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마지막이다. 이래도 안보면 나 그냥 안쓸거임....
BGM정보: http://heartbrea.kr/3475182
만사가 귀찮은 게이를 위한 선10줄요약
1. 노르망디 상륙이 성공한지 3개월이 지났는데 변변찮은 항구가 없음
2. 보급선이 늘어지고 있는데 미봉책으로 때우기만 함
3. 1944년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연합군 사령부는
4. 몽고메리의 돌아버린 작전계획을 거부하지만
5. 슬슬 한계에 도달하니까 작전 승인.
6. 그런데 지휘 혼선+유례없는 대규모 공수강하+너무 넓은 작전지역이라는 병크를 터뜨림
7. 그리고 그곳에 있던 부대는 비록 괴멸적 타격을 입어서 사단 2개를 합쳐야 연대급 전투력을 가졌지만 기갑부대인 제 9, 10 SS 기갑사단(제 2 SS 기갑군단)이 주둔하고 있었음
8. 결국 다리는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하고 미군이 미친듯이 싸워서 '가든'작전의 주력인 영국 30군단의 진격로를 열어줬지만 독일군의 저항으로 작전시간을 70시간까지 넘김
9. 결국 최종목표인 아른헴에서 영국 제 1공수사단은 완전히 붕괴하고, 30군단은 아른헴 시가지 3km 밖에서 주저앉아버림
10. 몬티의 오만으로 스러진 28000여명에게 묵념.
마켓-가든이라고 하니까 슈퍼에 소풍가는걸 생각하는 게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1944년 성급히 전쟁을 끝내려 한 연합군 사령부 최고의 병크짓이지.
들어가기에 앞서, 상당부분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쓴 글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중간중간 수정하다가 빼먹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건 감안해주면 좋겠다.
1. 누가 얘들좀 말려봐요
1944년 말, '푸른 지옥의 노르망디'에서 빠져나온 연합군은 쾌조의 진격을 보이면서 독일군을 점차 프랑스에서 밀어내기 시작해. 심지어 팔레즈 포켓이라는 포위망으로 서부전선의 독일군을 일시적으로 빈사직전까지 몰아넣었지. 그런데 보급부대에 있었던 게이라면 잘 알겠지만, 군대에게 싸워서 이기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게 보급이야. 보급이 제대로 안돼서 깨진 경우는 2차세계대전때로만 한정해도 1941년 독일군의 폭풍작전(모스크바 공략전)이나,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의 추축군 괴멸, 1943년 제 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떡실신 당한 소련군이 그 예지. 물론 연합군 사령부가 보급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고, 그래서 노르망디에 상륙한 이후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
'푸른 지옥' 노르망디. 보면 밭 주변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 이걸 프랑스어로 '보카쥬'라고 하는데, 워낙 오래된 것들이 많다 보니 하나의 방벽이 될 정도였어. 거기다 높이도 애매하게 전차가 타 넘을 수 없는 높이인게 많았고. 어찌어찌 해서 낮은 부분을 넘어가려 하면 얇은 차체 하부를 향해서 독일군의 대전차 유탄 '판처파우스트'가 날아와 고철이 돼기 일쑤였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의 셸부르(셰르부르) 공략전과 멀버리/하버스 인공항구 건설이 그것이지.
하지만 셸부르 항은 점령 직전 독일군의 파괴공작으로 몇개월동안 항해불능/위험지대로 남아있었고(첫 수송선이 간신히 들어오는데만 해도 3주가 걸렸다고 해.... 그것도 독일군 포로들을 모조리 부비트랩/기뢰 해체작업에 투입했는데 말이지!) 멀버리/하버스는 어디까지나 노르망디 앞바다에 떠있는 '인공'항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원래 존재하던 항구보다는 하적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연합군 사령부는 낙담하지 않았어. 북프랑스에 널리고 널린게 항구니까.
하지만 연합군 사령부의 기대를 깨고 항구에 있던 독일군들은 완강히 저항해. 뒤쪽이 바다인데, 어쩔거야? 싸워야지. 도망칠데도 없잖아. 거기다 패튼 장군 특유의 속도 중시 전략으로 '전차대는 달려가버리고 잔적소탕은 보병에게 맡기는'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는데, 현대 기동전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잔적이란게 '방어진지에 틀어박힌 채 거의 손상을 입지 않은 부대'들이란 거지.
실제로 보병 반응이,
"아따 전차 행님 응딩이 뒤에 숨어서 싸워도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우리들보고 맨몸돌격하라는 말이여라?"
였고, 덕분에 북프랑스의 일부 항구지역은 1945년 5월 1일 독일군이 무조건 항복을 할때까지 미수복 지역으로 남아있게 돼.
그래서 연합군 사령부가 생각해낸 두 번째 해결책은 '무제한 통행권을 지급한 수송대를 만들자'는 거였지. 아무래도 전시다 보니까 이곳저곳 이동할 때 검문이 많기 마련이고, 그려면 당연히 보급부대의 속도가 떨어지겠지? 그래서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 장군이 직접 발행한 통행증을 소지한 수송팀이 창설되는데, 일명 '레드 볼 익스프레스'야. 전원이 비전투요원인 흑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지.(혹시나 COH 하는 게이가 있을까 해서 하는 말인데, 그 맵도 여기서 따온게 맞아. 맵 중앙에 있는 트럭을 터뜨리면 탄약이 나오는건 덤.)

레드볼 익스프레스 전용 도로의 표지판. 닥치고 달리라 카盧?
하지만 가장 부족한게 기름인데, 그 기름을 수송하는 트럭이 기름을 퍼먹어 버리니까 수지타산이 안맞는거야. 그러는 와중에 연합군은 진격을 계속하고 보급로는 엿가락마냥 죽죽 늘어나지. 그러면서도 어찌어찌 버텨서 독일-프랑스 국경지대의 독일군 방어선인 '지그프리트 방어선'에 도달하게 돼. 그리고 연합군은 이 방어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 일격을 날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 하지만 가장 골치아픈 건 지그프리트 방어선과 함께 독일 국경선을 감싸고 있는 라인 강의 존재였어. 잘 갖춰진 방어선 앞에서 강을 건너는 군대만큼 허약한 것도 없지. 그래서 최대한 신속/안전하게 건널 필요가 있었지.
그러던 도중 영길리 희대의 허영심 덩어리 장군인 몽고메리가
(보급부족 골머리+1944년 내로 전쟁을 끝내고 싶다+라인강을 건너야 한다) = 네덜란드를 공격한다!
라는 말도 안돼는 공식을 만들어 내지. 심지어 휘하의 한 장교는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몬티(몽고메리의 애칭)가 인사불성이 돼서 사령부로 돌아와도 이것만큼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대담한 계획이었어.
(크기가 종범이노...)
간단히 정리하면, 라인강과 그 지류에 걸쳐져 있는 7개의 다리를 공수부대의 낙하산 강하+글라이더 강하로 탈취하고, 그 다리들을 공수부대가 며칠동안 방어하는 사이 영국 제 30군단이 진격 루트 사이에 있는 독일군을 쓸어버린다는 내용이 골자였어.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현실성이 영 떨어진단 말씀이야.
몬티가 간과한 두 가지가 그 현실성을 떨구는 요인인데,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
저 100km에 달하는 진격로(화살표들 중 가장 멀리 가는 가운데 화살표)가, 대부분 단 하나의 둑길로 이뤄져 있다는 거였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길목에서 독일군이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순간 바로 작전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거야. 그걸 직감적으로 느끼기라도 한 건지, 영국 제 1공수사단장은 이런 말을 남겼지.
"아, 그런데 다리 하나가 너무 멀군요."
두 번째 요인은 독일군 방어부대였어.
당시 네덜란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전선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라 재배치를 받는 독일군 부대의 휴양지로 쓰이고 있었어. 한 예로 연합군 폭격기대의 선도기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폭탄이 벨기에 민간인 거주구역에 떨어졌는데, 폭격 개시 신호로 착각한 폭격기대가 그 구역을 싹 쓸어버렸어. 선도기 승무원들은 재수 없으면 사형될 위기에 처했지만, 현지 레지스탕스들의 정보수집 결과 '민간인 피해 경미. 해당 구역은 독일군에게 징발되어 휴양지로 쓰이고 있었음. 독일군 고위 장교 90여명 사상'이라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지. 아무튼 이런 식으로 독일군 휴양지로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방비가 상당히 약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었어. 있다 할지라도 포로나 잡다한 병력을 긁어모은 2선급 부대 정도?
하지만 그 '휴양지'라는 점이 연합군의 예측을 보기좋게 빗나가게 만들어.
동부전선에서 재편성을 위해 재배치된 무장친위대(SS)가 주둔하고 있었던거야. 1944년 당시에는 무장친위대가(적어도 3대 무장친위대인 1~3사단, 그러니까 '총통기 아돌프 히틀러 사단', '다스 라이히 사단(제국)', '토텐코프(해골) 사단') 기갑부대로 편제가 개편된 상태였어. 아른헴 지구에 배치된 SS사단은 3대 사단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제 2 SS 기갑군단에 속하는 '기갑부대'였어. 공수부대의 특성상 경무장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애들 앞에 전차가 나타나면 어떨까? 당연하지. 썰리는거야. 거기다가 얼마 전 서부전선에 착임한 장군 중 '총통의 소방수'라 불리며 동부전선에서 반격작전의 천재로 불린 '발터 모델' 원수 - 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중부집단군 소속으로 소련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부전선군을 맡아 소련군에게 뼈아픈 손실을 가져다 준 그 사람 - 이 있었지.
그런데,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당시 주둔해 있던 9,10 SS 기갑사단은 노르망디에서의 괴멸적 타격으로 이름만 사단이고 사실상 여단급 전투력을 지녔다고 해. 심지어 대부분의 전차가 독일 본토의 정비공장으로 보내지기 위해 기차에 하적된 상태였어. 덕분에 아른헴 근교에 연합군이 강하하자 정비반들은 진땀좀 뺐지.
전투 당시 연합군-독일군 부대 편제를 보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타고 가도록 해.
오오미 판터찡 지리것소.... 뒤로 보이는 길쭉길쭉한건 전부 판터의 포신. 아마 이동중 야전정비인 것 같다.
저기에 보이는 판터는 월땅에서 스톡상태(혹은 그 이전버전일지도. 포방패 부분이 가려서 잘 안보이지만 A형과 G형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지만, 현실은 7티어 판터와 5티어 M4가 붙는 상황이라, 연합군에게는 티거와 함께 공포의 대상이었지.
하지만 우리의 몬티는 명백히 전차 실루엣이 찍힌 항공사진을 보고도 그걸 '무시'했어.
몬티의 끈질긴 설득과 점점 전쟁에 염증을 느끼던 연합군 사령부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작전을 허가했고, 드디어 마켓-가든 작전의 막이 열리게 돼.
왜 굳이 하이픈을 붙이냐고 할 수도 있는데, 정확히는 하나의 작전이 아니라 두 개의 작전이기 때문이야.
하나는 마켓 작전. 총 7개의 다리를 점령하기 위해 미 101 공수사단 "울부짖는 독수리"가 먼저 에인트호펜에 투입되었고, 이어서 미국의 82공수사단 "올 아메리칸"이 네이메헨, 영국의 제1공수사단 "레드 데블스"가 아른헴에 투입되었어. 특히 영국 제 1 공수사단의 책임구역인 아른헴은 다리가 하나뿐이지만 직접 라인 강을 건너는 다리로써, 공격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했지.
두 번째는 가든 작전. 영국군 30군단이 공수부대가 확보한 경로를 따라 진격한다는 내용이야. 계획상으로는 공수부대의 기습을 받아 허약해진 독일군 잔존 병력을 소탕하는 의미가 강한 작전이었지.
2. 강하!.... 잠깐, 얘들 왜 안와?
1944년 9월 17일 일요일 오전, 드디어 공수부대가 강하하기 시작해. 출발지는 영국 남부 해안. 당시 비행기로도 수십분이면 도착 가능한 거리였고, 순식간에 공수부대가 전개하기 시작해. 한편 오후 2시, '가든' 작전이 발동되면서 30군단이 진격을 시작하지.
출격 전 도열한 연합군의 C-47 수송기. 수송기 옆의 희끄무레한 물체들은 병사들 군장이고, 그 건처의 검은 물체들은 병사들이야.
잠시 추가 내용을 덧붙이자면, 공수부대 지휘관들은 '짧으면 3일, 길면 5일정도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어. 30군단은 그 이내로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 이 약속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래 글을 읽어보기 바래....
수백명의 연합군 공수부대원들이 강하하는 모습. 항공사진으로만 봐도 ㅎㄷㄷ한데 지상에서 보는 독일군 입장에서는 충격과 공포였겠지. 심지어 대공포병 중에 수송기의 행렬에 압도당해 도망쳐버린 사람이 있을 정도로.
총 병력 3만 5천여 명, 340문의 휴대용 야포 및 화포, 500여 대 가량의 각종 지프 및 소형 차량과 기타 장비 등, 총 600여 톤 규모의 물자를 적재한 공수부대의 수송기와 글라이더가 네덜란드 상공으로 쇄도하게 된 거야.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해. 비행기로 수십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가면서, 글라이더를 끌고 가던 수송기의 예인 로프가 끊어져버리는 사고가 빈발한거야. 글라이더에 있던 병력은 영문도 모른 채 영불해협에 처박혀 버리는 거지. 그런데 하필 그렇게 명을 달리한 병력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영국 제 1공수사단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거야.
두 번째 문제는, 이것도 영국 제 1공수사단에게 불거진 문제인데, 아른헴은 그 일대에서 꽤 큰 도시였고, 아른헴 대교는 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라인강을 건너는 다리였기 때문에 시가지에서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공수부대에게 시가지 강하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뾰족한 첨탑 하나, 금속제 난간 하나 하나가 위험한 장애물이고, 실수로 낙하산이 어디에 걸리기라도 하면 독일군의 좋은 사격연습 표적이 될 뿐이니까. 결국 시가지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 떨어진 평원에 강하했고, 다행히 여기서는 별다른 피해 없이 강하할 수 있었어. 아직까지 곧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영국군 병사들은 강하복 바지를 벗고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인 킬트를 입을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지.
그 시간, 독일군 사령부는 혼란에 빠져 있었어. 갑자기 머리에서 연합군이 뚝 떨어지니 그럴만도 하겠지?
"아냐, 이건 양동작전이라고. 연합군 사령부가 그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이게 독일군 사령부 내의 지배적인 의견이었어. 그럴만도 하지. 100km에 달하는 길에 병력을 뿌려놨는데, 누가 주공이라고 생각하겠어?
하지만 연합군이 목격됐다는 지점을 유심히 들여다본 모델 원수는 즉시 이런 명령을 내리지.
"다리다! 연합군은 라인 강에 걸린 다리를 노리고 있다! 휘하 부대는 즉각 다리를 점거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라!"
기차 운반용 궤도와 전투용 궤도가 다른 독일군 전차의 특성상, 정비반은 미친듯이 궤도 교환작업을 시작했어. 하지만 그때 아른헴 지구에서 가용 병력은 제 9 SS기갑사단 '호엔슈타펜'의 호엔슈타펜 기갑정찰대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아른헴 지구 남단의 정찰을 맡게 돼.
남쪽의 미군도 별반 다를게 없었어. 환호하는 네들란드 민간인들 사이에서 꾸물거리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한 미군 병사의 증언으로는 '작전 초기에 가장 큰 방해물은 독일군이 아니라 밀려드는 네덜란드 민간인이었다'라고 할 정도였지. 그러던 와중 저격수에게 저격당한 공수부대원들이 길가 도랑에 숨어들자, 갑자기 멀리서 전차가 달려오는거야. 미 공수부대원들은 웃으면서 외쳤어.
"이야, 벌써 30군단이 도착한거야? 이러면 스릴이 없잖아, 스릴이."
그런데 갑자기 선두 전차가 포탑을 돌리자, 포탑 옆면에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색 십자 마크 - 독일군의 상징인 철십자 마크 - 가 보였고, 공수부대원들은 바로 똥씹은 표정이 됐지. 스릴은 개뿔.
"어이.... 누구 여기에 전차가 있다는 말 들은 적 있어?"
미군은 낙하산 강하를 선호했기 때문에 글라이더식 강하보다 강하시킬 수 있는 장비 한계점이 더 낮았고, 덕분에 변변한 대전차 무기라고는 바주카포정도밖에 없던 미군은 그야말로 계란에 바위치기식 싸움을 벌이게 돼. 그런 상황에서도 감투정신을 발휘해서 여러대의 전차를 격파하기도 했지만....
그런 우여곡절 속에 미 101 공수사단은 에인트호펜의 교량을 점거하는데 성공해. 하지만 에인트호펜에 있는 다리 하나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 일대의 다리 전체를 점거해야 하는데 에인트호펜의 주 다리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독일군이 폭파시켜 버리고, 진격로의 가장 초기지점에 있는 에인트호펜에서부터 작전이 어긋나기 시작하지. 그런데 그 에인트호펜에 도착하기도 전에, 30군단은 우회로도 없는 길에서 매복하고 있는 독일군 대전차포에게 발목이 잡혀. 덕분에 예정 일정보다 하루가 늦은 18일에나 도착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상술한 대로 독일군이 진격로상의 다리를 폭파해버리는 바람에 가교를 끌고온다고 또 하루를 지체, 결국 18일 도착 예정이던 네이메헨은 19일에 도착하지. 이때, 에인트호펜-네이메헨 간 64번 국도의 전투가 너무 격렬해서, 그 국도에는 '지옥행 고속도로'라는 별명이 붙어. 계속 COH 이야기 해서 미안한데, COH-OP의 전차군단 미션 중 하나인 '64번 국도 - 지옥행 고속도로'는 여기서 따온 이름이야.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네이메헨은 어찌됐는고 하니, 미 82 공수사단이 모든 다리를 점거하는 데 실패하고, 다리 위에는 잔뜩 독이 오른 독일군이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그나마 다리를 부수지 않은 이유는 후에 벌어질 반격작전을 위해서 최대한 다리를 보존하라는 사령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지. 덕분에 만신창이가 된 82 공수사단은 30군단의 화력을 등에 업고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서' 독일군을 공격해. 그때 한 병사가 한 말이 그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 줘.
"공수부대가 상륙작전을 하다니. 뭐 이딴 X같은 상황이 다 있어?"
게다가 보트랍시도 도착한 물건을 보니 더 가관이야. 그 보트를 기다린다고 하루를 더 지체했는데, 보트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물건이었던 거지. 금속제 밑판에 대충 프레임을 붙여서 방수 캔버스로 동체를 만든, 그야말로 급조 보트를 타고 건너라는 거야. 맞아.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캔버스야. 그림 그릴때 쓰는 그거. 일단 까라면 까는게 군대니 울며 겨자먹기로 타고 가기는 해야겠는데, 한 술 더 떠서 태반의 보트가 '노가 없는' 상황이었어. 결국 병사들은 소총 개머리판으로 노를 저으면서 갈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걸 독일군이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보고만 있을까? 설마. 기관총하고 박격포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건데.
30군단의 막강한 화력 지원에도 독일군 방어선은 분쇄되지 않고 남아 있었고, 덕분에 수백미터의 강을 건너는 사이 82 공수사단 병력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돼. 총에 맞은 병사, 박격포 파편에 죽은 병사, 배가 파괴돼서 그대로 수장돼버린 병사.... 지옥도가 따로 없었지.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제정신을 유지하기란 힘들겠지? 그래서 간신히 강 건너편에 도착한 82 공수사단병들은 말 그대로 꼭지가 돌고 눈깔이 뒤집혀서, 항복하는 독일군을 기관총으로 산산조각을 내 버릴 만큼 철저하게 짓이겨 버렸어.
"나는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 82 공수사단 소속 병사
82 공수사단의 분투에 힘입어 30군단의 기갑사단이 네이메헨의 다리를 향해 진격, 네이메헨의 다리가 모두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지게 돼.
이제 마지막 다리, 머나먼 다리인 아른헴 대교만이 남은거지.
British XXX corps, cross the road bridge at Nijmege - 네이메헨 다리를 건너는 30군단 소속 셔먼전차들. 독일군이 설치했던 장애물이 모두 철거된 상태야.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게 돼.
마지막 남은 몇km의 길이, 강을 따라 난 외길의 '강둑'인거야.
하지만 우회로가 없는 이상 이 길을 지나 갈 수밖에 없었고, 30군단의 기갑사단은 그 외길을 타고 진격을 개시해.
얼마나 갔을까. 선두의 셔먼 전차가 갑자기 주저앉아 버렸지.
적을 찾지도 못하고 강둑이라 회피기동조차 하지 못하는 전차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반대편 강둑에 숨어있던 3호 돌격포가 발각되어서 격파되기 전까지 이들은 3대의 전차를 상실하게 돼. 전차 손실로 끝나면 다행이련만, 파괴됀 채 길을 틀어막아 버린 3대의 전차를, 맨 후미에 있던 도저전차(셔먼+불도저 라고 생각하면 돼)가 이들을 강둑 아래로 밀어버릴 때까지 수 시간이 지체됐지. 이런 일이 한없이 반복됐고, 결국 30군단의 진격은 한계에 달해 아른헴 시가지를 눈앞에 두고 주저앉아 버려. 가장 북단에 있던 부대에게는 전우들이 독일군과 싸우는 포성이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지. 이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둑길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어. 이때 날짜가 9월 25일이야..... 이걸로 가든 작전이 끝이 나.
3. 신이여, 국왕을 보호하소서
30군단이 악전고투를 하면서 달려가는 사이, 1공수사단은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총 3개의 대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중 프로스트 중령 휘하의 2대대가 독일군의 저항을 뿌리치고 아른헴 대교 북단을 차지하는데 성공하고, 그곳에 방어거점을 설치해. 그런데 여기서 아주 기초적인 실수가 발생했어. 바로 휘하 부대 및 타 부대와의 무전망이 제대로 연결되질 않은거지. 이건 무전 수정판을 잘못 들고왔기 때문인데, 재배치가 급하게 이루어지면서 일어난 참사라고 할 수 있어. 덕분에 사단본부가 있던 1대대(오스테르베르크 주둔)와 2대대(아른헴 주둔)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3대대는 1대대 근처에서 독일군 기갑사단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지. 휘하 부대와 통신이 끊어져 전황을 알 수 없던 사단장이 직접 지프를 타고 전선 시찰을 나섰는데, 사단장마저도 실종되고 말아. 덤으로 제 1공수사단에 배치된 유일한 미군인 고출력 무전기 탑재 지프 2대도 무전 지원을 위해 나가고 난 뒤 홀연히 사라져 버리지.
영웅적인 분투를 보여준 영국 제 1 공수사단 2 대대장 존 프로스트 중령.
30군단이 에인트호펜에 도착한 18일, 프로스트 중령의 2대대는 여전히 다리 북단을 점거하고 있었지만 독일 제 9 SS 기갑사단 '호엔슈타우펜'이 공격을 가하기 시작해. 처음에는 유일하게 정규편제에 맞는 병력을 갖춘 호엔슈타우펜 기갑정찰대대가 30여대의 장갑차를 선두로 다리 남단에서 북단을 향해 진격했지만, PIAT 대전차 유탄과 브렌 경기관총, 스텐 기관단총 등등, 가용 무장을 모조리 들고 다리 주변 주택에 틀어박힌 영국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퇴각해. 이에 사단장은 장거리 포격으로 영국군을 '건물과 함께 날려버리기로' 결정하고, 독일군의 자랑인 판터를 다리 남단에 방열하고 다리 북단의 주택들을 향해 전차포를 쏘기 시작하지.
포격 직전, 소수의 독일군이 백기를 들고 다리를 건너와.
"당신들은 완전히 포위됐소! 항복하시오!"
그러자 프로스트 중령이 이렇게 외쳤지.
"그 말, 자네 지휘관에게 그대로 전해주게."
이걸로 '신사'라고 불리던 사단장의 인내심도 한계를 드러내.
"포수, 잘 들어라. 북단의 건물 옥상에서 시작해서 한 발 쏠 때마다 한 층씩 내려간다. 알겠나?" - 9 SS 기갑사단 사단장
"전차포탄 한 발이 작렬할때마다 건물 한 귀퉁이가 칼로 썰린 것처럼 잘려나갔다. 그 속에서 영국군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마치 개미집을 휘저어 놓은 듯 했다." - 9 SS 기갑사단 소속 판터 조종수
하지만 독일군은 즉각 기갑부대를 밀어넣을 수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국군에게 파괴된 독일군 장갑차량의 잔해 때문이었어. 덕분에 전차가 포격하는 사이 보병을 주력으로 한 반격부대가 다리를 건너갔고, 다리가 치워지는 즉시 전차들이 영국군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해 달려나갔지.
전투는 순식간에 개판이 됐고, 서로 골목길을 뛰어다니면서 치고박는 육탄전이 벌어졌어. 영국군의 점거지역에 있는 가옥들은 모두 방어거점이 됐고, 건물의 지하실은 부상병 수용소가 됐어.
"부상병들 상태가 어떤가?" - 프로스트 중령
"죄송합니다.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모르핀마저 떨어진 상태입니다...."
9월 20일, 독일군이 휴전을 요청해와.
"뭐야, 드디어 독일놈들이 항복할 마음이 든건가?" - 어느 공수부대원의 시니컬한 농담 한 마디.
방치된 부상병들을 구출하고, 이들을 후방으로 보내 줄 시간을 준다는 거였지.(말했다시피 30군단과 제 1공수사단 사이에는 독일군이 끼어있었으니까, 부상병 후송이고 뭐고 안되고 있었던거야.) 그 부상병들 사이에는 프로스트 중령도 섞여 있었는데, 자신은 완강히 거부했지만 부관들의 고집으로 후송 보트에 타게 되지.
"들것에 누워 화염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전투의 소음은 계속됐었다. 그 소음 속에서 전우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어느 부상병의 회고
부상병을 후송하는 사이, 독일군들은 며칠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초췌해진 영국군이 불쌍했는지 맥주나 초콜릿 같은 음식들을 쥐어주고 돌아가. 그 음식들을 본 영국군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 왜냐고? 연합군 수송기가 자신들을 향해 투하돼야 할 물자였거든.... 영국군이 급속도로 밀려났는데 그걸 모른 공군에서 독일군 점령지에 물자를 투하해준거지.
그러는 사이, 21일이 되자 2대대는 완전히 와해됐고, 사단본부가 위치한 오스터르베이크로 후퇴하게 돼. COH-OP를 한 게이라면 잘 알텐데, 오스터르베이크가 말 그대로 1 공수사단의 무덤이 돼 버리지. 그런데 이 와중에 신규 부대가 투입돼. 스타니스와프 소사보프스키 장군의 폴란드 독립 공수여단이 1 공수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아른헴 지구에 투입된거야. 원래는 작전 개시 3일째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기상이 좋지 않아서 그때서야 투입된거지.
"이건 우리더러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어쩌겠나. 여태까지 먹여주고 입혀준 은혜를 갚으려면 가야지...." - 소사보프스키 장군
말이 여단이지, 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탈출한 폴란드군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병력은 미미했고, 오히려 그들은 아른헴 지구의 혼전 속으로 빠져들고 말아.
그대로 4일을 버틴 1 공수사단과 폴란드 독립 공수여단은, 25일 전투를 중지하고 라인강을 건너 간신히 탈출하게 돼. 이 와중에 탈출속도를 지연시키는 부상병들을 버리고 갈 수밖에 없었지.
지하실을 꽉꽉 채운 부상병들에게 우리는 차마 그들을 버리고 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린 꼭 돌아올거야. 알겠지?"
부상병들과 우리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기 위해 끅끅거릴 수밖에 없었다. - 2대대 잔존병력의 회고
마지막으로 고립된 소규모 부대들은 그날 저녁까지 계속해서 싸웠는데, 1 공수사단 2대대 소속 무전병이 마지막으로 남긴 무전이 있었어.
이 무전은 몇 키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30군단에게도 전해지지 않고, 유일하게 이 무전을 수신한 부대는 제 9SS 기갑사단 휘하의 감청부대였어.
"모든 탄약이 떨어졌다.... 신이여, 국왕을 보호하소서...."
이로써 아른헴 지구에서 연합군은 완전히 격퇴되었고, 이곳은 이후 연합군의 45년 초 춘계공세때까지 독일군 점령지로 남아있게 돼.
이걸로 마켓 작전이 끝나지.
전투 종료 후 파괴된 아른헴 시가지. 뒤로 보이는 교량이 '머나먼 다리', 아른헴 대교야.
4. 90%가 성공한 작전
작전이 종결된 이후, 몬티는 이렇게 말을 해.
"90%가 성공한 작전이다."
틀린 말은 아니야. 진격 경로의 90%를 장악했으니까.
하지만 원래 목적이 지그프리트 라인을 우회해서 라인 강을 건너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아른헴 대교를 장악하지 못했으니, 얻은건 좁디좁은 둑길과 64번 국도 뿐, 전략적 가치는 얼마 있지도 않은 쓸모 없는 전적이라고 할 수 있지.
결과
독일군 : 사망자 4000~8000명. 부상 및 실종자 미상.
독일군 사상자 총합 1만여명(추정)
영국군 : 사망자 1,130명(마켓, 지상군) + 5,354 (가든, 1 공수사단) = 6,484명, 부상자 미상(대부분 전쟁포로가 됐을 것으로 추정), 실종자 851명(수송중 실종, 전투중 실종 등), 전쟁포로 6450명, 총합 13785명
미군 : 사망자 3542명, 부상 및 실종자, 전쟁포로 미상, 총합 4000여명(그래도 미군은 30군단이 구출했으니까.)
폴란드군 : 사망자 102명, 부상자 309명. 총합 411명.
연합군 사상자 총합 18196명.
특히나 연합군 병력 대부분은 공수부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뼈아픈 손실이었지....
이렇게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이 거둔 최후의 승리는 이렇게 끝을 맺어. 이 작전이 실패하면서 1944년 내에 전쟁이 끝난다는 생각은 덧없는 희망으로 끝이 났고, 44년 12월 ~ 45년 1월 사이 벌어진 일명 '발지 대전투'(독일군 작전명 '라인 수비 작전')에서 또 한번의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45년 봄 '루르 포켓'에서 서부전선 B집단군이 포위, 섬멸(여기서 상기했던 발터 모델 원수가 자살해.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쓸게.)되면서 서부전선은 완전히 붕괴되면서 서부전선의 전투가 끝이 나게 돼. 또한 그때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는 엘베강 동안 방어전투였지. 독일군이 엘베강에서 서부전선을 고착시키자 분개한 미군 지휘관들이 도하작전을 개시하려 하지만 협정에 따라 엘베강 동부는 소련군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고, 이걸로 2차대전 유럽전선은 끝이 나지. 결국, 연합군 사령부의 오만하고 안일한 생각이, 수많은 젊은이들을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거지.....
덧붙여서, 60년대 작품이지만 이 작전에 대해서 상당히 높은 퀼리티로 찍은 영화가 있어.
"머나먼 다리"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개봉했었는데,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고증이 꽤나 정확한 편이야. 관심 있다면 보길 바래.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음번에는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 계획 '낫질작전'에 대해서 쓸게.
<세줄 요약>
1. 1944년 이내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 연합군 사령부가 마켓-가든 작전을 세움
2.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라? 이게 아닌데?
3. 1만 8천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고 결국 후퇴.





