에 부탁을 한거였는데 이제 쓴물 단물 다 빨았다고 판단한
현대는 이제 미쓰비시와 완전 결별한거지. 그 기술을 바탕으로 이제 람다 타우엔진을 개발한거고
그리고 위의 탄생비화를 현대가 먼저 요구한게 아니라 미쓰비시가 먼저 요구했다라는 비화도 존재하니 만약 틀렸다고 해서 까지말아줘.
그리고 여담이지만 남양 현대차 연구원들은 역대 현대차 똥차중에 하나를 각쿠스로 생각한다.
이유인 즉슨.....
에쿠스가 마이너 체인지로 응딩이를 바꾼건 알지
바로 아래 사진이야. 좌가 페이스리프트 전이고 우가 페이스리프트후다.

이유인 즉슨 당시 라이벌인 체어맨보다 뛰어나야 된다는 말도안되는 생각때문에
억지로 차 크기를 늘리다가 철판이 찟어지는 상황까지 초래해서 두꺼운 철판으로 바꾸었지 결과는 연비가 씹망이던게 좆망이되었고.
또한 2년이라는 테스트 기간을 개무시하고 급히 투입한덕에 잘팔리고 잘 리콜되는 아롱사태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그리고 부품들이 늘어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서 서스펜트 마운트가 민주화되어서 트럭처럼 삐걱거리는 현상까지 뜬다더군
또한 열리고 문이 안닫히는 좆같은 상황이나 갑자기 파워윈도우가 오작동되는 상황이 초래해서 당시 구매자들이 개빡첬었지.
중요한것은 미쓰비시로부터 설계도를 넘겨받지 않고 무작정 뜯어 내는 덕분에 차가 주행도중 파워분리를 한다는 악성 루머도 생겼지.
그래도 어쨋든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중에 한페이지를 기록한건 사실 아니盧?
다음은 5.5세대 기함인 제네시스를 알아보자

이건 순전히 개인적으로 정한거다.
내가 왜 제네시스를 기함으로 집어넣었냐면
제네시스는 현대한테는 존나 기념비적인 차량이지
왜냐하면 현대는 북미등 해외에서 독일 3사와 쪽국 렉서스를 조지는것을 언제나 앙망했지만 그들보다 기술이 딸렸지.
그걸 만회할려면 후륜구동플렛폼이 필요했었고 수차레 개발에 들어간결과 나온 결정체가
바로 제네시스지
개발 초부터 현대차 회장인 몽쿠스(정몽구)가 직접 전면에 나서면서 애정을 과시했지
그리고 출시되고 직접 자신의 의전차량으로 타고 다니기도하고 했다.

(제네시스 컨샙카)
그런데.....
막상 뽑아보니

몽쿠스: 엎드려 십팔새끼야.
이걸 본 몽쿠스는 순간적으로 박통을 시해한 김재규를 보는듯한 전땅크의 눈빛과 기세로 담당자를 개 좆처갈구면서 직접 필터링을 하게 되.
바로 그게 몽쿠스 필터링이라고 하지 그렇게 해서 현제 제네시스가 나왔고 북미에서는 슈퍼볼 광고까지 띄우면서 사활을 걸었지.
그 결과 좆망하지는 않고 나름 북미에서도 팔리고 있다더라.
그리고 현제는 이테리 프라다와 손잡고 제네시스 프라다를 출시 하기도 했지.
참고로 제네시르 궁딩이짝에 BH라고 숫자과 같이 있는데 BH가 BMW 헌터의 약자라더라.
그정도로 몽쿠스가 이놈에게 사활을 걸었던거지.
그 결과 이놈의 뼈대를 통해서 에쿠스 후속을 뽑게 되는데........
자 마지막 대망의 6번째 기함이자 현행 기함

에쿠스(VI)다.
제네시스의 후륜구동 플렛폼을 이용해서 완전하게 뜯어 고쳤지.
과거 각쿠스라고 불리울정도로 투박했던 모습 대신 잉어같은 미끈한 몸뚱이로 다시 돌아왔다
원래 이놈은 제네시스 프레스티지라는 이름으로 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에쿠스란 이름에 큰 애착을 가지신 우리의 몽쿠스께서 에쿠스로 ㄱㄱ하자라는 말에 군말없이 차명을 에쿠스로 달고 출시했지.
과거 여타 현대차의 기함들과는 달리 현대차 독자개발차로서 어찌보면 진정한 현대의 1세대 기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에쿠스는 작년 말경에 한번 대대적인 마이너 리프트를 했다.
겉모양은 그닥 변하지 않았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형제차인 K9과 흡사하게 변했다
(바꾸기전)

(현재)
그리고 현대또한 벤츠나 bmw등이 만든 방탄차와 경쟁하기위해 에쿠스 방탄을 내놓았고 각각 싸이와 박근혜 대통령 각하와 반기문 UN사무총장께 기증했다.

(방탄 에쿠스에서 시민들에게 화답하시는 각하)

(반기문 사무총장 with 방탄에쿠스)

(싸이 with 방탄에쿠스)
제원을 살펴보자면
자 이상 끝마치면서
부족한글 봐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어제 뭣도 모르고 싸지른 똥 가공 글에대해서 심심한 사죄를 한다.
그럼 게이들아 좋은차 타고 다니길 앙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